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독립을 위한 분신자살

self-immolation올해들어 벌써 세 명의 분신자살자가 나오면서, 티벳 독립을 위해 분신자살을 한 사람이 2009년 3월 이래로 누적도합 99명이 되었다고 한다.

알 자지라 Tibet nears 100 self-immolations

티벳인들의 이러한 저항방법을 보니 일전에 소개한 피터 홉커크 선생의 저서 ‘그레이트 게임’에서 1904년 영국이 티벳인을 제압하는 광경을 묘사하는 부분이 생각난다.

피터 홉커크 저/정영목 역, “그레이트 게임“, 사계절출판사, 2008, p642-644

러일전쟁 발발 소식은 갼체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작은 마을 구루에 다가가던 영허즈번드 사절단에게도 전해졌다. 갼체는 이제 불과 60킬로미터 거리에 있었다. 영허즈번드와 호위대는 그때까지 티베트인을 한 사람도 죽이지 않고 주요한 장애물 세 개를 넘는데 성공했다.

(중략)

영허즈번드의 호위대장 제임스 맥도널드 준장은 얼은 구르카인과 시크교도 병사들을 움직여 티베트인을 완전히 포위했다. 이어 티베트어를 할 줄 아는 사절단 소속의 정보 장교 오코너(Frederick O’Conner)대위를 보내 무기를 내려 놓으라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티베트 군 지휘관은 그 말을 무시하고, 혼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맥도널드는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하여 티베트군의 무장을 해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임무를 수행하러 나선 세포이 병사들이 저항하는 티베트 병사들의 손에서 화승총을 빼앗았다. 티베트 군 지휘관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가운데 밑에서 리볼버를 꺼내더니 근처에 있던 세포이 병사의 턱을 날려버리면서 부하들에게 전투를 명령했다. 티베트군은 즉시 호위대에 달려들었으나, 높은 수준의 훈련을 받은 호위대의 총에 쓰러지고 말았다. 사 분이 안 되어 중세의 군대는 근대 살상무기 앞에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무기나 군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티베트인 700명이 평원에서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중략)

맥도널드가 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는 즉시 사격 중지를 명령하지 않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티베트인들이 천천히 평원을 가로질러 줄을 지어 물러가는데도 사격은 계속되었다. 어쩌면 맥도널드는 사격을 멈추려 했지만, 기관총과 다른 시끄러운 소리들 때문에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기관총을 책임진 중위는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걸어서 도망가는 사람들을 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티벳인들이 주는 이런 느낌이 일반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애처롭고도 안타까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전에 인터넷으로 어느 중국인과 티벳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달라이 라마를 강하게 비난하는 상당히 국수주의적 스탠스였다. 영어가 딸려서-_- 더 많이 이야기 할 수 없었던 것이 안타깝다. 알 자지라의 페이스북에서는 중국인으로 짐작되는 사람이 그 와중에도 강하게 티벳을 비난하고 있는데, 분신자살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자살폭탄 테러와 같다고 말하는 듯. 왠지 그의 주장중에 친일파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비슷한 주장도 보인다. 쯧쯧..

 


2013.3.10
알 자지라 Tibetan self-immolations spark China tension 10 Mar 2013 13:15
아직도 분신자살은 계속된다. 아, 삶이란 무엇일까.

배링턴 브라운의 왓슨과 크릭 사진

매트 리들리 저/김명남 역, “프랜시스 크릭”, 을유문화사, 2011

p105-106

(1953년) 5월 21일에는 기자를 지망하는 한 대학생이 프리랜서 사진가 앤서니 배링턴 브라운을 그들에게 보냈다. 두 청년 과학자와 금속 모형을 사진으로 찍어 기사와 함께 『타임』지에 투고할까 했던 것이다. 화학과 출신인 배링턴 브라운이 두 사람을 만나 보니 이렇게 명랑한 사람들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애써도 형식적인 포즈를 취하게 할 수가 없었다. 모형 앞에 당당하게 서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들은 “한심스러울 정도로 서툴렀고, 사진사의 노력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그는 크릭에게 등받이 없는 의자에 서서 계산자로 모형을 가리키라고 지시했고, 촬영에 대비해 오딜이 골라준 새 재킷을 입은 왓슨에게는 맞은편에서 모형을 올려다보라고 지시했다. 사진들은 끝내 『타임』지에 게재되지 못했지만, 배링턴 브라운은 장당 10실링쯤 수고료를 받았다. 그리고 그 중 한 장은 과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진이 되었다.


책에 사진이 안 나와있어 검색해 봤는데, 이 사진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사진을 찍은 Antony Barrington Brown은 올해 초에 교통사고로 별세했다고 한다.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미지 출처

닐 암스트롱 별세

이코노미스트 웹사이트에 닐 암스트롱의 부고 기사가 올라와 있다.

