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학파와 시카고 학파의 차이

니컬러스 웝숏 저/김홍식 역, “케인스 하이에크“, 부키, 2014

밀턴 프리드먼은 그 이유(시카고 대학 교수들이 하이에크를 탐탁치 않게 여긴 이유임)에 대해 “하이에크는 경제학부 교수들이 새로 찾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이에크의 경제학에 동의하지 않았다. …… 교수로 들일 새 인물을 찾아 전 세계를 뒤진다고 해도 그들의 답은 『가격과 생산』의 저자는 아니었을 것이다.”31 하이에크의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은 유별나게 이해하기 어렵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졌다. 하이에크의 생각과 시카고학파의 개념은 아주 많이 달랐다. 프리드먼은 경제와 정치를 바라보는 하이에크의 자유지상주의적 관점을 옹호했지만, 오스트리아학파의 ‘생산 단계’ 개념은 무시했다. 또 프리드먼은 정부가 통화량을 규제하는 정책이 옳다고 봤는데, 통화량 규제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생각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이에크는 자유시장만이 유일하게 좋은 것이라고 봤던 반면, 나이트 같은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은 자유시장도 정부 개입 못지않게 비효율적일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오스트리아학파와 시카고학파 둘 다 가격이 경제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이며 자유시장이 개입보다 낫다고 보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이 두 학파를 유사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프리드먼은 불필요한 통화량 제한과 그에 뒤따르는 경기 후퇴의 관계를 밝혀냄으로써 경제학에서 새 돌파구를 열었는데, 이 점에서도 시카고학파가 오스트리아학파와 얼마나 다른지 드러난다. 경제 활동은 수량으로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며 평균값은 개인들이 가격을 설정하는 과정을 제대로 대변하는 지표가 아니라는 것이 하이에크와 미제스의 생각이었다. 이와 달리, 프리드먼은 경제를 전체로 취급하는 케인스의 생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고 평균값을 경제적 변화의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프리드먼은 오스트리아학파 개념을 한 번도 거세게 비판한 적이 없을 만큼 신중한 태도를 취했지만, 오스트리아학파 개념이 효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시카고 대학 경제학 교수들 사이에서 『노예의 길』을 트집 잡는 말도 나왔다. 무슨 예언자라도 되는 양 암울한 미래를 풀어 놓은 하이에크는 자신들이 기대하는 지적 엄밀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시카고 대학 사회사상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던 존 네프에 따르면, 몇몇 시카고 경제학자들은 『노예의 길』을 두고 “훌륭한 학자라면 감히 쓸 수 없는 지나치게 대중적인 저술이며, 하이에크가 경제학 교수들과 결부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라면 학교에서 그를 받아들여도 좋다.”32라는 의견이었다. 1950년 가을, 네프의 제안으로 하이에크는 사회사상위원회가 관장하는 사회 및 윤리과학 교수가 됐다. 교수직 봉급의 일부는 윌리엄폴커자선재단에서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불쾌했지만 하이에크는 이 자리를 수용했다.

 


31 다음 자료에서 재 인용. Ebenstein, Alan. Friedrich Hayek: A Biography (Palgrave, New York, 2001). p.174.

32 John Ulric Nef, The Search for Meaning: The Autobiography of a Nonconformist (Public Affairs Press, Washington, D.C., 1973), p.37.

난 여태 오스트리아 학파와 시카고 학파가 똑같은 줄 알았다. 쮀에에끔 차이가 있구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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