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심판’ 당시의 모습

조지 M. 태버 저/유영훈 역, “파리의 심판“, 알에이치코리아, 2014

p12-17

파리의 심판, 그 시작

1970년대 중반에 나는 〈타임〉특파원으로 일했다. 파리의 작은 사무실에 앉아 프랑스 정치에서 디자이너 맞춤복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써냈다. 때때로 우리가 관할하는 주변 나라들에서 큰 사건이 터지면 바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는데, 에스파냐 수상의 암살을 취재하기 위해 마드리드로 간 적도 있었고, 혁명 발발 보도를 위해 리스본으로, 네덜란드 여왕의 부군이 관여된 뇌물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가는 등 그야말로 유럽 각국을 종횡무진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좋은 직업이었다.

1976년 5월 24일 나는 마침 파리에 있었다. 일주일 전 나는 뉴욕의 편집자들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을 시도하려는 한 와인 시음회에 대해 기사를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 시음회는 프랑스 와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와인 몇 병을 거의 무명에 가까운 신생 캘리포니아 와인들과 비교하고자 했다. 사실 하나 마나 한 행사 같아 보였다. 프랑스가 이길 게 뻔했다. 하지만 나 역시 캘리포니아 출신으로서 프랑스 뿐만 아니라 스위스, 독일, 벨기에에서 공부하거나 일을 하면서 와인에 대해 꾸준히 배워왔기 때문에 그런 제안을 했던 것 같다.

매주 전 세계의 〈타임〉특파원들이 수백 건의 기삿거리를 제출한다. 그중에서도 일부만이 취재 승인을 받으며, 그걸 또 추려서 실제 지면에 싣는다. 냉혹한 적자생존의 세계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생생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잡지가 나오는 것이다. 시음회 건은 취재 승인이 났지만 나 역시 잡지에 실릴 확률은 낮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프랑스 와인이 이긴다면 아예 기삿거리조차 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다. 게다가 와인 시음장에 가면 적어도 몇 종의 와인은 직접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사가 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지루한 오후를 보낼 수 있는 썩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호텔 안내인은 시음회장인 호텔의 테라스 바에 딸린 작고 우아한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내가 입장했을 때는 턱시도를 단정하게 입은 웨이터들이 식탁보를 깔고 잔을 놓으며 분주히 행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사실 나는 시음회 주최자들과 친분이 있었다. 영국인으로서 카브 드 라 마들렌이라는 와인 숍의 주인인 스티븐 스퍼리어와 그의 미국인 동료 퍼트리샤 갤러거가 이 시음회의 주최자였는데, 나는 카브 드 라 마들렌에서 운영하는 와인 학교인 아카데미 뒤 뱅(Académie du Vin)에서 갤러거가 가르치는 와인 입문 강좌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번 취재를 마음먹은 이유도 그녀의 부탁 때문이기도 했다. 시음회의 목적이 와인 숍과 와인 학교의 홍보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퍼리어와 갤러거는 이번 행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언론들을 설득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실제로 행사장에 나타난 기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갤러거에게 다가가 아는 척을 하고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갈색 수첩을 꺼내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아홉 명의 심사위원들도 하나둘 도착했다. 그들 중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 프랑스 유수의 와인 전문가로서 흠잡을 데 없는 자격을 갖춘 이들이었다. 심사위원들은 프랑스 기득권층 특유의 조용한 태도로 악수를 하고 서로를 반긴 다음, 긴 탁자 앞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시음회는 익명 시음, 즉 와인의 상표를 가리고 시음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시음 중에는 자신이 어떤 와인을 마시고 있는지 모를 터였다. 다만 제공되는 와인이 프랑스와 캘리포니아산이라는 사실과, 적포도주는 보르도풍의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품종이고 백포도주는 부르고뉴풍의 샤르도네(Chardonnay) 품종이라는 것만 알았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나자 표식이 없는 병을 든 웨이터들이 긴 탁자를 따라 움직이며 심사 위원들 앞에 높인 잔에 와인을 따르기 시작했다. 심사위원들의 앞에는 점수표와 와인 잔 두 개, 작은 빵 조각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하드롤 빵은 시음하는 중간중간에 입맛을 정리하는 용도였다. 와인 시음은 관례에 따라 백포도주 부터 시작했다.

시음회는 매우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시음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장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심사위원들도 여느 시음회 때보다 조금 더 수다스러웠다. 일반적인 시음회에서 와인 전문가들은 대개 입을 닫고 손에 든 잔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시음회는 그렇지 않았다.

출품된 백포도주의 대략 절반이 나온 무렵부터 나는 뭔가 아주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나는 갤러거가 준 시음 와인 목록과 순서가 적힌 종이를 갖고 있었기에 심사위원들의 혼란을 눈치챘다! 그들은 프랑스 와인을 캘리포니아 와인으로 판단하거나, 아니면 캘리포니아 와인을 프랑스 와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또, 서로의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탁자 한쪽에서 어떤 와인이 프랑스 와인이라고 주장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것이 캘리포니아 와인이라고 주장했다.

최고급 프랑스 요리를 대표하는 파리의 레스토랑 르 그랑 베푸르(Le Grand Véfour)의 오너 셰프 레몽 올리베르(Raymond Oliver)는 백포도주가 든 잔을 살살 돌리고 와인을 빛에 비추어 옅은 밀짚 색깔을 확인한 다음, 향을 맡고 맛을 보았다. 잠깐의 침묵 후 그는 “야, 다시 프랑스 와인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신중을 기하면서 와인 목록을 두 번이나 확인했다. 올리베르가 방금 맛본 와인은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온 1972년산 프리마크 애비(Freemark Abbey) 샤르도네였다!

뒤이어 프랑스 요리와 와인에 관한 책과 잡지를 내는 고미요(Gault Millau) 출판사의 클로드 뒤부아미요(Claude Dubois-Millot)가 또 다른 백포도주를 시음하더니 의심의 여지도 없다는 투로 말했다. “이건 캘리포니아 와인이 확실하네요. 좋은 향이 없어요.” 하지만 확인한 결과 그 와인은 라모네-프뤼동(Ramonet-Prudhon)이 만든 1973년산 바타르 몽라셰(Bâtard-Montrachet)였다. 부르고뉴 최고의 와인 중 하나였다.

스퍼리어의 파리 시음회는 정말로 흥미로운 기삿거리가 될 것 같았다.

와인 역사의 유명한 파리의 심판 사건이 책으로 나온 줄 이제사 알고 읽고 있다. 설명이 필요한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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