EDIFIER 틱톡 블루투스 클락

일전에 여러가지 시계 디자인을 소개 한 바도 있지만, 벽시계나 탁상시계는 아무리 많아도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또 사고싶다. 시계는 뭔가 매력이 있다. ㅋㅋ

에디파이어에서 만든 블루투스 탁상시계를 펀샵에서 팔길래 하나 사 봤다. 가격이 좀 세다.
edifier
기본적으로 탁상시계이지만 라디오 기능과 블루투스 스피커 기능이 추가되어 있다. 배터리없이 아답터로 작동한다. 3.5 오디오 연결 구멍도 있어서 일반 스피커로도 쓸 수 있다.

알람기능은 요즘 휴대폰을 쓰니까 써보지 않았고, FM 라디오 기능은 뭐 계륵 같은 느낌이다. ㅎㅎ 시계 주제에 블루투스 스피커가 매력적이어서 샀는데, 라즈베리 파이에 usb 블루투스 동글을 달아 휴대폰의 터미널 에뮬레이터로 ssh로 접속해서 웹라디오를 실행하면 딱이다. ㅋ

안녹산의 난과 소그드인 운동

당 멸망의 계기라 할 수 있는 안녹산의 난은 다들 아시리라 생각하는데, 이 안녹산의 난에 관한 흥미로운 견해가 밀워드의 저서에 소개되어 있어 인용해본다.

제임스 A. 밀워드 저/김찬영, 이광태 역, “신장의 역사”, 사계절출판사, 2013

p82

그러나 탈라스 전투는 주로 아랍과 중국 군대간의 최초이자 최후의 교전으로 기억된다. 고선지가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인들이 신장으로 진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전투는 그 자체로는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당을 중앙아시아로부터 몰아낸 이는 고선지가 아니라 당이 고용한 또 다른 외국인 장군인 안록산(安祿山)이었다. 755년부터 763년까지 이어진 그의 반란은 당의 영토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고 위구르의 도움으로 겨우 진압되었다(아래 내용을 참조하라). 안록산은 반은 소그드인이고 반은 돌궐인이었다(소그드어로 ‘빛나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그의 이름 록샨Rokshan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소그드인 아내의 이름과 같다). 당 제국의 동북 지역에서 장군으로서의 그의 위치는 당 시기 북중국 전역의 상업과 행정에서 소그드인이 차지하고 있던 비중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베시에르Étienne de la Vaissière는 당 치하의 북중국을 “투르크-소그드적 환경milieu turko-sogdien”이라고 불렀으며 안록산의 반란은 여태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그드 상인들로부터 지원을 받은 소그드인 운동이었다고 주장했다. 안록산의 의례용 옥에는 황제를 지칭하는 중국식 호칭인 ‘황제(皇帝)’이외에도 소그드식 왕호인 ‘자묵Jamuk’도 새겨져 있었다.68)

본토에서 발생한 안녹산의 난으로 당은 신장에 있던 전초기지들로부터 퇴각해야 했다. 8세기 말까지 티베트는 신장의 남부를 장악했으며 신장의 동부와 간쑤를 두고는 위구르와 분쟁을 벌였다. 신장의 서부와 북부는 카를루크의 종주권 아래에 있었다. 비록 당조는 안록산의 난을 이겨내기는 했으나 다시는 서쪽으로 멀리 신장까지 세력을 확장하지 못했다. 이후 사실상 거의 1000년 동안 신장이 중국에 기반을 둔 국가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통치된 적은 없었다.

 


68)Étienne de la Vaissière, Histoire des marchands Sogdiens, pp. 195~203: Étienne de la Vaissière, “Soghdians in China : A Short History and Some New Discoveries,” p. 26.

왜 여태 나는 안녹산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던거지…-_-

Dave Koz의 새 앨범 Summer Horns

본인은 색소폰 연주곡을 좋아한다. 일전에 추천 색소폰 연주곡 목록을 소개한 바 있는데, 이 포스트의 방문자 수가 너무 많아서 앨범 한 장 사 달라는 의미로 유튜브 링크를 지웠다. 술먹고 들으니 기분이 두 배 업!!! ㅎㅎ

Dave Koz라는 재즈 색소포니스트가 있는 모양인데, 이름을 들어본지는 비교적 최근이지만 요번에 새로 앨범을 내는 모양이다. 근데 같이 연주한 색소폰 연주자들이 전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뿐이다.
summer horns
앨범 표지에 나온 사람들 중에 맨 왼쪽부터 Dave Koz, Gerald Albright 형님, Mindi Abair 언니에다 Richard Elliot 형님까지!!!! 완전 올스타전이다!!!!!!!!!!!!!!!!

이건 선주문을 안 하고는 버틸 수 없다!!!!! 아마존에서 주문 가능하다. 초 기대 중.

양자 컴퓨터가 실용화 될까?

본인은 양자 컴퓨터가 실현되는데 50년도 더 걸릴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양자 컴퓨터가 놀랍게도 이미 상용화되고 있었다!! 최근 구글과 나사가 양자 컴퓨터에 투자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이코노미스트에서 양자 컴퓨터를 급 조명하고 있는 모양.

