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별 세수 변화

황금 족쇄 – 금본위제와 대공황, 1919~1939년
배리 아이켄그린 (지은이), 박복영 (옮긴이) | 미지북스 | 2016-12-10 | 원제 Golden Fetters: The Gold Standard and the Great Depression, 1919-1939 (1992년)

p144-149

관리들은 이런 덤불 속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미리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법이 거의 없었다. 런던에서 유행한 이야기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육군, 해군, 수송 및 조달에 관해서는 준비 작업을 마쳤지만, 자금 조달에 관해서는 전쟁이 선포되고서야 비로소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어느 정부도 전쟁에 비용이 얼마나 들지 예측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영국은 해군이 동맹군에 물자를 공급하면서 적군을 봉쇄하면 대규모 상비군은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전쟁 계획을 세웠다. 독일작전참모부는 전투가 아무리 길어도 2년 내에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 큰 비용을 치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각국 정부는 세금 인상을 미뤘다. 세금 인상의 거부는 선전 효과가 있었다. 즉 독일과 프랑스 모두 자신들의 튼튼한 재정 상황을 과시하기 위해 세금 인상을 삼가려고 했다. 1870년의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의 선례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계산에서는 배상금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두 나라 모두 적국이 결국에는 채무와 은행권을 상환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차입이나 통화 발행을 통해 전쟁 자금을 조달했다. 대부분의 전쟁 기간 동안 독일 재무부 장관을 지낸 보수주의 경제학자 카를 헬페리흐는 “평화가 찾아온 뒤, 우리 적들에게 우리가 지불한 전쟁 비용의 청구서를 제시할 것이다”고 말했다.19

따라서 “각국 정부는 신용의 운전대를 꽉 쥐고 있었다.”20 전쟁 첫 해에 영국, 프랑스, 독일의 중앙 정부 지출 중 세금으로 조달된 비중은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표 3.1을 보라). 이 비중은 그 후에 훨씬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체적으로 주요 참전국들이 세금을 통해 경상 지출을 충당한 비율은 3분의 1에도 미치지 않았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세수 확대 노력이 매우 미미했다. 전시 부채의 지불 유예 조항에 따라 도시 임차인과 소작농은 징집되었을 경우 지대 납부를 면제받았는데 이 때문에 지주의 과세 대상 소득이 줄어들었다. 세무 관리들은, 군인 가족은 기소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전쟁 기간은 “황금시대, 세금도 없고 지대도 없고 빚도 갚을 필요가 없는 멋진 시간이었기에, 전쟁이 끝나는 것을 크게 아쉬워했다” 는 냉소적인 묘사도 있었다.21 1914년 말경의 조세 수입은 평상시의 6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런 간극을 메우기 위해 의회는 간접세, 주로 관세와 소비세를 인상했다. 그러나 간접세는 이미 높은 수준이어서 세수가 더 늘어날 여지가 크지 않았다. 전쟁으로 소비재 수입이 위축되어 관세 수입 역시 줄어들었다. 1916년, 한때 사회당 당원이었던 아리스티드 브리앙의 리더십하에서 채택된 전쟁 이윤세War Profit Tax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세수 전체에서 직접세 비중은 20% 근처에 줄곧 머물렀다. 1914년에 표결된 소득세는 3년 후에나 실행되었으며 1918년까지는 그 기여분이 정부 수입의 5% 미만이었다. 1917년 6월이 되어서야 관세를 제외한 총세수가 전전 수준을 회복했다.22

독일의 재정 노력은 더욱 무기력한 상황이었다. 독일제국은 전비 지출에서 8%만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었다.23 이것은 독일에서 중앙 정부와 각 주들 사이에 명확한 분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1871년 헌법에 따라 직접세 부과 권한을 각 주가 가지고 있었다. 각 주들은 이런 세금의 주요 수익자로서 평상시 정부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다.24 주 수준에서 의사 결정권을 갖고 있던 엘리트들은 전시에도 직접세의 통제권을 제국으로 넘기는 것을 주저했다. 직접세 수입이 전쟁을 거치면서 두 배가 되었지만, 전시 자금 조달에서는 미미한 역할밖에 하지 않았다. 독일제국은 거의 전적으로 간접세 (관세와 소비세의 비중이 비슷했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제국이 식료품을 비롯한 필수품 수입에 대해 관세를 유예한 이후에는 관세 수입이 뚝 떨어졌다. 정부는 제국중앙은행, 석탄, 철도 여행 등에 대해 추가 세금을 부과했다. 1918년에 음료와 사치재에 대해 새로운 소비세가 부과되었다. 주들도 적자를 겪었지만 중앙 정부에 비하면 적자 규모는 작았다. 제국과 주의 지출을 합하면, 정부 지출 대비 적자 비율이 92에서 83으로 떨어졌다.25

