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시르마 사람들과 앵그리 영 스페이스맨

한국문화인류학회 편저,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일조각, 2006

p52-60

나시르마 사람들

호러스 마이너(Horace Miner)

북미 대륙에 살고 있는 나시르마 Nacirema 사람들은 동쪽에서 왔다고는 하나, 이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이들의 영토 주변에는 캐나다의 크리족, 멕시코의 야퀴족과 타라후마레족, 그리고 안틸레스 열도의 카리브족과 아라와크족이 살고 있다. 나시르마의 신화에 따르면, 이들의 국가는 놋니소 Notgnihsaw 라는 한 영웅에 의해 세워졌다. 그는 북미 인디언들이 화폐로 사용하던 조가비 구슬을 파-토-맥 강 건너로 던지고, ‘진실의 신령神靈’이 깃든 벚나무를 도끼로 찍어 쓰러뜨린 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나시르마 문화의 특징은 풍부한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고도로 발전된 시장경제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경제활동에 많은 시간을 쓰지만, 의례활동을 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을 들이고 많은 물질적 대가를 치른다. 이들의 의례 활동은 인간의 몸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건강과 외모는 이들의 지배적인 관심사이다. 몸에 대한 이들의 관심이 특별히 별나지는 않지만, 이와 관련된 철학과 의례적인 측면만큼은 매우 독특하다.

나시르마 사람들은 인간의 몸은 기본적으로 추한 것이며, 몸이 쇠약해지고 병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몸에 갇혀 있는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은 의례와 의식의 강력한 효험을 통하여 노화와 질병을 막는 것뿐이다. 나시르마 사람들은 집집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세운 사당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은 자기 집에 몇 개의 사당을 가지고 있어, 어떤 집이 얼마나 부유한지는 종종 그가 가지고 있는 사당의 수로 나타나기도 한다. 대부분의 가옥은 나뭇가지를 엮고 그 위에 석회를 발라 짓지만, 부자의 사당 벽은 돌로 만들어져 있다. 가난한 집들은 자기 집 사당의 벽에 타일을 붙여서 부자 흉내를 내려고도 한다.

모든 가족이 이러한 사당을 적어도 하나씩 가지고 있지만, 사당과 관련된 의례는 사적이고 비밀스럽게 치러진다. 따라서 나시르마 사람들은 어린 시절 이러한 비밀 의례에 입문할 때에만 이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한다. 하지만 연구자는 원주민들과 충분한 라포 rapport (신뢰에 바탕을 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여, 이러한 사당을 조사하고 사당에서 행해지는 의례에 대해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사당의 핵심적인 요소는 벽에 붙어 있는 상자이다. 이 속에는 전문가들이 만든 부적과 마법의 약이 가득 들어 있다. 나시르마 원주민들은 누구도 이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믿는다. 부적과 마법의 약을 만드는 전문가 중 가장 강력한 사람은 의술사 medicine man 인데, 의술사의 도움을 받으면 원주민들은 물질적인 선물로 보상해야 한다. 그러나 의술사는 고객에게 치료약을 직접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약의 성분을 정하여 그것을 고대의 비밀언어로 써줄 뿐이다. 이 글은 의술사와 약제사 herbalist 만이 읽을 수 있다. 원주민들은 약제사에게 또 다른 선물을 바치고, 필요한 마법의 약을 얻는다.

원주민들은 특정한 질병에 맞게 만들어진 마법의 약을 사용한 후에도 남은 약을 버리지 않고, 사당에 있는 상자 안에 넣어둔다. 원주민들이 실제로 걸리거나 걸렸다고 생각하는 병의 종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이 약의 상자는 항상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약의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원주민들은 종종 약의 원래 용도를 잊어버려, 약 상자에 있는 약을 다시 쓰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오래된 약을 버리지 않고 모두 보관해 둔다. 나시르마 원주민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딱히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아마도 원주민들은 설사 사용하지 않더라도 마법의 약시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나시르마 원주민들은 마법의 약 상자 앞에서 몸에 대한 의례를 행하기 때문이다.

마법의 약 상자 아래에는 물그릇이 있다. 매일 가족 구성원 모두가 차례대로 사당에 들어와서, 마법의 약 상자 아래에서 머리를 숙이고, 물그릇에 두 종류의 성수聖水를 섞어서 간단히 씻는 의례를 행한다. 성수는 공동체의 ‘물의 사원’에서 보내는데, 물의 사원에서 사제들은 물을 정화하기 위한 정교한 의식을 행한다.

