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 필로리(Helicobacter pylori)의 발견

싯다르타 무케르지 저/이한음 역, “암 : 만병의 황제의 역사“, 까치글방, 2011

p313-315

그러나 새롭게 발견된 “예방 가능한” 발암물질 중 가장 기이한 것은 바이러스도 화학물질도 아닌 세포로 된 생물, 즉 세균이었다. 블룸버그의 B형 간염백신이 미국에서 임상시험에 들어간 해인 1979년, 오스트레일리아 로열 퍼스 병원의 2년차 전공의 배리 마셜과 위장병 학자 로빈 워런은 환자들을 소화궤양과 위암에 걸리기 쉽게 한다고 알려진, 위염의 원인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수 세기 동안 위염은 스트레스와 신경증 탓이라고 다소 모호하게 둘러대졌다. (소화불량을 뜻하는 영어 단어 “dyspeptic”는 지금도 화를 잘 내고 허약한 심리상태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 개념을 확장하면 위의 암은 신경증적 스트레스로 분출한 암이었다. 본질적으로 갈레노스가 주장한 막힌 멜란콜리아 이론의 현대판이었다.

그러나 워런은 위염의 진정한 원인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세균 종이라고 확신했다. 그 가설에 따르면, 아주 혹독한 산성을 띤 위장 안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생물이었다. “약 100여년 전, 의생물학의 초창기부터 세균은 위장에서 살지 못한다고 가르쳤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 그것은 언급할 가치도 없는 명백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알려진 사실’이었다. ‘모든 사람이 지구가 편평하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19)

그러나 워런에게는 위염의 편평한 지구 이론이 도무지 와 닿지 않았다. 위염이나 위궤양에 걸린 사람들을 생검했을 때, 그는 위장의 궤양 부위에 분화구처럼 움푹 들어간 곳이 흐릿하게 파란 층으로 덮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푸르스름한 층을 더 자세히 살펴본 그는 그 안에서 우글거리는 나선형 생물들을 보았다.

아니면 혹시 상상이었을까? 워런은 이 생물들이 위염과 위궤양을 일으키는 새로운 세균 종이라고 확신했지만, 온갖 배양액과 배지와 배양접시를 모두 써봐도 그 세균을 분리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그 생물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워런은 그것을 키울 수가 없었다. 위장의 분화구 위에서 외계 생물체가 흐릿한 푸르스름한 막을 형성하면서 자란다는 그 이론은 과학 소설을 연상시켰다.

대조적으로 배리 마셜은 검증하거나 반증할 애지중지하는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칼굴리 지역의 보일러 제조공과 간호사의 아들로서 퍼스에서 의학을 공부한 그는 연구 과제를 찾는 별 볼 일 없는 젊은 연구자였다. 워런의 자료에 흥미를 느낀(비록 허깨비 같은 미지의 세균과 연관이 있다는 말에는 회의적이었지만) 그는 세균이 자라기를 바라면서, 궤양에 걸린 환자들의 위장을 솔로 문질러 모아서 배양접시에 발랐다. 그러나 워런과 마찬가지로, 어떤 세균도 배양하지 못했다. 매주 배양기에 마셜의 배양접시들이 쌓였다가 며칠 후 검사를 거친 뒤에 대량으로 버려졌다.

그러다가 우연한 행운이 찾아왔다. 1982년 부활절 주말동안, 병원에 환자들이 가득해져서 너무 바쁜 나머지 마셜은 배양접시들을 검사하는 것을 잊은 채 배양기에 방치했다. 나중에 배양접시가 생각나서 돌아와 검사해본 그는 한천 배지 위에 작고 투명한 진주같은 세균 균체들이 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배양 기간을 오래 늘리는 것이 핵심이었다. 현미경으로 보니, 배양접시에서 자라는 세균은 나선형 꼬리를 가진 작고 서서히 자라는 허약한 생물이었다. 미생물학자들이 기재한 적이 없는 종이었다. 워런과 마셜은 그것을 헬리코박터 필로리(Helicobacter pylori)라고 했다. 헬리코박터는 모습을 뜻했고, 필로리는 “문지기”라는 라틴어 필로루스(pylorus)에서 따왔다. 위장의 출구 쪽에 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그 세균이 존재한다고 해서, 더 나아가 그것이 궤양과 관련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위염을 일으킨다는 충분한 증거가 되지 못했다. 코흐의 세 번째 전제조건은 어떤 질병의 진정한 원인으로 분류되려면, 멀쩡한 숙주에 넣었을 때 그 생물이 그 병을 재현할 필요가 있다고 규정했다. 마셜과 워런은 돼지에게 그 세균을 접종한 뒤에 일련의 내시경 검사를 했다. 그러나 몸무게가 300킬로그램인 돼지는 매주 내시경 검사에 호의적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궤양도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을 대상으로 그 이론을 검사한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위험을 일으키고 암의 소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특징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세균 종을 사람에게 감염시키는 것을 어떻게 정당화 할 수 있겠는가?20)

