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러일전쟁의 세기 : 연쇄시점으로 보는 일본과 세계

러일전쟁의 세기10점
야마무로 신이치 지음, 정재정 옮김/소화

본인은 여행을 갈 때는 항상 작은 책을 하나 휴대하는 습관이 있다. 여행을 간다고 하더라도 하루종일 관광을 하는 것은 아니다.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나 자기 전에 가지고 온 책을 읽는 것을 즐기는데, 일전에 구마모토를 답사할 때 들고간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다다미 방에 앉아서 이 책을 읽었는데, 너무 내용이 흥미로와서 추위를 잊고 읽어내려갔다. ㅎㅎ

이 책은 러일전쟁 앞뒤로 약 50년, 즉 백년간 일본을 중심으로 한 국제 정세의 변화를 묘사하는 책이다. 사상적 흐름부터 미시적 사건들까지 러일전쟁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가는데, 개인적으로 러일전쟁에 관심이 있어서인지 무척 유익했다. 사이고 다카모리의 서남전쟁을 전후로 일본내외의 정세변화에 대한 분석이 시작되는데, 책을 읽던 당시에 방문했던 구마모토 성이 바로 사이고 다카모리의 반란군이 정부군을 상대로 농성했던 성이다.

러일전쟁을 전후로 있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하나씩 짚어가면서 국제정세의 변화를 해설해나가는데, 오쓰 사건 등의 국제 관계를 보여주는 사건부터 시작하여 일본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이 시기에 관한 대부분의 국내저서가 일제의 조선 침탈에 과도하게 집중해서 해설하므로 다른 시점의 국제 정세 및 사상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은가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왔던 부분은 러일전쟁을 인식하는 아시아 인들의 관점이었다. 안중근 의사 자서전을 읽어보면 러일전쟁 당시에 일본이 대외적으로 외친 ‘동양의 평화’라는 구실을 글자 그대로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부분이 여러 번 나온다. 이것을 안중근 의사가 순진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닌 듯 하다. 당시 많은 아시아인들이 서구열강대 아시아인 이라는 대결구도로서 러일전쟁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p203 (강조는 본인)

근대 중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쑨원은 수에즈 운하를 항행하던 중 동해 해전에서 일본이 이겼다는 보고를 접한 아랍인들이 환희하는 모습을 회고하면서 일본인을 대상으로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일본이 러시아에 승리한 그날로부터 전 아시아의 민족은 유럽을 타도하고자 독립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집트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페르시아나 터키에서도 독립운동이 일어났으며, 아프카니스탄이나 아랍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인도 사람도 이 시기부터 독립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본이 러시아에 승리한 결과로서 아시아 민족의 독립이라는 커다란 희망이 생긴 것입니다.(「大アジア主義」, 1924)

이 강연 자체는, 일본이 러일전쟁의 승리를 통해 희망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후에는 아시아에 대해 서구와 마찬가지로 침략적인 정책을 취한 것에 강하게 반성을 요구하고, 일본에게 아시아 민족독립운동을 지지할 것을 호소한 것이지만, 적어도 전승 직후에 러일전쟁이 아시아의 민족독립운동을 자극했음은 틀림없다.

그 밖에 재미있는 사실들이 많이 나오는데, 중간에 ‘아무르 강의 유혈이여アムール川の流血や‘에 관한 이야기(p118)도 나온다. 이 노래의 멜로디가 뭔지 무척 궁금했는데 지금 검색해보니 이곳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가사 자체는 무척 일본의 제국주의적 냄새가 물씬 풍긴다. ㅎㅎ

일전에 여류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의 전기를 읽으면서 일본의 군국주의적 사회로의 변화 요인에 대한 궁금증이 좀 있었는데, 완전히는 아닐지 몰라도 이 책에서 어느정도 도움이 될만한 해설을 포함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통과하는 사상적 격동이나 사회운동에 대한 언급이 책 속에서 거의 없는 점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니 일본 근대사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서평]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 : 예루살렘 왕국과 멜리장드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6점
김태권 글.그림/비아북

