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에 있었다는 과천현감 송덕비에 쓰인 비명

웹서핑을 하다보니 진위는 알 수 없으나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출처

최석의 팔마비 이후 조선시대에는 부정부패한 지방수령이 자신의 청렴을 위장하기 위해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 스스로 송덕비를 세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송덕비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일화가 전해오는 것은 과천현감의 사례다. 한 과천현감이 영전해 한양으로 떠나게 됐다. 관례대로 아전들이 송덕비를 세우겠다며 비문을 어떻게 할지 물었다. 이 현감은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며 일임했다.
아전들은 여우고개(남태령)에 송덕비를 세우고 현감에게 제막식을 하고 가시라고 아뢰었다. 현감이 잠시 행렬을 멈추고 포장을 벗기자 비문에는

“오늘 이 도둑놈을 보내노라(今日送此盜)”

고 쓰여 있었다. 현감이 껄껄 웃고나서 그 옆에 한 줄을 덧붙였다.

“내일 다른 도적놈이 올 터인데(明日來他賊)”

현감이 떠나자 아전이 또 한 줄을 보태 썼다.

“도둑놈들만 끝없이 오는구나(此盜來不盡)”

한참 뒤 지나가던 행인이 이를 보고 한 줄을 더 보탰다.

“세상에 모두 도둑놈뿐이구나(擧世皆爲盜)”

실화인지, 지어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만한 풍자도 찾아보기 어려울 듯하다. 조선시대 지방 수령 가운데 과천현감은 한양이 가깝고, 오가는 고관을 접촉하기 쉬우며, 세금징수가 많기 때문에 재물을 모아 뇌물을 상납해 조정의 권좌로 영전하는 자리였다. 과천 현감이 다른 곳으로 발령받아 가게 되면 그의 공을 찬양하기 위해 송덕비를 세워 주었다고 한다. 당시 검은 돈을 벌기에 가장 좋은 벼슬로, 감사는 평안감사, 목사는 의주목사, 현감은 과천현감을 쳤다.

역사는 돌고 돈다. ㅋ

전세계에서 접속가능한 인터넷 구축

요새 외신을 번역해주는 좋은 사이트가 많아서 웬만하면 그런 사이트들이 다루지 않은 기사를 포스팅하고 싶다. 근데 뭐 여기 보는 사람도 별로 없을 텐데, 그런거 신경 쓸 필요 있나 싶기도 하다. ㅋ

여하간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전세계에서 접속 가능한 인터넷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하는 네 회사의 시도를 소개하는 기사를 봤다.

이코노미스트 Sky-Fi Apr 11th 2015

1997년에는 2%의 인구만이 인터넷에 접속했는데, 2014년에는 39%라고 한다. 뭐 잘사는 나라에서는 어지간히 스마트 폰에 무관심한 사람이 아닌 이상 폰만 열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는 상황이 좀 다를 것이다.

사실 현재도 정지위성을 이용하면, 전세계에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기는 하다. 단지 돈이 좀 많아야 한다-_- 일전에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트윗을 날려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런 오지에서 35000km 상공의 정지위성과 신호를 교환하려면 어지간히 감도가 좋고 강한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장비가 필요하고, 추가적으로 상당한 데이터 비용과 시간 지연을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 아이작 선생의 ‘내 아들은 물리학자‘라는 소설이 생각나는 구만. ㅋㅋ 여하간 아서 클라크 선생이 제안한 정지위성이라는 아이디어가 현재까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이놈의 지연이 문제인 모양인데, 정지위성보다 데이터 송수신하는 높이를 낮추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구글의 loon project는 익히 유명하니 다들 알고 있을 터이고, 얼마전에 페이스북도 태양광을 전력으로 하는 상공 20km의 비행물체를 이용하여 세계에 인터넷을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고 한다. 뭐 어느 쪽이 실현 가능할지는 해봐야 알겠지. 페북의 비행물체는 높이가 낮을 줄 알았더니만 높이가 20km라니 성층권이다. 구글 풍선이랑 높이가 비슷할 듯. 이코노미스트지는 페북의 계획이 유지보수가 쉽다는 장점을 들고 있다.

