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은여우 길들이기

은여우 길들이기
리 앨런 듀가킨, 류드밀라 트루트 (지은이), 서민아 (옮긴이) | 필로소픽 | 2018-07-13 | 원제 How to Tame a F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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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도킨스 선생의 [1]에서 이 유명한 실험 이야기를 들었을 때[2] 무척 흥미로웠고, 리센코의 악명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따로따로 알고 있던 이 둘이 관련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리센코의 과학자 탄압을 피해 모피제조를 핑게로 실험한 것이라 한다.

Mad Scientist 선생이 이 책의 원서를 소개한 글[3]을 봤었을 때, 역서가 나올까 싶었는데 진짜 나올 줄 몰랐다. ㅎㅎㅎ 투머치 설명충 선생의 책소개[4]도 참고할만 하다.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가둬놓고 몇세대 동안 어릴때부터 인간에게 익숙해지면, 저절로 친해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이 책에 의하면 야생 동물은 그런 공격성이 사라지지 않는 듯 하다-_- ㅎㅎㅎ 가축화가 왜 의문점이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앞부분에 제시되어 있으니 잠시 인용해 본다.

p37-40

동물의 가축화 역사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 가운데 하나는 가축화된 종의 가까운 사촌들을 가축으로 길들이려는 다방면의 노력들이 번번이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얼룩말은 말과 굉장히 가까운 친척으로 간혹 둘 사이에서 새끼가 태어나기도 할 정도다. 수컷 얼룩말과 암컷 말 사이에서 잡종 말 조스zorce가 태어나거나, 수컷 말과 암컷 얼룩말 사이에서 암컷 헤브라hebra가 태어난다. 그러나 말과 유전적 관련성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얼룩말은 성공적으로 가축화 되지 못했다. 19세기 말에 아프리카에서 많은 시도가 있었다. 식민지 당국이 아프리카에 데리고 온 말들은 체체파리가 옮긴 병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지만, 얼룩말은 이런 질병들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얼룩말이 말과 매우 유사하므로 대체 동물로 적당할 거라는 생각은 더할 나위 없이 타당해 보였다. 하지만 얼룩말의 사육을 시도한 사람들은 이내 전혀 예상 밖의 결과를 깨닫게 되었다.

얼룩말은 누우와 영양 곁에서 풀을 뜯어먹고 사는 초식동물이지만 사자, 치타, 표범의 주요 목표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포식 압력이 그들에게 맹렬한 투지를 심어주었다. 얼룩말이 발로 차는 힘은 굉장히 세다. 그런데도 배짱 좋은 일부 사람들은 얼룩말을 타고 달릴 수 있을 정도로 고분고분하게 훈련시키기도 했다. 영국의 대담한 동물학자 월터 로스차일드는 심지어 얼룩말 무리를 런던에 들여와 한동안 네 마리의 얼룩말이 끄는 마차를 몰고 버킹엄 궁까지 달리며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얼룩말들은 사실상의 가축화에는 저항했다. 이처럼 많은 동물이 인간의 통제에 복종하도록 훈련될 수는 있지만, 가축화로 이어지려면 선천적으로 길들도록 유전자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좀처럼 길들지 않는 말이 있는 것처럼 특정한 각각의 동물이 덜 길들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사슴은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한다. 사슴의 가까운 친척들은 가축화 시도에 저마다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 전 세계 수십 종의 사슴 가운데 단언컨대 단 한 종의 사슴 – 순록 – 만이 가축화되었다. 러시아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스칸디나비아의 원주민 사미족에 의해 아마도 두 차례 독립적으로 가축화된 마지막 포유류 가운데 하나인 순록은 북극과 아북극 기후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필수적인 동물이 되었다.24 인간과 오래도록 가장 가까이에서 생활해온 야생 동물에 속하며 대체로 우리에게 공격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밖에 다른 사슴 종들이 가축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특히 흥미롭다. 또한 사슴은 수천 년 동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식량원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우리는 유순한 사슴 무리를 기르고 싶은 동기가 강했다. 그러나 사슴은 일반적으로 신경질적인 동물이며, 새끼들이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되면 공격적으로 될 수 있다. 또 겁을 먹으면 무리지어 우르르 몰려다니기도 한다. 얼룩말과 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슴 역시 가축화를 시작하기에는 길들임을 위한 유전적 변이를 충분히 갖추지 못했을지 모른다.

