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뻔한 이소연씨

크리스 해드필드 저/노태복 역, “우주비행사의 지구생활 안내서“, 더퀘스트, 2014

힘겨운 착륙이다 보니 이에 관한 에피소드도 많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러시아 우주비행사 유리 말렌첸코의 경험담이다. 그는 2008년 미국 우주비행사 페기 윗슨과 한국 우주비행 참가자 이소연과 함께 귀환했다. 소유스가 귀환할 때는 폭발볼트가 점화하여 궤도모듈과 서비스모듈은 떨어져나가 대기 중에서 연소된다. 귀환캡슐만이 내열막이 있어서 대기권 진입 중 생기는 열을 견딜 수 있다. 소유스가 대기권에 진입할 때 유리와 페기는 폭발볼트가 점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모듈 중 하나가 캡슐과 실제로 분리되지 않았다. 여전히 볼트 하나에 붙어서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대기가 두터워지면서 압력과 마찰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귀환캡슐은 육중한 불공을 달고 귀환하도록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곧 통제 불능 상태로 빠지고 말았다.

소유스가 순전히 탄도비행 모드로 하늘을 가르고 있을 때 중력가속도는 9g까지 올라갔다. 캡슐이 아주 난폭하게 구르는 상황이라 승무원들이 느끼는 고통은 더욱 심했다. 그들은 좌석에 앉은 채로 짜부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리저리 사방으로 정신없이 굴렀다. 승무원들은 원인은 몰랐으나,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으며 우주선이 이런 식의 형벌을 그리 오래 견디지는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다행히도 대기와의 마찰력이 아주 커진 덕분에 볼트가 빠져나가면서 불타고 있던 모듈이 떨어져나갔다. 하지만 그 모듈이 고온인 채 오래 붙어 있었기 때문에 귀환캡슐은 새카맣게 불에 그슬렸다. 러시아 우주비행사치고도 특히 냉정한 유리조차 정체 모를 액체가 다리에 떨어지는 걸 느끼고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아, 녹은 금속이야. 틀림없이 소유스가 녹고 있어.’ 그의 대응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리만 조금 움직이며 계속 우주선을 제어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이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떨어지는 액체는 산소 패널에서 새어나온 물이었다. 착륙시에 패널이 응결해 얼음이 맺혔던 것이다). 정말로 구사일생이었다.

이후 근본적으로 뛰어난 설계 덕분에 캡슐은 안정을 되찾았다. 낙하산이 실제로 펼쳐졌고 이어서 캡슐이 지상에 세차게, 하지만 안전하게 착륙했다. 그러나 예상 목표지점에서 꽤 벗어난 곳이어서 그들을 맞으러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상에서는 도착지점이 정확히 어딘지 아무도 몰랐다. 재진입시 생긴 불꽃 때문에 한동안 통신이 끊겼던 것이다.

대체로 승무원들이 우주에 몇 달 머물고 나면 신체적으로 약해져서 승강구조차 열지 못한다. 그래서 지상요원들이 문을 열고 꺼내주어야 한다. 몇 분 뒤 유리는 가까스로 승강구를 열었다. 얼마나 기진맥진한 상태인지 감안하면 정말 초인적인 활약이었다. 승강구를 열자마자 연기 냄새가 났다. 캡슐의 온도를 감안하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승강구를 조금 더 열고 보니 사방이 불바다였다. 마른 풀밭에 착륙해서 불이 난 것이다. 유리가 승강구를 다시 닫을 무렵에는 그의 손도 불이 난 것처럼 뜨거웠다. 세 명은 간절하게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속도 메스꺼운 데다 비좁고 연기까지 찬 캡슐 안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주위는 온통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온몸이 파김치가 되어, 무턱대고 뛰어나갈 힘도 없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잠시 뒤 유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승강구를 다시 열기로 결심했다. 다행히도 불은 주변을 태운 뒤 꺼졌다. 간신히 기어나오니, 세상에! 마을 사람들이 서 있었다. 연기를 보고 찾아온 카자흐 사람 몇 명이었다. 그들은 유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더니 그중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한 명이 물었다. “어디서 오셨나요?” 유리가 설명하려고 애쓰는 사이 그 사람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배는 어떻게 되었나요? 저 배는 어디서 왔나요?” 그 사람은 바닥이 평평한 저 탈것이 우주에서 왔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한편 페기와 이소연은 착륙으로 인해 등이 심하게 아팠지만, 카자흐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캡슐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이때 유리는 무전기로 구조용 헬리콥터를 부르고 싶었지만 소유스에 들어가 무전기를 꺼내올 기력이 없었다. 걱정 마시길. 고맙게도 카자흐 사람들 중 키가 가장 작은 한 사내가 기꺼이 나서서, 하늘에서 방금 떨어진 ‘배’ 안으로 들어가 손에 잡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갖고 나왔다. 그 사내가 주머니에 물건들을 쑤셔넣고 있었지만 유리로서는 막을 기력도 없었다.

대신 말로 타일렀다. 둘이 그러고 있는 중에 첫 헬리콥터가 나타났다. 헬리콥터에서는 즉시 관제센터에 무전으로, 캡슐을 찾았지만 낙하산은 보이지 않는다고 알렸다. 물론 낙하산은 불타버렸다. 어쨌든 그 무전 교신을 들은 사람은 누구나 승무원이 전원 사망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대형참사구나,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세 대규모 축하가 뒤따랐다. 헬리콥터가 착륙하자마자 기쁜 소식을 알린 것이다. 승무원들이 불시착, 불바다, 그리고 ‘배’를 노리는 노상강도에도 불구하고 전원 살아남았다는 소식이었다.

우주비행사는 비행 전에 유서를 써 놓는다는데, 정말 죽을 확률이 높기는 높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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