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이순신의 전쟁 : 임진왜란 이후 4백여 년 그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순신의 전쟁6점
신호영 지음/돋을새김

이글루스의 유명한 역사블로거 을파소씨가 쓴 책이라 하나 사 봤다. 산 지는 오래 됐는데, 이제야 읽어본다.

이순신 제독의 삶이야 뭐 워낙 드라마틱하다보니 떡밥도 많고 할말도 많다. 책의 뒷부분 노량해전에 관한 내용을 보니 일전에 순천 왜성에 방문한 일이 생각나는데, 그때 좀 덜 피곤했더라면 노량 앞바다에 갈 수 있었는데, 못 가보고 돌아온게 좀 후회스럽다.

애석하게도 저자가 학술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탓인지 몰라도 책 안에 지나치게 감정적인 표현이 많고, 사실을 나열할 때의 출처가 대부분 표기되어 있지 않아 주관적 견해인지 조차 모호한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임진왜란이라는 사건이 한반도 위의 여러 사람에게 다양한 임팩트를 준 대단한 사건이니만큼, 매우 다양한 기록이 존재하므로 그의 서술에서 출처 표기가 없는 부분에 큰 오류는 없을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은 주로 원균 명장론과 이순신 자살 혹은 은둔설에 대한 반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책 이전에 있어왔던 다양한 재야 이론들을 반박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사실 그의 블로그에서 어느정도 접한 바가 있어 충분히 내용을 가늠할 수 있다. 그의 블로그를 먼저 읽어본다면 독서 여부를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책의 1/3 정도는 이미 아는 내용이고, 1/3 정도는 본인이 잘못 알고 있었던 내용이며, 1/3 정도는 몰랐던 부분이다. 특히 부산왜영 방화사건 부분은 본인이 알고 있던 바가 잘못된 것 같아 꽤나 놀랍다. 그리고 원균 옹호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부분이 원균이 경상우수영에 임명된지 2개월밖에 안 되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는 부분인데, 이 부분도 저자의 견해대로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애석하게도 이순신에 관련된 부분은 꽤 디테일한 부분까지 추리를 하며 파고들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은 약간 허술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저자는 정여립이 반란을 도모했다고 단정(p34)짓고 있지만, 정말 정여립이 반란을 도모했는지는 아직 모호한 부분이라고 알고 있다. 또한, 조선 수군은 함포전 위주의 근대 해전술이 주력이었고, 일본 수군은 백병전 위주의 중세 해전술이 주력이었다는 통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나 일전에 읽은 프로이스의 ‘일본사‘에는 약간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p116에 거북선에 대한 기록이 상당기간 없기 때문에 거북선은 임진왜란 때 새롭게 개발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고생물학에서의 유명한 경구를 여기서도 적용할 수 있을 듯 하다. 즉,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는 아니다. 저자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가 맞다고도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몰랐던 부분 중에 원균이 멀쩡히 생업에 종사하는 어부들의 목을 베어 수급을 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상당히 쇼킹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이 사람을 평가하는데 상당히 큰 팩터라고 생각되는데, 칠천량에서의 능력을 둘째치고 도덕성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에서 제기되는 주요 논쟁점을 짚어주고 있으니, 관심이 있으면 볼만하다. 다만 한국인 저자 특유의 서술의 출처가 그리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상당한 흠이다. 키건 선생이나 오버리 선생 같은 유명한 전쟁사가들이 왜 인정을 받는지 알 것 같다.

낙살라이트 Naxalite

지난 25일에 인도 국회의원들이 낙살라이트의 공격을 받아 몇몇이 사망한 모양이다. 낙살라이트는 본인도 처음 듣는 이름인데, 인도 내의 공산주의 무장 반군세력 이름인 듯. 일전에 아삼 연합 해방 전선도 소개한 바 있지만, 인도내 무장 반군 세력은 그 종류가 상당히 많다. 낙살라이트는 인도 내에서도 최대 빈곤지역에서 활개치는 세력인데, 과연 근본적인 사회문제에 눈감고 무력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 같다.

