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야르딜드어의 명사 시제

니컬러스 에번스 저/김기혁, 호정은 역,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글항아리, 2012

p23-24

앞으로 이 책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카야르딜드어는 ‘인간 언어에서 가능한 것은 이런 것이다’라는 갖가지 신조에 도전장을 던진다. 예를 들어 심리언어학자 핑커Steven Pinker와 블룸Paul Bloom은 언어 진화에 관한 저명한 논문에서 “명사에 결합하는 접사로 시제(문법적 시간)를 표현하는 언어는 없다”고 주장했다.3 가능한 인간 언어란 이런 것이라는 선험적 제약이 언어를 배워가는 아이에게 근본적인 지원 역할을 한다고 보는 촘스키Noam Chomsky의 보편문법 이론도 이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아이가 부모의 말 속에 내재하는 문법을 추론하는 데 필요한 가설의 수를 이 선험적 제약이 줄여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카야르딜드어는 이 불가능성을 태연자약하게 무시해버린다. 카야르딜드어는 동사뿐만 아니라 명사에도 시제를 표시한다. 예컨대 카야르딜드어로 ‘그가 바다거북을 보았다’라는 문장은 niya kurrijarra bangana인데, 과거시제를 동사인 kurrij(보다)에 -arra로 표시할 뿐만 아니라, 목적어 명사 banga(바다거북)에도 -na로 표시한다. ‘그가 바다거북을 볼 것이다’라는 미래 표현 문장 niya kurriju bangawu에서도 미래 시제가 동사와 명사에 각각 -u와 -wu로 표시된다(a, i, u는 스페인어나 이탈리아어의 해당 음가로, rr는 전동음으로 발음하며, ng은 singer, j는 jump에서와 같이 발음한다).4

    niya kurrij-arra banga-na 그가 바다거북을 보았다
    niya kurrij-u banga-wu 그가 바다거북을 볼 것이다

카야르딜드어를 보면, 세계 언어의 다양성이 정확히 어느 정도 규모인지 무시한 채 제한된 표본에 기초하여 언어의 ‘보편성’을 논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5 객관적으로 볼 때 카야르딜드어 체계는 그리 기이한 것이 아니다. 시제란 사건 전체, 즉 동사에 의해 표현되는 행위뿐만 아니라 의미적 참여자의 시간적 위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20세기 들어 논리학자들에 의해 발전된 시제 논리는 명제 전체를 시제 연산자에 연결한다. 카야르딜드어처럼 시제 표지가 퍼져 있는 방식은 시제의 ‘명제적 범위’를 보여주는 것이다.

카야르딜드어를 배운다는 것은 다른 언어에는 없을 것 같은 문법을 터득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카야르딜드어를 배우려면 세계에서도 아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해야만 한다. “이 책의 동쪽 페이지”를 “당신의 무릎에서 북쪽”으로 약간 움직여보라. 이 지시를 따를 수 있으려면 조금은 낯선 방식으로 사고해야 한다. 그러나 카야르딜드어 화자라면, 자신이 말하는 문장 대부분에서 이런 식으로 나침반 방향을 언급할 것이고, 이 지시에 대해서도 즉시 그리고 정확히 응할 것이다.

 


3_ Pinker, S. & P. Bloom. 1990 Natural Language and Natural Selection.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 13:707-726 (p715)
4_ 좀더 복잡한 문장을 예로 들자면, 다른 명사들 (기본적으로 주어를 제외한 모든 명사)도 시제 표시를 가진다. ‘그는 형의 창으로 바다거북을 찔렀다’는 niya raajarra bangana thabujukarrangunina wumburungunina이다. 여기서 thabujukarra는 ‘형의’를, wumburung은 ‘창’을, karra는 ‘속하다’를, nguni는 ‘-로, -를 사용하여’를 뜻한다. 보는 바와 같이 ‘바다거북’ ‘형의’ ‘창’은 모두 과거 시제 접미사 -na가 붇는다. 도구 접미사 -nguni도 ‘형의 창’이라는 명사구 두 단어에 각각 붙는다. 이 일치성도 카야르딜드어의 특이점 중 하나다. 이런 식으로 명사 하나에 격 접미사 네 개가 연달아 붙을 수 있는데, 이런 수준의 복잡성은 어떤 언어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일치성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더 자세히 논의하지 않을 것이다. (참고문헌 생략)
5_ 실제로는 매우 많은 언어에서 명사에 시제를 표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포괄적인 논의는 Nordlinger, R. & Sadler, L. 2004. Nominal Tense in Crosslinguistic Perspective. Language, 80, 776-806 참조

핑커 선생이 저런 헛소리를 한 적도 있었나. ㅋㅋㅋㅋ 언어의 절대 방향 지시에 대해서는 일전에 소개한 기 도이처의 저서를 참조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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