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조선잡기 – 일본인의 조선정탐록

조선잡기10점
혼마 규스케 지음, 최혜주 옮김/김영사

이 책은 혼마 규스케라는 사람이 조선을 정탐한 기행문으로 1894년 청일전쟁 직전에 간행되어 조선의 사정을 일본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당시 급속히 근대화가 되고 있는 일본과 아직 전근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조선을 적나라하게 비교하고 있다.

물론 일본인의 눈으로 본 장면이라 저자는 조선을 내리깔아보는 관점이 대단히 많다. 다만, 조선말기 서민들의 풍속이나 문화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아 민속학적 관점에서도 흥미롭게 볼 수 있다. 자기 부인을 성접대시켜서 먹고 사는 사람이라든지, 시신을 나무에 걸어놓는 풍습 등 사극 따위에는 절대 나오지 않을 법한 괴이한 조선의 풍속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또한 화폐 경제가 발달하지 않아 불편하다는 이야기에서는 경제사적 관점에서 흥미롭고, 한글이 무척 교묘하고 편리한 표기법인데 지식층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부분도 언어학적 관점에서 흥미롭다.

일개 일본의 낭인조차 격변하는 세계 정세를 느끼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시점에, 그가 만난 조선의 지식인들이 태평하게 가문의 명예 걱정이나 하는 장면(p56)에서 두 국가의 향후 운명이 이미 갈렸다고 생각한다.

인상적인 한 구절만 소개한다.

p258

경상도 유곡을 지나, 문경에 이르는 길 위에, 산세가 험하고 새가 아니면 통과할 수 없는 좁은 길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곳이 있다. 작년 전부터 이곳에 성곽을 경영했는데, 이름하여 노고성이라고 한다. 아마도 일본과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아 한인이 사정에 둔하여, 병기가 날로 진보하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참으로 불쌍하다. 한 발의 야전포가 이 성곽을 능히 무너뜨린다는 것을 모르는가.

영국영사관에 일하는 조선인이 말하길, 영국인들이 비싼 담배를 소모하며 과소비가 심하니 영국은 망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세계 경제와 정세에 무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p222)도 인상적이다. 이미 막부 시절부터 유럽 정세를 관찰하던 일본인[1]과 대비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세계가 격변하는 1894년 당시, 조선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1] 내 백과사전 네덜란드 풍설서 2014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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