주술 종사자들의 위계에서 의술사의 아래에 위치하는 주술사는 ‘신령한 입의 사나이 holy-mouth-man ’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나시르마 사람들은 입에 관하여 거의 병적인 공포와 도취에 빠져 있어, 구강(입 안)의 상태가 모든 사회관계에서 초자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믿는다. 구강에 대한 의례를 행하지 않으면, 이빨이 삭아버리고, 잇몸에서 피가 나며, 턱이 찌그러지고, 친구와 연인이 떠나버릴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나시르마 사람들은 입과 도덕 사이에 강한 연관관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예를 들면 아이들은 구강을 닦는 의례를 통하여 더욱 착해진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매일 행하는 몸에 대한 의례에는 구강 의례가 포함된다. 나시르마 사람들이 구강 보호에 매우 철저하다는 사실을 이방인들이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구강 의례에 수반되는 행위는 이방인이 보기에 충격적일 정도로 역겹다. 나시르마 사람들은 작은 돼지털 뭉치를 특별한 마술 가루와 함께 입 안에 넣고, 극도로 형식화된 일련의 동작으로 털 뭉치를 움직인다.

개개인이 매일 행하는 구강 의례에 덧붙여, 사람들은 1년에 한두 번 ‘신령한 입의 사나이’를 찾아간다. 이 주술사는 여러 개의 송곳과 침, 막대와 바늘로 이루어진 도구 세트를 가지고 있다. 주술사가 이 도구를 사용해서 입 속에 살고 있는 악마를 쫓아내는 일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기도 한다. ‘신령한 입의 사나이’는 의뢰인의 입을 벌리고, 도구를 사용해서 이의 썩은 구멍을 크게 만든 후, 마법의 약재를 구멍 안에 채운다. 만약 썩어서 자연적으로 생긴 구멍이 이에 없으면, 썩은 이를 크게 파내고 초자연적인 물질을 대신 채워 넣는다. 의뢰인은 이의 부식을 막고 친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치료를 받는다. 이는 계속 썩어가기 때문에 별 효과가 없을지도 모르는데, 나시르마 원주민들이 매해 ‘신령한 입의 사나이’를 찾는 것에서 이 의례의 성스럽고 전통적인 성격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나시르마 사람들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행해진다면, 반드시 이들의 인성 구조를 상세하게 조사해야 할 것이다. ‘신령한 입의 사나이’가 노출된 신경에다 송곳을 찔러 넣을 때 번득이는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주술사의 구강 의례에 가학적 성향(사디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것이다. 이 사실이 입증된다면, 매우 흥미로운 패턴이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원주민들은 명백하게 피학적 경향(마조히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성들만이 매일 행하는 신체의례 body ritual 의 하나는 날카로운 도구로 얼굴의 표면을 긁고 벗겨내는 것이다. 여성들만의 특별한 의례는 매달 네 번 정도 행해지는데, 이들의 의례는 횟수가 드문 대신에 아주 잔인하다. 여성들은 한 시간 정도 머리를 화덕에 넣고 굽는 의례를 행한다. 이론적으로 흥미를 끄는 점은, 전반적으로 피학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가학적 성향의 주술사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의술사들은 ‘라팁소 latipso ‘라고 부르는 멋진 사원을 가지고 있다. 라팁소는 일정한 규모의 공동체마다 있는데, 심하게 아픈 환자를 돌보기 위한 정교한 의례는 반드시 이 사원에서만 행할 수 있다. 라팁소의 의례에는 의술사뿐만 아니라, 특별한 의상과 머릿수건을 걸치고 사원 안의 모든 방을 침착하게 돌아다니는 신녀神女들도 참여한다.

라팁소의 의례는 매우 가혹하기 때문에, 심하게 아파서 이 사원에 들어온 원주민들이 완전히 나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제법 많다는 것은 매우 놀랄 만한 일이다. 사원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는 어린아이들을 그곳에 데려가려고 하면 매우 심하게 저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사원이 바로 ‘죽으러 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아픈 어른들은 사원에 줄 산물만 충분하다면 오래 끄는 의례적인 정화 기간을 기꺼이 참을 분만 아니라 정화 기간을 연장하려고 애쓰기까지 한다. 아무리 아프거나 병이 위급하다고 해도, 나시르마에서는 사원에 많은 선물을 바칠 것을 약속하지 않으면 사원의 문지기가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이 사원에서 행하는 의례를 통해 살아남았다고 해도, 문지기는 또 다른 선물을 제공받기 전에는 의례를 통해 살아남았다고 해도, 문지기는 또 다른 선물을 제공받기 전에는 의례를 마친 이 사람을 사원에서 못 나가게 한다.

