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아시아 조류독감 확산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마이크 데이비스 (지은이), 정병선 (옮긴이) | 돌베개 | 2008-01-07 | 원제 The Monster at Our Door: The Global Threat of Avian Flu (2005년)

p119-125

2003년 가을 내내, 소문과 부인과 음모 속에서 조류 인플루엔자의 귀환이 은폐되었다. 실제로 전염병은 훨씬 더 일찍 시작되었다. (인도네시아는 나중에 H5N1이 8월에 탐지되었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중국 관리들은 “중국 전역의 농장들이 몇 년째 조류독감에 노출되어 있다”는 홍콩 『스탠더드』지의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11 그들은 베트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광시성의 오리들 사이에서 대규모 유행병이 발병했다는 소문을 일축했고, 타이베이의 동물 검역관들이 12월에 푸젠 성에서 밀수된 야생 오리에서 H5N1을 발견했다는 경고를 타이완 측의 정치 공세라고 매도했다. 푸젠성은 2003년 초 2명을 살해한 바이러스의 진원지일 가능성이 높은 곳이었다.12

2004년 1월 영국의 잡지 『뉴 사이언티스트』가 비보도를 전제로 주요 독감 연구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 발병 사태가 1997년 홍콩 사태 이후 중국 남부의 가금류 생산자들이 비밀리에 잘못된 백신 접종(“통제되지 않은 바이러스 진화 실험”)을 한 결과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작은 소란이 빚어졌다. 중국의 사육농들이 닭의 면역력을 강화하기 위해 비활성화 바이러스를 사용함으로써 사실상 H5N1 초변종의 진화를 촉진한 것이었다. 유전자형 Z(genotype Z)라는 이 초변종은 곧 집오리들 사이에서 무증상의 풍토병으로 자리 잡았다. 녀석은 이 안정된 숙주를 바탕으로 직접 접촉과 가금류 밀수, 그리고 어쩌면 야생 조류의 이동을 통해 다른 종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뉴 사이언티스트』에 따르면, “공식적인 은폐 행위와 미심쩍은 사육 방식이 한데 얽히면서 녀석이 유행병으로 바뀔 수 있었다.”13

그러나 중국 당국만 전염병 사태를 은폐한 게 아니었다. 2003년 11월 초 타이 전역의 농장에서 닭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한 농부는 이렇게 설명했다. “닭들이 몸뚱이를 떨기 시작했다. 마치 숨이 막혀 발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입에서는 걸쭉한 침이 흘러나왔다. 약초를 먹여봤지만 소용없었다. 이윽고 닭들의 안색이 검은 초록색으로, 다시 검정색으로 변하더니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14 방콕 출랄롱코른 대학교의 한 수의학자가 죽은 닭에서 H5N1을 발견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타이 축산부는 그의 경고를 묵살했다. (한 반대파 국회의원은 나중에 “정치적 간섭 때문에 학자와 전문가는 모두 입을 다물고 있어야만 했다”고 증언했다.) 걱정이 된 농부가 한 관리에게 죽은 닭들의 시체를 보여 주기도 했다. 그는 닭들이 “아무런 의학적 이유 없이” 죽었다는 말만 들었다.15

이렇게 닭들이 한창 죽어나가던 시점에 이상하게도 닭고기 가공 공장들은 초과 근무를 하고 있었다. 추문이 터지고 난 후 방콕 외곽의 한 공장에서 근무하던 노동조합원들은 『방콕 포스트』에 이렇게 증언했다. 그들의 어조는 분노로 상기되어 있었다. “11월 이전에 우리는 하루 평균 9만 마리의 닭을 처리했다. 그런데 11월부터 1월 23일까지는 하루 평균 13만 마리를 도살해야 했다. 닭을 처리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그 닭들이 병들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장기들이 부어 있었다. 우리는 병의 정체를 몰랐지만, 경영진이 조사를 받기 전에 서둘러 닭들을 처리하고자 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이미 10월부터 〔닭을〕 먹지 않았다.”16

