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류의 유라시아 이동경로 추적

미토콘드리아 DNA는 어머니에서 딸로 여자를 통해서만 전달되고, Y 염색체는 아버지에게서 아들로만 전달된다. 이들의 비교로 이 정도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니 놀랍도다!

스펜서 웰스 저/황수연 역, “최초의 남자“, 사이언스 북스, 2007

p212-215

이 스텝 사냥꾼들이 유라시아형 표지를 점점 더 대륙 안쪽 깊숙한 곳으로 전파하던 도중, 이들은 인류가 이제까지 경험한 것 중에서 가장 험난한 장애물과 맞닥뜨리게 된다. 바로 중앙아시아 고원 지대의 남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산맥들인데, 동서로는 힌두쿠시 산맥이 가로놓여 있고 히말라야가 북서쪽에서 시작되어 남동쪽으로 달리고 있으며, 남서쪽에서 북서쪽을 가로질러 텐산(天山)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세 개의 산맥은 그들이 만나는 지점, 즉 현재 타지키스탄 자리에 위치한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수레바퀴의 살처럼 뻗어 나간다.

산맥의 장관을 처음 목격한 선사 시대 인류는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졌을 것이 틀림없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도중 이란 서쪽에 있는 자그로스 산맥을 지나오기는 했지만, 이 경우는 곳곳에 계곡과 나지막한 구릉들이 자리잡고 있어 인류가 충분히 넘어올 수 있었다. 심지어 후기 구석기 인류는 여름철이면 산 위로 올라가고 겨울이면 아래쪽 평야로 내려오는 초식 동물 떼를 쫓으며 자그로스 산맥을 자신들의 사냥무대로 활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앙아시아의 산들은 자그로스와는 차원이 다른 장애물이었다. 이곳에는 해발 5,000미터에 달하는 산봉우리들이 도처에 치솟아 있고, 텐산과 히말라야 쪽으로 가면 무려 7,000미터를 웃도는 산들도 부지기수다. 또한 이들을 연결하는 높은 능선도 만만치 않은 장벽이었다. 게다가 이 당시 지구는 마지막 빙하기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여서 지금보다 훨씬 기온이 낮았다. 결국 이 산맥 앞에서 인류의 이동 경로는 두 갈래로 나뉠 수밖에 없었는데, 한 무리는 힌두쿠시의 북쪽으로 돌아가고 다른 그룹은 인도와 파키스탄 쪽으로 내려가서 산맥 지대의 남쪽 경계를 둘러 간 것으로 보인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는가 하면, 바로 인간의 Y 염색체를 통해서다.

북쪽 경로를 통해서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로 향했던 집단에서도 Y 염색체 DNA에 새로운 돌연변이가 발생하지만, 여기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한다. 한편 남쪽 경로를 택한 집단에서는 M20이라는 새로운 표지형이 발생했는데, 이 변이형은 인도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중동 사람들의 1~2퍼센트만이 이 변이형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인도에서는 그 빈도가 50퍼센트를 웃도는 수준이다. 이로부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남쪽으로 이동하던 인류의 조상이 인도에 정착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M20이라는 인도형 표지가 형성된 것이다. 이 변이형을 보유한 고인류를 나중에 북쪽에서 이주해 내려온 또 다른 인류 집단과 구분해 둘 필요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3만 년 전 이들이 인도에 도달했을 때는 그보다 앞서 해안을 따라 들어온 인류가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두 집단 사이의 성적 교류는 상호 교환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4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지역 주민들의 mtDNA는 해안을 따라 이주해 온 집단의 표징인 M 타입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반면 이들의 Y 염색체는 나중에 북쪽에서 들어온 또 다른 이주자들의 변이형을 주로 나타내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아프리카 대륙의 소년 족장이 이끌던 부족이 주변이 다른 부족들을 점령한 예를 돌이켜 보면 이런 상황이 벌어진 사연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즉 강한 이주자 집단이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의 여자를 빼앗아 아내를 삼은 반면 그 남자들은 죽이거나 멀리 쫓아버리거나 아니면 후손을 남길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시나리오이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해안 거주자들의 mtDNA 표지형인 M 타입은 인도 전역에 퍼진 반면 남자들이 보유하고 있었던 Y 염색체 변이형은 줄어들었을 텐데, 바로 이것이 현재 이 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해안 거주자들의 Y 염색체 표지형은 오늘날 인도사람의 5 퍼센트에도 미치치 못하며, 내륙으로 들어갈 수록 그 빈도는 더욱 감소한다. 이는 해안지역에 살았던 고인류가 인도의 다른 지역에 별다른 영향을 행사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적어도 남성들의 경우에는 말이다. 이처럼 Y 염색체와 mtDNA의 변이형이 각기 상반된 분포를 나타내는 현상을 통해서 선사 시대 인도인들의 문화적 특징을 어렴풋이 심작해 볼 수 있는데, 그 자세한 이야기는 8장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오오 3만 년 전의 역사를 이런 식으로 복원할 수 있다니 신기하고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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