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자동차 폭탄의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자동차 폭탄의 역사10점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서정민 옮김/전략과문화

저자인 마이크 데이비스는 사회비평가로서 꽤 유명한 사람인 모양인데, 본인은 과문해서인지 처음 듣는 이름이다. 국내에 그의 다른 저작이 몇 개 번역되어 있다.

이 책은 자동차 폭탄 자체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테러리즘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세계의 반군단체들의 생성과 역사에 주목하는 책이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효과를 내는 테러로서 자동차 폭탄이 선택되는 이유와 폭발물 제조의 노하우가 어떻게 글로벌화 되어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본인은 책 제목만 보고 자동차 폭탄의 제조기술 변천에 관한 책인줄 알고 구입했는데, 그건 아니었지만 뭐 반군단체의 생성이나 활동도 본인의 흥미 중 하나이니만큼 실망하지는 않았다.

국내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국제뉴스를 보다보면 상당히 자주 폭탄 테러와 사망소식을 접할 수 있는데, 이는 반군의 활동이 아직도 전세계 각지에서 진행중임을 의미한다. 테러리즘의 문제는 오늘의 문제이자 우리의 문제이다.

폭탄테러라 하면 흔히 보코 하람과 같은 과격 이슬람조직을 떠올리기 십상인데, 그 역사는 사실 뿌리깊어서 오히려 이슬람 근본주의자 보다는 서구권에서 기원을 찾아야 한다. 이 책은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 Mario Buda의 월가 폭파 사건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그래서 원제가 Buda’s wagon이다.) 그리고 시오니스트 스턴 갱을 거쳐 IRAETA타밀 호랑이 등을 지나 알 카에다와 체첸 반군까지, 세계 각국의 테러리즘을 이어준다.

놀라운 점은 테러기술의 전파와 세계화가 지하조직이나 마피아들의 활동이 아니라 CIA의 활동으로 인한 결과라는 것이었다. 본인은 과문해서인지 이런 사실을 처음 들었는데, 다른 사람의 서평에는 널리 알려진 사실인 모양이다.

일전에 ETA가 영구적 정전을 선언했고, 타밀 호랑이도 진압되는 걸 보면 시간이 갈 수록 세계적으로 무력단체의 활동이 줄어드는 양상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보코 하람, 신의 저항군 등 중동 및 아프리카에 존재하는 세력은 아직도 여전하다. 이들의 해결책은 아직도 요원한데, 이 책에서도 테러리즘의 현상만 소개하고 있을 뿐, 그 대책에 대한 논의는 거의 전무하다. 무장단체의 형성과 테러리즘의 발생은 애시당초 국제 문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 사소한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는 존재로서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닌가 싶다.

p171에 ‘이탈리아의 영웅’ 지오반니 팔코네 검사의 차량 폭파 암살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일전에 한 번 포스팅한 일이 있다. 참고하시라.

여하간 국제분쟁이나 테러리즘 및 반군단체에 관심이 있다면 눈여겨 둘만한 책이다. 그런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TA, 테러를 공식적으로 종료하다

이코노미스트지를 읽다가 깜짝 놀란 소식이 있어 소개한다. ETA가 공식적으로 테러를 완전히 종료한다고 선언한 모양이다.

이코노미스트 The war is over Oct 29th 2011

2009년 타밀 호랑이가 무력 진압되면서 오랜기간 끌던 타밀 민족의 독립노력은 허사가 되었긴 하지만, 여러 지역에서 아직도 독립의 의지는 진행중인 것 같다. 뭐 티벳은 다들 잘 아실테고, 인도네시아 서파푸아에서 지속적으로 정부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이 전개중이고, 또한 최근들어 쿠르드 노동자당과 터키정부의 충돌소식도 잦다.

ETA는 역사도 깊고 가장 유명한 반정부 테러단체로 손꼽힌다. 프랑스 남서부 및 스페인 북부에 걸치는 바스크 지방에는 바스크 민족이 분포하는데, 이들은 스페인 프랑코 정부 당시 자신의 언어 사용 권한을 박탈당하고 민족주의적 의지를 억압받았다.

