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푸아뉴기니의 언어 다양성

수잔 로메인, 대니얼 네틀 저/김정화 역,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이제이북스, 2003

p142-150

파푸아뉴기니는 국토의 80퍼센트 이상이 숲으로 덮여 있으며 지구상에 남아 있는 4대 자연 열대 우림 기운데 한 곳이다. 이 곳에는 2만 2천여 종에 이르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풍부한 식물군이 존재하는데, 그 중 90퍼센트는 지구상의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밀림에는 2백여 종의 포유동물, 천 5백 종의 나무들, 780종의 새들이 사는데, 파푸아뉴기니의 상징인 극락조도 전 세계 개체수의 90퍼센 트가 이곳에 서식한다. 거대한 해수 악어를 포함하여 252종의 파충류와 양서류도 서식하고 있다. 포트모르즈비 남쪽 해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다채로운 산호초가 발견된다.

프랑스만한 크기에 산등성이 사이나 언덕에서 살아가는 파푸아뉴기니의 4백만 주민에게 삼렴지원은 살아기는 데 없어서는 안될 지원이다. 최근 한 조사에서 추산한 바에 따르면, 이들 주민들은 860종에 달하는 엄청나게 다양한 언어들을 사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언어 대비 인구의 전반적인 비율이 1대 5천밖에 안 되는 셈이다. 이 비율을 미국에 적용한다면,미국에는 5만종의 언어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은 나라에서조차 각 언어별 인구 분포는 고르지 못하다. 10위 안에 드는 대규모 토착어는 내륙 고지대 주민들의 언어로 언어당 사용자 수가 3만에서 10만 명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이 인구 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80퍼센트 정도의 언어가 5천 명 미만의 사용자틀을 가진 것으로 추산되며, 언어의 3분의 1 정도는 사용자 수가 5백 명이 채 못된다. 이와 같은 언어의 불균등한 분포는 최근에 소집단들의 인구가 절멸되면서 나타난 현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극히 소규모의 특정 언어 집단이 상당 기간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파푸아뉴기니는 언어의 다양성이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완벽한 실험실이다.

뉴기니 섬에 인간이 거주한 것은 약 4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역사의 기록은 최근에야 이루어졌으며, 심지어 어떤 지역들은 문자 기록을 남긴지 불과 수십 년밖에 되지 않는다. 뉴기니 섬은 세 계의 주요 지역 중 유럽 열강에 의해 마지막으로 식민화된 곳으로서, 거의 모든지역이 외부세계와 접촉한지 한 세기도 채 되지 않는다.

뉴기니는 원래 여러 차례에 걸쳐 옮겨 온 다양한 이주민들이 살던 곳으로, 그들의 과거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언어학자들은 그들의 언어를 대체로 오스트로네시아어비-오스트로네시아어 (파푸아어)의 두 개의 어군으로 분류한다. 오스트로네시아어는 하나의 분명한 어족을 형성하고 있지만비-오스트로네시아어들 사이의 관계는 보다 불분명하다. 비-오스트로네시아어라는 용어는 20여 종의 서로 다른 어족들을 통칭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림 4.2는 언어학자 윌리엄 폴리가 규명한 오스트로네시아어와 26종의 비-오스트로네시아어의 분포도이다. 대부분의 언어학자들은 오스트로네시아어가 대부분 해안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그들이 비-오스트로네시아어 사용자들보다 뒤에 섬에 정착한 것으로 본다.
New Guinea language distribution
유형학적으로도 뉴기니 언어들은 디양한 형태들, 예를 들어 SVO, SOV, VSO, VOS 그리고 OSV의 어순을 모두 보여 준다. 사실상 뉴기니어에서 나타나지 않은 어순은 세계적으로 거의 찾아볼 수 없이 희귀한 OVS 어순뿐이다. 또한 명사 분류사 체계도 나타나고 있다. 비-오스트로네시아어의 하나인 아부어는 분류사가 19종류나 된다. 이 밖에도 흥미롭고 특이한 언어적 특징들이 많이 나타난다.

뉴기니 주민들은 주로 자급 경제를 영위하는 정착민들이다. 주민들의 생산 활동은 극히 수직적 생태계를 이루는 뉴기니 섬의 어느 지대에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고지대는 서리가 많은 고산 기후 지역 인데 이곳에서는 지난 수백 년 간 고구마를 주로 재배하는 집약적인 농업이 발달했다. 이런 고도의 생산체계는 지역적인 인구증가를 가져와 앞서 본 바와 같이 대규모의 조밀한 집단에서 많은 사용자 수를 가진 언어가 니타날 수 있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고지대의 주민들은 저지대로 퍼져 나가지 못했다. 고도가 낮은 저지대에서는 고구마를 키우기가 힘들고, 비교적 서늘한 고지대에는 없는 말라리아 풍토 병으로 인해 인구증가와 집단거주에 강력한 제한을 받게 된다.