전작 1,2 권에 이어 6년만에 3권이 나온 십자군 이야기이다. 3권이 왜 안 나오나 목빠지게 기다렸더니만 이제사 나왔구만. 켁. 이 책은 책 제목 그대로 중세 십자군 원정사를 만화로 해설해 주는 역사 만화이다. 개인적으로 1,2권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3권을 발간 즉시 샀다. ㅎㅎ

1,2권이 발간될 당시에는 부시의 이라크 침공이 한창인 시절이었기 때문에, 시사적 비판을 십자군 원정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포개어 해설해나가는 아주 훌륭한 내용이었다. 역사 해설과 더불어 시사성을 띠는 내용이라 매우 적절한 타이밍이었는데, 애석하게도 3권을 내는데 6년이나 지연시키는 바람에 내용의 연속성에 있어서든, 팬덤의 유지라는 측면에 있어서든 너무 늦은 감이 많다. 그래서인지 내용상에 있어 작가가 해설하는 톤과 심지어 그림체 조차 연속성을 못 갖추는 느낌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마이너스 점수를 받는다.

그렇지만 만화가 주는 파급력이랄까 흡수성이랄까, 다시말해 대중에게 주는 임팩트는 역시 남다르다. 일전에 네이버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미닉스 씨의 웹툰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만약 이 사람이 그냥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글을 썼으면 이만한 대중성을 얻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역시 대중성을 노리는 데는 만화만한 도구가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컨텐츠의 만화는 동일한 정도의 훌륭함을 갖춘 일반 저서보다는 더 대중성이 있고, 동시에 더 매력이 있다. 이 책 뒤쪽에는 김태권씨가 만화를 그리는데 참조한 여러 역사서 및 참고 저서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만화를 완성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플러스 점수를 받는다.

물론 십자군 원정사와 중세사를 빠삭하게 알고 있다면 읽을 필요가 없겠지만, 단지 세계사 교과서 몇 줄을 통해서만 알고 있던 십자군에 관한 지식을 좀 더 풍부하게 넓히기를 원하는 일반 대중이라면 한 번쯤 읽을만 하다. 물론 내용이 이어지므로 1,2권을 먼저 읽어야 할 것이다. ㅎㅎ

엔하위키의 항목도 참조하시길 바란다.

[서평] 임진왜란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 프로이스의 『일본사』를 통해 다시 보는

임진왜란과 도요토미 히데요시8점
국립진주박물관 지음, 장원철.오만 옮김/부키

임진왜란에 관한 기록은 당대의 것과 후대의 것을 합하면 무척 방대한 양이 된다. 본인이 직접 그 기록들을 읽는 수준은 아니어서 주로 대중서를 중심으로 재미로 보고 있지만, 대중서의 상당부분은 국내사료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어서 제 3자의 기록도 참조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책을 검색해봤더니, 이 책이 나와서 한 권 구입했다.

이 책은 천주교 포교를 위해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건너온 포르투칼 선교사 프로이스가 저술한 ‘일본사’라는 책에서 임진왜란과 관련된 부분을 뽑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프로이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보다 1년 먼저 사망하였으므로, 그 자신이 전쟁의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책을 내시는 분들이 이를 신경쓴 것인지, 책의 말미에 같은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코 빠시오(Francisco Passio)가 쓴 히데요시 임종에 관한 보고서를 싣고 있다.

책의 서문에서도 지적하고 있지만, 일본내에서는 히데요시의 영웅적 성격이 부각되어 있어서 히데요시가 육손이라든지 하는 신체적 결함을 과감히 기록하고 있는 자료는 프로이스의 이 기록이 유일하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제 3자의 기록이 어느정도 가치를 가질 수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웬만큼 임진왜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서 맹활약을 했던 유명한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음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는 그의 세례명인 ‘아고스띠뇨’로 부르고 있는데, 아마 임진왜란과 관련된 정보는 그에게 대부분 얻었을 것이라고 본다.

