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공허한 수학

토마 피케티 저/장경덕 역, “21세기 자본”, 글항아리, 2014

p45-46

박사학위 과정을 끝낸 직후 보스턴 근처의 한 대학에 채용되었던 스물두 살 무렵 내가 아메리칸드림을 경험했다는 것을 덧붙여야겠다. 이 경험은 여러모로 결정적인 것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 미국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나의 연구가 그토록 빨리 인정을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미국은 자신들이 원할 경우 어떻게 이민자를 끌어들여야 할지를 아는 나라였다! 그러나 또한 내가 곧 프랑스와 유럽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스물다섯 살에 그렇게 했다. 그때부터 나는 몇 차례 짧은 여행을 한 것 외에는 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 선택을 한 한가지 중요한 이유는 이 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나는 미국 경제학자들의 연구 방법에 전적으로 확신을 갖지 못했다. 확실히 그들은 모두 대단히 총명하고 나에게는 아직도 그때 사귄 친구가 많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세계 경제 문제들에 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내 논문은 몇 가지 비교적 추상적인 수학적 정리들로 구성된 것이었다. 그러나 학계는 이 연구를 좋아했다. 그곳에서는 쿠즈네츠 이후 불평등의 동학에 관한 역사적 데이터를 모으는 의미 있는 노력이 전혀 없었으며, 그런데도 학계는 어떤 사실들이 설명되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순전히 이론적인 결과들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는 것을 나는 금세 깨달았다. 그들은 나에게도 똑같은 일을 기대하고 있었다. 프랑스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부족한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했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경제학 분야는 아직도 역사적 연구 및 다른 사회과학과의 협력을 등한시하면서 수학에 대한, 그리고 순전히 이론적이고 흔히 이념적인 고찰에 대한 유치한 열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너무나 자주 자기들만 관심을 갖는 사소한 수학적 문제들에 매달리고 있다. 이처럼 수학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던지는 훨씬 더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내놓을 필요가 없이 과학성의 겉치례를 손쉽게 입힐 수 있는 방법이다. 프랑스에서 경제학자로 살면 한 가지 커다란 이점이 있다. 프랑스에서 경제학자들은 학계와 지식인의 세계에서 또는 정계와 금융계의 엘리트 사이에서 대단한 존경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학문 분야를 무시하거나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도 더 높은 과학적 타당성을 어리석게 주장하는 일은 제쳐두어야 한다.

(후략)

피케티 선생도 일전에 이코노미 인사이트지에 실렸던 로버트 존슨이 한 말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너무 주류 경제학만 추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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