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왜곡장

앤디 허츠펠드 저/송우일 역, “미래를 만든 Geeks“, 인사이트, 2010

p57-58

현실 왜곡장
버드잡스의 독특한 재능을 정의하다.

나는 목요일 오후부터 공식적으로 맥 프로젝트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새 매니저이자 프로젝트의 또 다른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버드 트리블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버드는 의학 박사 과정을 휴학중이어서 가끔 시애틀로 돌아가 박사 과정 신분을 유지해야 했다.

버드는 보통 점심이 지나 출근했으므로 그 다음 주 월요일 오후에 처음 만났다. 우리는 해야 할 일에 대해 전부 이야기했는데 상당히 엄청났다. 버드가 공식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일정을 보여주었는데 약 10개월 안에, 즉 1982년 1월 초에 출시해야 했다.

“버드, 이건 말도 안 돼.” 내가 말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그때까지 어떻게 다 해.”

“알아.” 버드가 낮은 목소리로 거의 속삭이듯 대답했다.

“안다고? 일정이 잘못됐으면 고쳐야 하지 않을까?”

“그게, 잡스가 그랬어. 잡스가 1982년 초에 출시해야 한다고 우겼고 반대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거든. 스타트렉에서 쓰이는 용어가 하나 있는데 이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주지. 잡스에게는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 있어.”

“그게 뭔데?”

“현실 왜곡장. 잡스가 있는 자리에서는 현실이 이리저리 변해. 잡스는 사실상 누구에게나 거의 무엇이든 납득시킬 수 있어. 잡스가 주위에 없으면 현실 왜곡장은 차츰 사라지지만 현실적인 일정으로 만들기는 어려워. 그리고 잡스와 함께 일하면서 알아야 할 몇 가지가 있지.”

“또 뭐가 있는데?”

“음, 잡스는 어떤 것이 대단하다거나 굉장하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게 그 다음날에도 같진 않아. 잡스의 입력은 저역(low-pass) 필터로 걸러 들어야 해. 시큰둥해 하다가 그 다음엔 정말 그 아이디어에 대해 재미있어 해. 잡스에게 새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 보통 시시하다고 대꾸해 놓고는 그 아이디어가 정말 마음에 들면 정확히 1주일 후에 돌아와 그 아이디어를 자신이 생각해낸 것 처럼 이야기해.”

그 다음 몇 주간 잡스가 일하는 것을 관찰하기 전까지는 버드가 분명히 과장한다고 생각했다. 현실 왜곡장은 카리스마가 있는 달변, 불굴의 의지, 눈앞의 목적에 맞게 현실마저 극복시키려는 열의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뒤섞인 것이었다. 한 마디 주장으로 설득하는 데 실패하면 잡스는 교모하게 또 다른 주장을 했다. 때로는 그가 다르게 생각했음을 인정하지 않고 갑자기 상대방의 입장을 자신의 것인 양 각색해 상대방이 평정을 잃어버리게 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상대방이 현실 왜곡장을 예리하게 알아채더라도 현실 왜곡장은 효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였다. 잡스가 떠나면 효과가 사라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맥 팀원들은 가끔씩 현실 왜곡장을 봉쇄할 기술에 대해 의견을 나눴는데 얼마후 대부분 포기하고 현실 왜곡장을 자연의 힘으로 받아들였다.

p375-376

그렇게 할 거야?
버렐이 애플을 그만두었으나 으름장을 놓지는 못하다.

아무리 결심을 굳게 했어도 스티브 잡스가 남기를 원하면 애플을 그만두기는 어려웠다. 잡스와 함께 앉아 있으면 현실 왜곡장을 경험해야 하는데, 흔히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데 효력을 발휘하곤 했다. 하루는 몇 사람이 잡스의 설득력을 극복하는 전략을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생각났어!” 버렐이 말했다. “현실 왜곡장을 무력화하고(nullify) 회사를 그만둘 완벽한 방법을 찾았어.”

버렐이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당연히 알고 싶었다.

“그냥 잡스 사무실에 들어가 바지를 내리고 잡스 책상에 오줌을 누는 거야. 잡스가 뭐라고 하겠어? 이게 통할 거라고 장담하지.” 우리는 웃으며 아무리 버렐이라도 그렇게 할 만큼 배짱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1년 반 후 마침내 버렐이 그만둘 때가 됐다. “터보 맥(Turbo Mac)” 프로젝트를 취소하기를 원한 밥 벨러빌을 비롯해 기타 매니저 몇 명과 맞붙은 뒤 몇 달이 지났을 때였다. 터보 맥은 재설계를 통해 더 빨라진 맥으로 세미커스텀 칩에 기반을 두었고 내장 하드드라이브를 갖추고 있었는데 버렐이 브라이언 하워드, 밥 베일리(Bob Bailey)와 개발 중이었다.

버렐은 밥 벨러빌과 인사 부서에 그만 두겠다고 이야기하고 나서(밥은 베렐이 그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마 안심했을지도 모른다.) 그날 오후 잡스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버렐을 잡스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잡스가 자기를 보고 히죽 웃자 놀랐다.

“그렇게 할 거야? 정말 그렇게 할 거야?” 잡스가 물었다. 오줌으로 으름장을 놓겠다는 말이 잡스 귀에 들어간 것이 분명했고 잡스는 버렐이 정말 그렇게 할 지 진심으로 알고 싶어 했다.

버렐은 잡스의 눈을 바라보았다. “해야 하나요? 해야 한다면 할 거에요.”

잡스의 표정에서 버렐은 대답을 읽었고 답을 확인한 버렐은 돌아서서 사무실을 나왔다. 그렇게 애플에서 버렐의 경력은 끝이 났다.

6 thoughts on “현실 왜곡장

  1. “잡스에게 새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 보통 시시하다고 대꾸해 놓고는 그 아이디어가 정말 마음에 들면 정확히 1주일 후에 돌아와 그 아이디어를 자신이 생각해낸 것 처럼 이야기해.”

    이 부분은 제 대학원때 지도교수와 아내의 지금 지도교수가 딱 이렇다는… 바로 이거야 했어요… -.-;;

  2. 위의 분도 쓰셨지만 “잡스에게 새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 보통 시시하다고 대꾸해 놓고는 그 아이디어가 정말 마음에 들면 정확히 1주일 후에 돌아와 그 아이디어를 자신이 생각해낸 것 처럼 이야기해.” 이거 정말 후덜덜이죠. 다른 사람의 경험담을 글로 볼 때는 재밌지만 ^^;;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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