원문이 포르투칼어이니만큼 일본어를 거치는 중역인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일본인과 한국인 두 명의 역자가 신경쓴 부분이 여러군데 보인다. 그러므로 번역에 대해 안심해도 좋을 듯 싶다. 이 책에 따르면 ‘일본사’ 원고 전체가 완전히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임진왜란부분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일 수도 있을 터이다.

한 가지 이상한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을 소개해 보겠다. 여태까지 조선 수군은 함포사격 위주의 해전을, 일본 수군은 근접 백병전 위주의 해전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약간 다른 구절이 있다.

p234-235

그런데 이전부터 조선인은 일본 배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조우하자 큰 소리를 지르고 기뻐하며 배를 몰아 일본의 함대를 공격했다. 조선의 선박은 높고 튼튼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본 배를 압도하였다.11 우선 조선 수군쪽에서 화기에 의한 공격이 있었는데, 이것이 일본인을 몹시 애먹이고 괴롭혔기 때문에, 일본인은 조선인들의 이 성가신 접근 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바다쪽으로 멀리 나아가는 전술로 응전했다. 그러나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이 노를 저어 배와 함께 달아날 수 없게끔 튼튼한 갈고리가 달린 쇠사슬을 위에서 집어던졌기 때문에 일본 배들은 쉽게 빠져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11 기록에 따르면 이 당시 일본 수군의 배인 안택선(安宅船)은 흡사 나무 판자를 철판으로 얽어 연결하고서 풀로 물이 새는 것을 막을 정도로 허약한 군선이었다고 한다.

사실 썩 흥미없는 부분도 있어서 그 부분은 대충 읽었지만, 흥미있는 부분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아래 초록불님의 서평을 참고하면 책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임진왜란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by 초록불

 


2012.5.15
프로이스의 책을 직역한 책이 출간되었으니 이쪽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임진난의 기록- 루이스 프로이스가 본 임진왜란

프로이스의 ‘일본사’에 묘사된 충주 탄금대 전투

임진왜란 당시, 포르투칼의 선교사 프로이스가 쓴 ‘일본사’라는 책 중에,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가 충주 탄금대에서 신립의 기병을 전멸시킨 탄금대 전투를 묘사한 부분이 있다. 이 전투에서 조선의 정규군이 궤멸되면서 일본군은 서울을 직접 압박하게 되고, 선조는 피난을 결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전투이다.

국립진주박물관 저/오만,장원철 공역, “임진왜란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부키, 2003

p210-212
계속 읽기

더글라스 맥아더의 성격

일전에 소개한 ‘인천상륙작전은 과연 기습이었나?‘와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 저/정윤미, 이은진 공역, “콜디스트 윈터“, 살림, 2009

p149-

맥아더는 일흔 살로 미군에서 가장 연장자였으며, 오직 신만이 그의 상급자라고 할 수 있는 웨스트포인트의 노회한 신동이었다. 웨스트포인트 4년동안 역대 최고 점수인 98.14를 기록했고 촉망받는 젊은 장교로서 화려한 경력을 이어나갔다. 어떤 직책을 맡든지 언제나 최연소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프랑스에서 최연소 사단장이 되었으며, 최연소 웨스트포인트 교장, 최연소 육군 참모장, 최연소 소장, 최연소 대장을 역임했다. 화려한 경력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였고 언론의 찬사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가꾸는데도 열성적인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모든 영광을 자신에게 돌렸기에 부하들에게 돌아가는 영예는 초라했다. 대원수 맥아더는 역사라는 무대에서 세계라는 관객을 대상으로 연기하는 배우였다. 그래서 늘 극적인 행동을 하느라 분주해 보이는 다분히 과장된 인물이었다.