이 글은 위키피디아를 번역한 것임.

Naxal, Naxalite 및 Naksalvadi는 인도의 여러 지역에서 다른 조직 하에 있는 다앙한 무장 공산주의 단체를 통칭하는 단어이다. 인도 본토의 동부 주들(차티스가르 주, 자르칸드 주, 서벵골 주, 오리샤 주)에서, 그들은 보통 마오주의자로 알려지거나 자신을 그렇게 부르고, 안드라프라데시 주와 같은 남부 주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불법 행위 (방지) 법(1967)에 의해 테러리스트 단체로 규정되어 있다. 이 운동의 지도자는 중국에 은신해 있다.

‘Naxal’이라는 단어는 서벵골 주의 Naxalbari에서 유래했는데, 이 운동의 기원이 된 지역이다. Naxal들은 급진 극좌 공산주의로 여겨지며 마오주의 사상을 지지한다. 그들의 기원은 1967년 인도 공산당(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를 이끌던 인도 공산당(마르크스 주의)의 분열에서 찾을 수 있다. 최초에 이 운동은 서벵골 주가 중심이었다. 수년 후에는 인도 공산당(마오주의)와 같이 지하 단체의 활동을 통해 차티스가르 주, 안드라프라데시 주 및 오리샤 주와 같은 남부와 동부 인도의 덜 개발된 농촌지역으로 퍼졌다. 지난 10년간 인도 거대 기업과 부패하다고 알려진 지역 공무원의 착취에 대항해 싸우는 추방된 지역민에 의해 커져갔다.

2006년 인도 정보국인 Research and Analysis Wing에 따르면 2만명의 무장한 핵심 간부 낙살라이트가 활동하고 추가적으로 5만명의 정식 간부가 더 있다고 하며, 인도 총리 Manmohan Singh는 그들의 확대되는 영향력이 인도 국가 안보의 가장 심각한 내부 위협임을 선언하였다.

2009년 2월 인도 중앙정부는 낙살라이트의 영향을 받는 모든 주에서 낙살라이트 문제와 관련해 광범위하고 협력적인 “Integrated Action Plan(IAP)”이라는 새로운 국가적 계획을 발표하였다. 중요한 부분으로, 이 계획은 낙살라이트가 활약하는 지역에서 풀뿌리 경제 개발을 위한 자금지원 계획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 낙살라이트 영향의 축소 및 억제를 위한 특수 경찰의 자금지원도 포함한다는 점이다.

2009년 낙살라이트는 10개 주의 약 180개 구에서 활동적이었다. 2010년 8월 국가적 IAP 프로그램을 적용한지 처음으로 1년이 완전히 끝난 후, 카르나타카 주는 낙살라이트의 영향을 받는 주 목록에서 벗어났다. 2011년 7월 낙살라이트의 영향을 받는 주(수치는 추가된 20개 구를 포함한다) 9개 주 83개 구로 줄어들었다. 2011년 12월 중앙정부는 전국 낙살라이트 관련 사망 및 상해가 2010년 수치에서 거의 50% 줄어들었다고 보고했다.

(후략)

 


2013.6.9
이코노미스트 Out of the trees Jun 1st 2013

[서평] 신장의 역사 : 유라시아의 교차로

신장의 역사10점
제임스 A. 밀워드 지음, 김찬영.이광태 옮김/사계절출판사

통상 신장 위구르 자치구라 불리는 중국령 투르키스탄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중심으로한 타림 분지와 그 일대를 가리킨다. 중앙아시아의 근대사에 관해서는 일찌기 피터 홉커크 선생의 저서 ‘그레이트 게임‘과 ‘실크로드의 악마들‘을 통해 상당히 흥미를 갖게 된 터에, 때마침 이런 훌륭한 책을 발견하게 되어 읽게 되었다.