이 두 테크 회사는 사용자 숫자가 곧 자산이기 때문에 인터넷의 광범위한 보급이 회사의 수익으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 같다.

다른 두 회사의 도전으로 SpaceX와 OneWeb이라는 회사가 있다. SpaceX는 뭐 설명할 필요가 없고, OneWeb이라는 회사는 처음 들었다. Greg Wyler라는 친구가 퀄컴 등에게 펀딩을 받아 도전하는 모양. 퀄컴도 휴대폰이 많이 보급될 수록 이득이니 이걸 노린 것 같다. 이 친구의 생각은 1200km 상공에 상대적으로 작고 싼 648개의 인공위성을 띄워 세계 어디서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게 만드려는 모양이다. 정말 성공한다면 망망대해에서도 트위터를 날릴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문제는 하나의 위성에서 신호를 받다가 멀어지게 되면 다른 위성이 이어서 신호를 줘야 하는 모양인데, 이게 기술적으로 꽤나 까다로운 문제인 모양이다.

엘론 머스크씨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진공중의 광속은 광섬유를 통한 광속보다 40% 빠르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여 시초가 다급한 통신에게 수익을 창출할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음. 이건 인터넷 대중화와는 좀 거리가 있나.

인터넷을 이용하려고 하지만 저마다 다른 높이에서 구현을 꿈꾼다는 점이 재미있다. 페북과 구글은 20km 정도의 성층권, OneWeb은 1200km, SpaceX는 더 높을 듯.

여하간 본인이 생각하기에 그들의 의도에는 정치적 목적은 없겠지만, 중국이나 북한 같이 국가가 네트워크를 통제하려는 계획에 타격을 줄 수 있어서 다른 의미로 매우 바람직한 시도 같다. 테크기업이 세계 정치 지형에 변화를 주는 상상을 하니 진정 인류의 진보에 특정회사가 공헌할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ㅎ

 


2015.4.15
구글의 ‘프로젝트 룬’은 어떻게 작동하나 in Tech Neddle
이걸 보니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기존 통신사망과 독자적으로 접속이 가능한 것은 아닌 듯. 여전히 국가가 네트워크를 통제할 수 있을 것 같다. 안타깝구만.

파키스탄에서 시베리아까지 직선 항해가 가능하다

간만에 잡상식의 보고인 FUTILITY CLOSET 블로그를 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2015-03-27-the-long-way
이론적으로 파키스탄에서 시베리아까지 지구의 대원(great circle)을 따라서 육지와 만나지 않고 일직선으로 항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항로는 대략 지구 둘레의 80% 정도로 2만 마일정도 된다고 한다. 절묘하게 마다가스카르와 티에라델푸에고 제도 옆을 통과한다.

정말 쓸데없다! ㅋ

전통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혁신

조지 M. 태버 저/유영훈 역, “파리의 심판”, 알에이치코리아, 2014

p145-146

캘리포니아의 새로운 양조자들은 프랑스와는 달리 어떤 전통이나 대물림된 지혜를 갖고 있지 않았다. 포도주 양조의 전승 같은 것은 애당초 없었기 때문에 따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실험가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아이디어를 찾고, 포도즙을 포도주로 바꾸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핸즐의 모범사례, 즉 온도 제어 스테인리스스틸 탱크 발효와 인공 유산발효, 비활성 기체를 사용한 산화 방지 기술, 작은 프랑스산 오크통 숙성 등은 일종의 ‘복음’이 되었다. 그리고 각자 나름의 방식을 덧붙였다. 예를 들어 나파 마을의 드레프던 포도원 양조자들은 발포성 포도주를 만드는 피노 누아 포도의 색깔이 너무 진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만일 시원한 밤에 수확을 한다면 색소가 덜 나오는지 다른 재배자들을 통해 확인해보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트레프던은 더 신선하고 생기있는 와인을 생산하게 되었다.