일전에 소개한 앤터니 비버의 책 ‘스페인 내전‘에 따르면 프랑코는 민족주의적 성격을 억압했지만 공화정부는 이를 허용한 탓에 많은 바스크 사람이 공화정부의 편에 섰다고 한다. 당시 스페인은 사회에서 카톨릭의 영향력이 거셌고, 카톨릭이 국민정부 진영에 가담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바스크 출신 수도사들이 공화정부의 측에 서 있었다고 한다. 특히 공화군 부대가 산토냐에 퇴각하면서 여기를 점령한 국민군 부대가 바스크 민족주의당 대표와의 항복합의를 무시하고 수많은 바스크인을 즉결처형했고(p422), 이는 후에 ETA가 스페인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근거가 된다.

이코노미스트지에 ETA 독립운동의 타임라인도 소개하고 있으므로 참고할만 하다.

이코노미스트 From first blood to ceasefire Feb 12th 2011, 16:30

여하간 40년 이상 지속된 테러가 종료된 이번 사건은 스페인 역사에서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될만한 이벤트인 것 같다. 이코노미스트지에서는 아직 속단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일전에 몇 번 테러 중지 선언을 하는 것을 보면 활동할만한 동력을 많이 잃은 것이 사실인 듯 하다. 이제 바스크의 민족의식도 점차 희미해져 가는 것 같다.

하카트 알샤바브 알무자히딘 Al-Shabaab

이 글은 위키피디아를 번역한 것입니다.

Harakat al-Shabaab al-Mujahideen (HSM)은 소말리아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싸우는 이슬람 반군단체이다. 대부분의 반군멤버는 밝은 분홍색 마스크와 어두운 초록 제복을 입고 있으므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2010년 현재, 이 단체는 소말리아 중부 및 남부의 대부분과 수도 모가디슈의 “큰 길(a large swath)”을 장학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그들은 “가혹한” 샤리아 법을 시행하려고 한다. 2008년 12월 현재 알 사뱌브의 병력은 3~7000명 정도이다.

이 단체는 이슬람 법정 연대(Islamic Courts Union)의 파생으로 만들어졌는데, 이슬람 법정 연대는 몇 개의 분파로 분리했으나 이후 2006년 에티오피아 군에 의해 분쇄되었다. 이 단체는 “이슬람의 적”에 대항하는 지하드를 수행한다고 표방하고, 소말리아 과도 연방 정부(Transitional Federal Government)와 아프리카 연합 평화유지군(African Union Mission to Somalia)에 대항하여 전투를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2008년과 2009년 42명의 자원봉사자를 살해하면서 소말리아 식량지원을 하는 “UN과 서방 비정부기구에 전쟁을 선포했다”고 한다. 몇몇 서방 정부 및 경호단체는 테러단체로 지정되어 있고 “알카에다와 연결되어 있다”고 묘사되지만, 2010년 초에 리더는 이 주장을 부정했다.

알 샤바브는 그들의 주장과 방법론때문에 아프카니스탄 및 파키스탄의 탈레반과 비교된다. 그들의 주요 적대세력은 온건 수피파 단체인 Ahlu Sunna Waljama’a 이다.

(후략)

점점 번역 스킬이 좋아지는 듯…? ㅋ

투팍 아마루 혁명 운동 Túpac Amaru Revolutionary Movement

이 글은 위키피디아를 번역한 것입니다.

투팍 아마루 혁명 운동[MRTA]은 1980년대초부터 1997년까지 활동한 페루의 마르크스 혁명 운동 단체로서 페루 국내 투쟁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Victor Polay Campos(“Rolando” 동무)가 감금될 때까지 이끌었고, Néstor Cerpa Cartolini(“Evaristo” 동무)가 1997년 사망할 때까지 이끌었다.

MRTA는 그들의 이름을 18세기 반란군 리더인 투팍 아마루 2세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그의 이름은 그의 조상이자 마지막 잉카 토착민 리더인 투팍 아마루에서 따왔다. MRTA는 페루 정부, 미국 정부, 유럽 의회로부터 테러단체로 분류되어 있지만, 2001년 10월 5일부로 미 외국 테러단체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활동량을 고려해볼 때, 몇 백명의 활동적인 멤버가 있다. 사회주의 국가를 세우고 제국주의적 부분을 제거한 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원
(중략)

작전활동
MRTA의 첫 행동은 1982년 5월 31일 Victor Polay Campos와 Jorge Talledo Feria를 포함한 다섯 명의 멤버가 Lima의 La Victoria 지구의 은행을 강탈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Talledo는 아군의 오발로 사망하고, 운동과정에서 최초의 손실이 되었다.

