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심판’ 당시의 모습

조지 M. 태버 저/유영훈 역, “파리의 심판”, 알에이치코리아, 2014

p12-17

파리의 심판, 그 시작

1970년대 중반에 나는 〈타임〉특파원으로 일했다. 파리의 작은 사무실에 앉아 프랑스 정치에서 디자이너 맞춤복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써냈다. 때때로 우리가 관할하는 주변 나라들에서 큰 사건이 터지면 바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는데, 에스파냐 수상의 암살을 취재하기 위해 마드리드로 간 적도 있었고, 혁명 발발 보도를 위해 리스본으로, 네덜란드 여왕의 부군이 관여된 뇌물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가는 등 그야말로 유럽 각국을 종횡무진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좋은 직업이었다.

1976년 5월 24일 나는 마침 파리에 있었다. 일주일 전 나는 뉴욕의 편집자들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을 시도하려는 한 와인 시음회에 대해 기사를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 시음회는 프랑스 와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와인 몇 병을 거의 무명에 가까운 신생 캘리포니아 와인들과 비교하고자 했다. 사실 하나 마나 한 행사 같아 보였다. 프랑스가 이길 게 뻔했다. 하지만 나 역시 캘리포니아 출신으로서 프랑스 뿐만 아니라 스위스, 독일, 벨기에에서 공부하거나 일을 하면서 와인에 대해 꾸준히 배워왔기 때문에 그런 제안을 했던 것 같다.

매주 전 세계의 〈타임〉특파원들이 수백 건의 기삿거리를 제출한다. 그중에서도 일부만이 취재 승인을 받으며, 그걸 또 추려서 실제 지면에 싣는다. 냉혹한 적자생존의 세계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생생하면서도 눈을 ㄸ레 수 없는 잡지가 나오는 것이다. 시음회 건은 취재 승인이 났지만 나 역시 잡지에 실릴 확률은 낮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프랑스 와인이 이긴다면 아예 기삿거리조차 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다. 게다가 와인 시음장에 가면 적어도 몇 종의 와인은 직접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사가 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지루한 오후를 보낼 수 있는 썩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호텔 안내인은 시음회장인 호텔의 테라스 바에 딸린 작고 우아한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내가 입장했을 때는 턱시도를 단정하게 입은 웨이터들이 식탁보를 깔고 잔을 놓으며 분주히 행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사실 나는 시음회 주최자들과 친분이 있었다. 영국인으로서 카브 드라 마들렌이라는 와인 숍의 주인인 스티븐 스퍼리어와 그의 미국인 동료 퍼트리샤 갤러거가 이 시음회의 주최자였는데, 나는 카브 드 라 마들렌에서 운영하는 와인 학교인 아카데미 뒤 뱅(Académie du Vin)에서 갤러거가 가르치는 와인 입문 강좌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번 취재를 마음먹은 이유도 그녀의 부탁 때문이기도 했다. 시음회의 목적이 와인 숍과 와인 학교의 홍보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퍼리어와 갤러거는 이번 행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언론들을 설득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실제로 행사장에 나타난 기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갤러거에가 다가가 아는 척을 하고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갈색 수첩으 꺼내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아홉 명의 심사위원들도 하나둘 도착했다. 그들 중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 프랑스 유수의 와인 전문가로서 흠잡을 데 없는 자격을 갖춘 이들이었다. 심사위원들은 프랑스 기득권층 특유의 조용한 태도로 악수를 하고 서로를 반긴 다음, 긴 탁자 앞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시음회는 익명 시음, 즉 와인의 상표를 가리고 시음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시음 중에는 자신이 어떤 와인을 마시고 있는지 모를 터였다. 다만 제공되는 와인이 프랑스와 캘리포니아산이라는 사실과, 적포도주는 보르도풍의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품종이고 백포도주는 부르고뉴풍의 샤르도네(Chardonnay) 품종이라는 것만 알았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나자 표식이 없는 병을 든 웨이터들이 긴 탁자를 따라 움직이며 심사 위원들 앞에 높인 잔에 와인을 따르기 시작했다. 심사위원들의 앞에는 점수표와 와인 잔 두 개, 작은 빵 조각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하드롤 빵은 시음하는 중간중간에 입맛을 정리하는 용도였다. 와인 시음은 관례에 따라 백포도주 부터 시작했다.