이코노미스트 Neil Armstrong Aug 25th 2012, 20:38

Armstrong offered the following self-portrait: “I am, and ever will be, a white-socks, pocket-protector, nerdy engineer, born under the second law of thermodynamics, steeped in steam tables, in love with free-body diagrams, transformed by Laplace and propelled by compressible flow.”

파하하 그러고보니 예전에 읽은 앤드루 스미스의 ‘문더스트’라는 책이 생각나는데, 이 책에 따르면 1969년 당시 원래는 달을 한 바퀴 선회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케네디의 우격다짐으로 달착륙으로 계획이 변경되었다나 뭐라나. 이 책은 믿거나 말거나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하다.

앤드루 스미스 저/이명헌, 노태복 역, “문더스트”, 사이언스 북스, 2008
p202-208

실제로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서기 전 케네디 대통령은 그의 전임자이자 디데이 작전의 전문가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보다도 우주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사실 ‘아이크’ 아이젠하워는 바로 그런 생각에 분개했는데 1957년에 소련이 스푸트니크 호를 발사함으로써 그의 두 번째 임기의 후반부를 망쳐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소련의 인공 위성이 심각한 군사적 위협은 못 된다는 것을 알았으며 한 역사가의 표현대로 소련과 미국이라는 초강대국들 사이에 이루어진 “소위 ‘차가운 전쟁’을 ‘차가운 평화’로 간주하자는 무언의 동의”에 안심하고 있었다. 그는 스푸트니크가 자신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점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항공 산업과 군산 복합체와 얽혀 있는 그의 정적들이 스푸트니크를 어떻게 이용할지 짐작도 못한 것이다. 냉전 시대 내내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는 자기 방어적인 군소 정치인들과 정부 기관, 이를테면 조지프 매카시 의원이나 전제 군주적인 FBI 국장 에드거 후버 측에서 촉발시켰는데, 별안간 존경할만한 대통령이 친히 국회를 발칵 뒤집을 거리를 들고 나서면서 사태는 복합적으로 진행되었다. 상원의 민주당 대표에서 곧이어 부통령이 되는 허풍이 심한 텍사스 출신의 린드 존슨은 이렇게 거들었다.
“로마 제국은 도로를 세워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대영 제국은 선박으로 바다를 재패했습니다. 우리는 비행기를 발명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세력을 떨쳤던 것입니다. 지금은 공산주의자들이 우주 공간에 발판을 마련하려는 지경입니다.”
존 매코믹 하원 의원은 어쩌다가 미국이 “국가적 소멸”에 직면해 있다고 선언했을까? 왜 불쌍한 개 라이카를 태우고 궤도 비행을 한 스푸트니크 2호에 자극받아 급조된 린든 존슨의 미국 우주 기술 전문 위원회에서 커티스 르메이 장군이 “우리가 전면전에 돌입하기 전에 그들을 따라 잡을 수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라는 발언을 했겠는가? 뭐에 돌입한다고? 그것만으로 모자랐는지 베르너 폰 스트레인지2는 인공 위성처럼 돌다가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궤도 폭탄에 전술적 이점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푸트니크가 궤도 폭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열심히 강조했다.

(중략)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피그스 만 침공 3주 전만 해도 케네디는 로켓 개발을 지원하는 데 반대했다. 그러나 이제 우주 정복이야말로 20세기의 상징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유인 우주 센터 감독 로버트 길루스와 그의 나사 동료 조지 로를 불러들였다. 훗날 로버트 길루스는 케네디가 향후 계획에 대해 묻기에 머큐리 계획과 더불어 언젠가 달궤도를 비행하려는 기획 단계의 야심을 설명했다고 크리스 크래프트에게 말했다. 케네디는 소련을 납작하게 누르려면 왜 달에 착륙하지 않고 주변을 돌기만 하냐고 끼어들었다. 크리스 크래프트는 로버트 길루스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나는 부정적으로 비쳐지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달 착륙이란 것은 궤도 비행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고난이도의 도전이라고 설명을 했지. 그런데 도대체 듣지를 않더라고.”