페루의 대테러 프로그램으로 테러리스트 공격을 수행하여 그룹의 능력이 줄어들었고, MRTA는 내부 분쟁과 마오쩌둥주의자[Maoist]와 샤이닝 패스[Shining Path]의 무력 충돌, 지도자들의 사망 및 투옥, 좌파 지원의 상실로 인해 곤란을 겪었다. 2001년 몇몇 MRTA 멤버가 볼리비아에서 수감되어 있다.

1992년 7월 6일 MRTA 전투원들은 Cajamarca 지역 북쪽에 위치한 정글속 마을 Jaen을 습격하였다. 경찰관 Eladio Garcia Tello는 구조 요청에 응답하였다. 총격전 후에, 게릴라들은 마을 바깥으로 탈출하였다. Jaen에서는 7월 6일에는 Garcia을 기리기 위해 “영웅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출처 필요]

가장 널리 알려진 활동으로 1997년 일본 대사관 인질극이 있다. 1996년 12월 14명의 MRTA 멤버가 Lima에 있는 일본 대사관을 점거하고, 72명의 인질을 잡고 4개월간 버티었다. 당시 페루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명령아래 1997년 4월 무장병력이 급습하여 한 명을 제외한 인질 전원을 구출하고 MRTA 멤버 14명 전원을 사살하였다. 후지모리는 공개적으로 결정적인 행동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이 사건 이후 적어도 세 명, 또는 최대 여덟 명을 항복 이후에 즉결 사살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비난 받았다.

(후략)

반천황제 전국개인 공동투쟁 아키노아라시(反天皇制全国個人共闘・秋の嵐)

이 글은 위키피디아를 번역한 것임.

반천황제 전국개인 공동투쟁 아키노아라시(反天皇制全国個人共闘・秋の嵐)는 천황제 폐지론을 주장하는 단체이다. 줄여서 아키노아라시(秋の嵐 역주 : ‘가을의 폭풍’이라는 의미)라고 부른다.

개요
다른 신좌익당파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대부분 조직화되었으나, 「아키노아라시」는 1980년대 후반에 들어 조직화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전국개인 공동투쟁」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 신좌익당파에는 소속되어 있지 않고, 소위 논섹트 래디컬(역주 : 전학공투회의 시대에 조직되어 당파에 속하지 않고 활동하는 그룹)로 분류된다. 기존의 당파 멤버도 참가하고 있으나, 아키노아라시 자체는 당파가 없다.

1987년 가을에 예정되어 있던 제42회 국민체육대회(역주 : 오키나와 및 나가노에서 개최)에 동반하여 쇼와천황의 오키나와 방문에 반대하기 위해, 같은 해 9월에 결성되었다. 어디까지든 단기적 조직이라고 생각했으므로, 「の嵐」라는 명칭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쇼와천황은 방문적전에 병상에 누웠기 때문에, 대신 황태자 아키히토가 방문하기로 되었다.

반관리 교육운동시대에 아키노아라시와 우호적 관계에 있던 토야마 고이치(外山恒一)에 의하면, 「천황이 죽으면, 백색테러의 폭풍우가 몰아쳐서, 파시스트 정권이 수립하여, 좌익은 몰살당한다.」고 말해 일종의 종말사상 혹은 아마켓돈적인 생각이 좌익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진다고 보고, 가까운 시기에 일어날 「(쇼와) 천황 최후의 날」에 대한 위기감이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아키노아라시」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역주 : 진위가 매우 의심스럽다. 토야마 본인은 잘못된 내용이라고 주장. 출처)

그리하여, 이후 쇼와천황의 병상이 악화되어 「자숙하는 분위기」가 퍼지는 것에 반발하는 좌익내 분위기를 타고, 한때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황제 장례식과 즉위식 등 황실관련행사(천황의 변경)가 대강 끝난 1991년경부터 정체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이외 투쟁과정에 있어서 경찰이 많이 개입되고, 체포 및 기소된 멤버도 많다. 격심한 폭행을 받은 사건에 대해서는, 도쿄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리하였다.(즉각 보복한 재판)

(후략)

다이도우지 마사시大道寺将司가 아키노아라시 멤버인가 확인하려고 위키를 번역해봤는데, 별 도움이 안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_- 켁.

