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앨런 그린스펀의 삶과 시대

앨런 그린스펀의 삶과 시대
세바스찬 말라비 (지은이),박홍경 (옮긴이) 다산출판사 2018-10-30 원제 : The Man Who Knew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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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엄청나게 재밌게 읽었던 ‘헤지펀드 열전‘[1]의 저자인 세바스찬 말라비 선생의 저술이다. 2016년도 이코노미스트지의 올해의 책 선정도서[2]인데, 이코노미스트지 올해의 책의 도서라면 일단 거의 평타 이상은 나오니까, 역서가 나오자마자 즉각 구매했다. ㅎㅎ

19년간 미 연방준비은행의 의장을 역임한 앨런 그린스펀의 전기인데, 말라비 선생이 다양한 사람과의 인터뷰와 자료를 모아서 그가 활동했던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일생 전체를 조립하고 있다. 책의 원제인 ‘The Man Who Knew’보다도, 번역서의 제목 ‘앨런 그린스펀의 삶과 시대’가 훨씬 내용을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적절해 보인다.

초반부터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등장하는데, 그린스펀이 어렸을 때 재즈 연주자로서 순회공연을 다녔는 줄은 몰랐다. 재즈 순회 공연하던 사람이 후에 전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중앙은행장을 19년이나 연임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ㅎㅎ

젊은 그린스펀이 아인 랜드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에는 꽤나 놀랐다. 페북의 철학 관련 그룹에서 아인 랜드를 까는-_- 짤방을 심심치 않게[3,4] 보는데, 아무래도 주류 철학계에서는 아인 랜드와 객관주의를 별로 좋지 않게 보는 듯.

덕분에 젊은 그린스펀은 극단적 리버럴의 관점에서 여러가지 국가적 규제에 반대하게 되는데, 독점 기업을 지지한다든지, 연방 준비은행 제도를 반대하고 금본위제를 지지한다든지[5], 주류 제도권에 들어오기에는 좀 과격한 주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훗날 그가 연방준비은행장으로서 명성을 날리는 걸 생각하면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걸 보니 일전에 santa croce 선생의 글 중에서 시장을 혐오한 중앙은행장 이야기[6]가 생각나는데, 중앙은행에 적대적인 사람이 중앙은행장이 되는 아이러니는 언제나 흥미롭구만. ㅎㅎ

p30에 제시 리버모어의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이 언급되는데, 투자나 경제 관련 서적을 읽으면 이 책에 영향을 안 받은 사람이 없는 것 같다-_- 그린스펀도 재즈밴드를 하면서 읽은 이 책에 푹 빠지고, 경제쪽을 생각했다고 하니, 나름 보이지 않게 여러모로 경제사적 영향을 미친 책이 아닐까 싶다. 국내에서도 서로 다른 역자들의 몇 가지 버전으로 출간되어 있던데, 함 읽어봐야 할 듯 하다.

p103에 이 책의 제목이 되는 The Man Who Knew라는 문구가 나온다. 그린스펀이 통계 데이터를 하도 꿰고 사니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이라는 의미로 그린스펀을 가리키는 문구가 되었던 모양이다. 사교 파티장에까지 가서 통계 자료를 검토하는데 푹 빠졌다-_-는 에피소드(p78)를 보니, 젊은 그린스펀은 완전히 통계 오타쿠-_-였던 것 같다. 그의 다채로운 통계 데이터로 무장한 현란한 말빨은 연준의장이 되어서도 여전했는지 Greenspeak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난다.

p130에 닉슨 대통령이 가격 통제 정책을 시도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본인이 미국사에 무지해서 그런지 이건 처음 알았다. 와 미국도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모든 품목에 가격을 매기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었구만-_- 놀랍다 놀라워. 사람들이 이게 왜 가능하다고 생각을 하는 건지 궁금해진다. ㅎㅎ

p192에 레이건의 선거 보좌진들을 언급하면서 George Shultz의 이름이 나오던데,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다 싶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일전에 읽은 ‘배드 블러드‘[7]에서 테라노스의 이사진으로 활동하고, 그 손자가 내부자 고발을 하는 내용이 생각났다! ㅎㅎ 여러모로 기구한 사람인 듯. ㅎㅎ

p202 이후로 래퍼 곡선을 위시한 공급중시론자가 레이건 시절 활개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린스펀도 당대 공급중시론자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페이스북 같은데서 자칭 우파라는 사람들이 아직도 래퍼를 띄우면서 공급중시론을 주장하는 걸 종종 보는데, 자유의지론자인 그린스펀에게조차도 설득이 안되는 논리를 들이미는 꼴이 웃긴다. 공급중시론은 크루그먼 선생의 저술[8]에서 열라게 깐다-_-[9]

p221에 ‘내장 컴퓨터’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직감적 판단을 가리키는 idiom이 gut feeling이라서 이런 표현을 쓴 게 아닌가 싶다.