(중략)

물론 이에 대한 이견들도 있다. 은퇴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아폴로 계획을 “그냥 헛짓”이라고 불렀다. 다른 이들은 그런 광대한 정부 차원의 우주 계획은 정부 주도의 경제 체제로 이어져 정부 권한을 지나치게 키우고, 교육계와 학계에 있어야 할 인재를 빨아들이고, 사회 보장에 쓰일 돈까지 써 버리며, 지상의 안보에 대한 관심마저 흩뜨린다고 불평을 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들은 놀라우리만큼 잠잠해졌다. 전무후무한 그 10년 동안 미국인들은 기꺼이, 심지어 열의를 갖고 거대 정부의 사제인 과학자의 헌금 접시에 신뢰와 세금을 갖다 바쳤다. 1961년 5월 25일 국회 연설에서 케네디 대통령은 대담하지만 무모한 이 계획에 대하여 활발한 국가적 토론을 요청했다. 그는 누군가가 나서서 그에게 이 계획을 그만두라고 말해 주기를 원했던 것 같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상원에서의 그 ‘토론’은 1시간가량 지속되었지만 할 이야기가 있던 이는 상원의원 아흔여섯 명 중 겨우 다섯 명뿐이었다.

 


2. 스탠리 큐브릭의 1964년작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의 등장인물. 공군기지와 각료 회의장, 핵폭탄을 싣고 가는 폭격기 B52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기계 팔을 달고 등장하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기술의 신봉자이다.

계속 읽기

바턴 빅스 별세

유명한 펀드 매니저 바턴 빅스가 지난 14일 별세했다고 한다. 그는 닷컴 버블을 정확히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예전에 그의 저서를 상당히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뭔가 승부사의 세계에 오래 몸담은 현자의 입담이랄까 그런게 느껴졌다. 펀드 매니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읽어볼만할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린 마굴리스 별세

몰랐는데, 지난 11월에 린 마굴리스 언니가 별세했다고 한다. 일전에 엽록체의 기원에 관한 포스트에서 새포내 공생설(Endosymbiotic theory)에 관해 소개한 적이 있다. 내 살면서 지식으로 충격을 받은 몇 안되는 사건이 아닐까 싶다. ㅎㅎㅎ

알라딘을 검색해보니 마굴리스 언니의 단독 저술한 책이 딱 한 권 나오는데, ‘공생자 행성‘이다. 딱 제목만 봐도 무슨 이야기를 할 지 짐작이 된다. ㅎㅎ 그래도 한 번 사 읽어봐야 할 듯..

박영석과 안나푸르나

결국 박영석 대장, 신동민 대원, 강기석 대원의 영결식이 진행된 사실을 이제사 알게 되었다.

연합뉴스 <”박영석 정신 살아있으리”영결식 눈물바다>(종합) 2011/11/03 12:09

박영석 대장의 등반기록은 다음과 같다. 출처

◇박영석 대장 등반 기록
○세계 최단기간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세계 최단기간 등정 (8년 2개월)
○세계 최초 6개월간 최단등정 히말라야 8,000m급 5개봉 등정
○세계 최초 1년간 히말라야 8,000m급 최다등정 (6개봉) 달성 (기네스북 등재)
○아시아 최초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1993년 달성)
○동계 랑탕리 세계초등 (1989년 등정)
○세계 최단기간 무보급 남극점 도달 (2004.1.12.)
○북극점 도달 (2005.4.30.)
○인류최초 산악 그랜드 슬램 달성 (2005.4.30.) (기네스북 등재)
○단일팀 세계최초 에베레스트 횡단 등반 성공 (2006.5.11.)
○2007 중국사천성 희조피크 세계초등
○2009 에베레스트 남서벽 코리안 신루트 등정

박영석 대장의 14좌 최단기간 등정기록은 사실 폴란드 산악천재 예지 쿠쿠츠카와 그리 차이나지 않는다. 예지 쿠쿠츠카가 산이 되었듯이 그도 산이 되었다.

안나푸르나는 eight thousander중의 하나인데, 네팔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주봉인 안나푸르나 1봉은 8000미터가 넘어 세계에서 10번째로 높은 곳이고, 그 주변으로 2, 3, 4봉이 모두 7500미터가 넘는다. 안나푸르나는 산스크리트어로 ‘풍요의 여신’이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8000미터 14좌 고봉중에서 인류에게 정상을 허용한 첫번째 산이기도 하다.

8000ers.com의 2008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안나푸르나 1봉은 14좌 중에서 등반시도가 가장 적은 산에 속하면서 동시에 사망률이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다. 이 통계 자료를 보고 조금 놀랐는데, 일명 ‘죽음을 부르는 산’인 K2 보다 안나푸르나가 더 사망율이 높다는 게 좀 의외다. 헉.

이번에 박영석 대장이 시도한 안나푸르나 남벽은 난이도가 높은 코스라고 하는데, 미디어 오늘 기사에 따르면, 이미 크리스 보닝턴이 1970년에, 그리고 국내에서는 조형규 박정헌 원정대가 이미 성공한 바가 있다고 한다.

여하간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가 생명을 또 삼켰다. 죽는 것도 삶의 일부라고 했던가. 산사나이가 산으로 돌아갔으니 그의 운명이 그러한 까닭이 아닐까 싶다.

잡스형….

