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페이스북의 내부 분위기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저/문수민 역, “카오스 멍키“, 비즈페이퍼, 2017

실리콘밸리의 여러 대기업은 본디 엔지니어링을 중시하는 문화를 지니고 있다. 페이스북은 그런 풍조를 한 차원 더 끌어올렸다. 페이스북을 이끄는 것은 엔지니어이며, 코드를 만들어내는 한, 그리고 회사 기물을 (지나치게 자주) 부수지 않는 한, 귀중한 존재로 대접받는다. 파괴적인 해커의 혼은 모든 회사 강령의 지침이 되었다. 페이스북 초창기, 크리스 퍼트넘이라는 어느 조지아 공대 출신 애송이가 페이스북 프로필을 당시 소셜미디어의 대표주자였던 마이스페이스와 비슷하게 바꾸는 바이러스를 만들었다. 그 바이러스는 기승을 부리며 사용자 데이터까지 지워버리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의 공동창업자 더스틴 모스코비츠는 퍼트넘을 FBI에 신고하는 대신 면접을 보게 하고 입사를 제안했다. 이후 그는 페이스북에서 유명하고 에너지 넘치는 엔지니어로 탈바꿈했다. 그 일은 페이스북 특유의 해적다운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를 신속히 해결할 수 있다면 아무도 기존의 법적 윤리나 자격 여하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해커의 에토스가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었다.

그 문화야말로 돈이 있으면 맘껏 즐길 수 있는 도시에 사는 연봉 50만 달러의 스물셋 먹은 애들이 하루 열네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도록 붙들어두는 것이다. 그들은 하루 세 끼를 회사에서 해결하고, 때로는 잠도 자며, 코드를 짜고 검토하고, 페이스북 내부 그룹대화창에서 새 기능에 대해 의견을 달며 살아간다. 페이스북판 ‘승리의 날’이라 할 수 있는 기업공개 당일조차, 광고부는 금요일 저녁 8시까지 바삐 일하는 엔지니어들로 가득했다. 손에 쥔 종이쪽이 현금으로 바뀌고 모두가 엄청난 돈방석에 앉은 그날에도(심지어 엄청난 대박을 냈다고 해도), 사람들은 하나같이 회사에서 코드를 쓰고 있었다.

페이스북에서는 광신도가 세례를 받고 예수를 찾은 날을 기념하듯, 혹은 미국 시민으로 거듭난 이들이 성조기 앞에서 선서한 날을 기념하듯, 입사일을 회사 차원에서 축하해준다. 그 행사는 (진짜로) ‘페이스북 기념일’이라 불리며, 보통사람들이 생일을 축하하듯이 모든 동료가 내 페이스북 페이지에 몰려와 축하해주는 것은 물론, 종종 회사나 동료가 숫자 2와 비슷하게 생긴 거대한 풍선이 달린 화려한 꽃다발을 깜짝 선물 삼아 책상에 보내주기도 한다. 누군가 페이스북을 떠날 때면(대개 풍선이 4나 5로 바뀔 즈음이다), 모두들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행동한다. 마치 존재의 현 차원을 떠나 다른 차원으로 건너가는 것 같은 분위기다(물론 다른 차원이 현 차원보다 더 나으리라고 가정하는 법은 없다). 페이스북에서 맞는 죽음을 기념하는 묘비는 페이스북에 올린 닳고 닳은 사원증 사진이다. 페이스북을 떠나며 유서와 직접 쓴 묘비명도 함께 써넣는 것이 관례다. 그런 글에는 1분도 지나기 전에 수백 건의 ‘좋아요’와 댓글이 달린다.

한편 떠나는 이도 진짜 죽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페이스북을 떠나면 직원에게만 개방된 페이스북 내부 네트워크도 떠나야 한다. 즉 (비밀스러운 회사정보를 포함하여) 회사 내부 게시판에 내가 올렸던 모든 글에 접속할 수 없으며 (당연히 하루 24시간 접속하고 있는) 다른 페이스북 직원 사이에서도 내가 올린 글은 점차 잊힌다. 그리고 바깥세상을 향한 유일한 통로인 페이스북 피드는 거의 방문객이 없을 정도로 갑자기 한산해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나를 전 페이스북 직원 비밀그룹에 초청한다. 퇴사한 직원들이 회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퇴직 후의 연옥 같은 곳이다.