‘그레이트 게임’은 제목 그대로 그레이트 게임의 장기말로서 활약했던 서구의 탐험가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소개하는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되어 있어 대중서답게 매우 흥미진진하다. 그에 반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신장의 역사를 통괄하여 설명해주는 책으로서 약간 덜 대중적인 구성이기는 하나, 극동과 유럽사에 치중된 역사지식에 어느정도 균형을 더할만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으므로 역사서를 즐겨 읽는다면 볼만하다.

책은 신장의 선사시대부터 설명에 들어가지만 원체 남은 기록이 없으니 할 말도 그리 없을 것이다. 실제로 책의 대부분의 분량은 근대 이후의 내용에 집중해 있다. 19세기와 20세기초에 걸쳐서는 아무래도 ‘그레이트 게임’과 비교하면서 읽지 않을 수 없는데, 애석하게도 두 책의 지향점이 워낙 다르다 보니 책의 맨 뒤에 참고서적으로 언급이 되긴 하지만 겹치는 내용은 거의 없다. 홉커크 선생의 저서는 카스피해 동쪽부터 서술의 중심이 티벳까지 옮겨지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장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다만 ‘그레이트 게임’에서는 청조 말기 야쿱 벡이 신장에서 건국한 이후 좌종당의 진압 전에 있었던 두 영국 탐험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책에 야쿱 벡의 배경과 사회 분위기 및 좌종당에 의해 진압되는 과정이 소개된다.

몇 가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책의 중간중간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김호동교수의 연구가 자주 언급된다. 그의 저서를 한번 찾아 보고 싶다.
p56에 월지라는 수수께끼의 민족이 등장하는데, 이거 꽤 흥미롭다. 좀 더 자세히 찾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p73에 소그드인 네트워크에 관한 이야기가 좀 있으나, 실크로드에 관한 미시사는 생각보다 별로 없다. 확실히 대중적 흥미와는 거리가 있는 학술서인듯.
p129의 명의 조공체계에 관해서는 일전의 포스트를 참조하시라.
p240에 프랜시스 영허즈번드의 이름이 잠시 언급되는데, 이 사람은 ‘그레이트 게임’에서 등장하는 마지막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p440에 중국 관료가 기념비적인 수리 사업을 선호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거 남일 같지가 않다. 4대강은 잘 지내는지ㅋㅋ 전근대적인 사람이 현대의 대통령을 하면 어떤 폐해가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ㅎ

책의 마지막에는 마무리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세 명의 위구르인의 삶을 간략하게 소개하며, 그들의 인생이 신장의 역사와 어떻게 얽혀있는지 이야기한다. 마지막까지 알찬 내용으로 구성된 책이라 생각되며 중앙아시아사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명의 조공 체계에 대한 왜곡적 이미지

제임스 A. 밀워드 저/김찬영, 이광태 역, “신장의 역사“, 사계절출판사, 2013

p129

이와 같은 물품의 교환은 중국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익숙한 ‘조공 체제’ 모델의 범주에 포함되는데, 이를 통해 명은 선물에 대한 대가로서 중앙아시아로부터 말과 옥 및 다른 물품들을 받아들였다.66) 명 조정이 사절단의 비용을 부담하고 강력한 이웃 국가들을 위해 관시(關市)를 열었으며 또한 표면적으로만 순종하는 방문객들로 하여금 ‘공물’을 바치도록 만들기 위해 이들이 가져온 물품에 대해 의도적으로 후한 값을 치렀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바이다. 이와 같은 외교상의 선물을 뜻하는 한자인 공(貢)은 일반적으로 ‘공물tribute’이라고 번역되지만, ‘공물’은 실제하지 않았던 종속적이고 착취적인 관계를 나타내므로 이러한 물품을 ‘선물gifts’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67)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이 뻔한 속임수를 꿰뚫어 보았지만 중국의 공식 연대기들은 선물을 가지고 온 사신들이 명의 황제에게 신종(臣從)을 서약했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 작가들은 신장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인 위신과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15세기 투루판과 중국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물을 헌상한 사절단이 중국의 봉신(封臣)이었다는 허구를 여전히 주장한다.

