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크애비뉴의 영장류’ 서문 중에서

웬즈데이 마틴 저, “파크애비뉴의 영장류“, 사회평론, 2016

p13-23

미국 중서부에서 태어난 나는 비교적 옛 방식을 따르는 환경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학년은 제각각이어도 동네 아이들 모두가 비슷한 시간대에 걸어서 등하교했고, 방과 후에는 감시하는 어른 없이 우리끼리 깡통을 차며 놀거나 어느 집 뒷마당 혹은 근처 숲에서 저물녘까지 노닥거렸다. 주말이면 자전거를 탔고 스카우트 활동을 했다. 그러다 나이를 조금 더 먹으니 저녁과 주말에 이따금씩 아기를 돌보게 됐다. 아기 돌보기는 친누이의 마땅한 의무요, 동네 처녀들에게도 인기 높은 소일거리였다.

내 성장배경에서 아마도 유일하게 남달랐던 요소, 그래서 진로 결정에 적잖이 영향을 미쳤던 것은 바로 내 어머니의 관심사였다. 어머니는 인류학과 그 당시 신생 분야였던 사회생물학에 매료되었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도 마거릿 미드의 저서인 《사모아의 청소년》이었다. 이 책을 통해 미드는 아동 및 청소년을 양육하는데 서구식이 반드시 유일하거나 올바른 것은 아니며 사모아의 앙육 방식이 더 낫다는 주장을 펼쳐 1928년 첫 출간 당시에는 물론이고 재출간된 1972년에도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어머니는 어린 내게 마거릿 미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 분은 인류학자란다. 다른 문화권에 녹아들어 그곳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그들이 하는 일을 함께 해보며 연구하고 배운 것을 책으로 썼지. 엄마들은 대부분 전업주부이고 아빠들은 대부분 의사나 변호사인 환경에서 자라던 나에게, 인류학자라는 직업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색다르고 화려하며 매혹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아울러 그때는 제인 구달의 시대이기도 했다. 카키 복에 금발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햇빛 가림용 모자를 쓴 매력적인 모습으로 영장류 동물학의 대표적인 얼굴이 된 인물. 탄자니아 곰비의 야생 침팬지 집단을 관찰하고 보호하면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린 그녀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최고의 우상이었다. 우리 가족의 저녁식사 시간에는 어머니, 아버지의 하루나 나와 남동생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세 자녀를 둔 엄마이자 애연가이며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과 라에톨리에서 고 인류 화석을 발견해 인류의 기원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뒤집은 메리 리키가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저녁식사 시간에 아들들이 다투면 어머니는 로버트 트리버스의 양육투자 이론과 형제경쟁 이론을 들먹이며 꾸짖었고, 녀석들이 얌전히 굴면 혈연선택과 호혜주의 이론을 설명해주었다. 돌이켜보면 참 이상했다. 열 살짜리 딸아이를 둔 엄마가 빨래를 개면서 골똘히 생각하는 것이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 이론이었다니. 만약 차 앞으로 뛰어드는 나를 엄마가 황급히 밀쳐 구하는 일이 있었다면, 그건 순수하게 나를 위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유전자를 지켜내기 위한 행위였을까.

(중략)

풍요로운 대도시에 사는 고학력 여성 대부분이 그러하듯 결혼과 출산을 미루다가,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한 남자와 결혼했다. 그는 뉴욕 토박이였다. 이 도시에서 태어났고 이 도시에서 자랐으며 이 도시에서 전문직 종사자로 살고 있었다. 그가 뼛속까지 도시인이라는 점이 내게는 이를테면 타히티인이나 사모아인처럼 이국적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는 애향심도 대단했다. 이 도시의 역사라면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훤히 꿰고 있었고, 거의 모든 골목과 건물과 동네에 개인적인 추억을 심어놓은 것 같았다. 뉴욕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내 안에 있었던 일말의 망설임까지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그의 부모와 형 부부도 뉴욕에 살고, 그가 전 부인과 낳은 10대 딸들이 주말마다 아빠와 함께 지낸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의 가족은 친정을 멀리 떠나온 내가 이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중략)

결국 우리는 파크애비뉴 70번 street에 새 둥지를 틀었다. 내 활동반경은 집 주변을 벗어나지 않았다. 길모퉁이 요가학원에 다녔고, 까다로운 회원제의 고급 음악 강의를 수강했으며, 보모들과 옥신각신했고, 다른 엄마들과 커피를 마셨다. 아이가 다닐 유치원의 ‘심사’를 받기도 했는데,이는 둘째 때에도 되풀이되었다.

그 과정에서 육아란 맨해튼이라는 섬 안의 또 다른 섬이라는 것,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엄마들은 사실상 별개의 종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일종의 배타적 비밀 집단이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규율•의식•제복•행동양식의 지배를 받았고, 나로서는 꿈에도 존재하는 줄 몰랐던 신념•야망•문화적 관습을 따랐다.

