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조류 인플루엔자 H5N1의 아종 발견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마이크 데이비스 (지은이), 정병선 (옮긴이) | 돌베개 | 2008-01-07 | 원제 The Monster at Our Door: The Global Threat of Avian Flu (2005년)

p60-66

조류 우표가 발행되기 한 달 전인 1997년 3월, 웬룽과 마이포 습지 인근의 한 농장에서 닭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심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Highly Pathogenic Avian Influenza(HPAI) 증상을 보였다. 피트 데이비스가 설명한 것처럼,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는 매우 위험하다. 이 바이러스는 혈류를 타고 확산되면서 모든 조직과 기관을 감염시킨다. 뇌, 위, 폐, 눈 모든 곳에서 과다 출혈이 발생한다. 그러다가 볏에서 발톱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녹아내린다.”3 이 질병이 근처의 가금류 농장 두 곳으로 퍼졌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흔히 그렇듯, 거의 모든 가금류가 죽었다. 홍콩 대학교 연구자들은 이 바이러스가 1959년에 최초로 분리된 아형인 H5N1인 것으로 확인했다. 동물 바이러스학자들이 녀석을 본 것은 단 두 번, 닭 2,000만 마리를 살처분해야 했던 1983년의 펜실베이니아 사태와, 보다 최근인 1991년 영국 칠면조들의 대몰살사태뿐이었다.

소위 ‘가금류 역병’이라고 하는 이 섬뜩한 병이 최초로 기록된 것은 1878년이지만, 1955년까지는 그 병원균의 정체가 인플루엔자 A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캘리포니아와 미네소타의 주요 철새 이동 경로에 걸쳐 있던 가금류 농장에서 병이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지켜본 과학자들은 그것이 오리와 기타 물새류에서 비롯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다른 모든 인플루엔자처럼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도 수수께끼 같은 녀석이다. 녀석은 상이한 국가, 대륙, 반구의 닭과 칠면조 집단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타오른다. 최근까지 녀석은 비교적 드물게만 발생했다. 1959년부터 홍콩에서 갑작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낸 1997년 사이에 모두 15번의 국지적인 발병이 있었다. 이 모든 사례에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는 H5나 H7을 지닌 인플루엔자 아형에 의해 발생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이들 헤마글루티닌에 특별히 중요한 아미노산이 들어 있다고 믿고 있다. 헤마글루티닌의 분할면에 존재하는 이 아미노산이 바이러스가 더 광범위한 조직과, 어쩌면 더 다양한 종을 공략할 수 있게 함으로써 병독성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4 그러나 조류의 이런 슈퍼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심지어 병든 닭을 돌보고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의 대학살 후 청소 작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도 위험하다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 홍콩의 연구자들은 이렇게 강조했다.

“수많은 조류 바이러스의 아형을 실험실에서 직접 인간에게 전이시키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종의 장벽은 뛰어넘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5