(중략)

맥아더가 출판사와 편집자들의 비위를 훌륭하게 맞추긴 했지만 현직 기자들은 맥아더의 과장과 허영에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았다. 상당수는 아첨을 일삼는 그의 참모들을 경멸하기도 했다. 맥아더가 참석하는 회의는 단순한 브리핑이 아니라 방문자의 중요도에 따라 심혈을 기울여 펼치는 공연과도 같았다. 조지프 스틸웰 장군은 맥아더의 수석 보좌관 프랭크 돈(Frank Dorn)에게 맥아더의 문제는 “너무 오랫동안 장군으로 지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5) 맥아더가 미국의 승인 아래 점령국 일본의 황제처럼 군림하기 전인 1944년에 스틸웰은 이렇게 언급했다. “맥아더 장군은 1918년에 처음 별을 달았기 때문에 삼십 년을 장군으로 지낸 셈입니다. 삼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비위를 맞추며 굽실거리고 그가 원하는 것을 해왔죠. 이는 모두에게 좋지 않은 일입니다.”

1950년의 맥아더는 너무 거물이라 모든 사람이 그의 규칙에 따라야만 했다. 실제로 그는 군대 내에 자신만 지휘할 수 있는 소부대와 자신만 통치할 수 있는 작은 세상을 만들엇다. 그리고 워싱턴에서 온 지침과 명령 및 제안을 자주 무시하곤 했다. 설령 그것이 상관에게서 온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중략)

뜻밖에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98년 전인 19세기에 태어나 18년 전에 세상을 떠난 여성이 20세기 중반에 일어난 전쟁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셈이다.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했던 맥아더의 아버지뿐 아니라 그의 어머니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를 제대로 알 수 없다. 더글러스 맥아더는 폭군 같은 어머니를 두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비롯한 역사상 그 어떤 인물보다도 마마보이였다. 의회 명예훈장을 받았고 적의 공격에 무모하리만큼 용감하게 맞섰지만 마마보이였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웅적인 미군 장교들 가운데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하는 아들을 따라 허드슨의 작은 마을로 이사하는 어머니를 둔 경우는 드물 것이다. 핑키 맥아더는 육군 사관학교 4년동안 더글라스 맥아더가 기대 이하로 도태되거나 평범한 생도로 전락하지 않도록 현지 최고급 호텔에 거처를 마련하고 아들을 지켜봤다. 웨스트포인트는 미국에서 가장 엄격한 4년제 교육 기관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학교 감독관이 자기 아들에게 소홀하거나 그가 얼마나 뛰어난지 몰라줄 때 몸소 나서서 이를 일깨워주었다.

핑키 맥아더는 더글러스 맥아더의 경력을 이뤄낸 주요 설계자이다. 뿐만 아니라 정신의 틀을 만들고 때로는 맥아더의 위대한 재능을 덮어버리거나 반감시키기도 했던 아주 독특한 자아도취를 창조해낸 인물이다. 어머니가 일군 뛰어난 재능에 이기적인 맥아더와 공인으로서 헌신적인 맥아더가 40여 년간 동고동락한 셈이다. 시쳇말로 치맛바람이 드셌던 맥아더의 어머니는 원대한 야심을 품고 아들의 성공만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여성이다. 아들이 곧 자신의 인생 자체였으므로 어찌 보면 그녀는 세계적인 수준의 출세주의자라 할 수 있다. 맥아더가 출세하면 그녀 역시 출세한 것이고 맥아더가 앞에 놓인 여러 가지 도전을 극복하면 그녀도 그러했던 것이다. 그리고 맥아더가 명성을 얻으면 그녀도 명성을 얻은 셈이었다. 이리하여 맥아더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다른 자질 따위는 기꺼이 저버릴 수 있는 인물로 자랐다.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는 순간 상대방에게 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맥아더의 어머니는 이렇게 아들을 자기도취적이고 스스로 고립되기 쉬운 외골수로 길렀다. 그래서 애초부터 동료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 웨스트포인트 출신들의 결혼식은 대개 신랑과 교우들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교 행사였다. 그런데도 그의 첫 번째 결혼식은 친구와 동료 하객이 너무 적어서 주목을 끌 정도였다. 결혼식에 참석한 친구는 한 명뿐이었다. 군생활 중에도 아첨을 일삼는 부관들만 감싸고 다른 장교들은 모두 외면하는 바람에 사이가 멀어지고 말았다. 마음속에 동료 의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관계에 서툴 수밖에 없었다.

