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발생과 후손숭배

웬즈데이 마틴 저, “파크애비뉴의 영장류“, 사회평론, 2016

p92-96

(전략)

현재의 우리와 달리 초기 인류는 갓 태어나 독립하기까지 오랜 기간을 지체하지 않고 곧장 성체가 되는 과정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것이 과학 저술가인 칩 월터가 말하듯 ‘약 100만 년 전, 진화의 영향으로 우리 종의 일생 중 영아기와 소년기 사이에 약 6년의 유년기가 추가’되었다. 그 이유는? 수십 년간 전문가들은 인간이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어린 시기에 이런 기술을 익히는 기간이 필요해졌다고 여겼다. 인간다워지는데 필요한 모든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유년기가 엿가락처럼 늘어났다는 것이다. 특별한 존재로서 우리 인류는 특별한 요소, 즉 유년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 이론에는 허점이 있다. 단지 아이들이 불 피우는 법과 유창하게 말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하려고 일정 기간 부모가 부담을 짊어지고, 부모와 의존적인 신생아와 무리 전체가 위험을 감수 해야 했다면 아마 인간은 자연선택 과정에서 도태되고 말았을 것이다. 유년기 발생의 진짜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학자들은 인간의 유년기가 항상 현재의 유년기와 같았다는 기존의 가정을 버려야 했다. 원래는 놀면서 배우는 시기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유년기는 아이가 아닌 어른에게 유익한 진화였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번식기의 성인이 번식에 따르는 부담을 덜고 다시 번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유년기가 생겼다는 가설이 유일하게 이치에 맞는다. 배리 보긴, 크리스틴 호크스Kristen Hawkes, 앤 젤러 등의 인류학자들은 아이들이 도우미이자 애보개 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아이들의 도움으로 어미가 휴식과 영양을 취하여 다시 양육과 출산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협력적 양육자’로 진화하여 사람 속의 다른 종들과 달리 번성하는데 기여한 것은 남성 파트너가 아닌 아이들로, 유년기는 놀이가 아닌 노동의 시기였다.

동시대 인류의 생활상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자녀는 일곱 살만 되어도 가정에 큰 보탬이 된다. 청소, 요리, 빨래, 불 피우기 같은 집안일에 가축 돌보기와 장사까지 하지만, 주로 하는 일은 친동생과 사촌동생들을 돌보는 것이다. UCLA 의 인류학자 토머스 바이스너Thomas S. Weisner는 전 세계 186개 사회를 조사하여 대부분의 사회에서 어린아이들을 주로 곁에서 돌보는 인물은 엄마가 아니라 손위 형제자매라는 것을 밝혀냈다. 다양한 연령의 이들로 구성된 무리 안에서 이들은 서로 돕고 돌보며, 어른의 일을 거들고 관찰하면서 배운 기술을 공유하고 흡수한다.

이러한 질서는 특히 아동이 할 수 있는 수준의 비교적 단순한 기술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 환경에서 모두에게 유익하다. 예를 들어, 멕시코의 마야 전통마을에서는 주로 이들이 집안일을 하고 시장 좌판을 꾸린다. 인류학자 캐런 크레이머Karen Kramer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런 아이들은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숙달하기 때문에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고, 그 부모들도 서구 산업사회의 부모들 같은 스트레스•우울감•피로를 호소하지 않는다고 한다. 서아프리카의 아이들은 세 살만 되어도 야무지게 제 몫을 해내기 때문에 ‘자식이 있으면 절대 가난해지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자녀는 자산이다. 그만큼 사랑받고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런 문화권에서 아이들은 실질적인 기여를 통해 가정에 진정한 기쁨을 안긴다. 아이들 덕에 부모는 풍요로워진다.

그러나 서구 산업사회는 유년기의 역할을 뒤집어놓았다. 서구 사회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거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보살피고 아껴줄 뿐이다. 서구사회의 아이들은 형제자매와 사촌들로 이루어진 혼합연령집단 안에서 풍부한 어휘력과 실용적인 기술을 자연스럽게 익히는 게 아니라 전문기관의 교육을 (어떤 아이들은 두 돌 때부터) 받는다.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 (저출산시대에 가장 효율적으로 아이들 무리를 형성하는 방법) 그리고 친족이 아니며 진심으로 아이들을 위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어른 즉 교사들과 함께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갇히게 된다. 온종일 같이 어울리기만 해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손위 형제자매나 사촌들은 물론 없고, 학교 이외의 사회에서도 격리된 채, 아이들의 학습은 노동 집약적인 양자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그래서 엄마가 “엄마, 엄마, 엄마” 그리고 “아빠, 아빠, 아빠”를 한없이 반복해 말해줘야 아이 말문이 트일까 말까다). 이것도 일례에 불과하다. 현대 서구사회에서는 자녀라는 존재가 곧 부모의 일거리다. 아이가 부모를 돕기보다는 부모의 삶 자체가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부모는 이를 수시로 체감할 수 있다. 아이 방 침대를 정돈할 때나 아이에게 맞춰 특별 영앙식을 먹이고 뒷정리를 할 때, 혹은 그런 일에 돈을 쓸 때마다.

메러디스 스몰은 지질학적 현 시기인 인류세의 아이들이 ‘더없이 소중하지만 쓸모없다’는 유명한 표현을 남겼다. 서구사회 부모들의 자식 사랑은 유별나다. 다른 문화권의 조상숭배처럼 서구사회는 ‘후손숭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아이들을 끔찍이 아낀다. 그러나 동시에, 아이를 키우느라 돈이 무지하게 많이 들고 기운도 남아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사실 괜한 불평은 아니다. 실제로 아이들의 생활은 무위도식에 가까우니까. 이렇게 진화상의 질서가 반전되면서, 엄마들의 생태적•경제적•사회적 환경은 특이한 형태를 띠게 된다. 유년기가 속 편하고 한가한 시기라는 개념이 현대 서구사회의 풍족함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엄마가 유일하진 않더라도 주된 양육자 겸 보호자여야 하며 유년기 내내 아이의 생존뿐 아니라 행복까지, 심지어 아이의 아이까지 평생토록 책임져야 한다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유년기의 변화와 더불어 모성도 변화하여 이제 과거나 다른 지역과는 사실상 완전히 달라졌다.

음.. 왠지 서구 이야기가 아닌 듯 한데…? ㅋ

저자가 연구결과의 레퍼런스를 전혀 달아놓지 않아 언급한 연구들의 출처를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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