농업 당국이 4월까지 남아 있던 병든 닭을 전부 살처분하자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폭넓은 조사와 검사를 수행했지만 신제의 닭 농장과 홍콩의 생가금류 시장에서 더 이상의 H5N1은 발견되지 않았다. 수의학자들은 안도했다. 그런데 세 살 난 남자아이 하나가 5월 중순 주룽의 퀸엘리자베스 병원에 입원했다. 이전까지 매우 건강했던 아이는 갑자기 인후염과 고열, 복부 통증을 호소했다. 아이는 중환자실에서 일급의 간호를 받았지만 상태는 계속 악화 되었고, 결국 5월 21일에 사망했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일련의 증상이 아이의 몸을 가차 없이 망가뜨리는 것을 보고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이러스성 폐렴,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ARDS), 라이 증후군(뇌압이 올라가고 간에 장애가 생겨 혼수상태에 빠지는 병—옮긴이)에 신음하던 아이는 나중에는 신부전과 간부전 상태에 빠졌다. 지역 보건 당국이 사망한 아이의 목에서 나온 분비물을 검사했다. 미지의 특이한 인플루엔자 아형이 발견 되었다. 세계보건기구와 협력하고 있는 네 기관 가운데 두 곳(애틀랜타 질병통제센터런던 국립의학연구소)과 로테르담의 국립 인플루엔자 센터로 6월에 냉동 표본이 전달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플루엔자 전문가들은 홍콩 보건 당국의 경계 태세에 환호를 보낼 만하다. 세계적 수준의 의료진을 갖추고 있는 홍콩은 바이러스 변종들의 종간 전염이 가장 빈번하고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중국 남부 지역 인플루엔자 감시의 파수병이다. 만약 그 아이가 인근 광둥이나 동남아시아의 다른 가난한 나라에서 사망했다면 병원균을 확인하려는 노력이 그렇게 열심히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6 로테르담 연구팀이 가장 먼저 이 치명적 변종의 정체를 밝혀냈다. 데이비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들 연구팀은 7월 내내 홍콩 바이러스를 인간 및 돼지 인플루엔자의 데이터와 대조하는 작업에 매달렸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바이러스는 그 어떤 항혈청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당황한 연구팀은 8월 초 유명한 인플루엔자 권위자 로버트 웹스터의 멤피스 연구소에서 공수해온 H5N1 시약으로 녀석을 검사해보았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완전히 일치했던 것이다.7

네덜란드의 실험 결과는 곧이어 애틀랜타와 런던에서도 재확인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H5N1이 실제로 종의 장벽을 뛰어넘어 홍콩에서 그 아이를 죽였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홍콩의 공중보건 과학자들이 실수로 오염된 표본을 보내왔을 것이라는 설명이 더 그럴듯해 보였다. 그러나 대강 넘겨짚을 일이 아니었다. 네덜란드 연구팀은 물론이고 질병통제센터와 세계보건기구가 홍콩 연구소의 상황을 재점검하기 위해 웹스터를 포함한 전문가들을 파견했다. 그들은 곧 홍콩의 과학자들이 절차를 정확히 지켰음을 확인했다. 오염 같은 것은 없었다. H5N1이 살인자였고, 웹스터가 나중에 확인한 것처럼 녀석은 3월에 닭들을 죽인 변종과 거의 동일했다. 이 조류 바이러스가 해마글루티닌의 미세한 돌연변이—불과 아미노산 3 개의 차이—에 힘입어 인간 세포의 자물쇠를 따고 아이를 감염시켰음이 명백해졌다.8

이것은 패러다임을 바꾸어놓는 엄청난 발견이었다. 이 H5N1은 교과서들이 예언한 재배열형이 아니라 유전자 변이로 약간의 도움을 얻어 인간의 몸에 홰를 튼 조류 바이러스였던 것이다.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H5N1은 불가능해 보였던 종 도약에 성공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녀석이 인간의 폐에서 다른 인간 독감 유전자와 재배열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돼지가 바이러스의 필수 불가결한 중간 매개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매우 치명적인 대유행병이 임박한 것인지도 몰랐다. 홍콩에 모인 세계적인 독감 전문가들은 정확한 감염 경위를 밝혀내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아이가 신제에 위치한 농장이나 동네의 가금류 시장에서 병든 닭과 접촉했을 것이라는 손쉬운 가설은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실제로 연구자들이 가정할 수 있었던 유일한 직접 접촉 경로는 아이가 다니던 보육원에서 기르던 닭과 오리 새끼들이었다. 어린 닭과 오리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은 일이 있기는 했지만, 연구자들이 보육원의 먼지를 수거해 세심하게 조사한 결과 바이러스의 흔적은 전혀 찾아낼 수 없었다. 대규모 혈액 검사도 수행되었다. 친구와 보모 등을 포함해 사망한 아이와 접촉했던 사람들 가운데 소수가 H5N1 항체를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그러나 아이의 직계 가족은 아니었다). 가금류 산업 종사자 5명도 이 바이러스와 접촉했었음을 알려주는 면역학적 증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발병한 사람은 없었다. 그 이상의 실마리는 없었고, 사태는 오리무중에 빠져들었다. 더 이상의 발병 사례도 보고되지 않았다. 아이의 사망은 단순한 사고였을지도 몰랐다. 국제 공조 속에 모였던 전문가들은 본국으로 돌아갔다.