이코노미스트 Faster, slower—or both at once? May 18th 2013

D-Wave Systems이라는 캐나다 회사가 양자컴퓨터를 판매하고 있는 모양이다. 위키피디아를 보니 구글과 나사가 512 qubit 용량의 양자 컴퓨터를 주문한 모양.

이코노미스트지에서는 adiabatic quantum computer라고 소개하는데, 이게 원래 양자컴퓨터랑 뭐가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기업이라 그런지 몰라도 아직 공개된 기술이 그리 많지 않은 듯. 위키를 보니 어떤 연구가에 따르면 문제에 따라서는 보통의 디지털 컴퓨터보다 속도가 3600배나 빠르다고도 하는데, 이와는 달리 부정적인 견해도 많은 듯. 아… 사실 본인도 뭐가뭔지 잘 모르겠다. 무식이 죄다.

뭐 여하간 양자 컴퓨터가 모든 방면에서 엄청나게 빠른 컴퓨터인줄 상상했더니만 꼭 그런것도 아닌 듯.

잭슨 폴락 – Number 19, 1948

pollock

Jackson Pollock, “Number 19, 1948“, 1948, Oil and enamel on paper laid down on canvas, 78.4 x 58.1 cm

지난 15일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잭슨 폴락의 Number 19, 1948이라는 작품이 무려 5830만 달러에 낙찰된 모양이다. 추상표현주의 작품으로 일전에 리처드 디벤콘의 작품을 소개한 적이 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역시 추상표현주의 작품들이 그렇게까지 가격이 높을 이유가 있나 싶다. 이들 작품들은 곧잘 위작 논란에도 쉽게 휩싸이기도 한다고 한다.

리처드 폴스키의 저서에 따르면, 경매소에서는 매매 가격이 높을 수록 수수료를 많이 얻기 때문에 유명 작품이 매물로 나오면 값을 띄우는 바람잡이 역할을 좀 하는 모양. 과거 서브 프라임 사태 이전에는 멋모르는 졸부들이 덥석덥석 고가에 사가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ㅋ 따지고 보면 미술품 가격 거품의 주범은 앨런 그린스펀이 아닐까 싶다. ㅋㅋㅋㅋ

익룡은 어떻게 먹이를 먹었을까?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국제 익룡 심포지움(International Symposium on Pterosaurs)이 열린 모양이다. 이런 학회도 있나-_-

이코노미스트 Jurassic lark May 11th 2013

사실 익룡이 먹이를 어떻게 포식했을지 완벽한 진실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미국 Southern California 대학의 Michael Habib과 영국 Portsmouth 대학의 Mark Witton이 36 종류의 새와 20 종류의 박쥐가 포식하는 생태를 컴퓨터 단층촬영으로 측정하여 Anurognathus(익룡의 한 종)과 비교한 모양이다. 전통적으로 사람들은 Anurognathus가 매처럼 활강하면서 먹이를 포식했다고 봤던 모양인데, 국제 익룡 심포지움에서 그들의 발표에 따르면, 그게 아니라 그 대신 가만히 서 있다가 미사일처럼 튀어 나갔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모양.

Anurognathus의 입은 쏙독새(nightjar)와 닮았다고 한다. 쏙독새는 활강하면서도 포식하고 튀어 나가면서도 포식한다고 한다. 익룡의 다리는 새나 박쥐보다도 강력하고 따라서 공중으로 튀어 나가는 포식법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 이런이런 익룡이 나오는 영화의 많은 부분이 바뀌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ㅋㅋㅋ

중생대의 세계란 생각보다 더 기괴하고 놀라운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만.

홀수 골드바흐 추측이 완전히 풀렸나?

홀수 골드바흐 추측이 페루 출신의 수학자 Harald Helfgott에 의해 풀렸다는 초 대박급 뉴스가 요즘 세간에 떠도는 듯 하다. ㅋㅋㅋ 이 수학자는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 소속인 듯. 논문은 여기라고 하는데, 본인은 뭐 잘 모르니 넘어갑시다. 켁.

The Aperiodical 블로그에서도 소식을 전하고 있다.

All odd integers greater than 7 are the sum of three odd primes! in The Aperiodical

뭐 이 블로그 방문하시는 분들이면 홀수 골드바흐 추측이 뭔지 아시리라 생각하지만, 일단 설명하자면, 7이상의 모든 홀수는 세 개의 소수의 합으로 표현가능하다는 추측인데, 사실 러시아 수학자 Vinogradov가 ‘충분히’ 큰 수 이상일 때는 참이라는 것이 이미 예전에 증명되어 있다. 얼마나 큰 수냐 하면 그 이후로 증명이 꾸준히 개선되어 최근의 결과로는 2 \times 10^{1346} 정도… ㅋㅋㅋㅋ

이 개선된 bound로도 컴퓨터로 확인하기에는 매우 역부족이라 할 수 있는데, 여하간 이 페루 출신의 수학자가 완전히 풀었다니 완전 초 대박이구만. ㅋㅋㅋ