 


5) 존 하트 인터뷰

p450-

맥아더는 예전부터 극적인 연출을 좋아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승마용 바지와 목까지 올라오는 스웨터를 입고 스카프를 두르고 다녀서 부하들이 ‘호전적인 멋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저 주목받으려는 욕구가 강했던 것이 아니라 그런 순간에 중독된 상태였다. 언제나 카메라 위치를 의식하면 움직였고 사진이 가장 잘 나오는 각도로 턱을 내밀곤 했다. 나이가 들면서는 부하들이 모든 사진을 일일이 검열하여 영웅답지 못한 사진이 유출되지 않게 했다. 카메라의 각도에 대한 구체적인 규칙을 지켜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따라서 기자들은 항상 정해진 각도에 따라 사진을 찍어야 했다. 한번은 「스타스 앤드 스트라이프(Stars and Stripe)」지 사진 기자에게 맥아더가 더 위엄있어 보이게끔 무릎을 꿇고 사진을 찍으라고 지시한 적도 있었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는 안경을 썼지만 안경 쓴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는 걸 싫어했기 때문에 그 또한 사진을 피해야 할 순간이었다. 이렇든 매순간 맥아더의 모습은 연출되었다.

(중략)

그 시절에 맥아더는 자신이 국가의 살아 있는 역사, 즉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으며, 주변 사람들 앞에서도 그렇게 포장하려 했다. 맥아더와 대면하는 것을 큰 영예로 여기고 그를 만나는 자리에서는 살아 있는 기념비나 우상을 대하듯 깍듯이 행동해야 했다. 사실 매일 맥아더의 비위를 맞추는 의식을 따로 행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VIP 방문객을 환영하는 점심식사 자리에서는 맥아더의 아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간부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아, 저기 장군님이 오시네요.”라고 말하면 그제야 맥아더가 식사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는 식이었다. 그는 아내에게도 인사를 건넸는데 그 자리에 있던 어떤 사람의 말을 빌리자면 “마치 수년 동안 아내를 보지 못한 것처럼 아주 반가운 척을 했다.”12)

 


12) John Allison, Ambassador from the Plains, p.168

제대로 맛이 간 놈이구만.

[서평] 6일 전쟁 : 아랍과 이스라엘, 새로운 비극의 시작

6일 전쟁10점
제러미 보엔 지음, 김혜성 옮김/플래닛미디어

이스라엘과 아랍간의 깊은 증오의 갈등은 이스라엘이 탄생한 그 순간부터 시작되어 왔다. 그 중 6일 전쟁은 아랍 진영과 이스라엘 간에 있었던 네 번의 중동전쟁 중에 세 번째에 해당하는 전쟁으로 3차 중동전쟁으로도 불린다. 어떻게 전면전이 단 6일만에 끝날 수가 있을까? 2차 세계대전 및 장기간 지속되어온 각종 전쟁사에 관해서만 탐독을 해 온 본인으로서는 독서를 하기 전까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고자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6일 전쟁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끝났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은 간단하게도 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이스라엘의 치밀한 전쟁 준비와 이집트 지도부의 무능이다. 이에 관한 묘사로는 책의 다음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p343

전쟁 후 아리엘 샤론은 이집트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솔직한 평가를 내렸다.