소득세가 존재하고 직접세 부과 원칙이 확고히 자리 잡혀 있던 영국에서는 세수를 늘리는 것이 더 용이했다. 독일에서는 직접세 수입이 전쟁 기간에 두 배가 되었지만, 영국에서는 네 배가 되었다.26 소득세와 부가세의 세율이 1914년 11월에 배로 올랐다. 1913~1914년과 1918~1919년 사이에 정상 소득세율은 5배가 되었다. 전시 특수로 혜택을 입은 기업에 대한 군수세와 초과 이윤세가 소득세를 보완했다.27 간접세 부과에는 소홀했다. “노동자 계급의 반발”을 야기 할 수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맥주와 차에 대한 세금이 인상되었다.28 영국 정부는 자유 무역 전통과 결별하고 수입 자동차, 영화, 벽시계, 손목시계, 악기에 대해 세금을 부과했다. 그런데도 영국 세수 전체 중 직접세 비중은 1913~1914년의 60% 미만에서 전쟁 후반의 80%로 올라갔다. 이후 사람들은 영국이 예산 관리에 “미온적”이었다고 비판하지만, 프랑스나 독일과 비교하면 영국은 전시 지출 중 인상적일 정도로 큰 비중을 세금으로 충당하는 데 성공했다.29

미국은 전통적으로 연방 세수를 관세에 의존했다. 그러나 전쟁 직전 미국의 산업계는 7% 최고 세율의 소득세를 대가로 수입 원자재에 대한 관세 인하를 얻어냈다. 1909년에 이윤이 5000달러를 초과한 기업에게 처음으로 부과된 1%의 법인세가 1913년에는 모든 기업에 부과되었다.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면서 관세 수입이 하락하자, 미국 재정 당국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직접세로 눈을 돌렸다. 당국은 1916년 소득세 기준 세율을 두 배로 올렸고 2만 달러 이상의 소득에 대해 누진세를 부과했다. 독일과의 외교 관계가 단절되자, 기업과 합자 회사에 대해 기존 세금에다가 초과 이윤세를 추가해서 부과했다. 전쟁 비용 중 3분의 1은 세금으로 충당하고 3분의 2는 대출로 충당한다는 것이 재무부의 계산이었다. 개인 소득세의 누진 세율은 63%까지 인상되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높았다. 자본 이득에 대해서는 최고 60%의 세율이 적용되었다. 1917년에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소득세와 이윤세가 관세 수입을 초과하게 되었다.30

각국의 이런 조세 정책은 비판에 직면했다. 관리들은 예산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즉 전시 지출을 세수로 충당하고 국가 재정을 방어하는 데 필요한 세금 인상이라는 쓴 약을 처방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 중 일부는 타당성이 떨어졌다. 건전한 비평가들은 군사비 지출이라는 일시 프로그램 비용은 장기간에 걸쳐 분산되어야 하고, 사실상 미래 세대가 분담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31 전시에 정치가들이 이기심과 편의주의 때문에 그 부담을 미래로 지나치게 많이 이전시켰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 정치적 논란은 세대 간 문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납세자들 사이에서 그 부담을 나누는 데서 발생했다. 관리들이 어떤 전략을 추구하든 전전 상태와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전쟁은 세금 부담과 소득 분배에 관한 합의를 뒤집어 놓았다. 전쟁이 끝나자, 부자들은 새로운 소득세를 폐지해야 하고 기존 세금도 전쟁 이전의 수준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노동계 대표들은 전쟁 관련 산업 분야의 소유주와 경영자들이 얻은 막대한 이윤과 자본 이득을 재분배하기 위한 자본 과세를 요구했다. 재정시스템을 전쟁 이전 상태로 되돌리려는 모든 노력은 정부 재정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이어지면서 엉키게 되었다. 전쟁 영웅의 나라에서는 전쟁 연금, 의료 지원, 실업 수당, 주거 지원금 등을 제공해야 했다. 다른 수입원이 필요했다. 문제는 전전의 방식대로 징수를 해야 하느냐 아니면 전시의 임시방편들을 계속 연장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전후 각국 정부가 직면한 최대의 논란거리였다.

적절한 과세 프로그램에 대해 합의를 이룰 수 없었던 정부는 부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주요 참전국들 중 영국과 미국은 장기 대출을 통해 전시 예산 적자를 충당하는데 가장 성공한 나라였다. 영국 정부는 재무부 단기 채권 발행과 잉글랜드은행 대출로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세 번에 걸쳐 대규모 장기 차입을 했다. 첫 번째 차입 에서는 대규모 금융 기관과 10만 명의 재력가들이 채권을 인수했다. 두 번째 차입을 위해서는 100만 명 이상의 저축을 동원해야 했는데, 채권 인수자들 중에는 일반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 이후에는 재무부가 국내 저축을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사용했다. 예를 들면, 채권의 인수 기간을 정하지 않은 채 전쟁 채권을 계속해서 발행했다.

