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겔의 역설 Siegel’s Paradox

배리 섀흐터 등 저/이은주 역, “퀀트 30년의 기록“, 효형출판, 2008

p164-166

쿠퍼네프와 같은 옵션거래 회사는 면접을 볼 때 상당히 까다로운 질문을 많이 하기로 유명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면접관이 내 놓은 문제에 대해 막힘없이 설명을 해새서 그의 기를 단단히 꺾어놓았다. 마침 운 좋게도 평소에 많이 생각하고 있던 분야에 관한 질문을 해 온 것이다. 금융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골치아파하는 문제는 복잡한 확률 문제 따위가 아니었다. 이들을 애먹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유형의 문제이다.

달러 대 마르크의 환율이 1.00이라고 하자. 이것이 동일한 확률로 1.50 혹은 0.50이 될 수 있다고 하자. 공정하격은 1.00달러다. 이제 이를 뒤집어 마르크대 달러의 관점에서 바라보자. 기대가격이 1.33마르크이기 때문에 이 비율은 0.67 혹은 2.00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공정가격은 0.75가 된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때는 잘 몰랐지만 이 문제는 금융 실무자들은 물론이고 학자들 사이에서도 골치 아픈 난제로 통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이를 두고 ‘시겔의 역설‘이라 했겠는가? 유능한 실무자와 학자 몇몇은 달러 투자자가 외국환에 투자를 할 때 얻게 되는 표면자유곡률ostensible free curvature 획득에 관한 내용을 주제로 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면접관은 이런 골치 아픈 문제를 내게 던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역설’도 뭣도 존재하지 않거나, 최소한 긍정적인 기대가치의 거래 기회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달러 대 마르크와 마르크 대 달러는 각기 다른 측정 단위로 가격이 결정된다. 구매력 차익거래purchasing power arbitrage의 여지가 없다면 여기에는 장점이나 역설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동일한 통화로 거래되는 두 가지 금융상품이 있는데 하나는 가격 X에, 또 하나는 가격 1/X에 거래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어디서든 프리 감마free gamma 상태가 된다. 감마란 기초자산의 가격 변화에 따라 델타가 변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이며, 다른 말로 하자면 금융자산가격 1단위의 변화에 대한 델타의 변동량을 의미한다. 하지만 외환거래의 대상이 된 통화의 환율은 이러한 패러다임에 적합하지 않다.

이때가 1980년대였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당시는 콴토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전이었고, 당연히 이런 말을 사용하는 사람도 없었다. 콴토란 수량조정 옵션quantity-adjusting option의 준말로, A통화로 표시된 기초자산이 B통화로 표시되는 결제통화에 대해 고정환율로 현금결제가 이루어지는 파생상품을 말한다. 그런데도 내가 이른바 ‘역설’이라 불리는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젠센 부등식이 고정수익증권 관련 논문에서 얼마나 뭇매를 맞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금리와 채권가격에 대한 기대연산자expectation operator를 함부로 상호교환하는 것에도 주목했다. 이러한 유형의 오차는 환율표본에서 발생하는 오차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나는 이 두 가지 사이의 연관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런 대답을 한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자신감있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나를 채용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당시 금융시장에서 가장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회사의 옵션연구 담당 이사가 되었다.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원인을 짐작하기 어려운 이 패러독스에 대해 잠시 검색을 해 봤는데, 위키피디아 항목에서는 역수의 기대값과 기대값의 역수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1/x가 아래로 볼록한 함수라서 젠센 부등식 때문인 듯.

구글 검색으로 조재호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의 Seoul Business Letter 2012년판에 기고된 글을 발견할 수 있는데, 환율 차익거래로 환율의 방향에 상관없이 항상 매매이익을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상황에 대한 설명이 읽을만하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