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소말리아의 화폐유통

Fiat currency란 가치가 있는 어떤 실물과의 교환이 보증되어 있지 않는 화폐인데, 대부분의 현대적 화폐가 이에 해당된다. 과거 닉슨의 태환 정지 이전에는 달러화가 금의 지급을 보증하는 Representative money였으나, 현재는 fiat money가 된다.

이러한 fiat money가 (즉,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물건이) 어째서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거시경제학 이론 중의 하나로 chartal theory라는 게 있다고 한다. 화폐의 가치는 정부가 세금 징수 등 국가의 직접적 경제활동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국가 권력에 의해 창출된다는 주장인데, 근래 비트코인이 등장하면서 이 주장은 아무래도 망한 듯-_-

서론이 길었는데, 해커뉴스[1]에서 흥미로운 글[2]이 링크되어 있어 포스팅한다. 처음 보는 블로그지만, 재미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참고로 중간에 tl;dr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뭔 말인가 했더니만 ‘너무 길어서 안 읽었음(too long; don’t read)‘ 의 약자라고 한다-_- 인터넷 슬랭 따라가기 힘들군-_-

소말리아 정부가 25년만에 처음으로 법정화폐를 유통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모양[3,4,5]인데, 정부가 기능을 정지한 이래로 지난 25년간 유통되어 온 소말리아 실링은 중앙은행이 없는 ‘Orphaned currency’였다고 한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유통되는 지폐의 95%는 위조지폐인데[5], 누구나 진짜인지 위폐인지를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조잡하지만, 진짜 지폐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왜 그런가 싶어서 글[2]을 자세히 보니 위조지폐를 발행하는데 드는 비용(잉크+종이값+인쇄비용)이 그 화폐로 살 수 있는 실물가격과 대충 비슷한 듯-_- 통화량이 위조지폐의 공급으로 조절되고 있다니, 경제학에서 이보다 더 기묘한 사례도 없을 것 같다.

과거에 이야기했던 마리아 테레지아 은화의 사례[6]처럼 이 소말리아 실링의 사례도 chartal theory에 대한 반론으로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ㅋ 1000 소말리아 실링은 1991년에 대략 미국달러로 30센트에서 2008년에 3센트정도로 하락했으나, 그 이후로는 purchasing power가 거의 안정된 가치를 유지해왔다고 한다.[7]

뭐 여하간 중앙은행의 통제 없이 자생적으로 화폐경제시스템이 유지되는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이번 달 이코노미인사이트지에 대안적 자본주의 시스템이 시행되고 있는 사례를 연속적으로 소개하는 기사[8,9,10]가 실려있던데, 아나키스트들이 꿈꾸는 중앙집권화된 권력에서 벗어나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하는 각 지방 공동체간의 느슨한 연합세력화된 사회구조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론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공상이 든다.

 


2017.8.27
비트코인이 돈이냐 아니냐에 대한 해커뉴스 사람들의 논쟁[11]을 보니 이 글이 생각나는구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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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0

수수께끼의 독립 국가 소말릴란드 | 걸작 논픽션 16
다카노 히데유키 (지은이),신창훈,우상규 (옮긴이) 글항아리 2019-03-08

pp240-241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서는 와이얍의 친구인 정보국장 아스칼이 보내준 비자가 있어 별 탈 없이 입국이 가능했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 옆에는 환전소가 있었다. 외국인은 무조건 20달러를 환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달러를 내밀자 붉은색과 황색 돈다발을 던져주었다. 소말리아 실링이었다. 일각에서는 현 소말리아를 ‘경제학 실험실’이라고 부르고 있다. 경제학의 상식을 뛰어넘는 현상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소말리아 실링이다. 구소말리아 시대에 발행된 이 화폐는 20년간 중앙은행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공식 통화로서 유통되고 있다. 호텔 숙박비라든가 자동차를 구입할 때는 미 달러화가 사용되지만 시장 같은 데서 달러는 너무 큰돈이다. 한 때는 이웃 나라 케냐와 에티오피아 화폐가 잠깐 사용된 적이 있는데 결국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폐기되고 누구에게나 친숙한 실링으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무정부 상태가 되어 중앙은행이 없어진 뒤로는 실링화의 인플레이션 비율이 떨어져 더욱 안정을 되찾았다고 한다. 화폐를 새로 찍어낼 중앙은행이 없기 때문이다. 구소말리아 시절 재정 부족에 시달리던 정부는 군대와 경찰의 급여를 지불하기 위해 화폐를 마구 찍어댔고, 결국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하지만 지금은 신권을 발행할 주체가 없어졌다. 대부분의 사람이 20년도 더 된 화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너덜너덜해진 화폐는 버려지기 때문에 화폐 수는 줄어들고 늘어나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적정 수준의 물가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실링화는 정부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인접국의 통화보다 더 강세를 띠게 됐다. 지금은 에티오피아 내 소말리아 거주지역에서도 사용되고 있고, 케냐 상인들이 재테크를 위해 소말리아로 들어와 실링화를 사들이는 진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즉 무정부 상태가 된 이후 실링화가 안정된 통화가 되어 경제학의 상식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 1996년 누군지는 확실치 않으나 비즈니스를 하는 자들이 어딘가에서 실링화를 찍어 소말리아에 대량으로 들고 들어온 적이 있다고 한다. 지금도 발행 연도가 1996년으로 인쇄된 화폐가 발견되고 있다. 그것을 위폐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 실링화 가치가 약간 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로는 애초에 가치가 없는 실링화를 찍어내려는 시도 자체가 없어 방치된 채 현재의 안정적인 상태까지 왔다.- 지은이

저자의 소말리아 내 자치지역인 푼틀란드에서의 체험담이다. 본 시점이 10년 전인 2009년이라서 지금과 거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신박한 현상인 듯 하다. 인접한 소말릴란드와는 좀 상황이 다른 듯 하다.[12]

 


[1] Bringing back the Somali shilling (hacker news)
[2] Bringing back the Somali shilling (jpkoning.blogspot.kr)
[3] quartz Somalia is a leader in mobile money but still wants to print its first cash notes in 25 years February 22, 2017
[4] 블룸버그 Somalia Intends to Print Its Own Currency by Early Next Year 2016년 5월 27일 오후 10:19 GMT+9
[5] financial times Somalia to print first banknotes in 25 years MARCH 8, 2017
[6] 내 백과사전 마리아 테레지아 은화 Maria Theresa thaler 2015년 5월 7일
[7] Luther, William J., The Monetary Mechanism of Stateless Somalia (April 28, 2012). Available at SSRN: https://ssrn.com/abstract=2047494 or http://dx.doi.org/10.2139/ssrn.2047494
[8] 이코노미인사이트 공존 자본주의 실험, 시간화폐 공동체 2017년 05월 01일 (월)
[9] 이코노미인사이트 전세계 20여 개국 다양한 형태로 시도 2017년 05월 01일 (월)
[10] 이코노미인사이트 병원에 ‘두루’ 내고 시장에선 ‘아리’ 쓴다 2017년 05월 01일 (월)
[11] Bitcoin Energy Consumption Index (hacker news)
[12] 내 백과사전 소말릴란드 하르게이사 중앙시장의 환전가 풍경 2019년 10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