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파리가 잡은 범인

파리가 잡은 범인10점
M. 리 고프 지음, 황적준 옮김/해바라기

와우! 대단한 책이다. 현재 이 책은 대부분 서점에서 절판되었기에, 새책으로는 구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지만, 중고로는 쉽게 구할 수 있으므로 꼭 일독을 권한다.

법곤충학(Forensic entomology)에 흥미가 생겨 일전에 소개한 마크 베네케의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1]를 읽어봤는데, 앞부분만 법곤충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뒤로 갈수록 경찰기관이 생물정보 DB를 축적하면 도움이 되는 이유로 이야기가 좀 삼천포로 빠져서, 적잖이 실망한 바 있다.

이 책은 곤충학자가 법곤충학으로 자신의 전공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과, 그 중에 발생한 사건들의 조사 사례를 반쯤 수필에 가깝게 저술한 책으로서, 대부분이 법곤충학으로 채워져 있어 만족스럽다. 게다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몇몇 사례는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나오는 이야기와 좀 겹치는데, 아무래도 마크 베네케가 이 책을 참조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책 속에 생물학 용어나 곤충의 종명이 많이 등장하는데 조금씩 검색해가며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용어는 어렵지만, 적당히 패스하며 읽으면 문외한도 소화 못할 수준은 아닐 듯 하다. 다만 사진 자료가 거의 없다는 점이 좀 아쉽다.

본문 중에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이 시신이 죽기전에 흡입한 코카인이 구더기의 생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실험을 한 직후, 실제로 그러한 지식을 유용하게 활용한 예(p177-183)가 등장하는데, 꽤 흥미로왔다. 시신이 흡입한 코카인때문에, 시신의 썩은 살을 먹은 구더기는 비정상적으로 성장이 촉진되는데, 시신이 코로 마약을 흡입하면, 코 부분의 구더기는 다른 부위의 구더기에 비해 유달리 크기가 크다. 이런 기작들은 앞으로 법곤충학의 발전여지가 무궁무진함을 알려주는 것 같다.

마크 베네케의 저서도 그러하듯, 이 책에서도 자신의 직업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에 비해 쓸데없는 관료주의적 행정이나 불합리한 사회문화적 요소 때문에, 역할에 지장이 있다는 토로(?)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p249-250

과거의 문제는 언제나 다시 등장하게 마련이다. 현재 학생들과 나는 시체의 위치에 따른 부패 유형의 차이를 연구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소금물에 젖은 시체는 항상 나와 동료 과학자들에게 곤충학적으로 풀기 힘든 문제를 제시했다. 그래서 대학원생 중 한 명은 밀물과 썰물의 중간 지대에 놓인 시체와 건조한 지역에 버려진 시체의 차이를 연구한다. 이 문제는 아마 내가 지금까지 실험한 내용 중 가장 풀기 힘들었던 것 같다. 물리적인 법칙이야 비교적 간단하지만, 이 과정을 실험하기 위해서는 돼지를 조수간만의 차이가 있는 지역에 가져다 놓아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미환경보호소, 미 어류 및 야생생물청, 국립해양어업국, 미해안경비대, 공병 기술단, 하와이 국토자원부, 하와이 보건부 산하 맑은 물 유지본부, 하와이 기획연구처 경영경제 개발 및 관광부의 허가를 받거나 이들이 없는 곳에서 실험을 해야만 한다. 한때 해안가에서 죽은 돼지가 항해에 위험을 초래해서 관심을 모은 적도 있다. 당시 나는 돼지의 코를 빨간색이나 초록색으로 칠해서 해안에 버리면 어떨까 궁리했던 적도 있으며, 혹은 학생들에게 논문의 주제를 ‘하와이 해안 거주 생물의 부패 유형’이 아닌 ‘물에서 조사할 경우 허락을 받는 법’으로 바꿀 의향이 없는지 물어본 적도 있다.

뭐 여하튼 다양한 재미있는 사례와 곤충을 통한 놀라운 추적들이 엮어지는 재미있는 책이다. 다만 저자가 곤충학자이어서인지 곤충학을 벗어난 다양한 법의학적 접근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는 것은 조금 아쉽다. 그러나 상당히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절판된 것이 아쉽다.

 


[1] 내 백과사전 [서평]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 법의곤충학자가 들려주는 과학수사 이야기 2010년 8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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