아시아 전역에 둘러쳐진 공식적인 침묵의 장벽이 12월에 걷혔다. 서울 인근의 한 농장에서 닭들이 집단으로 죽어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국의 농업 당국자들은 H5N1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그들은 중국과 타이의 관료들과는 달리 즉시 국제수역사무국에 이 사태를 보고했다. 일주일 후 대량 살처분 계획이 발표되었다. 5개 지방의 닭과 오리에서 새로 감염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한편 베트남에서는 닭뿐만 아니라 아이들마저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가고 있었다. 새해를 맞이하기 직전, 애틀랜타에 있는 질병통제센터의 인플루엔자 전문가 한 명이 하노이의 한 바이러스학자에게서 걱정스러운 이메일을 받았다. 1918년 대유행병의 희생자들 다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바이러스성 폐렴과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으로 환자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하노이의 의사와 그녀의 동료들은 자국의 농업 관료들이 적어도 10월부터 가금류 사이에 H5N1이 간헐적으로 유행했음을 숨겨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17 몇 명이 더 죽고 난 다음인 2004년 1월 5일에야 비로소 베트남의 공중보건 관리들은 다급하게 세계보건기구에 도움을 요청했다. 마닐라의 세계보건기구 지역사무소도 곧 베트남에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며칠 후 홍콩의 과학자들이 유전자형 Z 프랑켄슈타인이 하노이에서 사망한 어린이 3명의 조직 표본에서 발견되었다고 확인했다. 이와 함께 베트남 이 두 지방에서 조류독감이 유행하고 있음을 공식 인정했다. 일본도 야마구치현의 닭에서 H5N1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일본 서부의 발병 사실은 처음에 가금류 회사 임원들-그 가운데 한 명은 나중에 자살했다-에 의해 은폐되었다가 한 직원이 익명으로 정보를 유출한 덕분에 겨우 알려졌다.)18

세계보건기구와 그 수의학 부서, 국제수역사무국, 유엔 식량농업 기구는 관료들과 농업 기업 대변인들이 여러 달 동안 대륙 차원에서 진행 중이던 조류독감 유행을 은폐해왔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 사무총장 자크 디우프는 나무랄 데 없이 억제된 관료적 어법으로 이렇게 말했다. “관할 국가기관과 국제수역사무국 및 기타 국제기구에 이 전염병이 제때 보고되지 않아 문제의 규모가 커졌다.”)19 세계 언론이 점점 더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상황에서 국제기구들은 중국과 타이의 관리들이 계속해서 쏟아내는 안전 확인 발표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특히나 중국은 비밀 엄수와 기만정책이라는 예전 장쩌민 분파의 오웰주의 문화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또 다른 수수께끼의 호흡기 감염증이 2004년 1월 광둥을 휩쓸자, 관리들은 이 사스의 망령을 간단히 박테리아성 폐렴 클라미디아로 치부해버리고 세계 보건기구의 현장 조사마저 불허했다. (회의적인 한 중국인 과학자는 『네이처』에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게 사태의 전부일 수는 없다. 임상적으로 보아 그 질병은 바이러스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조류 인플루엔자도 배제할 수 없다.”)20

한편, 타이에서도 병든 닭들이 도축되어 해외 시장으로 선적되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거짓말이 날조되고 있었다. 농무부 차관 네윈 칫촙은 태연하게 ‘조류콜레라’가 몇 건 발생했다고 밝혔으며, 탁신총리와 각료들은 국민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방송되는 음식 축제에 등장해 타이 식 닭요리를 맛있게 시식했다.”21 차룬 폭판드 그룹의 고위 임원 사라신 비라폴은 언론에 공장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타이에 조류독감은 전혀 없다면서 기자들을 안심시켰다. 방콕 언론이 나중에 보도한 것처럼, 정부는 차룬 폭판드 그룹 및 그밖의 대규모 가금류 생산업자들과 공모해 계약 사육농들을 매수하여 전염병을 은폐하고 있었다. 공식적인 기만 정책으로 시간을 벌 수 있었던 대규모 수출업체들은 그 몇 달의 유예 기간 동안 병든 재고분을 가공 판매하는 동시에 공장을 소독하고 사육장을 격리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소규모 생산자들은 방치된 채 전염병으로 인한 인간적 • 경제적 고통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했다.22

결국 1월 말에 농장의 아이 2명이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어 심하게 앓기 시작했고, 그제야 무소속 국회의원 니룸 피따꽛차라가 이끄는 야당 세력이 탁신 총리를 압박해 H5N1이 가금류 생산 지역을 유린하고 있음을 실토하게 할 수 있었다. 각료들은 즉각 지위가 낮은 지방 관리들에게 거짓말의 책임을 전가했다. 탁신의 대변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은폐처럼 보이는 것은 절차를 오해했기 때문이다. ‘실수’ 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일부 기관이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우리는 상부에 보고되어야 할 각종 정보와 관련해 많은 혼란이 있었음을 확인했다”23