사원에서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사원에 들어가면 우선 올을 다 벗어야 한다. 나시르마 사람들의 일상에서 알몸을 노출하거나 배설하는 행위를 보여주는 것은 금기이다. 목욕이나 배설 행위는 집안의 사당에서 신체의례 일부로 비밀스럽게 행해질 뿐이다. 그러므로 라팁소 사원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신체의 은밀함이 상실된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큰 심리적 충격을 받는다. 자신의 아내에게조차도 배설하는 행위를 보여준 적이 없는 남성은 자신이 벌거벗은 채 신녀의 도움을 받아 성스러운 용기에 배설하고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사원의 주술사들은 의뢰인의 병을 확인하기 위해 배설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종류의 의례적인 처리는 부득이한 절차이다. 반면에 여성은 자신의 벗은 몸이 남성 의술사의 조사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원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딱딱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사람은 얼마 없다. 사원에서 행하는 의례는 ‘신령한 입의 사나이’가 행하는 의례와 마찬가지로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새벽마다 신녀들은 불상한 의뢰인들을 깨우고, 고도로 훈련된 동작으로 꼼꼼한 절차에 따라 의뢰인들의 몸을 닦아 주면서 이들을 침대 위에서 고통스럽게 굴린다. 다른 때에는 이들의 입에 주술 막대를 찔러 넣거나 치료 효과가 있다고 믿는 물질을 억지로 먹인다. 때때로 의술사가 와서 주술적으로 처방된 바늘을 살 속으로 찔러 넣기도 한다. 이러한 사원의 의례가 병을 치료하지 못할 수도 있고, 심지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만, 의술사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줄어드는 일은 없다.

‘듣는 자’로 알려진 다른 종류의 주술사도 있다. 이 주술사는 귀신 들린 사람의 머릿속에 살고 있는 악마를 쫓아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주술을 걸 수도 있다고 믿는다. 특히 어머니가 아이에게 비밀스런 신체의례를 가르치는 동안 자기 아이에게 저주를 걸 수 있다고 믿는다. 환자에게 걸려 있는 주술을 풀기 위해 이 주술사가 행하는 대항 주술 counter-magic 의 절차는 특이하게도 매우 간단하다. 환자는 단지 ‘듣는 자’라 불리는 특별한 주술사에게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고민과 공포를 이야기할 뿐이다. 이 마귀를 쫓는 의식에서 나시르마 사람들이 보여주는 기억력은 정말로 비범하다. 나시르마 원주민들이 아기 때 젖을 떼면서 느꼈던 거부감을 호소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출생에서 비롯된 정신적 충격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나시르마 원주민들의 미학에 기초하여, 자연스러운 몸과 신체 기능에 대한 혐오를 기반으로 하는 의례를 언급해야겠다. 나시르마에서는 뚱뚱한 사람들이 날씬해지려고 단식이라는 의례를 행하고, 마른 사람들은 뚱뚱해지려고 진수성찬을 먹는 의식을 행한다. 여성의 가슴이 작으면 크게, 크면 작게 만드는 의례를 행하기도 한다. 나시르마 원주민들이 말하는 유방의 이상적인 형태는 사실상 인간의 일반적인 신체 치수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일반적인 신체 치수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많은 나시르마 여성들이 자신의 유방의 형태에 대해 만족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인간의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과도하게 발달한 유방으로 시달리고 있는 나시르마 여성들이 우상화되며, 이들은 단지 마을에서 마을로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가슴을 보여주고 돈을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산다.

나시르마 원주민들에게 배설 행위는 의례화되고, 격식화되고, 비밀스러운 것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앞에서 밝힌 바 있다. 자연적인 재생산 역시 이와 유사하게 왜곡되어 있다. 성교는 금기시되는 화제이며, 계획에 따라 하는 행동이다. 주술적인 약재를 쓰거나 또는 달이 차거나 기울어지는 특정한 시기에 성교를 금함으로써 임신을 막고자 한다. 수태는 실제로 매우 드물다. 임신을 하면, 여성들은 배부른 모습을 숨기기 위한 옷을 입는다. 분만은 친구들이나 친지들의 도움 없이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며, 대두수의 여성들은 자기 아이에게 젖을 먹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시르마 원주민들의 의례 생활을 간략하게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들은 주술에 지배된 종족임을 알 수 있다. 몸에 대한 주술이 자신들에게 부과한 부담을 어떻게 견디며 이들이 이토록 오래 생존할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초기 인류에게 주술의 힘이 없었다면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 높은 문명 단계로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문화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 Bronislaw K. Malinowski 의 이야기처럼, 아무리 조잡하고 엉뚱하게 보이는 주술일지라도 주의 깊게 통찰한다면 그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수많은 의례를 행하고 항상 주술의 위협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나시르마 사람들은 어느 오지에 살고 있는 어떤 ‘부족’일까. 사실 ‘나시르마 Nacirema‘는 미국인 American을 거꾸로 표기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놋니소 Notgnihsaw’는 워싱턴 Washington을, ‘라팁소 Latipso’는 병원 hospital을 거꾸로 표기한 것이다. 사실 이 글은 1950년대 미국인들의 몸에 관련된 일상생활을 서술한 것이다.