시음회는 매우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시음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장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심사위원들도 여느 시음회 때보다 조금 더 수다스러웠다. 일반적인 시음회에서 와인 전문가들은 대개 입을 닫고 손에 든 잔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시음회는 그렇지 않았다.

출품된 백포도주의 대략 절반이 나온 무렵부터 나는 뭔가 아주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나는 갤러가 준 시음 와인 목록과 순서가 적힌 종이를 갖고 잇었기에 심사위원들의 혼란을 눈치챘다! 그들은 프랑스 와인을 캘리포니아 와인으로 판단하거나, 아니면 캘리포니아 와인을 프랑스 와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또, 서로의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탁자 한쪽에서 어떤 와인이 프랑스 와인이라고 주장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것이 캘리포니아 와인이라고 주장했다.

최고급 프랑스 요리를 대표하는 파리의 레스토랑 르 그랑 베푸르(Le Grand Véfour)의 오너 셰프 레몽 올리베르(Raymond Oliver)는 백포도주가 든 잔을 살살 돌리고 와인을 빛에 비추어 옅은 밀짚 색깔을 확인한 다음, 향을 맡고 맛을 보았다. 잠깐의 침묵 후 그는 “야, 다시 프랑스 와인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신중을 기하면서 와인 목록을 두 번이나 확인했다. 올리베르가 방금 맛본 와인은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온 1972년산 프리마크애비(Freemark Abbey) 샤르도네였다!

뒤이어 프랑스 요리와 와인에 관한 책과 잡지를 내는 고미요(Gault Millau) 출판사의 클로드 뒤부아미요(Claude Dubois-Millot)가 또 다른 백포도주를 시음하더니 의심의 여지도 없다는 투로 말했다. “이건 캘리포니아 와인이 확실하네요. 좋은 향이 없어요.” 하지만 확인한 결과 그 와인은 라모네-프뤼동(Ramonet-Prudhon)이 만든 1973년산 바타르 몽라셰(Bâtard-Montrachet)였다. 부르고뉴 최고의 와인 중 하나였다.

스퍼리어의 파리 시음회는 정말로 흥미로운 기삿거리가 될 것 같았다.

와인 역사의 유명한 파리의 심판 사건이 책으로 나온 줄 이제사 알고 읽고 있다. 설명이 필요한지? ㅋ

[서평] 소로스

Soros (소로스)6점
마이클 T. 카우프만 & 조지 소로스 지음, 김정주 옮김/디지틀엠에프에스(디지틀MFS)

저자인 마이클 카우프만씨는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40년간 뉴욕타임즈에서 근무하였고 2010년에 별세하였다고 한다. 책의 앞머리에 저자와 소로스의 관계가 약간 설명되어 있다.

이 책의 원서가 2002년에 나왔는데,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이 ‘칠순의 소로스 멈추지 않는다…’인데 현재 팔순의 소로스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소로스 옹은 아직도 탑 헤지펀드 수익 순위에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뭐 나이가 있으니 본인이 직접 모든 투자는 안 하겠지만 여하간 뭔가 대단한 듯. ㅋ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의 투자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읽었는데, 전반적으로 그의 자선사업에 더 무게감 있게 서술되어 있고, 투자에 대한 이야기는 비중이 비교적 적다. 책의 앞부분 1/4 정도는 그의 아버지 이야기만 나온다. 일전에 드러켄밀러가 본 소로스에 대해 책의 일부를 인용했으니 참고 바란다.

사실 소로스는 국내에서 IMF사태 등의 경제적 혼란을 가져오는 투기자본으로 별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역자 서문에서도 이를 언급하고 있다. 일전에 잠시 이야기했지만, 한국의 IMF 사태 자체로 소로스가 얻은 이익은 없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의 자선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는데, 보니까 동유럽의 공산주의 타파를 위해 상당한 역할을 한 것 같다. 평범한 자선활동과는 판이하다고 생각하는데, 냉전 체제의 붕괴에 그의 공헌이 어느정도는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핀란드 겨울전쟁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소로스가 저금통을 깨서 핀란드 후원 기부를 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소로스 본인은 이 사건을 그리 잘 기억하지 못하는 듯 하다. ㅎ

소로스의 개인에 대해서 또는 그의 자선활동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 볼만하겠지만, 투자에 관해서 관심이 있으면 그리 적합하지는 않은 책이라 생각한다. 애석하게도 현재 이 책은 절판인 듯.

