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사라지는 언어에 대한 가슴 아픈 탐사 보고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10점
니컬러스 에번스 지음, 김기혁.호정은 옮김/글항아리

이 책은 저자 Nicholas Evans가 현장 언어학자(field linguist)로서 사멸 언어를 조사하는 것이 왜 가치있고, 사멸 언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고, 이미 사멸된 언어의 문자해독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언어 상대성 논쟁은 현황 등등 현장 언어학을 두루 소개하는 무척 훌륭한 책이다. 고고학과 문화인류학과의 접목까지 걸치는 현장 언어학에 대한 저자의 상세한 설명이 들어있어, 이쪽에 관심이 있다면 무척 볼만할 것이다.

원제는 내용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Dying Words: Endangered Languages and What They Have to Tell Us’인데, 언어학에 관한 책이라고는 전혀 짐직할 수 없는 역서의 제목이라 제목에 대해 읽는 내내 불평하려 했건만, 책의 맨 마지막 문단을 읽으니 이런 제목을 쓴 이유가 이제 이해 된다.
p447-448

이 모든 질문, 그리고 우리가 아직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들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에야크어에, 미가마어에, 카야르딜드어에, 쿠순다어에, 혹은 전세계 6000개 언어 중 어느 언어에 있을 것이다. 한 언어가 쇠퇴함에 따라 화자는 몇몇 사람으로 줄어들다가 결국에는 단 한 명만 남게 된다. 이런 점에서 달라본어 화자 엘리스 뵘이 한 말”kardû ngahmolkkûndoniyan(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죽을지도 몰라)”(제3장 참조)은 깊은 공명을 남긴다. ‘아무도 모르는’ 그것이 그 언어에 담긴 방대한 세계 전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3장에서 접두사 molkkûnh-은 정보의 부재로 인해 영향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명시하지 않는다는 점도 언급했는데, 우리의 상황에 딱 적절한 표현이다. 자기 선조들이 하던 것처럼 말하고 싶어하는 후세들 뿐만 아니라, 궁금한 것 많고 호기심 강한 온 세계 사람들도 앨리스 뵘의 죽음이 가져온 상실감을 느끼리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역사상 언어, 그리고 그 언어가 담고 있는 지식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간 적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만큼 사라져가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은 적도, 아직 버티고 있는 언어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감사해한 적도, 이를 기록화하는 뛰어난 기술을 가진 적도 없었다. 아직 생존해 있는 카키 마랄라, 로프티 바르다얄 나제메렉 같은 이들이 펫 가보리와 찰리 와르다가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 지식을 상당 규모로 이끌어내는 것이 전세계 수많은 분야의 학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내부인과 외부인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가 맞닥뜨린 이 작업이 얼마나 심오하고 매혹적이며 긴급한 일인지를 이 책이 제대로 보여주었기를 바란다.

크~~ 사멸 언어의 애잔함을 잘 보여주는 문구인 것 같다. 나도 당장 현장 언어학자로 뛰고 싶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ㅎㅎ

일전에 강한 선천론자로 분류되는 핑커 선생의 대작 ‘빈 서판‘을 읽어본 적이 있어서 핑커 선생의 견해만 알고 있었는데, 언어학에 대한 전반적인 독서를 하면서 언어의 상대성 논쟁도 알게되고 핑커 반대편의 견해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일전에 소개한 기 도이쳐 선생의 저서를 참고해도 좋을 것이다.

사멸 언어에 대한 문제점과 관심을 환기시키는 책은 일전에 소개한 책인 ‘언어의 죽음‘이나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에서 이미 접해봤지만, 이 책은 단순히 사멸 언어의 현황 뿐만 아니라 현장 언어학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정보와 인류학 및 고고학에 접목되는 포괄적 정보를 제공함으로서, 사멸 언어의 보존과 환기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강한 설득력을 더해준다는 점에서 훨씬 뛰어난 책이라 생각한다.

몇몇 특징적인 부분을 짚고 넘어갈까 한다.

p147에 달라본어에서 접두사 molkkûnh- 의 의미(결정적 인물이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어떤 사건이나 상태가 일어남)를 알게 될 때까지 시행착오를 하는 과정이 나오는데, 복잡한 사건을 한 단어나 한 접두사로 표현하는 수많은 언어의 기묘한 사례가 얼마나 많을지 생각만해도 경이롭다. 이 접두사가 바로 이 책의 제목을 만들었다.

p346에 한국어 ‘끼다’와 영어 ‘put on’ 또는 ‘put in’의 범주적 차이를 이용하여 한국어 화자 아기와 영어 화자 아기의 심리실험하는 내용이 나온다. 언어에 따른 범주적 포용성이 차이난다는 점이 무척 인상깊으니 읽어보시라. 언어가 인간의 인지 범위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언어 상대성을 지지 하는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전에 소개한 데이비드 크리스털의 저서에 각주로 짧게 다민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너무 설명이 짧아서 상당히 아쉬웠다. 그런데 이 책의 p392에 다민어에 대한 좀 더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흥미가 더욱 생기는 언어이다.

그 밖에 인상적인 부분은 블로그에 일부 발췌를 했으니 독서여부를 결정하는데 참고하기 바란다.
카야르딜드어의 명사 시제
고대 마야어 해독 과정
현대 언어학의 문제점

어쨌든 본인의 결론으로는 무척 훌륭한 책이다. 고고학이나 인류학에 관심이 있어도 볼만할 것 같다. 꼭 읽어보시라.

드디어 이것도 완독했으니 인제 드디어 피케티의 저 유명한 책을 읽게 되겠구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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