그러자 소규모 생산자들은 크게 항의했다. “정부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대기업들을 구해주었다. 결국 고통받는 것은 우리 소농들이다.”24 방콕의 한 신문은 수코타이 지방의 대규모 생산자와 소규모 생산자의 엇갈린 운명을 대조한 기사를 실었다. 차룬 폭판드 그룹과 기타 재벌들에 ‘통합된’ 영리적 사육농들은 12월에 전염병 발생 소식을 통고받고 담당 관리들로부터 항바이러스 백신을 제공받아 닭을 무사히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소규모 사육농들은 질병과 관련해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으며, 결국 그들이 키우던 닭의 대부분이 죽고 한 농부의 10대 아들까지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사망한 아이의 어머니인 라웽 분롯은 언론에 이렇게 말했다. “병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기만 했어도 아들이 병든 닭에게 가까이 가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내 자식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25

타이의 가금류를 수입하던 나라들도 고의적인 기만 행위에 격노했다. 타이에는 조류독감이 없다는 탁신 총리의 말을 직접 듣고 브뤼셀에 막 돌아왔던 유럽연합 보건위원 데이비드 번이 가장 펄펄 뛰었다. 번은 “모욕감을 느낀다”고 언론에 말했다.26 유럽연합, 일본, 한국은 즉각 타이산 가금류의 수입을 정지했다. 부시 행정부는 탁신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개입을 지지해준 대가로 은폐 공작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11) Bruce Einhom, “China: New Plague, Same Coverup?” Business Week Online (10 February 2004)
12) “Bird Flu Found in Smuggled Duck,” Taipei Times, 1 January 2004.
13) Debora MacKenzie, “Bird Flu Outbreak Started a Year Ago” New Scientist, 28 January 2004.
14) Robin McKie et al., “Warning as Bird Flu Crossover Danger Escalates,” Observer, 12 December 2004.
15) “Thailand and Cambodia Admit Bird Flu,” New Scientist, 23 January 2004에 인용된 상원 위원 Nirun Phitakwatchara 의 말.
16) Bangkok Post (30 January, 5-6 February, and 25 March). Isabelle Delforge, “Thailand: The World’s Kitchen,” Le Monde diplomatique (English edition), July 2004에서 인용.
17) 유엔 식량농업기구 하노이 주재 대표 안톤 리체너는 2004년 2월 베트남의 가금류가 “여러 달 동안” 조류독감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언론에 밝혔다. Keith Bradsher, “Bird Flu Is Back,” New York Times, 30 August 2004.
18) Justin McCurry, “Bird Flu Suicides in Japan,” Guardian, 9 March 2004.
19) Bangkok Post, 7 February 2004에서 인용.
20) David Cyranoski, “Vaccine Sought as Bird Flu Infects Humans,” Nature 422 (6 March 2003).
21) Richard Ehrlich, “Thailand Denies Bird Flu Cover-Up” (26 January 2004), http://www.scoop.co.nz .
22) “Cover-up Began Last Year,” Nation (Bangkok), 23 January 2004; and Manager (2 February 2004), cited in Chanida Chanyapate and Isabelle Delforge, “The Politics of Bird Flu in Thailand” (19 April 2004), http://www.focusweb.org .
23) “Thai PM Admits Mistakes Over Bird Flu” Guardian Unlimited, 28 January 2004.
24) “Thailand’s Poultry Industry Facing Huge Losses from Bird Flu Crisis” (25 January 2004), http://www.eubusiness.com 에 인용된 Sirima Manapomsamrat의 말.
25) “Sukhothai Death: Victims of the Information Gap,” Nation (Bangkok), 2 February 2004.
26) Delforge, “Thailand: The World’s Kitchen” 에 실린 인터뷰.

진짜로 2004년 아시아 조류독감의 원인이 바이러스 진화 실험이라면 초 끔찍하구만. 이거 무슨 영화도 아니고-_-

2 thoughts on “2004년 아시아 조류독감 확산

  1. 전염병의 은폐라니…. 이런 바보같은 짓거리를 해서 문제를 키웠나 보네요. 그나마 한국이 건전한 대응을 했었고.

    • 예, 한국이 잘 대응한 것 같아요. 예전에 메르스로 조금 비난받긴 했지만, 한국이 상대적으로 잘 관리되는 편이 아닌가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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