드러켄밀러가 본 소로스

조지 소로스, 마이클 T. 카우프만 저/ 김정주 역, “소로스“, 디지틀MFS, 2002

p270-272

소로스가 결정을 내릴 때 가장 가까이 있어온 사람은 스탠리 드루켄밀러다. 자선 기금을 설립한 소로스는 거기에 더 많은 시간을 쏟기 위해 펀드를 운용할 후임자를 물색했다. 10년 이상 여러 사람을 고용해 봤지만 다들 오래 가지 못했다. 소로스보다 22살 나이가 적은 드루켄밀러는 그 제안을 받고 소로스가 사람들을 금방 갈아치운다는 소문에 조금 망설였다. 그런데다 그 제의를 받아들인 후, 로버트 소로스와 첫 인사를 나눌 때 ‘당신은 우리 아버지가 채용한 아홉번째 후임자다’ 라는 말을 듣고 더욱 자신이 없어졌다.

그러나 드루켄 밀러는 자신이 ‘표준’이라고 부르는 사람으로부터 한 수 배운다는 결심을 하고 그 직책을 받아들였고 결국 살아 남았다. 특히 그는 시장 추적을 위해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고 밤 9시엔 반드시 잠자리에 들었다. 2000년 봄에 물러나기 전까지 그는 소로스를 대신해 10년이 넘게 퀀텀펀드의 최고 거래자이자 거시 경제 전략가로 일해 왔다. 10년을 한결같이 지켰던 그 자리는 자신의 스승인 소로스가 거액이 움직이는 세계에서 하는 역할을 지켜보고 평가할 수 있었던 값진 고지였다.

드루켄밀러는 소로스를 이렇게 평가한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느냐고요? 그냥 표준이었어요. 그는 헤지 펀드 모델을 개발해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운용했어요. 5년, 10년으로 그친게 아니라 1969년부터 1989년까지 한번도 쉬지 않고 그 일을 해낸 정력이 정말 대단한 겁니다. 늘 강한 압박에 시달렸을 텐데 말이죠.”

드루켄밀러는 소로스의 경쟁력으로 여러 가지 특징을 지적했다. 공사구분 능력, 똑똑함, 외부 충격 속에서도 유지하는 냉철함,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 그러나 결국엔 소로스의 천재적인 ‘방아쇠 당기는 능력’을 가장 큰 경쟁력으로 꼽는다. 드루켄밀러는 이것이야말로 소로스와 다른 사람들을 구분짓는 결정적인 차이라고 말한다. 로저스와 함께 일했던 그 시절, 자신과 로저스의 차이점을 설명할 때도 그는 이 단어를 사용했었다. 드루켄밀러는 이렇게 말한다.

“방아쇠를 당기는 일은 분석이나 예측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용기에 관한 것이에요. 설명하기 힘들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적정한 순간이 오면 기꺼이 모든 것을 내걸 수 있는 ‘배짱’ 같은 거죠. 그건 누가 가르쳐 준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닌 완전히 작관적인 영역이죠. 즉 과학적 능력이라기보다는 예술적 재능 같다고 할까요.”

드루켄밀러는 소로스의 도움으로 퀀텀펀드의 가장 유명한 투자에서 방아쇠를 당겼다. 1992년 영국 파운드의 대거 매입으로 10억 달러가 넘는 차익을 남긴 것이다. (본인 주: 저자 또는 역자가 실수한 듯. 파운드 매입이 아니라 매도임) 그는 극한의 위기에 돈을 걸어 이윤을 최대화하는 능력은 아무한테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분석을 잘하는 사람, 예측을 잘하는 사람은 수백 수천 명이 있지만, 그 정보를 이용해 방아쇠를 당기고 예측에 따라 ‘위험’을 감수하고 돈을 거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해요.”

