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 : 언어로 보는 문화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10점
기 도이처 지음, 윤영삼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기 도이처의 이 책은 일전에 소개한 2010년 이코노미스트지 선정 올해의 책에서 본인이 점찍어 두었던 것인데, 정말로 번역되어 나올 줄은 몰랐다. ㅎㅎ 참으로 놀라웠지만 책의 내용은 더욱 놀라웠다.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사람이 외부 세계를 인지하는 것이 달라질까? 대중적으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과 같은 운동을 많은 사람이 하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주류 학설에서는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나 있다. 특히나 언어가 사고방식을 지배한다고 주장하는 사피어 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은 스티븐 핑커의 ‘언어본능’에서는 거의 사이비 과학 취급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인간의 인지능력에서 일정부분은 언어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물론 저자는 이미 사이비로 확정된 사피어 워프 가설을 긍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 안에서도 사피어와 워프의 이야기가 나오고, 언어학의 역사에 관해 약간의 소개가 첨부되어 있다.

이 책은 본인이 보기에 스티븐 핑커의 저서와 같이 읽어보는 것이 매우 바람직한데, 본인은 ‘언어본능‘을 읽었지만 근래에 출간된 ‘단어와 규칙‘은 아직 보지 않았다. 참고로 ‘언어본능’에서 주장하는 바는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법을 아는 것은 생후 학습에 의한 행동이 아니라 유전자에 의해 발현되는 행동이듯이, 인간의 언어구사 능력도 생후 학습에 의한 행동이 아니라 유전자에 의해 발현되는 행동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언어가 문화적 영향을 받기 보다는 생물학적 영향을 더 받는다는 주장이므로 기 도이처의 저서와는 어느정도 대척점에 위치한다. 핑커 형의 책은 ‘빈 서판‘을 먼저 접했는데, 이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걸 왜이리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ㅎ

기 도이처는 어느정도 현재 주류 학설을 인정하지만, 인간의 인지능력이 100% 생물학적 요소에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은 언어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소극적 주장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확실히 세상의 무엇이든 100%는 별로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주장을 귀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기 도이처도 스티븐 핑커의 저서의 내용을 일부 언급한다.

기 도이처라는 이 사람이 글솜씨가 있는지, 책의 내용은 꽤 재미있다.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재미있는 사례를 가져와 접합하는데, 글을 도입하는 솜씨와 지식이 무척 뛰어난 듯 하다. ㅎㅎ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색에 관한 어휘, 언어에서 쓰이는 상대좌표와 절대좌표, 언어의 젠더. 하나하나 매우 놀라운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특히 상대좌표와 절대좌표에 관해서는 믿기 힘든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캥거루’라는 단어는 구구이미티르 어에서 가장 유명한 단어인데, 일전에 한 번 그 어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 언어는 특이하게도 상대좌표를 쓰지 않는데, ‘오른쪽’, ‘왼쪽’과 같은 단어가 없다. 모든 방향은 동서남북의 절대좌표로만 표현한다. ‘서쪽 발 아래’, ‘거기 담배 좀 동쪽으로 전해줄래’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어떤 사건을 묘사할 때, 말하는 사람이 보는 방향에 따라 제스쳐가 달라진다. 오직 절대좌표만 쓰는 이 언어의 화자는 놀랍게도 절대방향감각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런 흥미로운 사례를 보면 볼수록 사멸해가는 소수 언어가 안타깝다. 일전에 소개한 바 있지만, 알 자지라에서 소개하는 사멸해가는 언어 프로그램은 그런 의미에서 관심가질만한 방송이 아닌가 한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는데, 일전에 소개한 다니엘 에버렛의 책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에서는 피다한 어는 종속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책 p175에서는 최근 연구에 따르면 피다한 어에서도 종속절이 존재한다는 보고가 있다고 한다. 다니엘 씨가 더 많은 연구를 한 듯 하다. ㅎㅎ 다니엘 에버렛의 이 책도 기가 막히게 흥미로운 책이니 언어학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여하간 본인이 보기에 이 책은 언어와 인지에 관한 쟁점을 잘 파악한 상태에서 읽어야 놀라움이 가중될 것 같다. 저자의 서문을 잘 읽어보시길 권한다. 매우 훌륭한 책이다. 대충 검색해보니 다른 사람들의 일부 서평에서는 저자의 논점을 이해하지 못한 듯 한데, 참고하시길 바란다.

 


2014.1.13
언어가 우리의 사고방식에 끼치는 영향 in NewsPeppermint

 


2015.2.6
슬로우 뉴스 (영어)교사를 위한 인지언어학 8: 언어와 사고의 관계 2015-02-06

 


2015.3.15
사람은 원래 파란색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in NewsPeppermint
언어가 없다고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나? 현대적 사피어-워프 가설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어두운 포도주색’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 책의 제목과 관련이 있다.

 


2015.4.28
동아사이언스 한국말 일취월장 사랑이, 생각도 한국식으로? 2015년 04월 27일 18:00

 


2015.9.22
nautilus Why Red Means Red in Almost Every Language JULY 30, 2015
Linguistic relativity and the color naming debate in wikipedia

5 thoughts on “[서평]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 : 언어로 보는 문화

  1. 핑백: 알아가는 즐거움

  2. 안녕하세요.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를 번역한 번역가 윤영삼입니다. 좋은 서평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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