해안의 저지대와 고지대의 주변 지역으로 알려진 중간 지대는 강우림과 늪지, 초원들이 부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 지역은 인구가 적고 밀도가 낮으며, 지역 여건에 따라서 혼합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하거나 사고야자를 채취하며 산다. 정말 놀랍도록 다양한 언어들이 발견되는 곳은 이런 지역들이다. 사회 조직의 기본단위는 촌락이나 그보다 작은 마을로 이루어진 지연 집단이며, 토지를 공동으로 점유하고 경작한다. 지연 집단의 인구는 50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데, 대부분의 마을이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 몇몇 지연 집단이 하나의 언어를 함께 공유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그 언어의 사용자 수는 기껏해야 수천 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러한 집단들은 비록 규모가 작을지라도 경제적 생산성이 높다. 뉴기니는 대부분의 지역이 사계절 고온 다습하기 때문에 일 년 내내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매년 다양한 작물을 키우는 밭에 파종을 하면, 몇 달 뒤부터는 매일 소량의 수확을 얻을 수 있다. 어느 밭에서 몇 해 동안 수확을 하면서 다른 밭을 개간하고 거기에 또 씨를 뿌리고 수확물을 거둔다. 그래서 마을의 자급자족은 아주 잘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고지대 주변 지역에 위치한 메어링은 주민 수가 2백 명밖에 안되지만 원예농업으로 식량의 99퍼센트를 조달하기 때문에 따로 외부에서 식량을 수입할 필요가 없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쿠보와 같은 저지대 미을에서는 바나나 농사가 아주 안정적인 체제를 이루고 았어서 한 가구 내에서도 자급이 가능할 정도이다.

“평등한” 이중 언어 국가

이제 저지대와 고지대의 주변 지역에 언어가 왜 그렇게 많이 생겨났는지를 생각해 보자.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은 우리가 방금 기술한 생태학적인 배경이다. 생태계 자체에서 지속적인 생산이 이루어지므로 아주 작은 마을도 자급자족을 하면서 살 수 있고, 더욱이 말라리아나 다른 질병들, 휴경지의 필요성 등이 인구를 분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런 점들이 분명 사람들을 작은 집단으로 흩어져 살게 하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뉴기니의 언어적 다양성은 산악지형과 자급자족이 가능한 경제 체제 아래서 주민들이 서로 물리적으로 격리되었기 때문에 생성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주식은 자급할 수 있었지만 다른 물품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하고 활발한 교류를 해야만 했다. 해안 지방에서 조개껍질이 올라 가고, 내륙에서는 새 깃털이 내려 보내졌다. 석기, 도기, 소금 등이 장거리 공급망을 통해서 원산지에서 전국으로 공급되었다.

이런 유형의 거래는 종종 축제나 다른 예식과 함께 이루어지면서 언어 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대량으로 고급 물품들이 교환되었다. 이런 거래들은 전쟁에 대비하여 종종 연합 세력을 형성히는 지연 집단 간의 동맹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파푸아뉴기니에서는 특별히 파괴적이랄 것까지는 없어도 고질적으로 전쟁이 벌어졌는데, 가장 큰 동맹을 형성하는 편이 제일 우위에 설 수 있었다.

결혼은 물품뿐만 아니라 사람도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게 만들었다. 작은 사회들은 어디나 그렇듯이 뉴기니 부족들도 동족 내에서 배우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사회 체계가 매우 유동적이어서, 전쟁에서 패한 부족들은 동맹 부족이나 이웃 부족으로 흩어져서 문화적으로 합류해 들어갔다. 반대로, 부족들이 커져서 통제가 어려워지거나 질병, 정치적 상황, 자원의 고갈로 인해 여 러 부족으로 분할되기도 했다.

이처럼 지역 집단들은 끊임없이 상호 교류를 해 왔다. 이런 상호 관련성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러 개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자기 부족의 언어뿐 아니라 이웃 부족의 언어 한두가지나 주변 계곡 또는 해안지역 에서 널리 통용되는 언어 하나쯤은 구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경우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고지대처럼 언어 집단의 규모가 크면 그 경계 지역에 사는 사람들만 여러 언어를 구사했다. 소규모 집단에서는 모든 주민이 다른 부족과의 경계에 사는 상황인 만큼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돈 컬릭이 조사한 저지대의 가푼 마을에 거주히는 40세 이상 되는 남자들은 자기 부족의 언어와 혼합 공통어 그 밖에 서너 가지 다른 부족의 언어 등 평균 다섯 개의 언어를 알고 있었다. 언어학자 빌 서스턴은 또 다른 지방인 뉴브리튼 섬에서 마을 남자들이 마루용 목재를 구하러 떠나간 사이에 여섯 살짜리 아이와 함께 마을에 남겨졌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 소년은 근처에서 채집한 식물들을 가져와서는 네 가지 다른 언어로 각 식물의 이름을 이야기해 주었던 것이다.

외국어는 일상적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도 관련되는 것이어서, 유력 인시들은 웅변이나 연설을 할 때 외국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소년들은 후일 중재자나 웅변가가 될 기술을 습득하 기 위해 얼마 동안 이웃 부족에 보내져 그 부족의 말을 배웠다. 파푸아뉴기니에서 전통적으로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 다른 언어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고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언어의 다양성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격리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며, 새로 길이 나고 교역로가 생기면 없어지게 마련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여러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사실상 사람들이 원하기만 했다면 광범위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언어를 손쉽게 택해서 사용할 수도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도래하기 전까지 언어의 다양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광범위한 교류를 통해 많은 언어들이 서로의 어휘와 구조를 차용하기는 했지만 각 언어들의 차이점들은 계속 존속됐을 뿐 아니라 강조되기까지 했다. 길리언 샌코프는 부족간의 접촉으로 언어가 “균일해진 것이 아니라, 차이점에 대한 의식이 고조되고 자부심이 높아지게” 됐다고 했다. 사람들이 서로 넘나들고 많은 마을의 영역이 중복되는 등 경계가 분명하지는 않았다. 그런 면에서 경계선들은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이 빚어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테렌스 헤이스가 파푸아뉴기니에 관한 최근의 논문에서 지적하듯, “경계선을 만들고, 유지하고, 무시하는 것이 ‘자연’이 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그렇게 되는 것인지 알 필요가 있다.”

타 언어와 끊임없이 교류하면서도 규모가 작은 언어 집단이 장기간 존속 가능하다. 파푸아뉴기니의 언어학적 환경이 무척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