방문하는 거의 모든 블로그에서 언급하니 본인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구만..

지금 애플 홈페이지

이렇게 한 시대가 가는가…

이코노미스트 홈페이지 제일 첫 기사가 부고 기사다. 여태 이코노미스트지를 읽으면서 부고가 맨 첫 기사로 올라온 적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1.10.7
근조 Steve Jobs by PI@NOMAN

 


2013.2.15
교황 VS 잡스 사임관련 비교표 by isao

과일 가판대가 23년 간의 독재정권을 무너트렸다

지금 이집트의 상황이 꽤나 긴박한 것 같다. 아이패드의 CNN 앱에서 연이어 속보가 올라오는데, 시위대에 군대가 발포하여 인명피해가 큰 듯 하다. BBC의 in depth 코너가 개설되어 있으니 소식을 확인하고 싶으면 다음 링크를 보시라.

BBC EGYPT UNREST

게다가 이러한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반정부시위가 예멘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쪽 소식은 알 자지라 소속의 에이전트가 많아서 아무래도 기사가 빠르고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다면 알 자지라를 주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알자지라 New protests erupt in Yemen 29 Jan 2011 13:06 GMT

엇, 알 자지라 홈페이지 개편 이후에 기사 시간이 메카 타임에서 GMT로 바뀌었다. 이건 몰랐네 ㅎㅎ 뭐 하여간 요 근래에 북아프리카 지역의 민주화 바람이 갑자기 불고 있는 듯 하다. 아무래도 다들 아시다시피 튀니지에서 일어난 민주 혁명 운동에 영향을 받은게 아닐까 싶다. 비공식적으로 ‘재스민 혁명‘이라는 이름까지 붙어있다.

이코노미스트 Let the scent of jasmine spread Jan 20th 2011
이코노미스트 Ali Baba gone, but what about the 40 thieves? Jan 20th 2011

튀니지 주변으로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대부분 독재화가 되어 있는데, 그 상황은 이코노미스트지 기사의 지도에 잘 나와 있다.

튀니지 주변으로 완전히 독재국에 둘러싸여 있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리비아 독재자인 카다피는 이 혁명에 대해 열라 비난했다고 한다. ㅎㅎ 뭐 이 친구의 망언은 한둘이 아니니 넘어가자ㅋ

이 모든 사태의 기폭제가 무엇인가? 튀니지의 매우 가난한 청년 Mohamed Bouazizi가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하지 못해서 무허가로 과일을 파는 행상을 하며 살아오다가 경찰에게 강제로 손수레를 빼앗겼다고 한다. 그는 분신자살을 했고, 이는 튀니지 반정부 시위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위키피디아에 1984년생이라고 하니 나보다도 어리구만. 켁.

서울신문 튀니지 ‘재스민 혁명’ SNS의 힘 2011-01-17
쿠키뉴스 [튀니지 ‘재스민 혁명’] 억눌린 민심, 노점상 분신으로 폭발 2011.01.17 00:47

자세한 정황은 사실 본인도 잘 모르지만, 스토리가 마치 예전에 읽은 전태일 평전을 연상케 한다. 어느 사람은 트위터에 이렇게 말했다.

عربة خضار تطيح ب23 عام من الدكتاتورية #Sidibouzid
과일 가판대가 23년 간의 독재정권을 무너트렸다.

여하간 독재로 점철된 북아프리카 국가들의 역사에서 이 청년의 죽음이 민주화의 기폭제가 정말 된다면, 우리는 역사가 이루어내는 기적의 한 순간을 보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쥐새끼와 그 패거리 때문에 민주화가 후퇴하고 있어서 안그래도 씁쓸한데, 한 청년의 죽음이 헛되이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11.1.31
이집트 정부는 카이로에 소재한 알 자지라의 방송사업권을 취소하였다. 이제 막나가는구만.
알 자지라 Egypt shuts down Al Jazeera bureau 30 Jan 2011 10:01 GMT

 


2011.2.1
구글, 이집트를 위해 인터넷접속없이도 트윗할 수 있는 서비스를 발표. by isao

 


2011.2.8
Facebook and Twitter are now re-blocked in Egypt

 


2011.2.11
BBC Egypt unrest: Striking doctors flock to Tahrir Square 10 February 2011 Last updated at 12:49 GMT

 


2011.2.16
BBC Libya: Protests ‘rock city of Benghazi’ 16 February 2011 Last updated at 12:02 GMT
BBC Bahrain protests: Anti-government campaign gathers pace 16 February 2011 Last updated at 11:10 GMT
BBC Yemen rocked by third day of protests 13 February 2011 Last updated at 22:14 GMT

 


2011.2.16
이데일리 中 `재스민 혁명` 확산되나[TV] 2011.02.21 1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