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물 테러의 역사

이코노미스트지에 우편물 테러의 역사에 관한 기사[1]가 올라와 있다. ㅎㅎ

기록에 남아있는 우편 테러의 역사는 17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귀족이자 재무장관이었던 Robert Harley의 집 앞에 놓여진 모자상자는 뚜껑을 열면 내장된 총이 발사되는 구조였다고 한다. 유명한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너던 스위프트가 이를 발견하고 안쪽의 실을 잘라내서 사고를 막았다고 한다. 이 사건은 Bandbox Plot이라 불리는 듯.

1964년 1월 19일, 덴마크 역사가 Bolle Willum Luxdorph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성공적인 우편 폭탄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고 한다. Poulsen 대령이 우편물을 받았는데, 그가 우편물을 여는 순간, 안에있던 화약이 불붙어서 그는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테러는 급진적 아나키스트의 주요 활동중 하나였는데, 1919년 4월 29일에 미국 상원의원 Thomas Hardwick에게 이탈리아 출신의 아나키스트 Luigi Galleani가 폭탄을 보냈으나 실패하였다. 그는 1903년에 아나키스트 추방법(Anarchist Exclusion Act)을 추진했었는데, 아무래도 아나키스트들의 분노를 산 모양이다. 이 노동자의 날을 주변으로 30여개의 폭탄이 보내졌다고 한다.

1939년에는 50여개의 우편 폭탄이 런던, 버밍햄, 맨체스터에서 폭발했다고 한다. 이는 IRA의 ‘S-Plan 작전(S-Plan campaign)‘활동이었다. IRA는 뭐 다들 아시다시피 Irish Republican Army이다.

1961년에는 이스라엘 첩보기관인 모사드에서 도주중인 나치당의 일원인 Alois Brunner에게 우편 폭탄을 보냈다고 한다. 모사드는 1980년에 다른 네 명에게 보낸 바가 있다.

1970년 2월 21일에는 이스라엘의 텔 아비브(Tel Aviv)로 향하는 비행기 Swissair Flight 330이 짐칸에 있던 우편물 폭탄에 폭발하여 추락하였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행위로 추정된다.

1972년 9월 19일에는 반대로 이스라엘 외교관 Ami Shachori가 런던에서 우편 폭탄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전세계에 소재한 이스라엘 대사관으로 51개의 유사한 폭발물이 차단되었다고 한다. 뮌헨 올림픽 참사로 발족한 ‘신의 분노 작전(Wrath of God)‘으로 수많은 폭탄이 배송되었다.

1977년 12월에는 저널리스트이자 반아파르트 헤이트 활동가인 Donald Woods가 아동복이 들어있다는 티셔츠 상자를 받고는 그의 어린 딸이 큰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는 이 사건의 배후일 가능성이 있는 남아공 정부를 강력하게 비난했는데,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여러 반아파르트 헤이트 활동가들이 우편 폭탄으로 피해를 입었다.

우편 폭탄하면 유나바머(Unabomber)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전의 포스트[2]에서 그의 활동을 소개한 바가 있다.

비교적 최근인 2001년에도 미국 상원의원에게 탄저균을 우편으로 발송한 테러가 있었다. (이 사건 덕에 anthrax 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_-) 뭐 이 뉴스 기억나시는 분들 많으리라 생각한다. 아직까지 어떤 목적인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켁.

 


[1] 이코노미스트 Going postal Nov 4th 2010
[2] http://zariski.egloos.com/1816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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