사교활동과 놀이터 나들이를 한꺼번에 해치우는, 어퍼이스트 사이드의 아이 엄마가 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우리 가족이 터를 잡은 동네의 이웃은 하나같이 엄청난 부자에 사회적 지위를 의식하는 사람들이었다. 최고급으로 차려입은 의기양양한 얼굴의 엄마들 틈에서 나 혼자 동떨어진 느낌에 주눅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러나 고등 영장류처럼,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인간들처럼, 나도 그 안에 몹시 들어가고 싶었다. 나 자신을 위해, 그보다 더 내 아들을 위해, 나아가 내 둘째 아들을 위해서도.

문학과 인류학을 공부한 바탕으로 잘 아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소속감 없이 어떤 집단에 속하게 되면 우리 같은 유인원은 길을 잃는다는 것. 문학이나 현실 세계에서 외톨이는 흥미롭고 응원하고 싶은 antihero일지언정 대개는 비참하다. 오디세우스부터 데이지 밀러까지, 허클베리 핀과 헤스터 프린, 이사벨 아처, 릴리 바트까지……… 사회적 외톨이와 천덕꾸러기는, 특히 여성은 더더욱, 삶이 고단하기 마련이다. 사회적 관계망이라는 보호막이나 버팀목을 갖지 못한 그들은 상징적으로, 때로는 문자 그대로 헤매다 죽고만다. 현장생물학자들이 상세하게 기록했듯이, 단지 책 속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와 야생에서도 말이다. 하물며 새끼를 데리고 새로운 무리로 옮겨가려는 암컷 영장류만큼 위태로운 존재는 없다. 예를 들어 어미 침팬지가 새끼와 함께 낯선 무리에 끼려고 하면, 원래 그 무리에 속해 있던 암컷 침팬지들이 심한 텃세를 부리고 무시무시한 물리적 폭력을 가한다. 심지어 무리에 새로 들어온 어미와 새끼가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어퍼이스트사이드에서 자리를 잡으려 애쓰는 나를 문자 그대로 죽이려 드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무리에 들어가 인정을 받아아 했고 되도록 빨리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애가 달았다. 누가 외톨이가 되고 싶겠는가? 아침에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준 후 커피를 같이 마실 수 있는 친구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아이에게 같이 놀 친구가 생기길 바라지 않는 엄마가 있는가? 시댁 식구들과 남편이 내내 나를 도와주기는 했다. 괜찮은 식료품점을 알려주었고, 유대교 성인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와 사교클럽, 자치회 따위의 복잡 미묘한 규칙이며 내게는 생소한 이 동네만의 의례와 관습을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어퍼이스트사이드 엄마들의 문화는 오릇이 내가 풀어야 할 숙제였다. 나 자신이 그들과 섞이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그래야만 하는 엄마였기 때문에.

그렇다. 뉴욕으로 건너온 이래 어퍼이스트사이드로 들어가려는 시도는 질리도록 해봤다. 이곳이 화려하고 부유하며 특권을 가진 동네임을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절제는 미덕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다운타운과는 의복도 철학도 기풍도 다른 동네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퍼이스트사이드 엄마들이라는 세상 속 세상은 워낙 비밀스럽고 특수해서, 내가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특권층 엄마들과 아이들로 구성된 평행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영영 알아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있었기에, 부득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세계를 이해하고 스며들서 그 문화 특유의 속성까지 꿰뚫어야 한다고 느꼈다.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엄마가 되는 과정, 내 주위의 엄마들과 친분을 쌓고 그들의 방식을 체득하는 과정은 도무지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별난 여정이었다. 마사이족의 소 등타기나 피 마시기 의식, 아마존 야노마미족의 도끼 싸움, 명문 대학 여학생 클럽의 신입생 통과의례인 술 진탕 퍼마시기처럼 이전까지 공부하거나 경험한 것들로는 그들을 대적할 수도, 대비할 수도 없었다.

어퍼이스트사이드 아이들의 생활은 누가 봐도 평범하지 않다. 운전기사와 보모가 있고,헴프턴스까지 타고 갈 헬리콥터도 있다. 2세 아이는 나이에 ‘알맞은’ 음악 강습을 받고, 3세 아이에겐 유치원 입학시험과 면접 준비를 도와줄 개인교사가 붙는다. 4세 아이는 유치원 방과 후 프랑스어, 중국어, 영어, 요리, 골프, 테니스, 성악 등 각종 ‘사교육’을 받느라 놀 시간이 없어 노는 방법도 잘 모르기 때문에 놀이 지도사가 따로 또 붙는다. 엄마들이 학교나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올 때 입을 옷을 구매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의상 상담사도 있다. 공간은 드넓고 천장도 높아 바운시캐슬을 통째로 들여놓을 수 있는 아파트에서, 5천 달러(약 600만 원)쯤은 우습게 들어 가는 생일잔치에서, 하다못해 평일 놀이터에서도, 엄마들은 아찔하게 높은 하이힐을 신고 숨막히게 멋진 제이멘델이나 톰포드 모피를 걸친다.

(후략)

ㅎㅎㅎ 이렇게 재미있는 서문은 처음이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