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가치

이언 에어즈 저/안진환 역, “슈퍼크런처“, 북하우스, 2009

강조한 부분은 원문을 따른 것임.

p10-21

이러한 아셴펠터가 와인업계에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수치를 분석해 보르도와인의 품질을 평가하는 일에 매진하면서부터다.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같은 와인 전문가들은 ‘입 안에서 돌린 후 뱉어내는’ 방식을 통해 와인을 평가하는 반면, 아셴펠터는 통계학을 이용해 빈티지의 어떤 특성들이 경매가와 연관되는지 분석한다.

그는 이렇게 밝혔다. “사실, 그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와인은 해마다 날씨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 농산물이기 때문이지요.” 아셴펠터는 수십년에 걸친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날씨 데이터를 활용해 포도 수확기의 강수량이 적고 여름철의 평균기온이 높을 때 최상의 와인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피터 패셀Peter Passell이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에 보도했듯이, 그의 통계방정식은 실제 데이터와 놀랍도록 잘 들어맞는다.

보르도 와인은 포도가 잘 익어 진한 과즙이 나올 때 최상의 품질이 된다. 여름철 기온이 특히 높은 해에는 포도가 잘 익어 신맛이 덜 난다. 또한 강수량이 평균 이하인 해에는 과즙이 진하게 농축된다. 따라서 고온건조한 해일 수록 전설적인 빈티지를 얻을 확률이 높다. 포도가 잘 익으면 부드러운(신맛이 덜한) 와인이 탄생하고, 포도의 즙이 진하게 농축되면 감칠맛 나는 와인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는 대담하게도 자신의 이론을 하나의 공식으로 축약했다.

와인의 품질 = 12.145 + (0.00117 × 겨울철 강수량) + (0.0614 × 재배철의 평균기온)
– (0.00386 × 수확기 강수량)

그렇다 아셴펠터는 특정년도의 날씨 평균을 이 방정식에 대입함으로써 해당 빈티지의 전반적인 품질을 예측할 수 있다. 여기서 좀더 발전시킨 방정식을 통해서는 100여개 포도원의 빈티지별 품질을 좀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기도 하다. “다소 수학적으로 보이기는 하지요.” 그 역시 인정한다. “하지만 그 유명한 1855년 등급분류 때 프랑스 사람들이 포도원의 순위를 매긴 방식도 이와 똑같았습니다.”

전통적인 와인비평가들은 데이터를 중심으로 삼는 아셴펠터의 품질 예측을 수용하지 않았다. 영국의 전문잡지 『와인(Wine)』은 이렇게 말했다. “누가 봐도 어리석은 이 공식은 가소로울 따름이다.” 뉴욕의 와인 딜러 윌리엄 소컬린William Sololin은 아셴펠터의 분석에 대해 보르도와인업계가 ‘격분과 히스테리가 뒤섞인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아셴펠터는 때로 와인딜러들의 멸시를 받기도 했다. 아셴펠터가 크리스티 경매소의 와인부서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을 때, 뒷자리에 앉은 딜러들이 공개적으로 야유를 보냈다.

(중략)

파커는 아셴펠터가 “영화는 보지도 않고 감독과 배우들만으로 영화를 평가하는 영화비평가와 다를 바 없다”라고 말했다.

파커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영화도 직접 보는 것이 더 정확하듯이 와인도 실제로 마셔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다. 맛을 볼 와인이 수개월 동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르도와인과 부르고뉴와인은 18-24개월 동안 오크통에 보관되다가 따로따로 병에 담겨 숙성 단계에 들어간다. 파커 같은 전문가들은 와인이 오크통에 담긴 후 최초의 시음을 하려면 적어도 4개월은 기다려야 한다. 그때조차도 오크통 와인은 발효중인 혼합물에 가까워 이상한 맛이 나기 십상이다. 이처럼 도저히 마실 수 없을 정도의 초기 와인을 마시고 해당 와인의 미래 품질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예를 들면, 버터필드 앤드 버터필드 경매소의 와인부서 책임자였던 브루스 카이저Bruce Kaiser는 이렇게 주장했다. “갓 만들어진 와인은 매우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아무도, 진정 그 누구도 특정 빈티지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정말 정확하게 평가하려면 10년 혹은 그 이상을 기다려야 하지요.”