바이러스학자들은 실험실에서 H5N1/97이 보여준 사나운 모습에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녀석은 보통의 독감 변종들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복제됐다. 그것도 보통의 독감 변종들은 살 수 없는 세포들 속에서 말이다. 달걀 속에서 배양하면 달걀이 죽어버린다.〔홍콩의 과학자] 림은 이 바이러스가 에일리언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지아 주 애선스의 수의학 연구자들이 최근에 분리된 인간 변종을 한 가금류 집단에 감염시켰더니 무리 전체가 하루 만에 몰살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엄청난 속도의 살인자를 본 적이 없는 과학자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그들은 곧바로 보호복을 착용하고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했다. 이와 함께 홍콩 바이러스를 연구할 때의 안전 규정에 관한 논쟁이 불붙었다. 적어도 미국의 인플루엔자 진단 실험실들은 이렇게 강력한 바이러스를 연구할 때 갖추어야 할 정교한 대비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생물학적 안전성에 관한 연방 규정은 마치 과학 스릴러의 공포스런 주인공처럼 행동하는 인플루엔자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연방 규정은 2004년에 과학자들이 역유전공학reverse genetic engineering을 활용해 1918년의 괴물을 실험실에서 재창조해낼 가능성도 예견하지 못했다). 대다수의 연구소들은 생물학적 안전성 수준 3플러스나 4를 만족시키는 소수의 실험실에서만 H5N1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몇몇 과학자들은 규제 조치를 무시했다(그들은 나중에 안전 규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이러한 규제의 배경에는 H1N1 바이러스가 1977년에 갑작스럽게 부활했던 사실에 대한 기억이 잠재해 있었다. 1977년 사태는 러시아, 또는 어쩌면 중국의 한 실험실에서 변종이 의도치 않게 유출되면서 야기된 것이 거의 틀림없었다. 그러나 H5N1은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할 것이었다.9

 


3) Davies, Devil’s Flu, p. 2.
4) D. Alexander, “A Review of Avian Influenza in Different Bird Species,” Veterinary Micro biology 74 (2000) : pp. 3-13.
5) K. Shortridge, J. Peiris, and Y. Guan, “The Next Influenza Pandemic: Lessons from Hong Kong,” Journal of Applied Microbiology 94, Symposium Supplement (2003): p. 71S.
6) Rene Snacken et al., “The Next Influenza Pandemic: Lessons from Hong Kong, 1997,” Emerging Infectious Diseases 5, no. 2 (March-April 1999): p. 198.
7) Davies, Devil’s Flu, pp. 8-12. 광범위한 인터뷰와 홍콩 취재를 바탕으로 씌어진 데이비스의 생생한 보고가 지나 콜라타의 오류투성이 이야기 Flu (New York: Farrar, Straus, Ginoax, 1999)보다 유용하다. 질병통제센터의 기록에 과도하게 의존한 이 『뉴욕 타임스』의 과학 기자는 아이가 죽은 날짜를 잘못 기록하고 있으며,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그 아형의 정체를 확인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8) Robert Webster and Alan Hay, “The H5N1 Influenza Outbreak in Hong Kong: A Test of Pandemic Preparedness,” in Nicholson, Webster, and Hay, Textbook, p. 561.
9) Davies, Devil’s Flu, p. 19; Jocelyn Kaiser, “1918 Flu Experiments Spark Concerns About Biosafety,” Science 306 (22 October 2004): p. 591; and Agriculture Research Service, USDA, “Containing the Hong Kong Poultry Flu Outbreak” (December 1998), see http://www.ars.usda.gov .

위에서 주석에 언급한 Flu는 국내에 역서[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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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서평] 독감 2019년 1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