새내기 양조자들은 판매에 있어서도 색다른 방식을 시도했다. 그들은 양조장에서 소비자 직판을 했고, 우편 주문 판매를 시도했다. 그들의 시도가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실험은 와인 전문가나 애호가보다는 와인 초보 소비자들에게 더 호감을 샀다. 세인트 헬레나의 서터홈에서 발효중인 진판델 탱크 하나가 발표를 멈추었다. 포도즙의 당분이 모두 알코올로 바뀌지 못했다. 이때 서터홈의 생산자들은 이 달콤한 분홍색 와인을 ‘화이트 진판델‘로 시장에 내놓기로 결정했다. 그때부터 서터홈은 매년 화이트 진판델 수백만 상자를 팔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의 새내기 양조자들에게는 달성하고픈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바로 위대한 프랑스 와인이었다. 그들은 프랑스 양조 기술을 면밀히 공부하면서, 정확히 무엇이 프랑스 와인이 위대하게 만드는지 규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자신도 그 맛을 재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자신의 와인과 함께 이른바 세계 최고의 와인들을 꾸준히 마시면서 서로를 비교하고 견주었다.

(중략)

새로 온 양조자들도 자신이 알아낸 지식을 나누고 서로를 돕는 캘리포니아의 전통을 존중했다. 그들 대부분은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의 데이비스 캠퍼스프레즈노 캠퍼스에서 발전시킨 신기술과 기법을 성실히 따랐다. 프레즈노 캠퍼스는 1958년 독자적인 포도주 강좌를 개설했다. 다들 자신만의 양조방식을 찾고 솜씨를 갈고닦으려 애썼기 때문에 영업비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전통과 유서깊은 기술이 좋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전통과 유서가 없기 때문에 혁신이 가능한 기술도 있다. 오래 내려온 지식을 꼭 절대시 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Lotus Notes의 백도어 발견

비지니스 협업을 위해 IBM에서 제작한 Lotus Notes라는 앱이 있다고 한다. 현재 이름은 IBM Notes이다. 본인은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개발한지 오래 됐고, 꽤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듯?

위키피디아 IBM Notes 항목의 설명에 따르면, Lotus Notes는 널리 쓰이는 소프트웨어 제품 중에서 클라이언트-서버간 인증을 위해 공개키 암호화 방식을 사용한 최초의 제품이었다고 한다.

2000년 미국의 암호화 규제가 풀리기 전까지, 40비트 이상의 대칭키를 쓰는 제품을 수출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1997년 당시 IBM과 NSA는 협상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24비트 분량은 NSA가 특수한 키로 풀 수 있는 형태로 암호화를 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공식적인 백도어가 아닐 수 없다.

이건 여담이지만 무어의 법칙에 따라 급증하는 컴퓨팅 파워 덕에 90년대 말에는 40비트는 대단히 약한 암호화 수준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이 미국 법으로 인해 독자적인 암호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국내의 요구 때문에, 액티브 X를 활용한 SEED 알고리즘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바로 모든 원흉의 시작인 것이다-_-

여하간 해커뉴스를 보니 이 Lotus Notes를 reverse engineering으로 백도어를 발견하였다는 웹사이트를 소개하고 있다.

http://www.cypherspace.org/adam/hacks/lotus-nsa-key.html

뭐 기술적인 내용이라 본인은 잘 모르겠다-_- 근데 스레드 아래쪽에 놀라운 위키피디아 페이지를 누군가 소개하고 있다. 이 포스트의 주제랑은 별 관련 없나-_-

1999년 Windows NT 4 서비스팩에 _NSAKEY라는 변수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인데, 헐 이런 사건이 있었는 줄은 몰랐네.