드미트리는 여우 역시 가축화될 수 있는 또 하나의 가까운 친척으로 밝혀질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가 니나에게 자신의 실험을 도와달라고 부탁할 무렵엔 은여우가 인간들에게 사육된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대부분 조금도 길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은여우는 붉은 여우의 특별한 품종으로, 붉은 여우는 포식자들에 의해 구석으로 몰리지 않는 한 야생에서 특별히 공격적이지 않다. 붉은 여우는 유럽과 미국 근교 지역으로 들어가 작은 개와 고양이를 사냥하며 살지만, 선천적으로 인간과 멀리 떨어져 지내길 선호하며 야생에서는 주로 더 작은 먹잇감을 사냥한다. 잡식동물이라 과일, 딸기류, 풀, 곡물 등도 먹지만 설치류와 작은 새들을 특히 좋아한다. 늑대처럼 무리지어 사냥하지 않으며, 새끼를 낳은 직후부터 새끼들이 혼자 자립할 준비가 될 때까지 부모가 새끼를 보살피는 기간을 제외하면 무리를 이루지 않고 혼자 생활한다. 짝짓기 철마다 새 짝을 찾는 대신 평생 짝짓기를 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지내는 데 아주 능숙해서 밝은 오렌지 빛을 띠는 붉은 여우조차 야생에서 발견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갇혀 지내는 여우들은 이야기가 다르다. 대부분의 여우들은 돌보는 사람이 다가가면 사납게 으르렁대면서 굉장히 공격적이고 이따금 무척 사나울 때도 있다. 우리에 있는 여우를 향해 너무 가까이 손을 내밀다간 자칫 심하게 물어뜯길 위험이 있기 때문에, 니나 소로키나의 코힐라 농장처럼 여우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추장스럽지만 두꺼운 보호 장갑을 착용하는 것이 필수였다.

 


24 K. Roed, O. Flagstad, M. Nieminen, O. Holand, M. Dwyer, N. Rove, and C. Via, “Genetic Analyses Reveal Independent Domestication Origins of Eurasian Reindeer,”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B 275 (2008):1849-1855

개와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무척 흥미롭지만, 동물의 행동에 대한 해석에는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책에서도 짧지만, 동물의 행동이 진짜 인간의 감정과 같은 어떤 것인지, 아니면 감정을 표현하는 것 처럼 보이는 일련의 입력-출력 반응인지에 대한 논쟁이 짧게 언급(p93,p111)된다. 일전의 Frans de Waal선생의 동물행동학에 대한 책[5]에서 좋은 설명이 많이 나와 있으니 참고 바란다. 사회생물학자인 E. O. Wilson의 견해도 잠시 언급(p112)된다. (사회주의는 종을 잘못 선택했다[6]는..-_-)

수십년에 걸쳐 진화실험을 하고 있는 연구자들에게는 경의를 표해야 마땅할 것 같다. 흥미로운 부분은 모두 일전의 글[2]에서 이야기 했고, 좋은 서평[3,4]도 많으니 일독을 권한다. 텍스트의 분량이 많지 않아 하루 정도 집중하면 완독 가능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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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상 이야기 – 생명의 기원을 찾아서, 전면 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옌 웡 (지은이), 이한음 (옮긴이) | 까치 | 2018-01-30 | 원제 The Ancestor’s Tale: A Pilgrimage to the Dawn of Life (2004년)
[2] 내 백과사전 여우의 가축화 2011년 7월 15일
[3] https://www.facebook.com/ …
[4] https://www.facebook.com/ …
[5] 내 백과사전 [서평]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 우리는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한가? 2017년 11월 16일
[6] https://www.facebook.com/galoist/posts/218668165484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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