“나는 이집트 병사들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고 무식하지만 강하고 규율이 잡혀 있다. 대포를 잘 다뤘고 참호를 잘 팠으며 사격술도 좋았다. 하지만 그들을 지휘하는 장교는 쓰레기였다. 계획된 대로밖에 싸울 줄 몰랐다. 우린 전쟁 전부터 비르 하스네Bir Hassneh와 나클 사이에 지뢰밭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을 제외하고 모든 전선을 돌파했다. 이집트 장교들은 우리의 진격을 막을 만한 지뢰를 설치해두지 않았고 매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트라 통행로 등을 지키는 일부 병사들은 운하를 향해 서쪽으로 도주하면서도 목숨을 다해 싸웠다.3

 


3 Pollack, Kenneth M. Arabs at war : Military Effectiveness, 1948-91 (Lincoln, NE : University of Nebraska Press, 2002), pp. 78~79에서 인용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전쟁의 6일을 전후하여 각국의 외교 관계와 6일간에 있었던 다양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파편적인 묘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들이 정말 고작 6일만에 일어난 일일까 싶을 정도로 복잡 다단한 사건들이 진행된다.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압축하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단순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언론의 거짓말에 함부로 휩쓸리면 안된다. 무능한 지도자를 두면 안된다. 전쟁을 준비한 자만이 평화를 얻는다. 마지막은 뭔가 밀덕같은 냄새가 나지만 역시 현실은 비극인 것 같다.

이스라엘의 관점으로 약간 치우친 느낌이 없진 않지만, 전반적으로 상당히 잘 서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1, 4차 중동전쟁에 관해서도 이정도의 상세한 설명을 하는 서적을 읽고 싶지만, 적절한 번역서가 없는 듯 하여 아쉽다. 최근 중동정세의 불안정성 때문에 중동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이정도 근대사에 관한 상식 정도는 갖추고 있는 편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서평] 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스페인 내전10점
앤터니 비버 지음, 김원중 옮김/교양인

스페인 내전하면 개인적으로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일전에 소개한 로버트 카파의 사진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인데, 뭐 조작의 논란이 있긴 하지만 현장감 있는 스틸컷으로 유명하다. 이 ‘스페인 내전’을 읽고 일전에 소개한 알렉스 커쇼가 쓴 로버트 카파의 일대기인 ‘로버트 카파 : 그는 너무 많은 걸 보았다‘의 앞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책에서 묘사한 각종 정치적 상황들이 매우 잘 이해되었다. 확실히 시대적 배경지식을 갖추고 나니 예전에 읽었을 때랑 느낌이 많이 다르군. 큭.

이 책은 스페인 내전의 시작부터 종말까지 꼼꼼하게 소개하는 앤터니 비버 형님의 책이다. 앤터니 비버의 저작은 일전에 소개한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 세계 역사를 바꾼 스탈린그라드 전투 590일의 기록‘이라는 책에서 한 번 접한 바 있으므로, 책을 선택하는데 주저함은 없었다. 군사사의 지존이신 periskop님은 앤터니 비버의 책에서 크게 실망하셨다지만, 뭐 본인은 그 정도로 전문적이지는 않으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겠다. ㅎㅎ

부제의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이 너무나 적절할 정도로 스페인 내전의 독특함은 유명하다. 파시즘, 공산주의, 공화주의, 아나키즘, 게다가 가톨릭교 까지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책 속에서 공화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좌파, 아나키스트와 같은 이념적 지형을 가리키는 단어들이 난무하는데, 가끔은 문맥속에서 저자가 정확히 어떤 정의로 이런 단어들을 선택한 것인지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좌파 팔랑헤당원’과 같은 기이한 조합의 단어(팔랑헤당은 내전 당시 극우파 정당임)도 책속에서 눈에 띈다. 문맥상 이해할 수 없는 단어는 아니지만, 그래도 저자는 ‘좌파’, ‘공화주의자’ 등과 같은 단어를 어떤 의미로 쓴 것인지 좀 명백하게 설정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사실 이 책을 읽는데 있어서 가장 크게 작용했던 것 중의 하나가 세계에서 유래없이 아나키즘이 광범위한 세력을 형성한 스페인의 독특한 이념적 환경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였는데, 애석하게도 그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다. 이에 대해 지적한 다른 어느 분의 리뷰를 읽어볼 수 있었는데,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 도움이 될만하므로 링크해 본다.

