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 마굴리스, 칼 세이건을 만나다

세포내 공생 가설[1]로도 유명하지만,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전부인으로도 유명한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의 책에 칼 세이건이랑 만나던 당시의 이야기가 있어 옮겨본다.

린 마굴리스 저/이한음 역, “공생자 행성”, 사이언스북스, 2007

p39-42

열네 살 때 시카고 대학교의 특수 조기 입학 프로그램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정말로 행운이었다. 비록 3년 6개월 뒤에 학사 학위 하나와 남편을 비롯하여 많은 것을 얻고 졸업했지만, 가장 오래도록 내게 남아있었던 것은 철저하고 세심하게 함양된 비판적 회의주의였다. 내가 시카고 대학교에서 받은 교육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그 학교의 교훈(校訓)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나 진실한 말과 허튼소리를 구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가르침 말이다.

학우이자 신예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나보다 다섯 살 연상이었다. 흑갈색 머리카락을 늘 덥수룩하게 기르고 다니던 그는 키가 크고 멋있었으며 말을 유창하게 잘했다. 당시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온갖 착상들이 넘쳐났다. 어느 날 수학 강의동인 에크하르트 홀 계단을 뛰어 올라가다가 나는 말 그대로 그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세이건은 이제 막 천문학자 생활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그는 물리학과 대학원 학생이었고, 나는 그저 조급하고 열정적이며 무지한 소녀에 불과했다.

나는 과학에는 무지했다. 그랬기에 나는 칼이라는 인물과 특히 그의 유창한 말솜씨에 푹 빠지고 말았다. 그때 벌써 그는 세련된 전문가처럼 보였다. 첫 만남 뒤로 그는 늘 나와 함께 다녔고, 광활한 시간과 공간에 관한 그의 날카로운 식견에 귀를 기울이려는 친구들도 함께 어울렸다. 천문학 동호회 회장이자 여기저기에 글을 쓰는 언론인이자 대중 연설가이기도 했던 그는 주위에 모인 무식한 바보인 우리에게 과학 탐구에 뛰어들어 열절을 쏟을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그의 과학 사랑은 전염성이 있었다.

그렇지만 사랑의 땅으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열정 가득한 행로는 처음부터 가시밭길이었고, 결말 역시 피폐했다. 아버지는 칼의 불손한 태도를 싫어했고, 어머니는 그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버리지 못했다. 세이건과 나는 남쪽에 있는 멕시코로 떠났다가 동쪽 뉴저지로 이사했다. 우리는 함께 여러 지역으로 이사를 다녔고 몇 차례 갈라서기도 했다. 심지어 나는 그와 혼인하는 것이 어리석고 자멸적인 행동인 이유를 나열하는 나의 모습을 비디오에 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열아홉살이 된 1957년 6월 6일, 우리는 마침내 멋진 결혼식을 올렸다. 우아하게 차려입은 어머니만이 최선을 다해 예식을 주관했다. 시어머니 레이철 세이건(Rachel Sagan)도 결혼식 내내 지켜보았지만, 그날 내게 이런 내용의 전보를 한 통 보내셨다. “독신 생활을 단 한 주도 못해보고 아줌마가 되었구나.” 결혼식이 있기 전 주에, 탁월한 인물인 로버트 허친슨(Robert Hutchins, 1899~1977년)이 세운 전통에 따라 전공도 선택 과목도 없는 시카고 대학교 교양학부 학위 수여식이 열렸다. 고등 교육을 혁신시킨 개혁가 허친슨은 서른 살 때부터 22년 동안 시카고 대학교에 재직한 끝에 총장이 되었다. 비록 내가 입학했을 때는 서부로 떠나고 없었지만, 내가 시카고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천재성과 진보적인 교과 과정 덕분이었다.

 


[1] 내 백과사전 엽록체의 기원 2010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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