 


66) 로사비Morris Rossabi는 투루판과 명의 관계를 교역 및 외국과의 관계에 대한 명의 기본적인 입장과 이러한 입장들이 야기한 문제들과 연관지어 논의했다(Morris Rossabi, “Ming China and Turfan, 1406-1517″). 제국의 우월성에 대한 중국 측 주장의 수사학과 실제에 대해서는 Joseph F. Fletcher, “China and Central Asia, 1368-1884″ 참조.
67) “Tributum은 로마의 세금을 지칭하는 라틴어 단어(또 다른 것은 vectigalia이다)로서 기원전 167년 이후 로마의 시민들과 로마의 시민이 아닌 사람 모두를 포함하여 지역의 주민들이 로마에 바치는 직접세를 나타내기 위해서 독점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 Tribute는 현금 또는 현물로 징수된 토지세나 인두세 중 하나였다. 현물세에는 물론 이집트에서 온 곡물들도 포함된다. …… 공물로서 바쳐진 곡물은 또한 시칠리아와 아프리카에서 중요한 세금이었다.”(Allison Futrell, 개인적인 서신). 따라서 Tribute는 역사적으로는 제국이 정복지역에 부과한 무거운 세금을 지칭하는 것이다. 반면 중국적인 맥락에서 ‘공(貢)’은 그 원산지를 대표하되 금전적인 가치는 상당히 낮은 상징적인 선물들 – 예를 들어 투루판의 과일 잼과 같이 – 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국가만이 ‘공’을 바치는 것도 아니었는데 중국의 관원들 및 명과 청의 다른 백성들도 황제에게 ‘공’을 바쳤다. ‘황제에 대한 선사품’이 아마도 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번역일 수 있다. 서구의 학자들은 계속해서 ‘공’을 ‘tribute’라고 번역함으로써 무의식중에 이러한 특정한 형태의 의례화된 외교와 교역에 참여하게 된 국가들을 중화 제국이 지배했다는 (또는 적어도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수사학을 지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신장뿐만 아니라 사절단들이 공을 바쳤던 동남아시아, 한국, 오키나와 및 다른 국가들에도 적용된다. 이에 대한 더 많은 논의는 John E. Wills, Jr., “Tribute, Defensiveness, and Dependency: Use and Limits of Some Basic Ideas about Mid-Ch’ing Foreign Relations,” American Neptune, 48(1998), pp.225~229와 “How We Got Obsessed with the ‘Tribute System’ and Why It’s time to Get Over it,” paper presented at the panel “Rethinking Tribute: Concept and Practice,” Annual Meeting of the Associations for Asian Studies(1995. 4) 및 James L. Hevia. Cherishing Men for Afar: Qing Guest Ritual and the Macartney Embassy of 1793(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1995) 참조.

이 뒤쪽으로 명과 중앙아시아 국가간의 비교적 대등한 지위에 대한 사례가 나온다. 이 글을 보니 일전에 sonnet씨가 언급한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말이 생각나는데, 조선의 대명 조공무역에 대한 이미지도 재고해봐야 하지 않나 싶다.

안록산의 난과 소그드인 운동

당 멸망의 계기라 할 수 있는 안록산의 난은 다들 아시리라 생각하는데, 이 안녹산의 난에 관한 흥미로운 견해가 밀워드의 저서에 소개되어 있어 인용해본다.

