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 카를로 로벨리의 존재론적 물리학 여행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 카를로 로벨리의 존재론적 물리학 여행
카를로 로벨리(저자) | 김정훈(역자) | 이중원(감수) | 쌤앤파커스 | 2018-04-09 | 원제 La realta non e come ci appare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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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Lisa Randall 선생이 카를로 로벨리 선생의 이 책을 열라게 혹평했다는 이야기[1]를 했는데, 이 책이 설마 역서로 나올 줄은 몰랐다. ㅎㅎㅎ 혹시 전자책으로 나올까 싶어서 두 달 정도 기다려봤는데, 안 나오길래 하는 수 없이 종이책으로 구입하였다. ㅋ

원제는 La realtà non è come ci appare인데, 역자가 원저와 영문 번역서인 Reality is Not What It Seems를 참고했다고 한다. 책의 맨 뒤에 있는 참고서적 목록에, 한국어 번역판이 있는 것들은 번역판 제목도 같이 붙어 있다. 나름 역자의 품이 꽤 들어간 듯하여 추가점을 주고 싶다. ㅎㅎㅎ

일전[1]에도 이야기했지만,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일하는 수학적 프레임워크를 시도하는 몇 가지 방법론이 있는데, 현재 이론물리학계의 대세는 끈이론이라고 알고 있다. 로벨리 선생은 고리 양자 중력파(?)이므로, 이론물리학계의 대세인 끈이론파(?)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이론적 스탠스를 가진 사람이다. 끈이론에 관한 대중적 저서는 꽤 있는데 비해, 고리 양자 중력을 소개하는 대중서는 상대적으로 적다. 고리 양자 중력을 소개하는 대중서 중에 리 스몰린 선생이 쓴 ‘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2]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내용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_- 물론 이 책[2]은 뒤쪽 참고서적 목록에도 있다.

책의 앞부분 절반 정도는 물리학사에 대한 내용으로, 물리학사에 대해 웬만큼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이미 거진 알고 있는 내용일 듯 하다. 고리 양자 중력이야기는 p199의 네 번째 강의부터 슬슬 발동이 걸리는데, 아무래도 현재까지 LHC에서 초대칭 입자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끈이론파 사람들이 느끼는 곤혹스러움[3]을 약올리는(?) 듯한 내용도 살짝(p211) 나온다. ㅋㅋㅋㅋ 물론 고리양자 중력이론에는 초대칭 입자가 필요없다. 일전에 arXiv의 기괴한 논문들 이야기[4]에서 나온 끈이론가와의 대화[5]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ㅎㅎ

Randall 선생이 언급[1]한 10120 이야기는 p229에 등장한다. 뭐 앞부분에서 면적이야기를 쭉 했으니 면적비라고 해석하는 것이 정당할 듯. Randall 선생이 좀 너무한 감이 있다. ㅋ

p230에 아르키메데스의 모래알 계산 이야기가 나오는데, 일전[6]에도 이야기 했지만 아르키메데스의 생각이 왜 위대한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p232

양자중력은 모래알 계산의 탐구를 이어가는 많은 길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우주를 이루고 있는 공간의 알갱이를 세고 있습니다. 광대한 우주이지만, 유한합니다.

오직 우리의 무지만이 무한할 뿐입니다.

인상적인 이 부분은 장자의 양생주편[7]이 생각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근데 이 이후로 책의 가장 뒷부분에 정보 이론 이야기는 왜 한 건지, 저자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여하간 꼴랑 이 책을 읽고 고리 양자 중력을 눈곱만큼이라도 이해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알게 된 게 있다면 로벨리 선생이 글을 잘 쓴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ㅋ 단테와 세익스피어, 물리학사를 넘나드는 글솜씨에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일전에 해커뉴스[8]에서 로벨리 선생이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 글[9]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뭐 자세히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_- 뭔가 문과스러운 지식이 많은 물리학자인 듯 하다. ㅋ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전문지식을 전달하려는 모든 책은, 지루하지만 엄밀한 설명재미있지만 부정확한 설명 사이의 적절한 조화를 취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괜찮게 조화를 이룬 책이라 본다. 물론 재미있으면서도 엄밀한 설명을 성취한다면 최고의 책이 되겠지만, 그런 거 없다-_- 제대로 된 공부는 언제나 고생을 해야 하는 법이다. ㅋ

저자의 다른 대중서 중에 번역된 것으로 ‘모든 순간의 물리학‘[10]이 있는데, 본인은 읽지 않았다. 이 책은 ‘모든 순간의 물리학’보다 출간시점은 늦지만 먼저 쓰여진 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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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Lisa Randall이 Carlo Rovelli의 대중물리학 책을 혹평하다 2017년 3월 9일
[2] 리 스몰린 저/김낙우 역, “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 사이언스북스, 2007
[3] 내 백과사전 Gian Francesco Giudice의 기고글 : 이론 물리학의 위기? 2017년 11월 3일
[4] 내 백과사전 arXiv의 기괴한 논문들 2017년 7월 16일
[5] Carlo Rovelli, “A dialog on quantum gravity”, arXiv:hep-th/0310077
[6] http://zariski.egloos.com/2068347
[7] 내 백과사전 장자 양생주편 중에서 2016년 1월 19일
[8] Physics Needs Philosophy. Philosophy Needs Physics (hacker news)
[9] ROVELLI, Carlo (2018) Physics Needs Philosophy. Philosophy Needs Physics. Foundations of Physics, 48. pp. 481-491. ISSN 0015-9018, DOI:10.1007/s10701-018-0167-y
[10] 카를로 로벨리 저/김현주 역, “모든 순간의 물리학“, 쌤앤파커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