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오스트리아 원정대가 초오유 등정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초오유는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으로, 히말라야 14좌 중의 하나이다. 1954년 오스트리아 원정대에 의해 초등되었다.

조너선 닐 저/서영철 역, “셰르파, 히말라야의 전설“, 지호, 2006

p403-405

1939년에 파상 다와 라마(Pasang Dawa Lama)K2 봉을 거의 등정할 뻔했다. 1953년에 그는 낭가파르바트 원정대의 사다로 임명되었으나 파키스탄 정부는 그들을 카슈미르지역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이듬해인 1954년에 그는 쿰부에 있는 소규모 초오유 오스트리아 원정대의 사다로 임명되었다2 이 산은 8천 미터 이상 되는 고봉 중 하나이고, 1954년에는 그런 고봉들 중에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그리고 낭가파르바트만이 등정되었다.

당시 파상 다와 라마는 루크라 비행장 근처 차우리 카르카에 사는 젊은 여자와 결혼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파상 다와 라마가 20살이나 연상이고 이미 부인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파상 다와 라마는 그들과 도박을 했다. 만일 그가 초오유의 정상에 선 첫번째 사람이 된다면 그들의 딸과 결혼하기로 했다. 만일 그가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 젊은 여자를 홀로 남기고 떠나야 하며, 그들에게 5백 루피를 주기로 했다. 그들이 도박을 받아들였다.

오스트리아 원정대는 세찬 바람과 원정대장인 헤르베르트 티치의 심한 동상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 식량이 바닥나서 파상 다와 라마는 보급품을 구하러 남체(Namche)로 다시 내려갔다. 남체에서 그는 한 스위스 원정대가 초오유를 향해 출발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잃게 될 판이었다.

남체에서 낭파 라를 거쳐 초오유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데는 도보로 사흘하고도 반나절이 걸렸다. 파상 다와 라마는 원정대의 모든 식량을 짊어지고도, 하루 안에 그 거리를 돌파했다. 그 다음날 그는 짐을 들고 원정대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캠프까지 올라가 오스트리아 등반가들을 만났다. 사흘째 되는 날 그는 오스트리아 등반가들을 끌어 모아 그들을 정상으로 데려갔다.

남체의 아누 셰르파는 그해 여덟 살 먹은 소년이었다. 그는 파상 다와 라마가 으스대면서 한 발짝씩 무겁게 놓으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면서, 새로운 처갓집 쪽으로 발을 구르며 골짜기를 쿵광대며 내려오던 모습을 기억한다. 파상 다와 라마를 보기 위해서 골짜기를 따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이야기한다. 그주에 차우리 카르카에서 결혼식이 거행되었고, 원정대 모두, 세르파족이나 오스트리아 사람들이나 만취하여 인사불성이 되었다.

 


2. 1954년 초오유 원정에 관해서는 Herbert Tichy, Cho Oyu: By Favour of the Gods, trans. Basil Creighton (London: Methuen, 1957) 참조

남체에서 사흘만에 초오유 정상에 도달하다니, 미친 체력이다-_- 결혼에 대한 집념이 대단하다ㅋㅋ 오스트리아 원정대가 정상을 등정한 게 아니라 파상 다와 라마가 등정한 거나 다름이 없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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