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영향

위키에 따르면 탈옥수 신창원의 수기 ‘신창원 907일의 고백'[1]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온다고 한다. (본인이 직접 책을 본 것은 아님)

“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 같은 놈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하고 머리 한번만 쓸어주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이 놈아, 돈 안가져 왔는데 뭐 하러 학교와. 빨리 가’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

예전에 소개한 ‘맬컴X Vs. 마틴 루터 킹'[2]이라는 책에는 비슷한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제임스 H. 콘 저/정철수 역, “맬컴 X vs. 마틴 루터 킹”, 갑인공방, 2005
p86-88

예컨대 8학년 때 영어 선생한테서, 변호사가 되고 싶은 꿈을 꺾고 목수가 되는 게 “흑인에게는 좀더 현실적인 목표”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맬컴의 자아는 자신의 포부를 이루겠다고 고집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내가 안으로 변하기 시작한 게 바로 그때였다. 나는 백인들한테서 떨어져나갔다. 수업에 들어가서도 내 이름을 불러야만 대답했다. 오스트로우스키 선생의 수업시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무척 힘들었다. 어디에서든 ‘깜둥이’란 말이 내 등을 스치고 지나가면 나는 멈춰 서서 말한 사람을 쏘아보았다. 누구든 상관없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내 행동에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34)

자신을 가르친 영어 교사와 부딪친 일은 맬컴의 삶에서 “첫 번째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로써 백인 사회에 자신을 통합시키려던 시도는 종말을 고했다.

(중략)

메이슨 중학교의 학생으로서 맬컴은 매우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다른 학생들과 교우 관계도 좋아 인기도 많았으니 통합주의의 모델이 될만했다. 그런데 자기보다 못한 백인 아이들에게는 영어 선생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면서 자신에게는 목수가 되라고 권고했으니 그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힘있고 성공한 부모의 지원을 받은 검둥이들만 모인 활기찬 공동체에 사는 중산층 흑인들에게, 백인 영어 교사의 말은 전문직에 종사하고자 하는 결심을 강하게 하는 데 기여할 뿐인 것 같았다. 인종차별 반대 투쟁을 보면서 중산층 흑인들은 통합주의자가 되거나 아니면 온건한 민족주의자가 되는 게 고작이었다. 맬컴은 나중에 이 삶의 전환점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았다. “만약 오스트로우스키 선생이 내게 변호사가 되라고 격려해 주었다면, 지금쯤 나는 아마도 어떤 도시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흑인부르주아로 살고 있을 것이다. 칵테일을 음미하면서 나 자신을 고통받는 흑인 대중의 지도자이자 공동체의 대표자라고 속이지만, 그러나 실상은 내가 ‘통합’하자고 구걸하는 대상인 위선적인 백인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부스러기들을 받는 게 나의 가장 큰 관심사였을 것이다.”35)

 


34) Malcolm X, Autobiography, 36~37쪽
35) 앞의 책, 36~38쪽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어떤 이에게는 거대한 인생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잡스 전기[3]를 보자.

월터 아이작슨 저/안진환 역, “스티브 잡스”, 민음사, 2011
p36

예상대로, 스티브 잡스는 3학년 때 두세 차례 귀가 조치되었다. 하지만 다행히 아버지는 그를 특별하게 여기기 시작한 상태였고,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여겨 줄 것을 침착하면서도 확고한 태도로 요청했다. “이봐요, 우리 아들이 잘못이 아닙니다.” 폴 잡스가 교사들에게 말했다. “학생이 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한다면 그건 선생님들 잘못이지요.”

(중략)

잡스가 4학년에 올라갈 때가 되자, 학교에서는 그와 페렌티노를 떨어뜨려 놓는 게 최선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우등반의 담임은 이모진 힐이라는 활기 넘치는 교사였다. ‘테디(Teddy)’라는 별명으로 통했던 그녀는, 잡스에 의하면 “내 인생의 성자 중 한 분”이었다. 그녀는 몇 주간 그를 지켜보았고, 그를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뇌물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따로 부르시더니 수학 문제지를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집에 갖고 가서 풀어 오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생각했지요. ‘정신이 나가셨나?’ 그때 선생님이 거대한 막대 사탕을 꺼냈어요. 지구만큼 커 보이는 사탕을 말이지요. 문제를 거의 다 맞히면 그 사탕뿐 아니라 5달러까지 얹어 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틀 만에 풀어서 드렸지요.”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더 이상 뇌물이 필요 없었다. “나는 그저 더 많이 배우고 선생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어요.”

그녀는 렌즈를 갈거나 카메라를 조립하는 취미용 키트를 선물함으로써 보상을 해 주었다. “다른 어떤 선생님보다 그 선생님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분이 아니었다면 저는 틀림없이 소년원이나 들락거리고 말았을 거에요.”

내가 그들을 돈줄로 본다면, 내 학생들도 날 장사치로 볼것이고,
내가 그들을 제자로 본다면, 내 학생들도 날 스승으로 볼것이다.[4]

 


2011.12.30
교육의 경제학 by Hubris

 


[1]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753102
[2] http://zariski.egloos.com/2411422
[3] 내 백과사전 [서평] 스티브 잡스 2011년 11월 21일
[4] 내 백과사전 교육과 장사치 2010년 7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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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선생님의 영향

  1. 선생님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명제와는 별개로, 저는 신창원이나 맬컴X같은 인물의 인생에서 저 한 사건이 정말로 그렇게까지 충격적인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입니다. 정말 저 사건이 없었더라면 신창원은 저런 짓을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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