1992년 드루켄밀러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국민을 안심시키던 영국중앙은행의 주장과는 달리, 파운드화의 평가절하는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 소로스의 의견을 물었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파운드화가 폭락할 것 같아 보이니, 이러이러한 만큼의 돈을 투자해 볼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질책은 아니지만 그 비슷한 응답이 들려왔어요. 네 생각이 그렇다면 왜 20억, 30억 달러밖에 투자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이러한 소로스의 독려에 힘입어 드루켄밀러는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 3배나 많은 액수를 투자했다.

검은 수요일 당시 소로스는 펀드자산의 150%를 투자했다고 한다. 초 통배짱이구만. ㅋㅋㅋ 나도 도박성 느낌으로 총 자산의 50% 정도를 몰빵해서 하루만에 좀 번 적이 있지만, 소로스 만큼의 배짱은 없는 듯. ㅋㅋ

일전에 소개한 헤지펀드 열전에서도 나오지만, 투자를 잘 하는 사람도 자신이 왜 잘하는지 잘 설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일전에 ‘외환쇼크‘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분석’은 과학이지만 ‘실행’은 예술에 더 가깝다. 예측을 잘 하는 사람은 많아도 투자를 잘 하는 사람은 드물다.

색을 ‘듣기’위해 머리에 안테나를 심은 사람

330px-Neil_Harbisson_cyborgist알 자지라의 The Stream 코너에서 흥미로운 방송을 하는데 내용이 완전 신기방기하다.

영국에서 태어나서 카탈루냐에서 자랐다는 Neil Harbisson이라는 아티스트는 전색맹인데, 색을 ‘듣기’위해 머리에 안테나를 심었다고 한다. 이 친구가 출연하는 알 자지라 방송을 봤는데 완전 신통방통하구만. ㅋ

검색해보니 이 방송 자체는 작년 11월에 한 모양이라 알 자지라 웹사이트로는 볼 수 없는데, 페북에 영상이 올라와 있으니 이 쪽을 보시라.

이 사람은 전색맹이라 색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 영상에서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색에 따라서 듣는 소리의 주파수가 다르다고 한다. 방송의 사회자가 자기 옷 색깔을 묻자, 아무 소리도 안 들리니 검은색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파란색은 C#, 노란색은 G음이 난다고 한다. 조카가 안테나를 잡아당길 때도 있는 모양-_- 근데 본인의 듣기 실력이 딸려서 다 알아듣지는 못하겠다. ㅋㅋㅋ

TED에서 강연도 한 적이 있는 듯.

근데 본인이 신통방통하다고 생각한 점은, 뇌에 특정한 음을 듣는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전기신호를 어떻게 넣는가 하는 점인데, 이런 기술이 이미 있는 건가? 놀랍다. 그리고 안테나와 두피 사이의 마감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하는 부분도 궁금한데, 그런 실제적 부분이 궁금한 사람은 없는건가-_- 어쨌든 신기방기하구만. ㅋㅋ

26살짜리 학생이 제기한 피케티에 대한 반론

이코노미스트지에 재미있는 논문을 소개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NIMBYs in the twenty-first century Mar 25th 2015, 12:08

MIT의 경제학과 대학원생으로 재학중인 Matthew Rognlie라는 친구가 피케티의 논거에 반론[1]을 제기한 모양인데, 학자들 사이에서 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이 친구 26살 밖에 안 된다고 하는데, 뭔가 대단한 듯 ㅋ

본인은 논문을 읽어볼 능력은 못되고, 이코노미스트 기사만 대충 봤다. 피케티 책은 읽다가 힘들어서 접었는데-_- 좀 열심히 읽어볼 껄 그랬다. ㅋㅋ 논문 뒤쪽에는 계산도 꽤 나온다. 논문에 수학이 유용할 때가 있는데-_- 뭔가 있어 보인다-_-

이코노미스트지는 세 가지 포인트에서 그의 반론을 소개하고 있다. 첫째, 자본의 한계수익률이 감소한다는 점. 둘째 피케티가 미래의 부의 수익을 과대 평가했다는 점. 셋째 국부에 의한 수입이 국가 전 분야에서 일정하지 않다는 점을 들고 있다고 한다. 그의 주요 논거로 기술발전에 의한 영향을 감안하는 부분이 있는 듯 하다. 예전에도 어디서 피케티가 기술과 테크의 발전을 논거에서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 않냐는 주장을 본 듯 한데, 피케티가 자신의 논거를 좀 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을 듯.

