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칼 솜씨

영화에서 조폭이 배를 찌르는 장면이 많은데, 실제로는 어떨까?

유영규 저, “과학수사로 보는 범죄의 흔적“, 알마, 2013

p65-68

조폭들의 ‘허벅지 테러’

하지만 이상한 점은 조직폭력배들의 칼부림이 있을 때 유독 허벅지를 노려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허벅지는 피를 보면서도 최악의 결과로는 치닫지 않아 상대를 겁주기에 알맞다는 판단에서일까. 법의학자들은 그 반대라고 말한다. 허벅지 테러는 칼을 꽤 다룰 줄 아는 전문가들의 지능적인 살인 수법이라는 것이다. 아래 사례들을 보면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 있다.

사건 1

2003년 7월 17일 오전 6시 40분쯤, 서울 논현동 대로변 포장마차. A(33세)씨 등 세명이 흉기로 B씨의 허벅지를 찔렀다. 채권ㆍ채무 문제로 서로 심하게 다투다 A씨 일행이 미리 준비한 흉기로 B씨의 허벅지를 여러 차례 찔렀고, B씨는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사건 2

1992년 4월 12일 오후 11시, 전주 완산구의 한 당구장. 폭력 조직 W파 행동대원 김모(24세) 씨가 경쟁 조식 N파 소속 두 명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그 자리에서 숨졌다. 범인들은 2층 당구장으로 올라가는 김씨의 뒤를 노렸다. 목격자는 경찰에서 20대 청년 두 명이 당구장 계단에서 흉기로 김씨의 양쪽 허벅지를 10여 차례 찌른 뒤 길에 대기시켜둔 승용차를 타고 달아났다고 진술했다.

두 사건 모두 피해자가 과다출혈로 사망했고, 범인들이 노린 것은 허벅지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조직폭력배가 낀 테러사건일 수록 피해자의 자상이 허벅지 부위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면서 “조폭들이 허벅지 부위를 공격하는 이유는 대퇴부의 동맥이나 정맥을 끊어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해를 가할 수 있는 반면, 나중에 자신은 재판정에서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변명할 여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살해를 하더라도 살의는 감추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검찰은 최근 들어 조직폭력배 등이 관련된 이 같은 범행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의학적으로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전체 혈액 중 20~30퍼센트를 쏟으면 심한 쇼크상태에 빠진다. 40퍼센트 이상 피를 쏟으면 2~3시간을 버티기가 힘들다. 물론 그 이상이 되면 사망에 이른다. 하지만 그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실제 많은 피가 빠져나가 사망하는 ‘실혈사’와 출혈을 하는 동안 급하게 혈압이 떨어져 사망하는 ‘실혈성 쇼크사’다. 피를 흘린 채 오랜 시간 방치될 경우에는 실혈사로, 대동맥 등이 절단돼 한꺼번에 급격한 피가 빠져나갈 때는 실혈성 쇼크사로 사망한다.

전문가의 칼 솜씨는 다르다?

허벅지는 살이 많다는 이유로 갖은 수난을 겪어왔다. 역사속의 태형도, 학교의 체벌도 주로 허벅지나 엉덩이에 집중됐다. 하지만 ‘매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많이 맞은면 신체 어느 부위를 막론하고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조선시대 등에서 곤장을 맞고 장독으로 죽는 게 이런 경우다. 현대의학에서는 외상성 효크Traumatic Shock라고 부르는데, 맞은 부위에 피가 집중적으로 몰려 혈액 순환량이 떨어져 사망하는 것이다. 반복해서 매를 맞으면 연조직 사이로 상당한 출혈이 일어난다. 비록 몸 바깥으로 피가 터져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혈관을 돌아다녀야 하는 피가 몸 안에서 제 역할을 못하게 되는 식이다. 가끔 뉴스를 보면 종교집단 등에서 병을 고쳐주겠다며 몸을 때리는 안수기도를 하다가 사람이 죽는 일이 발생하는데 비슷한 경우다. 의학계에서는 몸 전체 면적의 30퍼센트 정도에 멍이 들었을 때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상처가 깊고 예리한 것을 보니 정확히 급소를 노렸네요. 전문가의 솜씨입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부검의가 시신에게 남은 칼자국을 보고 형사에게 흔히 이렇게 툭 던진다. 과연 전문가의 칼솜씨라는 것이 존재할까. 부검의들은 이른바 ‘전문 칼잡이’가 낸 자상은 한 해 수백 구의 시신을 부검하는 의사들도 실제로 보기 어렵다고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영화에서처럼 사람을 죽이는 일이 직업인 사람이 현실에서는 흔치 않은 만큼, 일반적으로는 살인자라도 심리적으로 동요하는 주저흔hesitation mark이 남기 마련”이라고 했다. 현실이 영화같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2 thoughts on “전문가의 칼 솜씨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