실크로드와 소그드인 네트워크

제임스 A. 밀워드 저/김찬영, 이광태 역, “신장의 역사”, 사계절출판사, 2013

p73-74

3세기에서 7세기 동안, 실제로는 적어도 8세기 전반까지 실크로드의 상업은 대부분 소그드인 상인들의 손 안에 있었다. 소그디아나(트란스옥시아나)에서 시작하여 신장간쑤 회랑을 지나는, 그리고 당 시기에는 북중국을 가로지르는 지대에 위치한 대부분의 주요 도시에는 소그드인 공동체가 있었다. ‘실크로드’라는 용어는 사실상 거의 잘못된 명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단은 여러 교환 물품 중 하나였을 뿐이며 이러한 물품 중에서 중국으로 유입되는 서방의 수입품은 중국의 수출품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리고 단일한 무역로가 있었다기 보다는 다양한 무역로가 존재했다.

‘소그드인 네트워크’가 덜 낭만적일지는 모르지만 더 좋은 용어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란어를 사용하는 이 상인들이 신장과 중국의 서부와 북부뿐 아니라 세미레체, 박트리아, 인더스강 상류 유역에 걸쳐 흩어져 있던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동서 무역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비잔티움과의 교역 경로도 열었으며 소그드어는 단지 상업적인 환경에서만이 아니라 실크로드의 공용어가 되었다. 고창과 같이 더 큰 공동체에는 7세기 초반까지 상인뿐만 아니라 소그드인 농부와 예술가의 공동체도 있었다. 고창에서 나온 620년대의 세금 문서에 열거된 45개의 상업 거래 중 29개가 소그드인과 관련되어 있다.50) 기후 변화로 인해 누란이 방기된 이후 선선 지역에 새로운 도시들을 설립한 사람들은 소그드식 이름을 가진 엘리트들이었다. 대다수의 소그드인 은 조로아스터교도였지만 일부는 불교를 받아들였으며 불교 경전과 주석을 중국어와 다른 언어로 옮기는 번역가 집단에 합류했다.

소그드인 네트워크는 4세기 초반에 이미 타림 분지와 간쑤 회랑 전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는 둔황에서 서쪽으로 90킬로미터 떨어진 위먼관 근처의 망루에서 발견된 313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주목할만한 편지들 덕분에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소그드어로 쓰인 편지들은 훈족(흉노)에 의해 뤄양(洛陽)이 약탈된 것을 비롯하여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혼란한 사건과 교역에 관련된 일을 논의하고 있다. 한 통의 편지는 간쑤에 주재하는 한 상인이 사마르칸트에 있는 자신의 ‘본사’에 보낸 사업상의 서신이었다. 편지에 언급된 교역품에는 금, 은, 포도주, 후추, 장뇌, 티베트산 사향, 화장품에 사용되는 납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는 흰색 가루가 있었다. 다른 두 통의 편지는 한 여성이 자신의 어머니와 남편에게 보내는 개인적 서신이었다. 모든 편지는 규격화된 형태로 주소가 적혀 있고 포장되어 있었는데, 이는 사마르칸트, 호탄, 누란, 둔황 및 다른지역에 있는 소그드인들이 기존의 우편 체계를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51)

 


50)Étienne de la Vaissière, “Soghdians in China : A Short History and Some New Discoveries,” The Silk Road(publication of the Silk Road Foundation, www.silkroadfoundation.org에서 볼 수 있다) 1, no. 2(2003. 12), p. 25
51) 편지들은 1907년 오렐 스타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편지들의 실제 연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313~314년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이 시기의 소그드인 네트워크와 편지들에 대해서는 Étienne de la Vaissière, Histoire des marchands Sogdiens, pp. 43~67, 117~122를 참조하라. 네 통의 소그드 편지에 대한 심스 윌리엄스의 새로운 영어 번역은 실크로드와 관련된 다른 주요 텍스트들과 함께 실크로드 시애틀의 웹사이트 http://depts.washington.edu/uwch/silkroad/texts/sogdlet (2005년 5월 5일 접속)에 게시되어 있다.

나는 왜 여태까지 실크로드의 상인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했지… -_- 당대에도 규격봉투가 있었고 우편 체계가 있었다니 완전 신기방기하구만. 실크로드에 대해 좀 더 공부해봐야겠다.

속속 드러난 윤창중의 기행 “왜 나는 고급차 안줘” 생떼

국민일보 속속 드러난 윤창중의 기행 “왜 나는 고급차 안줘” 생떼 2013.05.13 18:17

이건 진영논리를 떠나 그냥 인간쓰레기인데, 최근 장관 낙마사태도 그렇고 이번정권의 사람을 보는 기준이 너무나 형편없음을 보여주는 수 많은 증거 중의 하나라고 본다. 무능의 극치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무능이 과거에도 주로 ‘수첩’이라는 단어로 형상화되긴 했지만, 이게 구체적으로 다가오니 열받는다.

오마이뉴스 7년 전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 얼굴” 13.05.10 12:23

 


2013.5.14
한국일보 [윤창중 성추행 파문] 속속 드러나는 사건 전모 2013.05.14 03:3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