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주목받는 법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저/문수민 역, “카오스 멍키“, 비즈페이퍼, 2017

스타트업에게 언론의 관심은 섹스와 같다. 좋은 것 그리고 더욱 좋은 것, 이 둘 뿐이다. 창업자라면 언론에 철저히 외면당하느니 공공장소에서 동성애, 소아성애, 수간으로 체포당해서 기사거리가 되는 편이 낫다고 여겨야 한다. 당시 우리가 언론에서 받은 관심은 전무했다. 초기 스타트업은 내용물뿐 아니라 포장도 중요하다. 이제 뉴스거리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었다.

친구들이 퇴근한 뒤, 나는 쓰레기만 가득한 텅 빈 원룸에 혼자 남았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위층에 사는 시끌벅적한 인도인들이 여는 이유 모를 파티 소리뿐이었다. 내 생각에 아마도 포르노영화를 보는 파티였지 싶다. 내가 십대 시절 가봤던 비슷한 파티처럼, 처음에는 모두들 소리를 치고 발을 구르다가 갑자기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에 잠긴 채 흠집이 난 원목 바닥 위를 서성였다. 애드그로크의 이름으로 처음 포스팅할 때 내가 건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상대는 뭘까? 뉴요커들의 폭발하는 화산 같은 자부심만큼 찔러보기 좋은 주제가 어디 있겠는가! 스타트업의 신이 미소짓고 있었다.

배경 설명을 좀 해야겠다. 전날 밤 저녁식사에서 론 콘웨이가 뉴욕의 스타트업계를 보며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레이엄도 그에 관해 몇 마디 했다. 골드먼삭스에서 보냈던 시절을 상기하며, 나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왜 스타트업의 터전이 될 수 없는지 생각해보았다. 벤처캐피털리스트가 없고, 뭔가 결과물을 만들려는 사람보다는 사기꾼이 많고, 월가가 최고의 인재를 모조리 빼가버린다는 것, 내가 스타트업을 차리러 월가를 떠난다고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지었던 비웃는 표정. 뉴욕이 스타트업을 위한 풍요로운 터전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뉴욕에서 살거나 일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레이엄은 천재적 구루였지만, 많은 천재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상황을 터무니없이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내 뮤즈는 광적으로 귓가에 아이디어를 속삭여댔고,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남들의 명예를 후려치는 과도한 일반화, 재미있는 일화와 적절한 각주가 이어졌다. 친구들이 집에 간 뒤 이틀 밤에 걸쳐 타이핑을 해댄 결과, 나는 글을 완성했다.

일부를 소개해둔다.

개방형 대 폐쇄형 소스

뉴욕의 경제는 정보의 독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월가의 은행은 자사가 거래하는 제품의 시장 흐름에 대한 내부 정보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거래를 계속해나갈 수 있다. 출판에이전트는 출판사로의 좁은 문을 여는 열쇠를 손에 쥔 채 수많은 작가 지망생을 줄 세워둔다. 부동산중개인은 임대차계약서에 서명할 때마다 15퍼센트의 수수료를 챙긴다(다시 말하지만, 매매가 아니라 임대다). 비어 있는 아파트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것만으로 2개월 치 봉급에 해당하는 금액(상환선 5,000달러)을 챙기는 것이다.

뉴욕에서는 이런 독점현상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부동산 알선업자에게 두 달 치 봉급을 내지 않는다. 그냥 크레이그리스트를 만들어 뚜쟁이의 존재이유 자체를 말살시킬 뿐이다.

조회수를 늘리기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전 국민이 공감할 만한 폭발적인 밈이 또 없을까?

아!

내 전 고용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흡혈오징어처럼 촉수를 뻗어 미국 전역의 처녀를 겁탈하고 아기들을 굶긴 자본주의의 거대악, 바로 골드먼삭스가 딱이었다. 골드먼삭스를 두들겨 패면 모두들 환호할 터였다. 골드먼삭스 내부의 삶이 어떤지 공개하면 사람들의 호기심이 얼마나 끓어오를지, 골드먼삭스를 비난하면 모두들 얼마나 환호할지 상상해보자. 터부를 공공연히 말하는 것은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구경거리다.

뉴욕의 IT업계와 골드먼삭스에서의 삶, 그것이야말로 (마케팅업계의 용어를 빌리자면) ‘콘텐츠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두 시발점이 될 터였다.

홍보업계에 파다한 신화에 따르면, 어느 요일에 글을 올리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식의 규모와 반향에 따라, 언론의 뉴스는 업계에서 메아리처럼 굴절되어 퍼져나간다. 그래서 글을 올린 다음 메아리가 울려 퍼질 만한 시간이 필요하다(주말은 안 된다). 월요일은 사람들이 여전히 주말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숙취며 시차에 시달리는데다 메일이나 회의 등으로 바쁘기 때문에 너무 이르다. 목요일에는 사람들이 주말에 뭘 할까 생각하기 시작하고, 해피아워 따위를 노리며 술집으로 몰려가느라 빨리 퇴근할 가능성이 높다. 금요일에 새 소식을 알리는 것은 발표하는 게 아니라 소식을 묻어버리는 데 가깝다. 금요일은 사람들을 해고하고 나쁜 수익보고서를 발표하는 날이다.

나는 우리가 터뜨린 폭탄의 폭발음이 인터넷상의 사이보그에서부터 캔자스의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울릴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화요일에 글을 올리기로 했다.