제임스 A. 밀워드 저/김찬영, 이광태 역, “신장의 역사“, 사계절출판사, 2013

p82

그러나 탈라스 전투는 주로 아랍과 중국 군대간의 최초이자 최후의 교전으로 기억된다. 고선지가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인들이 신장으로 진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전투는 그 자체로는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당을 중앙아시아로부터 몰아낸 이는 고선지가 아니라 당이 고용한 또 다른 외국인 장군인 안록산(安祿山)이었다. 755년부터 763년까지 이어진 그의 반란은 당의 영토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고 위구르의 도움으로 겨우 진압되었다(아래 내용을 참조하라). 안록산은 반은 소그드인이고 반은 돌궐인이었다(소그드어로 ‘빛나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그의 이름 록샨Rokshan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소그드인 아내의 이름과 같다). 당 제국의 동북 지역에서 장군으로서의 그의 위치는 당 시기 북중국 전역의 상업과 행정에서 소그드인이 차지하고 있던 비중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베시에르Étienne de la Vaissière는 당 치하의 북중국을 “투르크-소그드적 환경milieu turko-sogdien”이라고 불렀으며 안록산의 반란은 여태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그드 상인들로부터 지원을 받은 소그드인 운동이었다고 주장했다. 안록산의 의례용 옥에는 황제를 지칭하는 중국식 호칭인 ‘황제(皇帝)’이외에도 소그드식 왕호인 ‘자묵Jamuk’도 새겨져 있었다.68)

본토에서 발생한 안녹산의 난으로 당은 신장에 있던 전초기지들로부터 퇴각해야 했다. 8세기 말까지 티베트는 신장의 남부를 장악했으며 신장의 동부와 간쑤를 두고는 위구르와 분쟁을 벌였다. 신장의 서부와 북부는 카를루크의 종주권 아래에 있었다. 비록 당조는 안록산의 난을 이겨내기는 했으나 다시는 서쪽으로 멀리 신장까지 세력을 확장하지 못했다. 이후 사실상 거의 1000년 동안 신장이 중국에 기반을 둔 국가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통치된 적은 없었다.

 


68)Étienne de la Vaissière, Histoire des marchands Sogdiens, pp. 195~203: Étienne de la Vaissière, “Soghdians in China : A Short History and Some New Discoveries,” p. 26.

왜 여태 나는 안록산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던거지…-_-

실크로드와 소그드인 네트워크

제임스 A. 밀워드 저/김찬영, 이광태 역, “신장의 역사“, 사계절출판사, 2013

p73-74

3세기에서 7세기 동안, 실제로는 적어도 8세기 전반까지 실크로드의 상업은 대부분 소그드인 상인들의 손 안에 있었다. 소그디아나(트란스옥시아나)에서 시작하여 신장간쑤 회랑을 지나는, 그리고 당 시기에는 북중국을 가로지르는 지대에 위치한 대부분의 주요 도시에는 소그드인 공동체가 있었다. ‘실크로드’라는 용어는 사실상 거의 잘못된 명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단은 여러 교환 물품 중 하나였을 뿐이며 이러한 물품 중에서 중국으로 유입되는 서방의 수입품은 중국의 수출품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리고 단일한 무역로가 있었다기 보다는 다양한 무역로가 존재했다.

‘소그드인 네트워크’가 덜 낭만적일지는 모르지만 더 좋은 용어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란어를 사용하는 이 상인들이 신장과 중국의 서부와 북부뿐 아니라 세미레체, 박트리아, 인더스강 상류 유역에 걸쳐 흩어져 있던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동서 무역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비잔티움과의 교역 경로도 열었으며 소그드어는 단지 상업적인 환경에서만이 아니라 실크로드의 공용어가 되었다. 고창과 같이 더 큰 공동체에는 7세기 초반까지 상인뿐만 아니라 소그드인 농부와 예술가의 공동체도 있었다. 고창에서 나온 620년대의 세금 문서에 열거된 45개의 상업 거래 중 29개가 소그드인과 관련되어 있다.50) 기후 변화로 인해 누란이 방기된 이후 선선 지역에 새로운 도시들을 설립한 사람들은 소그드식 이름을 가진 엘리트들이었다. 대다수의 소그드인 은 조로아스터교도였지만 일부는 불교를 받아들였으며 불교 경전과 주석을 중국어와 다른 언어로 옮기는 번역가 집단에 합류했다.

