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Schieffelin Claytor

마고 리 셰털리 저/고정아 역, “히든 피겨스“, 동아엠엔비, 2017

캐서린은 1933년에 열다섯 살의 나이로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학에 입학했고, 뛰어난 고등학교 성적 덕분에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그 대학의 강력한 총장 존 W. 데이비스John W. Davis 박사는 W.E.B. 듀보이스, 부커 T. 워싱턴과 함께 미국 흑인의 발전을 위한 논의를 이끈 흑인 지도자였다.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학은 규모도 영향력도 햄프턴이나 하워드, 피스크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학계의 평판은 견실했다. 데이비스는 흑인 학계의 스타들을 열심히 찾아다녔고, 1920년대 초에는 듀보이스에 이어 17년 만에 하버드 대학 역사학 박사가 된 카터 G. 우드슨이 대학의 학생과장 자리를 맡았다. MIT 출신인 제임스 C. 에번스James C. Evans는 공학부를 이끌다가 1942년 국방부의 민간 참모로 갔다.

수학과 교수 가운데에는 윌리엄 월드런 시플린 클레이터William Waldron Shieffelin Claytor가 있었다. 갈색 피부에 큰 눈과 긴 속눈썹으로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클레이터는 27세의 나이에 라흐마니노프를 눈부시게 연주하고, 테니스 실력도 선수 뺨치는 수준이었다. 그는 스포츠카와 개인 비행기를 소유했는데, 한 번은 비행기를 몰고 존 W. 데이비스 박사가 사는 총장 공관 위를 너무 낮게 날다가 바퀴로 지붕을 긁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수학 전공자들은 노퍽 출신인 클레이터 박사가 “시골” 억양으로 복잡한 수학 문제들을 척척 증명해 내는 데 감탄했다.

클레이터의 거침없는 태도는 학생들을 겁먹게 했다. 그들은 한 손으로 칠판에 수식을 맹렬하게 적고, 다른 손으로는 그것을 역시 맹렬하게 지워 나가는 클레이터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는 학생들의 어리둥절한 얼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바쁘게 넘나들었다. 하지만 진지한 얼굴에 안경을 쓴 곱슬머리 캐서린은 학과에 개설된 수학 과목들을 금방금방 해치웠고, 클레이터는 캐서린만을 위한 고급 과목들을 개설했다.

“자네에게는 연구 수학자로 대성할 자질이 있어.” 캐서린이 2학년을 마쳤을 때 클레이터 박사가 17세의 스타 학부생에게 말했다. “내가 자네를 도와주겠네.”

클레이터는 1929년에 하워드 대학 수학과를 우등 졸업했고, 도로시 본처럼 그 학교에 신설되는 수학 석사 과정에 등록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더들리 웰던 우다드 학장은 클레이터의 논문을 지도하고, 그에게 자신처럼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것을 추천했다. 점집합 위상학에 대한 클레이터의 논문은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수진을 기쁘게 했고, 수학계에서 그 분야의 중대한 진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명석하고 야심찬 클레이터는 미국 최고 수학과들의 교직 초빙을 기다렸지만, 그를 초빙한 곳은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학이 유일했다. “과학 분야의 공부를 한 젊은 유색인이 갈 곳은 대부분 남부의 흑인대학들뿐이다”라고 W.E.B. 듀보이스는 1939년에 말했다. “남부의 (백인) 도서관, 박물관, 연구소, 과학관은 흑인 연구자들에게는 문이 완전히 닫혀 있거나 부분적으로, 그것도 굴욕적인 조건으로 살짝 열려 있을 뿐이다.” 하지만 흑인 대학의 사정이 대체로 그렇듯이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의 교수직 역시 “과중한 수업 부담, 학계의 고립, 과학 도서관 부재, 학술회의 참가 기회 박탈”이 내포된 자리였다.

학자로서의 실망을 자신의 높은 기준도 척척 따라오는 뛰어난 학생을 통해 보상받으려는 듯, 클레이터는 캐서린이 불리한 여건을 딛고 수학 연구 분야에서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 분야에서 흑인 여자의 전망이란 암담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만약 도로시 본이 하워드 대학 대학원에 입학했다면 그녀는 아마 클레이터의 유일한 여자 동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석사 학위를 딴다 해도 졸업 후의 진로란 교직을 빼면 거의 없었다. 1930년에 직업적 수학자 가운데 여자는 100명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고용주들은 수학 학위가 있는 아일랜드 여자나 유대인 여자를 대놓고 차별했다. 그런 상황에서 흑인 여자가 그 분야에서 일을 찾을 확률은 0에 가까웠다.

“그러면 일자리는 어디서 구하나요?” 캐서린이 물었다.
“그게 자네의 문제가 될 거야.” 클레이터가 대답했다.

William Waldron Shieffelin Claytor가 누구인지 검색해봤는데, 위키피디아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가 활약한 당대에는 흑인 수학자로서 꽤 이름을 날린 사람 같다. 업적을 짧게 설명하는 웹사이트[1]는 있는데, 전공은 토폴로지 쪽인 것 같다. Genealogy Project[2]에도 있다.

당대는 천재였을지 몰라도 그리 눈에 띄는 업적은 못 남긴 듯한데, 위 일화를 보니 엄청 무책임한 사람인 듯 하다-_- 역시 문제는 일자리[3]인가-_-

 


[1] http://www.math.buffalo.edu/mad/PEEPS/claytor_wschieffelin.html
[2] https://www.genealogy.math.ndsu.nodak.edu/id.php?id=359
[3] 내 백과사전 수학의 쓸모: 청년 수학자와의 대화 2017년 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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