 


19. Bogart, Ernest Ludlow (1921), War Costs and Their Financing, New York: D. Appleton and Company. 186쪽에서 인용
20. Birck, L. V. (1927) The Public Debt, New York: The Dial Press 226쪽
21. Gide, M. Charles (1919), “French War Budgets for 1919-1920”, Economic Journal 29, 129쪽
22. Charbonnet, Germain (1922), La politique financier de la France pendant la guerre, Bordeaux: Imprimerie de L’Université; Fisk, Harvey E. (1922), French Public Finance in the Great War and To-day, New York: Bankers Trust Company 29~31쪽; Flora, Peter (1983), State, Economy, and Society in Western Europe, 1815-1915, Volume 1, Frankfurt am Main: Campus Verlag. 300쪽; Peel, George (1925), The Financial Crisis in France, London: Macmillan and Co. 101쪽; Germain-Martin, Louis (1936), Le problème financier 1930-1936, Paris: Domat-Montchristien. 3~4부를 참고하라.
23. 표 3.1은 Balderston, T. (1989), “War Finance and Inflation in Britain and Germany, 1914-1918,” Economic History Review, sec. ser. 42, pp. 222-244을 따라 경상수입에서 정부채 매입을 통해 경감된 세금부담을 제외하였으며, 공식 통계상의 1918/1919년 지출 추정치를 같은 기간 제국의 미지불 채무 증가액으로 올렸다.
24. 상세한 것은 Holtfrerich, Carl-Ludwig (1986b), The German Inflation, 1914-1923, New York: Walter de Gruyter., 109~110쪽과 Witt (1987), 여러 곳을 보라.
25. Balderston, T. (1989), “War Finance and Inflation in Britain and Germany, 1914-1918,” Economic History Review, sec. ser. 42. 225쪽
26. 위의 책 230쪽
27. 처음에는 전전 수준을 초과한 이윤의 50%를, 1917년부터는 80%를 초과 이윤세로 부과했는데, 이 세금이 1914년에서 1920년 사이 총세수의 약 25%를 차지했다. Grady, Henry F. (1927), British War Finance 1914-1919,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Hicks, J. R., U. K. Hicks, L. Rostas (1941), The Taxation of War Wealth, Oxford: Clarendon Press (second ed.).를 보라.
28. Stamp, Sir Josiah (1932), Taxation During the War, London: Humphrey Milford. 29쪽
29. Morgan, E. Victor (1952), Studies in British Financial Policy, London: Macmillan. 94쪽. 그리고 Balderston, T. (1989), “War Finance and Inflation in Britain and Germany, 1914-1918,” Economic History Review, sec. ser. 42.를 보라.
30. Bogart, Ernest Ludlow (1921), War Costs and Their Financing, New York: D. Appleton and Company. 295쪽, Gilbert, Charles (1970), American Financing of World War I, Westport, Conn.: Greenwood Publishing Corp. 제 5장. 세금 3분의 1, 대출 3분의 2의 정책은 Annual Report, the Secretary of the Tresury for 1918, 47~49쪽에 명시되어 있다.
31. ‘조세 평준화tax smoothing’에 관한 최근 연구들은 정부 지출의 일시적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차입하는 것이 분명히 타당함을 보여준다. 세율이 올라가면 왜곡된 세금 부과로 인해 사회 후생의 상실deadweight loss도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권자의 후생 극대화를 추구하는 정부는 시기에 따라 상대적으로 일정한 세율을 유지하려는 유인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 지출이 특별히 높을 때는 차입을 하고 지출 수요가 상대적으로 낮을 때는 채무를 상환해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한 참고문헌은 Barro, Robert J. (1979), “On the Determination of the Public Debt,”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87, pp.940-971에서 찾을 수 있다.

위 참고 문헌 중 Witt (1987)은 뭔지 모르겠음.

1차 세계 대전 당시의 이와 같은 전후 배상금 기대감이 2차 세계 대전의 근원이 된 듯 하다. 왠지 독일 배상금이 엄청나더니만 이런 사정이 있었군. ㅎㅎ

한편 좀 다른 이야기지만, 양차 대전으로 인해 증가된 직접세는 불평등을 감소시키는데 기여했다는 이야기를 피케티 선생의 책[1]에서도 본 듯한데, 연관이 있는 내용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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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은이), 장경덕 (옮긴이),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09-12 | 원제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