소그드인 네트워크는 4세기 초반에 이미 타림 분지와 간쑤 회랑 전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는 둔황에서 서쪽으로 90킬로미터 떨어진 위먼관 근처의 망루에서 발견된 313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주목할만한 편지들 덕분에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소그드어로 쓰인 편지들은 훈족(흉노)에 의해 뤄양(洛陽)이 약탈된 것을 비롯하여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혼란한 사건과 교역에 관련된 일을 논의하고 있다. 한 통의 편지는 간쑤에 주재하는 한 상인이 사마르칸트에 있는 자신의 ‘본사’에 보낸 사업상의 서신이었다. 편지에 언급된 교역품에는 금, 은, 포도주, 후추, 장뇌, 티베트산 사향, 화장품에 사용되는 납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는 흰색 가루가 있었다. 다른 두 통의 편지는 한 여성이 자신의 어머니와 남편에게 보내는 개인적 서신이었다. 모든 편지는 규격화된 형태로 주소가 적혀 있고 포장되어 있었는데, 이는 사마르칸트, 호탄, 누란, 둔황 및 다른지역에 있는 소그드인들이 기존의 우편 체계를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51)

 


50)Étienne de la Vaissière, “Soghdians in China : A Short History and Some New Discoveries,” The Silk Road(publication of the Silk Road Foundation, www.silkroadfoundation.org에서 볼 수 있다) 1, no. 2(2003. 12), p. 25
51) 편지들은 1907년 오렐 스타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편지들의 실제 연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313~314년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이 시기의 소그드인 네트워크와 편지들에 대해서는 Étienne de la Vaissière, Histoire des marchands Sogdiens, pp. 43~67, 117~122를 참조하라. 네 통의 소그드 편지에 대한 심스 윌리엄스의 새로운 영어 번역은 실크로드와 관련된 다른 주요 텍스트들과 함께 실크로드 시애틀의 웹사이트 http://depts.washington.edu/uwch/silkroad/texts/sogdlet (2005년 5월 5일 접속)에 게시되어 있다.

나는 왜 여태까지 실크로드의 상인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했지… -_- 당대에도 규격봉투가 있었고 우편 체계가 있었다니 완전 신기방기하구만. 실크로드에 대해 좀 더 공부해봐야겠다.

[서평] 사코와 반제티 : 세계를 뒤흔든 20세기 미국의 마녀재판

사코와 반제티10점
브루스 왓슨 지음, 이수영 옮김/삼천리

보스턴은 미국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의 중심지이다. 그러나 본인은 보스턴 차 사건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근래 있었던 보스턴 마라톤 테러를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80년도 더 전에 있었던 보스턴이 미국의 양심을 팔아넘긴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20세기 초 아나키즘 운동사에 있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바로 이 사코와 반제티 사건인데, 이 사건은 현재까지도 공식적으로는 미해결 케이스로 남아있지만, 편견에 가득찬 인간들이 행했던 사법살인이 주는 메세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전반적으로 그들에 대한 판결은 편견에 가득한 판사와 정의를 망각한 검사, 그리고 무능한 변호사의 합작품이다. 미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불리지만, 드레퓌스는 결국 풀려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국 처형되고 만다.

이 책은 사코와 반제티 사건의 경과를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고도 상세하게 소개한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이러하다. 제화공장의 임금 지불일에 있었던 노상 무장강도의 살인사건 이후, 아무런 범행동기가 없는 아나키스트였던 사코와 반제티가 검거된다. 당시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들은 사회의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고, 때마침 월스트리트 폭탄테러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의 간략한 부분은 일전에 소개한 ‘자동차 폭탄의 역사‘의 앞부분에도 소개가 되어 있다. 이후 이들의 부당한 재판과정에 반응한 전 세계의 아나키스트들이 항의하면서, 점차적으로 아나키스트는 아니지만 양심이 있는 지식인들까지 부당한 판결에 맞서 그들의 석방을 주장하게 된다. 결국 이 사건은 원래 강도사건을 떠나 이데올로기와 정치세력간의 대결로 격화되고, 결국 7년의 시간을 끈 끝에 그들은 전기의자에 처형된다.

