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보로 저택의 베이트 컬렉션 도난 사건

샌디 네언 저/최규은 역, “미술품 잔혹사”, 미래의창, 2014

러스보로 저택의 베이트 컬렉션

러스보로 저택은 아일랜드 위클로에 자리한 팔라디오 양식의 저택으로, 알프레드 베이트 준남작 부처의 소유다. 이 저택은 네 차례나 미술품 절도범의 표적이 된 것으로 유명하다. 각 사건은 서로 판이한 양상을 띠지만 범행 방식의 허세가 대단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보인다. 저택에서 도난당한 작품은 총 43점인데, 그중 두 점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무사히 회수되었다. 회수한 작품 중에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편지를 쓰는 여인과 하녀〉도 포함돼 있다. 그 과정을 두고 「IFAR 저널」은 ‘모험담’이라 표현했는데, 이 정도 말로는 부족할 정도의 사건들이었다.

1974년 4월 26일 일어난 첫 번째 사건은 당시 영국제도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작품 절도 사건이었다. 도난당한 작품은 총 19점으로 베르메르를 포함해 벨라스케스, 루벤스, 고야, 게인즈버러의 작품들이 섞여 있었으며, 시가로는 최소 800만 파운드에 달했다. 범인은 로즈 브리짓 덕데일 박사로,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주장하는 테러 단체인 IRA(아일랜드 공화국군) 소속의 공범들과 함께 저지른 짓이었다. 이들은 사건 당시 베이트 경을 ‘자본주의의 돼지’라 부르며 결박했고, 이후에는 작품을 볼모로 영국 정부에 50만 아이리쉬파운드에 달하는 거액과 함께 폭파 사건으로 복역 중인 동료 두 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러나 도난당한 작품들은 무사히 되찾을 수 있었으며, 덕데일은 9년 형을 선고받고 6년을 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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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베르메르, “Schrijvende vrouw met dienstbode(편지를 쓰는 여인과 하녀)”, 1670~1671, Oil on canvas, 72.2 cm × 59.5 cm

두 번째 사건은 1986년 5월 21일에 발생했다. 더블린에서 악명 높은 범죄자인 마틴 카힐의 소행이었다. 카힐은 치밀한 범행 계획으로 유명세를 얻어 이른바 ‘장군The General’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동명의 제목으로 1995년에 그에 관한 저서가 발간됐으며, 1998년에는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괴상하고 거칠며 몹시 사악한’ 인물로 평가받던 카힐은 1994년 8월 18일 살해됐다. 얼스터 의용군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IRA가 그를 제거한 것이다. 범인들은 일부러 저택의 경보장치를 작동시킨 뒤 몸을 숨긴 채 경찰의 가택 조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경찰은 침입 흔적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물러갔으며 경보장치는 고장 났다는 판단 아래 완전히 꺼놓게 됐다. 이때 범인 일행이 돌아와 18점의 작품들울 훔쳐 달아났는데, 그중에서 7점은 인근에 버리고 나머지 11점은 앞서 준비해놓은 산속 벙커에 은닉했다. 사건 당시 집에 없었던 알프레드 베이트 경은 후일 이렇게 말했다.

“범행 배후에 급진주의 세력이 있다고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작품을 볼모로 돈을 얻고자 저지른 짓일 텐데 결코 몸값을 받아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번에 도둑을 맞은 것은 저뿐만이 아닙니다. 바로 아일랜드 국민 모두가 도둑을 맞은 것입니다. 작품들은 이미 국가의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예상과 달리 카힐은 그림의 몸값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일부 작품을 외국에 팔거나 거래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보험조사원인 피터 그윈은 물론 영국 경찰청 소속 미술품 및 골동품 전담 수사대의 찰리 힐과 딕 엘리스가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끝에 마침내 1990년 2월 이스탄불에서 가브리엘 메취의 작품 한 점을 처음으로 회수했다. 수사는 1987년 복잡다단한 성격을 띠며 개시됐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후 미국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에서 절도 사건이 터지자 세간에는 러스보로 사건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를 ‘아일랜드 커넥션’의 존재에 대한 의혹이 커져갔다. 물론 이 조직망의 존재는 입증되지 못했다. 오랜 위장 수사 끝에 암스테르담의 다이아몬드 거래상을 추적해냈다. 카힐에게 100만 달러를 선불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후 찰리 힐의 함정수사를 비롯해 국내외에 걸쳐 전개한 복잡한 작전 덕에 1993년 9월 2일 베르메르의 작품을 포함한 대부분의 도난 작품을 회수할 수 있었다. 루벤스의 〈남자의 머리Head of a Man〉는 2002년 8월 회수했지만 프란체스코 과르디의 풍경화 작품들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카힐의 범행 동기는 주로 돈세탁과 담보물 확보에 있었던 듯하지만, 범죄 세계에서의 이미지 관리 목적도 있었던 것 같다. 지상 세계에서 미술작품을 합법적으로 수집한 사람에게 위상을 부여하듯, 지하 세계에서는 범죄 행위를 통해 미술작품을 점유한 사람에게 나름의 위상을 부여한다. 카힐은 고가의 작품을 상대로 대담한 절도 행각을 벌임으로써 범죄 세계에서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려 했다. 하지만 훔친 작품들을 처분하는 과정에 어떤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듯 보인다. 어쨌거나 그는 세간에 악당 영웅의 이미지, 즉 빈민가에서 태어난 영리한 소년이 마침내 외국인 억만장자의 집까지 털었다는 이미지를 남기는 데 성공했다. 절묘한 범행 행각으로 경찰을 농락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러스보로 저택에서 일어난 나머지 두 번의 절도 사건은 베이트 경의 사후에 벌어진 일로, 준남작 부인 혼자 감당해야 했다. 저택에 보관 중이던 값나가는 작품은 대부분 더블린에 위치한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으로 옮겨진 상태였다(베이트 경은 1976년에 러스보로 저택과 그에 딸린 작품들로 자선 컬렉션을 만들었고, 1987년에 이 작품들은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두 사건 모두 낮 시간에 차량이 저택 현관과 창문으로 돌진해 들어오는 식으로 자행됐다. 2001년 6월 26일, 이렇게 해서 게인즈버러의 〈바첼리 부인Madame Baccelli〉과 베르나도 벨로토의 〈피렌체 전경View of Florence〉이 도난당했다. 두 작품은 이후 2002년 9월 23일 더블린의 주택에서 발견됐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9월 26일 이번에는 루벤스의 작품 두 점과 라위스달의 작품 한 점을 비롯해 모두 다섯 점이 도난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작품들은 그해 12월 20일 더블린에서 되찾을 수 있었다.

과연 이 저택에 징크스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지리적으로 더블린에서 가까운 탓에 범인들에게 손쉬운 표적이 된 것일까? 러스보로 저택의 관리인은 이렇게 말한다.

“어쩌겠습니까? 아무리 경보장치를 최신식으로 바꿔 달아도 도둑을 막기엔 역부족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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