앤터니 비버 – 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교양인(2009) by 바람구두

앤터니 형님이 우파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확실히 아나키즘의 실제적 활동과 현실적 적용에서의 한계가 스페인 내전사를 통해 곳곳에서 느껴져 좌절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이 가지는 아나키즘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는 느낌이다. 스페인 내전사를 조망하는 다른 관점에서의 저서를 꼭 읽어보고 싶다.

카탈루냐 함락 이후 공화진영에서 프랑스로 피난을 온 난민이 가져온 한 줌의 스페인 흙을 억지로 비틀어 버리게 하는 장면(p663)은 무척 인상깊다.

책은 전황의 설명도 많지만 이념적 갈등, 세력 다툼 및 외교와 같은 배경 사건에도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어 2차 세계 대전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스페인 내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텍스트의 양은 꽤 많고 등장 인물도 많아서 집중해서 읽어도 상당 기간 독서시간이 필요하다. 알라딘에서 반값 세일을 하길래 슥샥 샀는데, 완독의 보람이 있어 좋다. 일독을 권한다.

[서평] 나는 탁상 위의 전략은 믿지 않는다 : 롬멜 리더십, 열정과 추진력 그리고 무한한 낙관주의

나는 탁상 위의 전략은 믿지 않는다10점
크리스터 요르젠센 지음, 오태경 옮김/플래닛미디어

보통 2차 세계대전사 중 독일 전쟁에 대해서는 지헬슈니트 작전(Operation Sichelschnitt)으로 대표되는 서부전선과 바르바로사 작전(Operation Barbarossa)으로 대표되는 동부전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많지만, 롬멜이 활약한 북아프리카 전선에 대한 설명은 비교적 소홀해지는 것 같다. 북아프리카 전선과 롬멜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읽었는데, 비교적 도움이 된 듯 하다. 일단 사진자료가 풍부하고(어떻게 찍었는건지 의구심이 드는 사진도 좀 있었지만 ㅎㅎ) 전반적인 전세에 대해 서술을 집중하고 있어,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저자가 약간 롬멜을 띄워주려는 구석도 좀 있지만, 그런 부분을 빼면 비교적 잘 서술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은 롬멜의 일대기에 주목하는 건지 북아프리카 전선에 주목하는 건지 약간 헷갈리는데, 롬멜의 일대기에 주목한다면 롬멜의 유년기나 1차 대전 및 2차대전 초기 프랑스 침공 당시에 롬멜의 활약은 거의 언급이 없다. 또한 북아프리카 전선에 주목한다면 롬멜이 자리를 비운 이후의 전황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마땅한데 그것도 좀 부족하다. 그래서 이도저도 아닌 약간 어정쩡한 책이 된 듯 하다. ’2차 대전간 북아프리카에서 롬멜의 활약’이라는 매우 지엽적 주제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 있다면, 상당히 볼만할 것이다.

이런저런 보조적인 지식이 있다면 확실히 더 유의미하게 챙겨볼 수 있을 듯 한데, 예를 들어 일전에 소개한 ‘전격전의 전설‘이나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과 같은 책을 통해 먼저 선행적 지식을 얻는다면 매우 괜찮을 것 같다. 지명 중 토브룩이 많이 언급되는데, 북아프리카의 전략적 요충지인 토브룩 전투에 대한 자세한 정황을 알고 싶다면, 본인은 읽지 않은 책이지만 ‘토브룩 1941‘ 과 같은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런데 본인은 이 책을 읽지 않았으므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ㅎㅎ

동부전선의 집중으로 인해 상당히 제한된 조건에서 수행한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전과를 보여준 그의 전설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으리라고 본다. 어느정도는 그런 욕구에 부합할만한 책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썩 인상깊은 내용은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사진자료는 상당히 많으므로 볼만하다.