이코노미스트지 기사에 그래프가 소개되어 있지만, 동산과 부동산의 자본 수익률 차이를 나름 고려할만 한 것 같다. 여하간 마지막 문단에서 부동산 소유자가 고소득 헤지펀드 보다도 불평등 심화를 더 제공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부동산 불패신화가 한국만 통하는게 아니었나-_- 이게 사실이라면 현정부의 부동산을 통한 경기 회생의 노력이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을 듯. (뭐 사실이 아니라 해도 좋게 보이지는 않을 것 같지만-_-)

아니 내가 맞게 이해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경제학 고수분은 좀 설명해주시라. ㅋ

 


[1] Matthew Rognlie, “Deciphering the fall and rise in the net capital share“, Brookings Papers on Economic Activity, March 2015

 


2015.3.27
26세 MIT 경제학과 박사과정 학생, 피케티 주장 반박하는 논문 내 놓아 in NewsPeppermint

Robert A. Weinberg의 기고글 : 우리는 암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있나?

페북에서 건강대안을 팔로우 하고 있는데, 거기서 에세이 하나를 소개[1]하길래 인상적이라 찾아봤다. Robert A. Weinberg 선생이 Cell지에 기고한 에세이라고 한다. 유료이긴 하지만 어찌저찌해서-_- 구해 슬쩍 읽어보았다. 엘제비어 이놈들 cost of knowledge 운동도 하는데 왜 이리 돈을 밝히나 모르겠다. ㅋ

참고로 같은 글을 mad scientist씨도 페북에서 언급하고 계신다.

여하간 영어 울렁증 때문에, 다는 못 읽고 앞뒤로만 읽어봤다. ㅋㅋ 본인의 견문이 별로 없어서 Robert A. Weinberg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는데, oncology에서는 꽤 유명한 사람인 것 같다. 이 분야에 오래 몸담은 사람이라고 한다. 검색해보니 국내에 이 사람의 대중서도 한 권 번역되어 있는 듯.

지난 수십년간 분자생물학의 환원주의자들은 암 형성 매커니즘이 완전히 드러날 것이라는 희망찬 관점에서 연구를 수행해 왔지만, 암 형성 매커니즘은 단순하지 않으며 끝없는 복잡성을 따라 완전히 한바퀴(full circle) 돌아서 제자리에 왔다고 그는 말한다. 맨 마지막 문단에서 후학들에게 과거와는 완전히 독립된 방법으로 연구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전에 본 블로그에서 소개한 암 연구의 역사에 관한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저서가 읽는데 약간 도움이 된 것 같다. 중간에 암연구의 역사를 이야기 할 때 닉슨 대통령이 추진한 ‘암과의 전쟁(War on Cancer)’ 이야기와, 하워드 테민의 reverse transcriptase enzyme의 발견 이야기 등은 모두 무케르지의 저서에서 어느정도 다루는 이야기들이다.

사과가 떨어지는 지상의 현상과 달이 도는 천상의 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여 당대 지식인에게 충격을 주었던 뉴턴의 업적처럼, 최대한의 많은 현상을 최소한의 적은 이론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발전의 기본형태이다. 물리학의 theory of everything을 찾으려는 노력 또한 그러한 역사적 연장선 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환원주의적 관점에서 oncology를 바라보았을 때, 완전히 절망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이 분야의 대가의 설명을 들을 수록 지식의 갈길은 진짜 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ㅎ

 


[1] Weinberg RA (2014) “Coming full circle—from endless complexity to simplicity and back again”, Cell 157 267–71 doi:10.1016/j.cell.2014.03.004

미식축구 선수가 수학 논문을 쓰다

해커뉴스를 보니 재미있는 기사가 올라와 있다.

npr John Urschel, Ravens Offensive Lineman, Publishes Math Paper MARCH 20, 2015 5:15 PM ET

John Urschel이라는 미식축구 선수가 수학논문을 썼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이 친구는 이미 박사 학위가 있는 듯 하다. 뭐 본인은 당연히 논문을 읽어볼 능력은 못 되고, arxiv에 올라온 그의 논문[1]에서 abstract만 대충보니 graph theory인 듯. Fiedler Vector와 같은 용어는 처음 본다. 이 논문으로 그는 Erdős number 4를 얻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사람은 Baltimore Ravens팀의 오펜시브 가드 포지션이라고 한다. 뭐 미식축구도 잘 모르니 패스.. ㅋㅋ 사진을 검색해 보니 덩치가 무지하게 큰 사람인 것 같다.