잠시 멈추고 이 일들에 대해 숙고해보자. 호전적인 엔지니어링 문화, 일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분위기, 위대한 목표를 위한 사도와 같은 헌신. 냉소적인 사람들은 저커버그나 여타 고위 경영진이 읊어대는 ‘보다 개방적이고 연결된 세상’ 운운하는 말을 보고 ‘감성적인 헛소리군’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비평가들 또한 신제품이나 파트너십 등을 보며 페이스북이 돈을 벌기 위해서만 그런 일들을 하겠거니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페이스북은 진짜, 진짜, 진짜 돈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닌 진정한 신도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남자, 여자, 아이 들이 페이스북 로고가 담긴 파란 창을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진짜, 진짜, 진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런 열정이 단순한 물욕보다 더 무섭다. 물욕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적당한 가격을 제시하면 사들일 수 있고, 그의 행동은 예측가능하다. 그러나 진정한 광신자는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해도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고, 그의 광기어린 비전이 그와 추종자를 어디로 이끌고 갈지도 알 수 없다.

마크 엘리엇 저커버그와 그가 만들어낸 회사는 바로 그런 곳이다.

2011년 6월, 구글은 언뜻 보기에도 페이스북을 따라한 ‘구글플러스’라는 제품을 내놓았다.

(중략)

구글플러스는 구글이 드디어 페이스북에 주목하고 전력으로 맞서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채용에 관해 협잡을 부리거나 IT 컨퍼런스에서 험담을 하는 것보다 훨씬 위협적이었던 구글의 신제품은 페이스북에 폭탄을 떨어뜨린 듯한 충격을 주었다. 저커버그는 구글플러스 출시를 1961년 소련이 쿠바에 핵무기를 배치하려던 때와 같은 존재적 위협으로 간주했다. 거대한 적이 우리의 영역을 공격해온 것이었고, 저커버그는 적의 공격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저커버그는 ‘락다운lockdown’을 선언했다. 내가 페이스북에 머무는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 락다운이었다. 페이스북에서 잔뼈가 굵은 직원들의 설명을 들어보니 락다운은 페이스북 초기에 볼 수 있었던 ‘전시상태 선언’으로, 회사가 경쟁업체나 신기술로 인한 위협에 맞닥뜨렸을 때 아무도 회사 건물을 떠날 수 없도록 하는 조치라고 했다.

어떻게 공식적으로 락다운을 선포했느냐고? 구글플러스가 출시된 날 오후 1시 45분, 전 직원은 이메일을 받았다. 저커버그의 유리방 주변으로 모이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정확하게는 락다운 표지판 주변에 모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것은 유리방 위쪽에 설치되어 있는 네온사인으로, 고속도로변 모텔의 ‘빈 방 없음’ 표지판과 닮아 있었다.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들자 표지판에 불이 들어와서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칠지 암시해주었다.

저커버그는 대체로 연설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는 내용만을 중시하며 언어를 분석하는 데 익숙한 사람 특유의 빠르고 짧은 말투로 말했다. 그의 두뇌는 매우 기민한 속도로 움직였으므로 수사적 표현을 곁들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동시에 네 대는 기본으로 모니터에 코드를 띄워두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컴돌이식 말투였다. 그의 태도는 모여든 사람들과는 달리 초연했지만, 그럼에도 거의 정신이상자를 방불케 하는 강렬한 눈빛은 인상적이었다.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애잔한 직원 등을 포함, 상대방의 마음을 마구 뒤흔들어놓고 무기력하게 느끼게 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가 『포천』지나 『타임』지 표지에서 보이는 바로 그 눈빛. 그 눈빛에 오싹한 페르소나를 덧입히기란 어렵지 않다. 페이스북의 저의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편집증의 절반 정도는, 아마도 그리 좋지 못한 그의 첫인상과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잘못된 캐릭터 설정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 저커버그는 위대한 자질이 명료하게 드러나는 카리스마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그런 순간에는 놀랍기 그지없었다.

2011년의 락다운 연설은 그런 순간은 아니었다. 저커버그는 경영진이 앉아 있는 책상 옆의 개방된 공간에 서서, 즉석연설을 했다. 페이스북의 모든 엔지니어, 디자이너, 제품관리자가 골몰한 얼굴로 그 주변에 모여서 있었다. 마치 장군이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연설하는 모습을 방불케 했다.