p363에 마이클 스타인하트1994년 채권 시장 위기에 대해 짧게 언급하는데, 이건 저자의 전작[1]에 더 상세히 나와 있다.

p387에 1994년 맥시코 페소위기 당시 구제금융 논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부분은 일전에 본 가이트너씨의 자서전[10]도 참고할만 하다.

p435에 LTCM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린스펀이 구제금융을 쓰지 않고 민간차원에서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그린스펀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가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저자의 전작[1]이나 로저 로웬스타인저서[11]가 참고할만 하다.

p508에 연준의 통화정책으로는 주택 버블을 제어할 수 없다는 류의 주장에 대한 저자의 반박이 나와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그린스펀은 이런 ‘무기력 이론’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듯 한데, 샤트야지트 선생의 저서[12]에서도 이를 신랄하게 비판한다.[13] ㅎㅎ

책의 후반부에는 저자는 서브프라임 버블의 주역으로서 비난을 받는 그린스펀에 대해, 그가 할 수 있었던 일과 그렇지 못했던 일을 구분하여 그의 공과 과를 명백히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저자는 일방적으로 그린스펀을 매도하지는 않지만, 그가 충분히 할 수 있었던 금리 정책과 각종 규제문제의 도입에 대해서 그린스펀의 변명과는 달리, 충분히 영향력을 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도 소위 ‘그린스펀 풋’으로 표현되는 그의 시장안정성에 대한 기이한 집착 때문에, 결국 주택버블을 잡는데 실패했고 서브프라임 위기를 일으키지 않았나 싶다.

그는 실용주의자로서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이 장기적으로 서서히 변해왔고, 그 결과 젊은 그린스펀이라면 반대했을 법한 정책을 그의 말년에는 상당히 많이 추진한다.[14] 그의 사상적 변천을 저자는 다양한 사료를 통해 추적하고 있고, 그린스펀 본인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 부분까지 자료를 확인해 정정하는 내용도 나온다. 여러모로 저자의 품이 상당히 들어간 저술임을 느낄 수 있다.

아무래도 책 자체가 대중적인 재미와는 거리가 있고, 텍스트의 분량도 상당하지만, 경제사와 미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중요 인물들중 하나라는 점에서 이쪽에 관심이 있다면 분명 읽어볼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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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서평] 헤지펀드 열전 : 신보다 돈이 많은 헤지펀드 엘리트들 2012년 4월 12일
[2] 내 백과사전 2016 이코노미스트지 선정 올해의 책 2016년 12월 9일
[3] https://www.facebook.com/Philosanimanga/ …
[4] https://www.facebook.com/279814886028666/ …
[5] 내 백과사전 앨런 그린스펀의 연방준비은행 반대론 2019년 3월 5일
[6] 시장을 혐오한 중앙은행장 이야기: 혁명의 역설 (blog.naver.com/santa_croce)
[7] 내 백과사전 [서평] 배드 블러드 – 테라노스의 비밀과 거짓말 2019년 4월 6일
[8] 내 백과사전 [서평] 경제학의 향연 2011년 12월 15일
[9] 내 백과사전 공급중시론자와 크랭크 2011년 12월 6일
[10] 내 백과사전 [서평] 스트레스 테스트 2018년 3월 23일
[11] 내 백과사전 [서평] 천재들의 실패 2010년 11월 12일
[12] 내 백과사전 [서평] 익스트림 머니 : 전 세계 부를 쥐고 흔드는 위험한 괴물 2012년 11월 20일
[13] 내 백과사전 앨런 그린스펀 2012년 11월 23일
[14] 내 백과사전 그린스펀의 적은 그린스펀 2019년 4월 8일

2 thoughts on “[서평] 앨런 그린스펀의 삶과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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