재미있는 부분은 진범이 자백하고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나서면도 아직까지 당시 유죄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은 의견을 굽히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면에서 보자면 인간은 참으로 터무니 없이 비논리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노상강도 사건 당시의 정황을 알려진데까지 상당히 상세하게 설명한 후, 그 뒤에 펼쳐지는 법정공방에 관한 내용이 앞부분 절반정도에 해당하고, 후반부에서는 그들의 석방을 위해 헌신한 다양한 부류의 사람과 전세계에 울려퍼지는 함성을 그리고 있다.

몇 가지 코멘트할 부분이 있다.

p20에 미국 국가가 울릴 때 자리에 일어서지 않던 사람을 해병이 그 자리에서 총을 쏴 죽이자, 주변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장면이 나온다. 사회가 아나키스트를 어떻게 취급했는지 보여주는 단편이 아닐 수 없다.

(통상 공산주의자라고 불리는) 마르크스주의자와 아나키스트는 전통적으로 매우 관계가 좋지 못한데, 마르크스주의자는 혁명의 중간부분에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과도기적 단계를 필수적으로 보았고, 아나키스트는 그 부분을 격렬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마르크스주의 독립운동가와 아나키즘 독립운동가들간의 투쟁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부분은 일전에 소개한 바도 있다.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사코와 반제티 문제를 이용했던 부분(p390)에서는 치가 떨린다.

디테일한 묘사 때문에 약간 지루하다고도 생각될 수 있지만, 그만큼 사건의 상세한 부분을 알려주려는 저자의 노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앞부분은 약간 늘어지지만 조금 지나서 법정 공방 부분에 들어가면 법정 드라마를 연상시킬만큼 긴장되는 공방이 오고가므로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세계를 울리는 함성이 있었건만 세월에 장사가 없는 것 같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에서도 그들의 흔적을 알려주는 기념물이 거의 전무한 듯 싶다. 다행히도 이런 출판물이 국내에까지 번역된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을 준다고나 할까.

1762년의 3세들

1762년에 러시아 황제 표트르 3세가 즉위했다고 선언하자, 조지 3세가 대답하길 “우리 각자 이름에 3세가 유럽에 아홉명이나 있구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조지 3세, 영국
카를로스 3세, 스페인
아우구스트 3세, 폴란드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프러시아
카를로스 엠마뉴엘 3세, 샤르데냐
무스타파 3세, 터키
표트르 3세, 러시아
프란체스코 3세, 모데나 레조 공국
프레데릭 3세, 작센-고타 알텐부르그 공국

이런건 유럽사에서 전무한 일이었다고 한다.

열라 쓸데없는 역사 펀팩트… -_- 근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1762년에 태어나지 않았는데 좀 이상한 듯-_-

출처

[서평] 천황의 하루 : 오늘, 일본 황궁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천황의 하루6점
요네쿠보 아케미 지음, 정순분 옮김/김영사

일본의 메이지 천황의 하루 일상을 소개하는 책이다. 메이지 천황은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한 듯 한데, 이 책은 그러한 규칙적인 생활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를 아침 기상 순간부터 저녁에 잠이 들 때까지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일본 궁중의 독특한 예절이나 기괴한 관습 등등 재미있고 신기한 묘사가 많다. 과거 궁궐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다양한 기록을 토대로 메이지 천황의 일상을 재구성하고 있다. 메이지 천황의 역사적 위치를 제외하여 사람 자체로만 보면 꽤나 매력적인 사람인 것 같다. ㅎㅎ

저자가 일본인이니만큼 천황의 소소한 행위의 의도들을 꽤나 미화한 부분도 없지 않다. 이러한 부분은 감안을 하며 읽어야 할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다이쇼 천황쇼와 천황의 일상도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독특한 일본 궁중 예절의 묘사가 재미난다. 많지는 않은 분량이라 금방 읽을 수 있다. 관심이 있다면 볼만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