저커버그는 이제 사용자를 놓고 구글과 벌이는 경쟁이 직접적인 제로섬 양상을 띨 거라고 선언했다. 구글이 경쟁 제품을 내놓았으니 이제 한쪽에서 사용자를 얻으면 다른 한쪽이 잃게 되는 게임이 벌어진 것이다. 전 세계의 사용자가 페이스북 대 구글판 페이스북을 시험해보고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지 결정하는 동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임무는 바로 우리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저커버그는 새로이 부상한 경쟁자를 감안해서 재고해볼 만한 제품 변화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언급했다. 하지만 진짜 핵심은 안정성을 높이고, 풍요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고, 사이트의 능률을 제고하게끔 모두의 사기를 북돋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회사를 지배하는 만트라가 완벽보다 완성이 낫다이자 완벽은 선의 적이다였으니만큼, 저커버그의 말은 노선 변경을 의미했다. 신제품을 출시한다는 동기에 밀려 등한시했던 품질을 중시하라는 것이었다. 그건 페이스북이 민망한 버그나 에러를 겪은 뒤 저커버그가 퍼붓곤 했던 귀찮은 잔소리와 비슷해서, 마치 아버지가 방을 치우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평소처럼 단조로운 연설이 되지 않도록, 저커버그는 기어를 바꾸고 하버드와 그 이전 학창시절에 공부했던 고전에서 인용한 표현을 터뜨렸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로마의 웅변가는 모든 연설을 이 말로 끝맺었습니다. ‘카르타고 델렌다 에스트Carthago delenda est! 카르타고는 멸망시켜야 한다!’ 왠지 모르지만 지금 그 말이 떠오릅니다.” 그는 말을 잠시 멈추고 사람들 사이에 웃음의 파도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 말을 남긴 웅변가는 물론 대 카토다. 로마의 원로원 의원이었던 그는 이후 3차 포에니전쟁으로 발전한 싸움에서 로마에 맞선 위대한 도전자 카르타고를 향해 독설을 퍼부으며 파괴하겠다고 부르짖은 장본인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는 주제와 상관없이 모든 연설을 그 구절로 끝맺었다고 한다.

카르타고는 멸망시켜야 한다!

저커버그의 목소리는 아버지 같은 외침에서 어머니 같은 간곡한 어조로 옮겨갔다. 구글이 들이댄 위협을 언급할 때마다 드라마는 더욱 극적으로 변해갔다. 연설은 우레 같은 함성과 박수로 끝났다. 모두들 필요하다면 폴란드라도 침공할 태세로 그곳을 떠났다. 멋진 퍼포먼스였다. 카르타고는 멸망시켜야 한다!

(중략)

카르타고 포스터는 즉시 사내 곳곳에 나붙었고, 붙자마자 사람들이 홈쳐갔다. 카페가 주말 내내 열 것이라는 공지도 돌았다. 직원 사이에서는 팰로앨토와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하는 셔틀버스를 주말에도 운행해달라는 진지한 제안도 나왔다. 그런 정책은 페이스북을 주 7일 근무 기업으로 만드는 셈이었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직원은 직무를 수행하고 있어야 했다. 가족이 있는 소수의 직원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페이스북은 직원 가족도 주말에 회사를 방문해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적어도 아이들이 주말 오후에 아빠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정말 대부분이 아빠였다). 영국인 트레이더(본인 주 : 저자는 자신의 부인을 이렇게 부름)와 조이가 놀러 왔고, 그 밖의 다른 가족도 많았다. 로고가 박힌 후드티를 입은 페이스북 직원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전 한 시간 동안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페이스북의 내부 그룹들이 떨쳐 일어나 구글플러스의 모든 요소를 해부했다. 구글플러스가 출시된 첫날, 나는 폴 애덤스라는 광고부 제품관리자가 저커버그 및 고위 경영진 몇 명과 작은 회의실에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페이스북으로 옮겨오기 전, 폴이 구글플러스의 제품관리자 중 하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제 제품이 출시되었으므로 그는 더 이상 구글의 비밀유지조항에 매이지 않게 되었고, 페이스북은 그를 불러 구글플러스를 이끄는 리더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페이스북은 농담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건 전면전이었다.

나는 정찰을 좀 해보기로 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출근길에 나는 101번 도로에서 펠로앨토 방향 출구를 지나 마운틴뷰로 향했다. 그리고 해안선을 따라 점점 확장 중인 구글 캠퍼스로 들어섰다. 다양한 색의 구글 로고가 도처에 보였고, 구글 색으로 칠한 자전거가 정원에 늘어서 있었다. 전에 구글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으므로 나는 엔지니어링 동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그곳에 가서 주차장을 살펴보았다.

그곳은 비어 있었다. 완전히.

흥미로웠다.

나는 101번 도로를 타고 페이스북으로 향했다.

캘리포니아 가의 페이스북 본사에 도착한 나는 주차할 곳을 찾아 헤매야 했다. 주차장은 만차 상태였다.

어느 회사가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는지는 명확했다.

카르타고는 멸망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