우편물 테러의 역사

이코노미스트지에 우편물 테러의 역사에 관한 기사가 올라와 있다. ㅎㅎ

이코노미스트 Going postal Nov 4th 2010

기록에 남아있는 우편 테러의 역사는 17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귀족이자 재무장관이었던 Robert Harley의 집 앞에 놓여진 모자상자는 뚜껑을 열면 내장된 총이 발사되는 구조였다고 한다. 유명한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너던 스위프트(Jonathan Swift)가 이를 발견하고 안쪽의 실을 잘라내서 사고를 막았다고 한다. (Bandbox Plot 참고)

1964년 1월 19일, 덴마크 역사가 Bolle Willum Luxdorph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성공적인 우편 폭탄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고 한다. Poulsen 대령이 우편물을 받았는데, 그가 우편물을 여는 순간, 안에있던 화약이 불붙어서 그는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테러는 급진적 아나키스트의 주요 활동중 하나였는데, 1919년 4월 29일에 미국 상원의원 Thomas Hardwick에게 이탈리아 출신의 아나키스트 Luigi Galleani가 폭탄을 보냈으나 실패하였다. 그는 1903년에 아나키스트 추방법(Anarchist Exclusion Act)을 추진했었는데, 아무래도 아나키스트들의 분노를 산 모양이다. 이 노동자의 날을 주변으로 30여개의 폭탄이 보내졌다고 한다.

1939년에는 50여개의 우편 폭탄이 런던, 버밍햄, 맨체스터에서 폭발했다고 한다. 이는 IRA의 ‘S-Plan 작전(S-Plan campaign)’활동이었다. IRA는 뭐 다들 아시다시피 Irish Republican Army이다.

1961년에는 이스라엘 첩보기관인 모사드(Mossad)에서 도주중인 나치당의 일원인 Alois Brunner에게 우편 폭탄을 보냈다고 한다. 모사드는 1980년에 다른 네 명에게 보낸 바가 있다.

1970년 2월 21일에는 이스라엘의 텔 아비브(Tel Aviv)로 향하는 비행기 Swissair Flight 330이 짐칸에 있던 우편물 폭탄에 폭발하여 추락하였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행위로 추정된다.

1972년 9월 19일에는 반대로 이스라엘 외교관 Ami Shachori가 런던에서 우편 폭탄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전세계에 소재한 이스라엘 대사관으로 51개의 유사한 폭발물이 차단되었다고 한다. 뮌헨 올림픽 참사로 발족한 ‘신의 분노 작전(Wrath of God)’으로 수많은 폭탄이 배송되었다.

1977년 12월에는 저널리스트이자 반아파르트 헤이트 활동가인 Donald Woods가 아동복이 들어있다는 티셔츠 상자를 받고는 그의 어린 딸이 큰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는 이 사건의 배후일 가능성이 있는 남아공 정부를 강력하게 비난했는데,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여러 반아파르트 헤이트 활동가들이 우편 폭탄으로 피해를 입었다.

우편 폭탄하면 유나바머(Unabomber)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전의 포스트에서 그의 활동을 소개한 바가 있다.

비교적 최근인 2001년에도 미국 상원의원에게 탄저균을 우편으로 발송한 테러가 있었다. (이 사건 덕에 anthrax 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_-) 뭐 이 뉴스 기억나시는 분들 많으리라 생각한다. 아직까지 어떤 목적인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켁.

장기 억류 인질 기록

이코노미스트 Evil cradlings Jun 28th 2010

인질 장기 억류라 하면, 콜롬비아 무장 혁명군(farc)에 12년 3개월간 억류되었다가 최근에 풀려난 Pablo Emilio Moncayo 병장이 생각나는데, 위 이코노미스트지의 표에는 나와 있지 않다.

하마스에도 아직 억류중인 이스라엘 군인 Gilad Shalit 가 억류된지 4년째를 맞이하는 모양인데, 역시 이런 요소들이 반군의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