우리가 ‘나에로크 Naerok’ 부족에 대해서 글을 한번 써 보면 나에로크 사람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파하하.. 이 책의 저자가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미 ‘나에로크’ 부족에 관한 글이 있다는 것이다. 일전에 소개한 ‘발칙한 한국학‘에는 2000년에 나온 Jim Munroe의 SF 소설 Angry Young Spaceman을 소개하고 있다.

J. 스콧 버거슨 저, 주윤정/최세희 역, “발칙한 한국학”, 이끌리오, 2002

p96-97

한국의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서

먼로가 한국에서 1년간 영어를 가르친 적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한국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면, 나는 한국에 대한 암시를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옥타비아는 수중 행성으로, 주민들은 반은 인간이고 반은 다리가 여덟인 문어이다. 이야기의 배경으로 먼로는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 분명하다.

한 예로 옥타비아인들이 마시는 술의 이름은 우조스(ujos)인데, 이것은 소주를 거꾸로 발음한 것이다. 장소를 뜻하는 말은 이도(ido)로, 이는 어디를 뒤집어 발음한 것이다. 옥타비아인들은 외계인을 쿠김(koogeem)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미국을 같은 방식으로 처리한 것이다. 그리고 샘이 가장 좋아하는 옥타비아의 음식은 ‘치김'(설명할 필요도 없지요?)으로 맵게 절인 야채이다. 그리고 옥타비아에서 중요한 휴일은 석추로, 틀림없이 추석을 본딴 것이다. 먼로는 콩글리시까지 동원하는데, 샘의 동료 교사인 직(김과 비슷함) 선생은 ‘셈 셈(same same)’이란 말을 사용해 이쪽이나 저쪽이나 비겼다는 상황을 설명한다. 한국과 옥타비아도 ‘셈 셈’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럴 수도, 그럴 수도 있지.

언어적 유사성은 먼로가 옥타비아인들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그들의 사회 구성에 대해서 한 묘사에 비하면 피상적인 수준이다. 한국처럼 옥타비아는 단일 민족국가이며, 지위가 무척 중요하고 유교적 가치관이 팽배한 곳이다. 사회적 존경은 노력해서가 아니라, 나이와 직위, 성별 등에 따라 저절로 얻어진다. 옥타비아는 최근까지 매우 가난한 나라였는데, 경제가 많이 좋아져서 요즘에는 샘 같은 영어 강사를 많이 수입하고 있다. ‘은하계적’으로 ‘경쟁력’을 길러야 하니까.

옥타비아인은 지구인보다 더욱 공손하기도 하지만 한층 수선스럽기도 하다. ‘존경하는 형제’나 ‘존경하는 선생님’ 같은 말을 통해 위계 질서는 더욱 튼튼해지고, 윗사람에게는 고개 숙여 공손히 인사한다. (사실 팔이 없는 옥타비아인에게는 악수하는 것 보다는 고개를 숙이는 게 훨씬 편하다.) 게다가 옥타비아인은 샘의 동네보다 사람들이 서로 더 자주 밀치고 더 시끄러운 편이다. 그리고 그들이 우주선을 운전하는 방식은 보통의 지구인에게는 심장마비를 일으킬 정도이다. 플랑교는 한국의 시골이나 중소도시와 다름없다. 그곳은 오이로만 유명하다. (대구가 사과로 유명하고, 춘천이 닭갈비로 유명한 것 처럼 한국의 시골 도시는 모두 무언가로 유명한데, 보통은 야채들로 그렇다.) 주민들은 보통 아주 어리거나 아주 나이가 많다. 야심이 있는 사람들은 수도 아르테미아로 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플랑교에 문화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곳의 청소년들은 모두 ICY(Intergalactic Cool Youth)를 열렬히 숭배하는데, 멤버는 샤이 가이, 와일드 가이, 위트 가이, 섹시 가이, 무드 가이 등이다. 어디서 들어본 듯하지 않나?

ICY는 물론 HOT를 빗댄 것이다. 몇 년 전 먼로가 한국에 있는 동안 그들은 신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한물 간 이들. 게다가 옥타비아가 더욱 ‘은하계적’이 되어야 한다는 강조는 김영삼 정부의 구호 ‘세계화’를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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