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기행] 선진리성

진주성을 뒤로하고 사천에 있는 선진리성을 찾아가기 위해 사천으로 이동했다. 진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사천읍행 버스를 타면 된다. 이 버스는 약 15분 마다 한 대씩 있다고 한다.

선진리성의 위치는 대충 이쯤 된다. 교통편을 미리 알아본 것은 아니고, 차 안에서 아이패드로 다음 교통편을 계속 검색해가면서 이동했다.

일단 사천읍까지는 왔는데, 검색해봐도 선진리로 가는 길이 막막했다. 주위에 있는 가게의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까 버스가 아예 없다고 말씀하시는게 아닌가! 그런데 막상 선진리성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었다-_- 근방에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니 그 버스정류장은 매시 반에 (오후 2시반 제외) 차가 온다고 한다.

여하간 일단 ‘석거리’라는 곳까지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아주머니의 말씀을 듣고 삼천포행 버스를 탔다. 나는 그 유명한 ‘삼천포’가 여기에 있는 줄 처음 알았다-_-

‘석거리’는 삼천포 행 버스를 타고 약 30분정도 내려가면 나오는데, 이 지명은 지도로는 검색이 안 된다. 삼천포로 빠지기 전에 선진리성으로 향햐는 삼거리를 가리킨다.

여하간 여기서부터는 완전 허허벌판이므로 가는 방법이 막막해서 히치하이킹-_-을 하기로 했다. 아 사진만 봐도 덥다.. 켁..

근데 지나가는 차들이 엄지손가락을 올려도 아무도 안 태워주는 것이었다!!!!! 이런 젠장. 낭패였다-_- 7월 말의 열라 땡볕이라서 좀 힘들었다. 일전에 야쿠시마에서는 히치하이킹이 엄청 쉬웠는데, 이 동네는 인심이 팍팍했다. 여하간 대략 2km 정도 걸으면 쉽게 이정표를 찾을 수 있다. 아이패드를 보면서 계속 걸었다. ㅎㅎ

서울에는 비가 쏟아진다는데, 여기는 미친듯이 맑았다.

이 선진리성에서 주요한 두 번의 전투가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이순신 장군의 사천해전인데, 불패의 엄친아 답게 13척의 왜선을 격파하는 것으로 끝났다고 한다. 성 뒤로 돌아서 안쪽에 아무도 오지 않을 법한-_- 구석진 곳에 사천해전에 관한 설명판이 있다. 그 내용을 옮겨보면,

사천해전은 이순신 제독이 제2차 출전시 1592년 5월 29일 처음으로 거북선을 참가시켜 대승한 해전이다. 공은 전선 23척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노량해성에서 원균의 전선 3척과 합류하여 작전협의를 하던 중 왜선 1척이 곤양에서 사천으로 이동하였으므로 이를 추격하여 분멸하고 나서, 사천 선창에 열박(列泊)해 있는 왜 누각전선 12척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물때가 썰물이고 적이 육상의 높은 곳에 위치하여 지세가 불리하므로, 공이 유인작전을 폈다. 공은 거북선을 돌격선으로 먼저 선을 공격케하여 왜선 전부를 당파(撞破), 분멸(焚滅)하였다. 공은 이 해전에서 왜선 13척 모두를 격침시켰고, 육상의 왜군 400여명중 100명을 사상시켰으며, 우리나라 소녀 1명을 구출하였다. 한편 공도 해전 중에 왼쪽 어깨에 적탄을 맞았으나 해전이 끝난 뒤에 치료토록 함으로써 부하들이 이를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사천 해전은 거북선이 처음으로 해전에 참가한 역사적인 해전으로 이후 해전에서 거북선은 돌격선으로서 활약하여 공이 연전연승하는데 기여하였다.

두 번째 주요한 전투는 조명연합군이 어이없는 실수로 큰 참패를 당한 사천 전투인데 위키에 잘 설명이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종결짓는 최후의 전투, 노량 해전에서 선진리성에 주둔한 시마즈순천왜성에서 탈출하려는 고니시를 지원하러 나오는 과정에서 순천왜성과 선진리성 사이에 위치한 노량 해협에서 일대 격전이 벌어진다. 아 제길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해-_-


검색해보면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왜성과 조선성의 주요한 특징적 차이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조선성은 정문을 알아보기 쉽고 크게 정면에 배치하는 반면, 왜성은 정문을 찾기 어렵고 몇번 굽어서 들어오게 되어 있다. (위 사진 참고) 스타에서 테란이 심시티 하듯이, 굽은 입구에서는 아무래도 방어가 용이하다.
  2. 조선성은 성벽을 수직으로 세우는 반면, 왜성은 7~80도 정도의 경사를 만든다.
  3. 성내에 다시 성벽을 몇 겹으로 쌓아서 1차 방어선이 무너지면 2차 방어를 하도록 되어 있다고 하던데, 복원된 성벽은 다중방어를 위한 여러겹까지 구현하지는 않은 듯 하다.
  4. 왜성의 성벽은 90도로 꺾이고 꺽는 부분에는 비교적 큰 돌로 처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5. 왜성의 핵심은 천수각인데, 장군이 거주하며 사령탑의 기능을 하고 있다. 국내에 남은 왜성에는 천수각터만 보존되어 있지만, 일전에 키타큐슈에 방문했을 때 고쿠라성에서 천수각에 들어가본 일이 있다.

비교를 위해 전에 방문한 진주성과 2006년에 방문한 오사카성의 성벽 사진을 올려보겠다.


성벽의 특징적 차이가 보이시는지? ㅎㅎ 더 자세한 설명은 팬저님의 포스트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천수각터에는 위키에 따르면 예전에는 시마즈 가문의 후손이 공원으로 정비하고 비석을 세웠다는데, 해방이후 파괴되고 지금은 한국전쟁중 순국한 공군장병의 위령비인 충령비가 세워져 있다.

천수각터에 올라가도 저 멀리 사천 앞바다가 보이기는 하지만, 나무가 원체 크게 자라서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나마 기대한 멋진 전망마저 없으니 솔직히 시각적으로 스펙타클하게 볼 거리는 없다. ㅎㅎ 아무래도 관광자원으로 만들기에는 무리가 좀 있을 듯 하다. 말 그대로 돌덩이만 보다가 왔다고나 할까. ㅎㅎ

돌아오는 길에도 역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는데, 웬 인심좋은 아저씨께서 사천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태워주셨다. ㅎㅎ 잠시 볼일이 있어 사천에 왔다고 하시던데, 어쨌든 너무 감사합니다. ㅎㅎㅎ 땡볕에서 계속 걷다가 또 버스를 기다리려니 좀 막막했는데, 이럴때 자가용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가난한 자는 어쩔 수 없다. 큭.

사천 터미널에서 갈 수 있는데가 없어서, 다시 진주로 돌아왔다. 진주성에서 오후 3~4시경에 무슨 옛날 의례를 재현하는 행사가 있다고 되어 있던데, 진주성으로 가보니 혹서기간에는 코스츔이 너무 더워서 행사를 중지한다고 한다. 엌.. 망했다-_- 다시 터미널로 돌아와서 순천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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