[서평]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10점
리처드 오버리 지음, 류한수 옮김/지식의풍경

독소 전쟁과 관련해서는 이미 시중에 다양한 저자의 저서가 있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리처드 오버리의 저서이다. 이전에 읽은 책으로는 ‘독소 전쟁사 1941~1945 : 붉은 군대는 어떻게 히틀러를 막았는가‘와 안토니 비버의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 세계 역사를 바꾼 스탈린그라드 전투 590일의 기록‘이 있다. 물론 비버의 저서는 독소 전쟁사 전반을 커버할 목적으로 쓴 책은 아니므로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의 상황에 대한 서술은 거의 없다. 그리고 ‘독소 전쟁사’는 정치와 역사적 요소를 거의 배제한 전쟁사 자체만을 다루고 있는 저서로서 역사적인 관점에서 읽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책들을 서로 비교하면서 좀 더 전체적인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은 전반적으로 러시아와 스탈린 수뇌부의 시각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어서, 책의 제목 그대로 양측을 균형있게 소개할 것으로 기대한 본인으로서는 조금 실망이었다. 차라리 원서의 제목 그대로 Russian’s war로 책 제목을 소개하는 편이 낫지 않았나 싶다.

본 서에는 본인이 일전에 읽은 책들의 견해와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크게 눈에 띄는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독소 전쟁 직전에 러시아 군 내에 대규모 숙청의 여파로 러시아 전력이 크게 약화되어 있었다는 견해.(독소 전쟁사 1941~1945)
    오버리는 그러한 가정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p52) 즉 고급장교의 숙청보다는, 붉은 군대의 급격한 팽창으로 훈련된 장교의 숫자가 전반적으로 부족했고, 군대 내부의 분위기 변화로 수동적인 집단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2. 세 가지 견해가 일반적이다.
    1. 스탈린은 전쟁을 예상치 못했다.
    2. 그래서 스탈린은 전쟁을 대비하지 않았다.
    3. 그리하여 독소 전쟁 초기 소련은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첫 번째와 세 번째는 다른 독소 전쟁사를 다룬 책에서의 견해가 일치하는데, 이것은 암묵적으로 두 번째를 가정한다. 그런데 스탈린은 전쟁에 대비하지 않았다는 견해에 대해 오버리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p97)

이 책의 표지는 일전에 소개한 ‘국회 의사당 위로 나부끼는 깃발‘인데 대단히 유명한 사진이지만, 애석하게도 베를린 공방전이 종료된 이틀 후에 연출된 사진이다. 본서에서는 실제로 국회의사당 직후 찍었다고 잘못 묘사(p366)하고 있다.

두 독재자의 운명을 건 혈투이다보니 여러가지 비극적인 역사가 전개되는데, 생각 이상으로 인상적이게 슬픈 스토리이다. 책의 말미에 러시아로 송환될 필요가 전혀 없는 러시아 혈통의 국민들이 강제로 송환당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 장면(p398)은 전쟁 이후에 전쟁이 낳은 비극적 유산의 스토리를 들려준다.

일단 이전에 독소 전쟁사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읽은 만큼, 본인의 이해도는 이전의 책들 보다 좀 더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은데, 확실히 전쟁사에 관심이 있다면 볼만할 것이다. 여러 책을 비교해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만드는 방법이 될 것 같다. 2차 대전사에 대한 책을 서너권 더 사 놓았는데, 참고가 될 것 같다. 그 서평은 차후 읽은 후에 다시 언급해 보겠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