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록체의 기원

앤드류 H. 놀 저/김명주 역, “생명 최초의 30억년“, 뿌리와 이파리, 2007

p181-186 강조는 원문을 따름.

카잔 대학의 식물과 교수인 메레츠코프스키는 1905년에 조류(algae)와 식물 세포들은 원래 두 개의 독자적인 생물이 당위적이고 영구적인 협력관계를 맺은 키메라였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곧, 원생동물 속으로 들어온 시아노박테리아가 엽록체 – 진핵세포에서 광합성이 일어나는 곳 – 의 기원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독일의 식물학자 A. F. W. 쉼퍼Schimper가 몇 년 전에 알아낸 사실을 이 가설로 설명하고자 했다. 쉼퍼는 19세기 현미경 기술을 최대한 이용해 엽록체가 주의를 둘러싼 세포들과 따로 (그러나 동시에) 성장하고 분열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파스퇴르가 모든 생명은 생명으로부터 생긴다고 주장했듯이, 쉼퍼는 엽록체를 세포에서 없애면 새로 재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 엽록체는 언제나 엽록체로부터 생긴다는 것이다. 메레츠코프스키는 또한 산호와 같은 동물이 자기 조직 안에 조류를 받아들여 공생한다는 연구결과를 잘 알고 있었다. 통찰력이 풍부했던 그는 이 두 가지 관찰을 결합해 놀라운 결론에 이르렀다. “엽록체는 양분을 얻어 성장하고,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합성하며, 형질을 자손에게 물려준다. 이 모든 일은 세포핵과는 별개로 이루어진다. 요컨대, 엽록체는 독립된 생물처럼 행동하고, 실험결과도 그러하다. 따라서 엽록체는 기관이 아니라 공생체다.”

메레츠코프스키의 내부공생(두 세포가 상호이익을 위한 협력관계로 맺어져, 한 세포가 다른 세포의 내부에 사는 상태) 가설은 한동안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으나, 결국에는 무시와 반증에 타격을 입고 물러났다. 대답보다 더 빨리 의문이 쌓여갔다 – 공생체가 어떻게 숙주의 세포질 안에 정착했을까? 어떻게 하여 공생체는 세포핵의 유전적 지배 아래로 들어왔을까? 이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생물학자들은 좀 더 다루기 쉬운 문제들로 옮겨갔다. 1960년대 초에 내부공생 이론은 미국 교과서에서 ‘너무 오래 돌아다니는 불량주화’ 취급을 받을 뿐이었고, 메레츠코프스키는 옛 소련의 백과사전에서 식물분류학에 공헌한 학자로 기록되어 있을 뿐, 그 밖의 영역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내부공생설을 부활시킨 린 마굴리스

1972년 가을에 학부생이던 나는 식물학 과목의 기말 리포트 주제를 찾고 있었다. 내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을 알아챈 지도교수는 혁신적인 사고를 갖춘 젊은 세포생물학자 린 마굴리스가 (그 당시) 최근 발표한 논문 몇 편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나중에 듣게 된 사실이지만 『이론생물학 저널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에 게재되기 전에 열다섯 번이나 거절당했다는 1967년 논문에서, 린(당시에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아내로서 린 세이건이었음)은 진핵세포의 기원을 설명하는 내부공생설을 재창조했다 (린 마굴리스는 메레츠코프스키의 가설을 알고 부활시킨 것이 아니었다. 1967년에 린은 메레츠코프스키를 알지 못했다.). 린 마굴리스는 엽록체의 기원이 세포 내부에 공생하는 시아노박테리아라는 사실뿐 아니라, 진핵세포의 호흡을 담당하는 장소인 미토콘드리아도 자유생활을 하는 호흡하는 박테리아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

다윈의 뛰어난 통찰에 따르면 진화는 기본적으로 가지치기 하는 과정, 그러니까 다양해지는 과정이다 – 공통조상을 가진 자손들이 서로 달라지면서 새로운 형태와 생리기능이 생긴다는 말이다. 그런데 린 마굴리스는 가지들이 서로 합쳐져 새로운 종이 생긴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린 마굴리스의 가설에 따르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는 두 가지 유전적 계통이 결합한 것이다. 내 연구실에서 내려다보이는 장미덤불은 미토콘드리아뿐 아니라 엽록체도 갖고 있으므로, 세 가지 계통이 모인 것이다. 나는 린 마굴리스의 논문을 읽고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한 자극을 받았다. 마굴리스의 논문은 내 기말 리포트의 주제가 되었음은 물론, 초기 생명을 내 전공으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생물학자들은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가 내부 공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고, 린 마굴리스는 미국과학훈장을 받았다. 그럼 왜 메레츠코프스키는 실패했는데 마굴리스는 성공했을까? 한마디로 20세기 후반의 생물학자들은 앞 세대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도구를 마음껏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자현미경은 엽록체와 시아노박테리아가 공통의 구조를 공유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데 한몫했다. 또 생화학 덕분에 시아노박테리아와 엽록체에 있는 광합성의 분자 시스템이 거의 같다는 것이 밝혀졌다. 게다가 엽록체의 항생물질에 대한 반응은 세포핵이나 세포질과 같지 않고 오히려 박테리아와 비슷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가장 뜻밖의 결과는 엽록체에 DNA, RNA, 리보솜 – 세포의 성장과 복제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분자기구 – 이 들어있다는 사실이었다.

(중략)

엽록체 활동의 비결

한 세포가 어떻게 다른 세포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첫 번째 조건은 단순명쾌하다. 숙주가 공생체를 집어삼켜야 한다. 그 다음으로 시아노박테리아 공생체는 숙주가 분비하는 소화효소를 방해할 물질을 생산해야 한다. 그 물질은 당인데, 내부공생체에서 흘러나와 주위의 숙주세포에 흡수된다. 마지막으로 숙주세포는 공생체에게 이산화탄소와 양분을 꾸준히 제공해 광합성에의한 당의 생산을 촉진한다. 이와같은 물질대사 교환으로 숙주와 공생체의 협력관계가 생긴 것이다.

이런 협력은 사실 자연계에서 아주 흔하다. 예컨대 메레츠코프스키가 1세기 전에 알았듯이 산호의 조직에는 단세포 조류가 살면서 서로 영양물질을 교환한다. 조류는 산호가 빨리 자라게 해 주는데, 만일 산호가 약속한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산호를 떠나버린다. 그러면 숙주인 산호는 하얗게 탈색된다. 죽는다는 뜻이다. 요즘 카리브 해는 수온상승으로 ‘백화’된 산호 때문에 산호초 생태계가 큰 위협에 처해있다.

하지만 엽록체는 자신의 숙주를 버릴 수 없다. 제 2의 교환 – 이번에는 물질대사 교환이 아니라 유전자 교환 – 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숙주에서 발을 뺄 수 없는 것이다. 엽록체에는 자유생활을 하는 시아노박테리아에 있는 DNA의 10퍼센트도 들어있지 않다 – 세포에서 세포소기관이 되면서 내부 공생체는 대부분의 유전자를 잃었다.

커헉!! 너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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