근데 프로 미식축구 선수가 수학과 박사학위가 있을 뿐더러, 또 이번에 새롭게 논문을 쓴 걸 보면 선수생활 하면서 공부를 완전히 손 놓은 것도 아닌 모양인 듯.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ㅋㅋ

 


[1] John C. Urschel, et al. “A Cascadic Multigrid Algorithm for Computing the Fiedler Vector of Graph Laplacians”, arXiv:1412.0565 [math.NA]

[서평] 우주비행사의 지구생활 안내서- 나는 우주정거장에서 인생을 배웠다

우주비행사의 지구생활 안내서10점
크리스 해드필드 지음, 노태복 옮김/더퀘스트

이 책은 크리스 해드필드씨의 자서전 비스무리한 책인데, 일전에 소개한 space oddity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그 아저씨가 완전 대박나서 유명인사가 된 듯 하다. ㅋ

자서전 쓰기에는 좀 젊지않나 싶은 나이이긴 한데, 여하간 이제 공식적으로 우주비행사에서 은퇴를 한 모양이다. 근데 읽어보면 자서전을 쓸만하다 싶은 느낌이 든다. ㅎ

저자는 매우 어릴적부터 우주인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또 캐나다 우주국에서 진행한 우주인 모집에 신청하는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어릴 적 꿈을 성인이 되어서까지 간직하여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일생의 노력으로 자신의 어릴 적 꿈을 이루어내는 그의 인생 이야기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책의 상당부분은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내면의 교훈을 얻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뭔가 인생을 달관한 사람이랄까, 득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 같다. 역시 사람은 우주에 나가보면 저절로 겸손해지는가 보다.

일개인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내용상 자기 계발이나 리더십에 더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라고 생각한다. 달성하기 어려운 큰 목표를 향해 자신의 인생을 갈고 닦는 이야기들, 또 큰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주변의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그의 방법론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중의 어중이 떠중이들이 쓴 자기 개발서들 보다 이런 책 한 권이 더 볼만할 듯.

일전에 이 책의 일부를 인용해 두었으니, 독서 여부의 결정에 참고하기 바란다. 본인은 전자책으로 읽어서 원본의 페이지 수를 알 수 없다.
우주비행사에게 필요한 성격
죽을 뻔한 이소연씨

연평균 수익률을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가?

일전에 주식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본인의 연평균 수익률을 어떻게 계산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본인이 처음 투자를 시작할 때, 만기된 적금이었던 대략 3천 정도의 돈으로 시작했다. 의식주 및 최소한의 비용을 빼면 버는 돈을 몽땅 주식 계좌에 때려 넣었는데, (나름 궁색하게 살았다-_-) 매달 평균 250만원 정도를 지난 2년간 계속 입금했던 것 같다. 현재까지 누적해서 총 8700만을 입금했는데, 현재 자산이 1억5500만이 되었다. 수익률을 계산하려면 이것이 은행 복리 적금이라고 가정하고 계산해야 맞지 않나 싶다.

2700만은 월이율 r로 계속 저축했다고 가정하면 24개월후 복리로 원리합계는 2700(1+r)^{23}이 된다. 한편 월 250만씩 매달 저축했다고 가정하면 첫달 저축액은 24개월후 250(1+r)^{23}이고, 둘째 달 저축액은 250(1+r)^{22}이므로 … 등비수열의 합의 공식을 이용하면 된다.

즉, 다음 방정식의 해가 월평균 수익률이 된다.

\displaystyle 2700(1+r)^{23}+250\frac{(1+r)^{24}-1}{r}=15500

maple의 fsolve 함수로 근사치를 구하면 대략 r=0.0365가 된다. 즉 월평균 3.65%씩 벌었으니 12를 곱해서 연평균 43.8%의 수익률이 되는 것이다!!! 헐 내가 생각해도 많이 벌었다.ㅋㅋㅋㅋㅋㅋ 근데 이게 맞는 계산인가?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