태평양 기준시로 오전 9시, 나는 인터넷의 어느 틈새시장에 접속했다. 바로 ‘해커 뉴스’였다. YC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레딧’과 비슷한 게시판으로, 컴돌이, 분주한 YC 소속 창업자, 욕구불만 상태이면서도 자못 진지한 체하는 ‘사업가 지망생’이 모여드는 기묘한 도가니 같은 곳이었다. 나는 글을 올린 다음 관심을 좀 모으기 위해서 친구들 몇 명에게 ‘추천’을 눌러달라고 부탁했다. 몇 분 만에, 그 글은 해커 뉴스에서 가장 많이 읽은 글이 되었다. 전 세계의 모든 유능(및 무능)한 젊은 IT업계 사람들이 보게 된 것이다. 이어 로버트 스코블이 글을 트윗하면서 문제의 글은 정말 온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로버트 스코블은 IT업계에서는 신비롭고 힘 있는 존재다. 구세대, 아니 IT계의 쥐라기에서 온 듯한 나이 지긋하고 창백한 백인 컴돌이다. 온갖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지인을 만나며 최신 제품을 직접 써보고 평하는 와중에 지속적으로 트위터를 통해 활동하고 있어서, 실리콘밸리의 생태계에 광적인 집착을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공식적으로 그는 당시 무슨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고용되어 있었는데, 그건 스코블의 작은 일면에 불과했다. IT에 관련된 거라면 뭐든 숭배하는 그의 성향은 조금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근본은 좋은 사람처럼 보였고, 실리콘밸리의 주요 선수들 다수가 그의 트윗을 팔로했다. 스코블은 트윗만으로도 스타트업의 명운을 가릴 수 있을 만큼 IT계에서 영향력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우리가 올린 글을 스코블이 트윗한 것이다. 그 자체는 좋은 일이었지만, 공교롭게도 덕분에 우리의 블로그는 먹통이 되었다. 수천 명이 서버에 접속하는 바람에 완전히 다운되고 말았다.

애드그로크 본부에서는 패닉이 벌어졌다.

아지리스와 나는 불안해하며, 블로그의 서버에 로그인하려고 애쓰는 매슈의 등 뒤에 서 있었다. 우리는 단순하게도 아마존 클라우드 컴퓨터 한 대만 빌려서 블로그의 서버로 사용하면서 당시 오줌줄기처럼 빈약하던 일간 페이지 접속을 감당했다. 그런데 갑자기 접속이 폭주해서 CPU와 네트워크 연결에 과부하가 걸린 나머지 매슈가 로그인을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본부에 감도는 침묵 속에서, 세 개의 괄약근이 동시에 죄어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트위터를 새로고침해보니 알림이 계속 쌓여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미친 듯이 리트윗을 하고,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애드그로크닷컴에 접속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관심을 받아도 헛일이었다. 서버가 내 위대한 글의 HTML 버전을 그들에게 보여주지 않아서, 아무도 우리의 웹사이트와 제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폐쇄 시험 단계였으므로 아무도 우리 툴을 써볼 수조차 없었다. 그 글을 올린 것은 실질적으로 우리 제품을 사라고 유도하는 게 아니라 애드그로크라는 회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이 포스트가 이렇게 성공적일 줄은 미처 몰랐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웹사이트에 들르면 제품을 써볼 수 있게끔 준비를 갖춰 두었을 것이다.

젠장, 좆됐다!

마침내 매슈가 원격 블로그 서버에서 명령 프롬프트를 잡아냈다. 느릿느릿 실행할 수 있는 명령어 몇 개를 이용해서 매슈는 재빨리 끌어다 쓸 수 있는 아마존 컴퓨터에 블로그를 복제하고, 소방호스의 물줄기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트래픽을 즉각 다른 새 컴퓨터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엔지니어 중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지닌 매슈는 필요하면 토스터에서도 리눅스를 실행시킬 수 있을 터였다.

내 컴퓨터로 다시 블로그에 접속해서 잘되는지 확인해보았다. 홈페이지가 떠 있었다. 활동을 재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우호적인 트윗에 예절바르게 답하고, 화제가 계속 퍼져나가도록 힘을 실어줄 때였다. 글에는 곧 수십 개, 마침내 수백 개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댓글이 달렸다. 어느 쪽이든 좋았다. 사태가 끝날 무렵, 수천 명이 우리 사이트의 회원으로 가입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당시 떠오르던 클릭 낚시질계의 발행인들은 가장 흥미로운 단락을 낯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베낀 뒤 그 글에 대한 기사를 써서 우리의 홍보에 기댔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20/20(아직도 방송하나?)의 프로듀서도 뉴욕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서 일하는 코트니 컴스탁이라는 포르노배우 같은 이름의 기자가 뉴욕 IT업계에 대해 추가 질문을 하려고 전화를 해왔다(그녀는 이후 골드먼삭스를 다룬 내 글에 관해서도 기사를 썼다). 스톡홀름의 어느 이름 모를 IT 컨퍼런스에서도 나더러 강의를 해달라며 초청했다. 경비도 대준다고 했다. 사람들이 크리스 딕슨 등 뉴욕의 저명한 투자자에게 글을 포워딩해서 평을 청했다. 소셜미디어의 언덕에 애드그로크라는 이름이 울려 퍼졌고, 나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마지막에 나오는 슬림 픽컨스 같은 기분이었다. 즉 원자폭탄 위에 올라타서 거대한 버섯구름을 보려고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고함치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그 전략은 기대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했다. 애드그로크의 트래픽은 피보나치의 토끼들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일일 페이지뷰가 5만을 찍고 있었다. 『애틀랜틱』에 비하면 별것 아닐지 모르지만, 전날까지만 해도 하루에 십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던 스타트업에게는 엄청난 숫자였다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고 싶을 때면 우리의 웹서버 로그를 보면 됐다. 그나마 절반은 애드그로크 팀원이나 가족들이 접속한 거였으니까).

저자 블랙개그와 역자의 번역이 상당히 찰짐.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