케이벤치 [정보] NSA, Windows에 백도어를 만들어 놓다? 1999/09/06

이 소식이 1999년 당시에는 마소가 보안 모듈 더 팔려는 수작이겠지 하면서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는데, 스노든 폭로 이후에 다시 보니깐 수상쩍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ㅋ

근래 구입한 앨범들

음악 소개야 말로 가장 읽을 사람이 없을 블로그 포스팅인데-_- 뭐 이 블로그는 자기 만족으로 하는 거니까 상관없긴 하다-_-

근래 산 음반들을 대충 나열해 봄.

//Strung out – Transmission.Alpha.Delta
지난 주에 발매된 따끈따끈한 앨범. 여전히 쥑인다. ㅋ 개인적으로는 7번째랑 11번째 곡이 마음에 든다. 전화 벨소리로 설정하면 아주 좋다. ㅋㅋ

//Yellowcard – Lift a Sail
yellowcard 앨범은 대부분 좋은데, 이번 것은 들어보니 조금 실망. 흑.

//ラブライブ! μ’s Best Album Best Live! collection I, II
러브라이브 게임하면 나오는 음악들 모아놓은 음반. II는 아직 발매가 안 돼서 예약주문 상태임. 덕들의 필수품 아닌가. ㅎ

//Richard Elliot – Lip Service
일전에 소개한 강력 추천 색소폰 연주곡에 소개한 적이 있는 색소폰 연주자 Richard Elliot의 작년 발매한 앨범이다. 와 이걸 왜 이제 샀을까. ㅋ 스무드 재즈 좋아하는 사람은 완전 딱이다.

//やはりこのキャラソンはまちがっている。
나온지는 오래된 앨범인데, 첫 곡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냥 샀음. 한 천번은 들은 듯?

//Atomic Tom – Moment
이 밴드 예전에 아이폰만으로 뉴욕 지하철에서 연주해서 유명해진 그 밴드인데, 인제 생각나서-_- 주문해봤다. ㅋ

//洲崎 綾 – プリンシプル
일전에 소개한 타마코 러브 스토리 엔딩곡.

몇 개 더 있는데, 링크 찾기 힘들어서 여기까지… -_-

‘파리의 심판’ 당시의 모습

조지 M. 태버 저/유영훈 역, “파리의 심판”, 알에이치코리아, 2014

p12-17

파리의 심판, 그 시작

1970년대 중반에 나는 〈타임〉특파원으로 일했다. 파리의 작은 사무실에 앉아 프랑스 정치에서 디자이너 맞춤복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써냈다. 때때로 우리가 관할하는 주변 나라들에서 큰 사건이 터지면 바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는데, 에스파냐 수상의 암살을 취재하기 위해 마드리드로 간 적도 있었고, 혁명 발발 보도를 위해 리스본으로, 네덜란드 여왕의 부군이 관여된 뇌물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가는 등 그야말로 유럽 각국을 종횡무진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좋은 직업이었다.

1976년 5월 24일 나는 마침 파리에 있었다. 일주일 전 나는 뉴욕의 편집자들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을 시도하려는 한 와인 시음회에 대해 기사를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 시음회는 프랑스 와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와인 몇 병을 거의 무명에 가까운 신생 캘리포니아 와인들과 비교하고자 했다. 사실 하나 마나 한 행사 같아 보였다. 프랑스가 이길 게 뻔했다. 하지만 나 역시 캘리포니아 출신으로서 프랑스 뿐만 아니라 스위스, 독일, 벨기에에서 공부하거나 일을 하면서 와인에 대해 꾸준히 배워왔기 때문에 그런 제안을 했던 것 같다.

