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커의 영향력

와인에 대해 찾다보면 로버트 파커의 이름을 꼭 듣게 되는데, 일전에 아셴펠터의 와인 예측 이야기에서도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여태 그가 왜 유명한지를 몰랐는데, 다음 글에서 짐작이 가능하다.

조지 M. 태버 저/유영훈 역, “파리의 심판“, 알에이치코리아, 2014

p428-430

와인의 세계화와 함께 세계적 와인평론가의 힘도 커졌다. 영국의 휴 존슨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제임스 할리데이 같은 와인 평론가는 와인업계의 발전상을 오랫동안 기록해왔다. 그들은 보통 좋은 말만 했다. 어떤 생산지를 안 좋게 말하는 경우는 드물거나 아예 없었다. 그러다 1978년에 새로운 유형의 와인 평론가가 나타났다. 로버트 M. 파커 주니어였다. 미국 메릴랜드 주 몽크턴의 변호사인 그는 〈와인 애드보케이트〉라는 와인 소식지를 만들었다.

파커는 좋은 말만 쓰지 않았다. 그는 100점 만점 기준으로 와인에 점수를 매겼다. 새로운 방식이었다. 그의 허심탄회한 평가에 많은 생산자가 격분했지만 소비자들은 좋아했다. 파커의 점수제는 미국 학교의 성적 평가 방식과 흡사해서 미국인들이 이해하기 쉬웠다. 와인 초심자는 “파커가 이 와인에 98점을 줬어”라는 말 한 마디로 와인 한 병에 100달러를 지불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곧 다른 와인 전문지들, 이를테면 널리 읽히는 〈와인 스펙테이터〉도 이 100점제를 도입했다.

와인 분야에서 대다수 평론가와 잡지는 광고주를 의식해 부정적 의견을 똑바로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파커는 달랐다. 그의 소식지는 광고를 싣지 않는다. 와인 맛에 대한 파커의 개인적 평가 외에 어떤 다른 요소도 고려하지 않는다.

파커가 와인을 맛보고 점수를 매기고 기억하는 능력은 무척 놀랍다. 그는 열렬한 보르도 와인 애호가다. 물론 다른 생산지와 다른 나라의 와인도 평가는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파커의 평가를 받아들인다. 사실상 그의 말 한마디가 그 포도주 생산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와인업계에서는 파커가 한 와인에 80점 아래의 점수를 주면 아무리 싸게 내놔도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로 90점 이상을 받은 와인은 대부분의 소비자가 부담스럽게 느낄만큼 치솟는다고 한다.

파커를 싫어하는 이들은 그가 개인의 주관적 입맛에 따른 과정에 인공적인 통계 숫자를 부여해 등급을 매긴다고 비난한다. 또, 파커의 세계가 제한적이라고 지적한다. 〈파커의 와인 구매 가이드(Parker’s Wine Buyer’s Guide)〉는 1,6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프랑스의 중요한 와인 생산지역인 루아르 계곡은 주마간산으로 다룬다.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와인 전체에 할애된 분량은 단 두 단락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파커와 그의 100점제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1999년 파커에게 영예의 레종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을 수여하며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프랑스 와인 평론가”라고 칭했다. 내가 전 세계의 포도주 생산자들로부터 개인적으로 듣는 이야기는 이렇다. 그들은 평론가 한 명이 업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을 당최 이해할 수 없다며, 이런 영향력은 누구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쓴소리를 한다. 물론 새로운 세대의 와인 소비자들이 더 많은 경험을 쌓으면 자신의 입맛에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고, 그러면 특정 평론가의 말을 덜 맹신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은 수 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와인의 숲에서 자신을 인도할 안내자를 찾는다. 로버트 파커는 다른 모든 와인 평론가보다 월등히 많은 추종자 무리를 이끌고 있을 뿐이다.

일부 와인 애호가는 와인의 세계화가 진척되면서 내 맛도 네 맛도 아는 국제적인 ‘맥도널드 와인’들이 양산되는 부작용이 있다고 불평한다. 이탈리아산 샤르도네가 캘리포니아나 오스트레일리아 혹은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와인의 국제적 규격화에 대해 파커 역시 큰 목소리로 힐책한다. 하지만 그 풍조를 부추긴 장본인이 다름 아닌 파커 자신이라는 비판도 많다. 파커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을 만한 와인을 만들어 비싼 값에 팔려는 양조자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들은 파커가 풍성하고 색깔이 진하며 향은 강렬하고 알코올 기운이 있는 와인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역시 평론가는 칭찬보다 까야 유명해진다는 사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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