이와 대조적으로, 아셴필터는 수치를 분석해서 날씨와 와인가격 간의 역사적 상관관계를 찾는다. 이를 통해 그는 겨울 강수량이 1cm씩 올라갈 수록 와인의 기대가격이 0.00117달러씩 올라가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물론, 이는 그저 ‘경향’일 뿐이다. 하지만 어쨌든 아셴필터는 수치분석을 통해 포도가 수확되자마자 특정 빈티지의 미래 품질을 예측할 수 있다. 최초로 술통 시음이 이뤄지기 수개월전에, 그리고 와인으로 탄생하여 판매되기 수년 전에 말이다. 와인선물(先物)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현실에서 아셴필터의 예측은 와인수집가들이 경쟁우위를 점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중략)

그러나 해당 기사에서 진정한 폭탄선언은 1989년산 보르도와인에 대한 아셴필터의 예측이었다. 술통에 담긴지 불과 3개월 만에, 비평가들이 시음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아셴필터는 해당 와인이 ‘세기의 와인’이 될 거라고 예측한 것이다. 그는 89년산 와인이 “아찔할 정도로 훌륭할 것” 이라고 장담했다. 그의 평가에 따르면, 그토록 훌륭했던 1961년산 보르도 와인이 100점이라고 가정했을 때 1989년산 보르도 와인은 그보다 훨씬 높은 149점이었다. 아셴필터는 또한 그 와인이 “지난 35년 동안 생산된 어떤 와인보다도 높은 가격에 판매될 것”이라는 대담한 예측까지 덧붙였다.

와인비평가들은 격노했다. 파커는 이제 아셴필터의 정량평가를 “우스꽝스럽고 불합리한” 것으로 치부했으며, 소컬린은 파커의 이러한 반응이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것” 이며 “그는 많은 사람들을 진정 화나게 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2-3년 후, 『와인스펙테이터』는 더이상 아셴펠터의 (혹은 다른 누구의 것이든) 소식지 광고는 게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중략)

1990년, 아셴펠터는 자신을 더욱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아갔다. 1989년산 포도주를 세기의 와인으로 선언한 이후, 데이터를 토대로 1990년산이 그보다 훨씬 더 우수한 품질이 될 거라고 확신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확신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리퀴드어셋』의 예측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89년산은 진정으로 우수한 빈티지이며 90년산은 그보다 훨씬 더 우수한 것으로 드러났으니 말이다.

어떻게 ‘세기의 빈티지’가 2년 연속으로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것은 1986년 이래로 포도 재배철의 기온이 평균 이하로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날씨는 실로 20년 이상 계속 온화한 상태를 유지했다. 와인 애호가들에게 희소식이 될 만한 한 가지 사실은 그동안 정말 감칠맛 나는 보르도 포도를 재배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중략)

2006년 아셴펠터는 『와인경제학저널Journal of Wine Economics』의 창간을 도왔으며 그 덕분에 와인경제학협회까지 만들어졌다. 놀랄 것도 없이 초대 회장은 아셴펠터가 맡았다. 덧붙이건대 아셴펠터의 첫번째 예측은 놀랍도록 훌륭했다. 사토 라쿠르Château Latour의 최근 경매가격을 찾아본 결과, 당연히 89년산은 86년산에 비해 두 배 이상의 가격에, 90년산의 가격은 그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이제 그만 받아들이시지요, 로버트 파커 씨

와인산업의 보수성에 대해서는 일전의 포스트들을 참조할 것.
와인이 비쌀 수록 맛있다?
파리의 심판 Judgment of Paris
와인 마개의 이노베이션

 


2013.6.25
엉터리 과학에 기대고 있는 와인 감정(wine tasting) in NewsPeppermint

 


2015.8.17
이코노미스트 Quants and quaffs Aug 8th 2015
이제는 회귀분석이 아니라 머신러닝으로 예측한다!!

3 thoughts on “와인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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