매주 전 세계의 〈타임〉특파원들이 수백 건의 기삿거리를 제출한다. 그중에서도 일부만이 취재 승인을 받으며, 그걸 또 추려서 실제 지면에 싣는다. 냉혹한 적자생존의 세계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생생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잡지가 나오는 것이다. 시음회 건은 취재 승인이 났지만 나 역시 잡지에 실릴 확률은 낮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프랑스 와인이 이긴다면 아예 기삿거리조차 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다. 게다가 와인 시음장에 가면 적어도 몇 종의 와인은 직접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사가 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지루한 오후를 보낼 수 있는 썩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호텔 안내인은 시음회장인 호텔의 테라스 바에 딸린 작고 우아한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내가 입장했을 때는 턱시도를 단정하게 입은 웨이터들이 식탁보를 깔고 잔을 놓으며 분주히 행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사실 나는 시음회 주최자들과 친분이 있었다. 영국인으로서 카브 드 라 마들렌이라는 와인 숍의 주인인 스티븐 스퍼리어와 그의 미국인 동료 퍼트리샤 갤러거가 이 시음회의 주최자였는데, 나는 카브 드 라 마들렌에서 운영하는 와인 학교인 아카데미 뒤 뱅(Académie du Vin)에서 갤러거가 가르치는 와인 입문 강좌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번 취재를 마음먹은 이유도 그녀의 부탁 때문이기도 했다. 시음회의 목적이 와인 숍과 와인 학교의 홍보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퍼리어와 갤러거는 이번 행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언론들을 설득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실제로 행사장에 나타난 기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갤러거에게 다가가 아는 척을 하고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갈색 수첩을 꺼내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아홉 명의 심사위원들도 하나둘 도착했다. 그들 중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 프랑스 유수의 와인 전문가로서 흠잡을 데 없는 자격을 갖춘 이들이었다. 심사위원들은 프랑스 기득권층 특유의 조용한 태도로 악수를 하고 서로를 반긴 다음, 긴 탁자 앞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시음회는 익명 시음, 즉 와인의 상표를 가리고 시음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시음 중에는 자신이 어떤 와인을 마시고 있는지 모를 터였다. 다만 제공되는 와인이 프랑스와 캘리포니아산이라는 사실과, 적포도주는 보르도풍의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품종이고 백포도주는 부르고뉴풍의 샤르도네(Chardonnay) 품종이라는 것만 알았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나자 표식이 없는 병을 든 웨이터들이 긴 탁자를 따라 움직이며 심사 위원들 앞에 높인 잔에 와인을 따르기 시작했다. 심사위원들의 앞에는 점수표와 와인 잔 두 개, 작은 빵 조각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하드롤 빵은 시음하는 중간중간에 입맛을 정리하는 용도였다. 와인 시음은 관례에 따라 백포도주 부터 시작했다.

시음회는 매우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시음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장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심사위원들도 여느 시음회 때보다 조금 더 수다스러웠다. 일반적인 시음회에서 와인 전문가들은 대개 입을 닫고 손에 든 잔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시음회는 그렇지 않았다.

출품된 백포도주의 대략 절반이 나온 무렵부터 나는 뭔가 아주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나는 갤러거가 준 시음 와인 목록과 순서가 적힌 종이를 갖고 있었기에 심사위원들의 혼란을 눈치챘다! 그들은 프랑스 와인을 캘리포니아 와인으로 판단하거나, 아니면 캘리포니아 와인을 프랑스 와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또, 서로의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탁자 한쪽에서 어떤 와인이 프랑스 와인이라고 주장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것이 캘리포니아 와인이라고 주장했다.

최고급 프랑스 요리를 대표하는 파리의 레스토랑 르 그랑 베푸르(Le Grand Véfour)의 오너 셰프 레몽 올리베르(Raymond Oliver)는 백포도주가 든 잔을 살살 돌리고 와인을 빛에 비추어 옅은 밀짚 색깔을 확인한 다음, 향을 맡고 맛을 보았다. 잠깐의 침묵 후 그는 “야, 다시 프랑스 와인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신중을 기하면서 와인 목록을 두 번이나 확인했다. 올리베르가 방금 맛본 와인은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온 1972년산 프리마크 애비(Freemark Abbey) 샤르도네였다!

