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글로벌라이징 캐피털 : 국제 통화 체제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글로벌라이징 캐피털10점
배리 아이켄그린 지음, 강명세 옮김/미지북스

일전에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소개를 할 때, 베리 아이켄그린 형의 신간이 번역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저번달에 드디어 신간으로 번역되어 나오는게 아닌가. 그래서 급한마음에 그 책보다 먼저 출간되었던 이 책을 읽어보았다. ㅎㅎ

서평을 쓰진 않았지만 아이켄그린 형의 저서는 ‘글로벌 불균형‘으로 한 번 접해본 바가 있었다. 원제를 그대로 옮긴 ‘글로벌라이징 캐피털’은 이 ‘글로벌 불균형’과 비슷한 선상에 있는 책인데, ‘글로벌 불균형’에서 금융사 부분의 내용이 더 상세하게 나와 있다. 즉, 19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금융사를 차례로 되짚어보고, 금본위제와 브레튼우즈, 그리고 변동환율제를 거치면서 있었던 금융의 국제화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 그 궤적을 추적한다. 이 책의 의의는 저자의 서론에 잘 나와 있는데, 이를 옮겨본다.

p28

국제 통화 체제를 특징짓는 네트워크 외부성을 고려할 때 체제의 개혁은 필연적으로 집합적 시도이다. 그러나 국가들의 복수성으로 말미암아 협상의 비용이 발생한다. 각 정부는 양보를 받지 않는 한 동의하지 않으려 하는 무임승차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개혁을 모색하는 국가들은 그러한 행태를 하지 못하게 하는 정치적 힘을 가져야만 한다. 국제적인 협력 작업이 비협조적인 행위 때문에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다면 개혁 세력은 더더욱 그러한 힘을 보유해야 한다. 그러한 포괄적인 정치적ㆍ경제적 연계가 드물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는 1870년대, 1920년대 그리고 1970년대에 있었던 국제 통화 회의의 실패를 설명한다. 매번 통화 체제를 전환하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고 각각의 고유한 계기가 계속 진화하게 되었다. 단 하나의 중요한 반증은 2차 세계 대전 중과 그 후에 존재했던 서방의 연대이다. 서방의 연대는 나치와 소련의 위협에 맞서 예외적으로 정치적 단합을 발전시켰고 브레튼우즈 체제와 유럽공동체(현재는 유럽 연합)를 만들 수 있었다. 유럽연합은 경제적ㆍ정치적 통합을 향한 이례적인 진전을 이룩하고 유럽 통화 제도EMS를 그리고 현재는 유로euro를 창출했다.

이러한 내용이 함의하는 바는 국제 통화 체제의 발전은 본질적으로 역사적 과정이라는 점이다. 개혁 세력에게 가능한 선택지는 그 언제라도 이전에 존재했던 국제 통화 체제에서 독립적이지 않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제도 자체는 그보다 앞선 사건을 반영한다. 이렇게 진화하는 질서에 대한 현재의 상황 혹은 미래의 전망은 그 역사를 파악하지 않고는 이해될 수 없다.

일찌기 역사가 선생께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부단한 대화라고 했던가. 아이켄그린 형이 카 선생이랑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여하간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지만 과거 역사가 그린 궤적을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다. 금융체제도 과거의 시스템이 그린 궤적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과거를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이다.

이 서문의 내용은 일전에 읽었던 차크라보티의 ‘혁신의 느린 걸음‘이라는 책과 같은 맥락에 놓인 것 같다. 읽은지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하긴한데, 더 나은 시스템이 제시된다고 하더라도 주변과의 호환성에서 얻는 이익이 크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더 나은 시스템으로 바꿀 수 없는 시장 구조가 존재하고, 따라서 혁신적 기술이 시장에 느리게 도입된다는 내용이다. 이런 경영학적 연구 내용을 국제 금융시장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잠시 궁금증이 생긴다.

여하간 이 ‘글로벌라이징 캐피털’은 전반적으로 본인에게 약간 어려웠다. 특히 20세기 중반 유럽 금융사 부분은 대부분 모르는 내용이라서 발생한 사건들의 인과관계나 행위의 함의등을 잘 모르고 읽으니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면이 있다. 그러나 책의 후반부, 특히 97년 아시아 금융위기(우리에게는 IMF사태로 익히 알려진 그 사건)이후의 진행과정은 술술 읽혔다. 여러 국가들의 금융위기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읽어볼만할 것이다.

확실히 더 나은 수익과 이익을 쫓는 의지가 커질 수록 금융자본의 세계화는 필수적으로 뒤따르는 것 같다. 세계 경기의 파고에 대처하기 위해 국내 경제와 해외 경기를 분리하려는 시도들은 점차 경제성장을 하면서 무산되었다. 이는 국내의 사정도 마찬가지인데, 국내 경제가 다른 국가에 비해 외국의 경기변화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근본적인 이유를 어느정도 설명할 수 있는 것 같다.

단점을 들자면, 지나치게 번역투의 문장이 많아서 독해속도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문을 그대로 직역해 놓은 듯한 기이한 수동태가 많아서, 한방에 문장을 이해하기 어렵다. 역자가 영어는 무척 잘하는 것 같은데 한국어 실력은 별로인듯… 또한 저자의 주석이 뒤쪽에 몰려 있어서 보충설명을 보려면 앞뒤로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읽어야 한다. 이 부분은 좀 애석하다.

뭐 어차피 제목만 봐도 읽을 사람은 읽을테니, 역자의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저자를 띄우는 소개는 오버가 아닌가 싶다. 여하간 지난 백년간의 금융사를 되짚고, 금융 전망에 대한 관점을 얻고 싶다면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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