1984년 7월, 실험이 중단되고 연구비 신청도 기각될 위험에 처하자, 마셜은 궁극적인 실험을 시도했다. “그 실험을 하는 날 아침에 나는 아침식사를 걸렀다. …… 2시간 뒤에 닐 노크스가 헬리코박터를 가득 접종한 4일된 배양 접시를 긁어서 세균을 알칼리성 펩톤수(peptone water : 세균을 살아 있도록 하는 데에 쓰는 일종의 고기즙)에 넣고 저었다. 쫄쫄 굶고 있는데 오전 10시에 닐이 200밀리리터 비커에 약 4분의 1쯤 든 혼탁한 갈색 액체를 건넸다. 나는 단숨에 마신 뒤에 온종일 굶었다. 위장에서 몇 차례 꾸르륵 소리가 났다. 세균이 배가 고픈걸까, 그냥 내가 배가 고픈걸까?”21)

마셜은 “그냥 배가 고픈” 것이 아니었다. 탁한 세균 배양액을 삼킨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그는 욕지기가 일어나고 토하고 밤에 땀을 흘리고 오한이 나는 등 심하게 앓았다. 그는 동료에게 병리학적 변화를 기록하기 위해서 연속적으로 생검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심한 활성 궤양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그의 위장과 궤양을 일으키는 분화구가 세균들로 빽빽하게 덮여있었고, 워런이 그의 환자들에게서 발견한 것과 똑같았다.

7월 말에 마셜은 로빈 워런을 공동 저자로 삼아서 『오스트레일리아 의학회지(Medical Journal of Australia)』에 자신의 사례(그는 “정상인 자원자가 그 생물의 순수 배양액을 삼켰다”라고 적었다)를 논문으로 제출했다. 비판자들은 마침내 침묵했다. 헬리코박터 필로리는 논란의 여지가 없이 위염의 원인이었다.

 


19) J. Robin Warren, “Helicobacter: The Ease and Difficulty of a New Discovery (Nobel Lecture),” ChemMedChem 1, no. 7 (2006):672-85.
20) J. R. Warren, “Unidentified Curved Bacteria on Gastric Epithelium in Active Chronic Gastritis,” Lancet 321, no. 8336 (1983): 1273-75; Barry J. Marshall and J. Robin Warren, “Unidentified Curved Bacilli in the Stomach of Patients with Gastritis and Peptic Ulceration,” Lancet 323, no. 8390 (1984): 1311-15; Barry Marshall , Helicobacter Pioneers: Firsthand Accounts from the Scientists Who Discovered Helicobacters, 1892-1982 (Hoboken, NJ: Wiley-Blackwell, 2002); Warren, “Helicobacter: The Ease and Difficulty”; Barry J. Marshall, “Helicobacter Connections,” ChemMedChem 1, no. 8 (2006): 783-802
21) Marshall, “Helicobacter Connections.”

연구를 위해 몸바쳐서 헬리코박터 세균을 마신 마셜 선생에게 무한한 존경을!!! 대단하다.

 


2015.1.14
“불타는 위장” in Secret Lab of a Mad Scientist

2 thoughts on “헬리코박터 필로리(Helicobacter pylori)의 발견

  1. 이 일화를 들을때마다 마셜 선생이 헬리코박터 원샷하는 장면에서는 이말년 만화의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하는 장면이 오버랩됩니다 ㄷㄷㄷ 결국은 논문도 나오고 N모상도 받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진짜 그 심정으로 원샷한듯..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