뒤이어 프랑스 요리와 와인에 관한 책과 잡지를 내는 고미요(Gault Millau) 출판사의 클로드 뒤부아미요(Claude Dubois-Millot)가 또 다른 백포도주를 시음하더니 의심의 여지도 없다는 투로 말했다. “이건 캘리포니아 와인이 확실하네요. 좋은 향이 없어요.” 하지만 확인한 결과 그 와인은 라모네-프뤼동(Ramonet-Prudhon)이 만든 1973년산 바타르 몽라셰(Bâtard-Montrachet)였다. 부르고뉴 최고의 와인 중 하나였다.

스퍼리어의 파리 시음회는 정말로 흥미로운 기삿거리가 될 것 같았다.

와인 역사의 유명한 파리의 심판 사건이 책으로 나온 줄 이제사 알고 읽고 있다. 설명이 필요한지? ㅋ

[서평] 소로스

Soros (소로스)6점
마이클 T. 카우프만 & 조지 소로스 지음, 김정주 옮김/디지틀엠에프에스(디지틀MFS)

저자인 마이클 카우프만씨는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40년간 뉴욕타임즈에서 근무하였고 2010년에 별세하였다고 한다. 책의 앞머리에 저자와 소로스의 관계가 약간 설명되어 있다.

이 책의 원서가 2002년에 나왔는데,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이 ‘칠순의 소로스 멈추지 않는다…’인데 현재 팔순의 소로스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소로스 옹은 아직도 탑 헤지펀드 수익 순위에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뭐 나이가 있으니 본인이 직접 모든 투자는 안 하겠지만 여하간 뭔가 대단한 듯. ㅋ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의 투자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읽었는데, 전반적으로 그의 자선사업에 더 무게감 있게 서술되어 있고, 투자에 대한 이야기는 비중이 비교적 적다. 책의 앞부분 1/4 정도는 그의 아버지 이야기만 나온다. 일전에 드러켄밀러가 본 소로스에 대해 책의 일부를 인용했으니 참고 바란다.

사실 소로스는 국내에서 IMF사태 등의 경제적 혼란을 가져오는 투기자본으로 별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역자 서문에서도 이를 언급하고 있다. 일전에 잠시 이야기했지만, 한국의 IMF 사태 자체로 소로스가 얻은 이익은 없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의 자선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는데, 보니까 동유럽의 공산주의 타파를 위해 상당한 역할을 한 것 같다. 평범한 자선활동과는 판이하다고 생각하는데, 냉전 체제의 붕괴에 그의 공헌이 어느정도는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핀란드 겨울전쟁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소로스가 저금통을 깨서 핀란드 후원 기부를 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소로스 본인은 이 사건을 그리 잘 기억하지 못하는 듯 하다. ㅎ

소로스의 개인에 대해서 또는 그의 자선활동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 볼만하겠지만, 투자에 관해서 관심이 있으면 그리 적합하지는 않은 책이라 생각한다. 애석하게도 현재 이 책은 절판인 듯.

드러켄밀러가 본 소로스

조지 소로스, 마이클 T. 카우프만 저/ 김정주 역, “소로스“, 디지틀MFS, 2002

p270-272

소로스가 결정을 내릴 때 가장 가까이 있어온 사람은 스탠리 드루켄밀러다. 자선 기금을 설립한 소로스는 거기에 더 많은 시간을 쏟기 위해 펀드를 운용할 후임자를 물색했다. 10년 이상 여러 사람을 고용해 봤지만 다들 오래 가지 못했다. 소로스보다 22살 나이가 적은 드루켄밀러는 그 제안을 받고 소로스가 사람들을 금방 갈아치운다는 소문에 조금 망설였다. 그런데다 그 제의를 받아들인 후, 로버트 소로스와 첫 인사를 나눌 때 ‘당신은 우리 아버지가 채용한 아홉번째 후임자다’ 라는 말을 듣고 더욱 자신이 없어졌다.

그러나 드루켄 밀러는 자신이 ‘표준’이라고 부르는 사람으로부터 한 수 배운다는 결심을 하고 그 직책을 받아들였고 결국 살아 남았다. 특히 그는 시장 추적을 위해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고 밤 9시엔 반드시 잠자리에 들었다. 2000년 봄에 물러나기 전까지 그는 소로스를 대신해 10년이 넘게 퀀텀펀드의 최고 거래자이자 거시 경제 전략가로 일해 왔다. 10년을 한결같이 지켰던 그 자리는 자신의 스승인 소로스가 거액이 움직이는 세계에서 하는 역할을 지켜보고 평가할 수 있었던 값진 고지였다.

드루켄밀러는 소로스를 이렇게 평가한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느냐고요? 그냥 표준이었어요. 그는 헤지 펀드 모델을 개발해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운용했어요. 5년, 10년으로 그친게 아니라 1969년부터 1989년까지 한번도 쉬지 않고 그 일을 해낸 정력이 정말 대단한 겁니다. 늘 강한 압박에 시달렸을 텐데 말이죠.”

드루켄밀러는 소로스의 경쟁력으로 여러 가지 특징을 지적했다. 공사구분 능력, 똑똑함, 외부 충격 속에서도 유지하는 냉철함,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 그러나 결국엔 소로스의 천재적인 ‘방아쇠 당기는 능력’을 가장 큰 경쟁력으로 꼽는다. 드루켄밀러는 이것이야말로 소로스와 다른 사람들을 구분짓는 결정적인 차이라고 말한다. 로저스와 함께 일했던 그 시절, 자신과 로저스의 차이점을 설명할 때도 그는 이 단어를 사용했었다. 드루켄밀러는 이렇게 말한다.

“방아쇠를 당기는 일은 분석이나 예측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용기에 관한 것이에요. 설명하기 힘들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적정한 순간이 오면 기꺼이 모든 것을 내걸 수 있는 ‘배짱’ 같은 거죠. 그건 누가 가르쳐 준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닌 완전히 작관적인 영역이죠. 즉 과학적 능력이라기보다는 예술적 재능 같다고 할까요.”

드루켄밀러는 소로스의 도움으로 퀀텀펀드의 가장 유명한 투자에서 방아쇠를 당겼다. 1992년 영국 파운드의 대거 매입으로 10억 달러가 넘는 차익을 남긴 것이다. (본인 주: 저자 또는 역자가 실수한 듯. 파운드 매입이 아니라 매도임) 그는 극한의 위기에 돈을 걸어 이윤을 최대화하는 능력은 아무한테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분석을 잘하는 사람, 예측을 잘하는 사람은 수백 수천 명이 있지만, 그 정보를 이용해 방아쇠를 당기고 예측에 따라 ‘위험’을 감수하고 돈을 거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해요.”

1992년 드루켄밀러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국민을 안심시키던 영국중앙은행의 주장과는 달리, 파운드화의 평가절하는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 소로스의 의견을 물었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파운드화가 폭락할 것 같아 보이니, 이러이러한 만큼의 돈을 투자해 볼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질책은 아니지만 그 비슷한 응답이 들려왔어요. 네 생각이 그렇다면 왜 20억, 30억 달러밖에 투자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이러한 소로스의 독려에 힘입어 드루켄밀러는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 3배나 많은 액수를 투자했다.

검은 수요일 당시 소로스는 펀드자산의 150%를 투자했다고 한다. 초 통배짱이구만. ㅋㅋㅋ 나도 도박성 느낌으로 총 자산의 50% 정도를 몰빵해서 하루만에 좀 번 적이 있지만, 소로스 만큼의 배짱은 없는 듯. ㅋㅋ

일전에 소개한 헤지펀드 열전에서도 나오지만, 투자를 잘 하는 사람도 자신이 왜 잘하는지 잘 설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일전에 ‘외환쇼크‘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분석’은 과학이지만 ‘실행’은 예술에 더 가깝다. 예측을 잘 하는 사람은 많아도 투자를 잘 하는 사람은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