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몽유병자들 – 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에 이르게 되었는가

몽유병자들 – 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에 이르게 되었는가
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은이),이재만 (옮긴이) 책과함께 2019-01-28 원제 : The Sleepwalkers: How Europe Went to War in 1914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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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알기로 1차 세계대전은 다음과 같은 경로를 따른다.

가브릴로 프린치프프란츠 페르디난트 오스트리아 황태자 살해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
세르비아의 보호국을 자처하는 러시아가 동원령 발동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인 독일도 동원령 발동
프랑스-러시아 연합에 의해 프랑스도 동원령 발동
독일의 중립국 벨기에 침공으로 인해 영국도 참전
주요 강대국들이 전부 전쟁에 돌입함에 따라, 전세계 식민지들이 본국의 전쟁에 참여

뭐 이런 수순인데, 각 단계별로 현대인의 관점에서 공감하기 어렵거나, 인과관계의 측면에서 의아한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는 훨씬 복잡한 외교관계와 각 국가가 타국을 보는 관점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책은 그러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주로 외교적 관점에서 추적하는 책이다.

1차 세계대전 관련 저술로 일전에 존 키건 선생의 저서[1]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은 반면에 순전히 군사적 관점의 저술이고, 1차 대전의 발생경과에 대한 설명은 수 페이지에 그친다. 근데 읽은지 하도 오래돼서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나서 대충 다시 봤다. 키건 선생의 책에는 큰 프레임으로서 사건 진행의 서술은 간략하게 되어 있지만, 크리스토퍼 선생의 책은 이를 확대하여, 국가들의 대외 정책과정에서 매우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비협조적이고 불명확한 정보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 왔음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어 훌륭하다.

애초에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국경을 넘어서까지 타국의 황태자를 왜 살해했는지에 대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세르비아인의 민족주의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온다. 본 블로그에 일부 인용[2]을 해 두었으니 참고 바란다. 그러고 보면 일전에 본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일대기를 그린 만화[3]가 생각나는데, 전반적으로 진실과 상당히 동떨어진 면이 있지 않나 싶다. 그 때는 그 만화[3]를 추천했지만, 지금은 추천하지 않는다.

p235에 그레이트 게임이 언급되는데, 이에 관해서는 피터 홉커크 선생의 저서[4]가 볼만하다. 다만 피터 선생의 책은 러일전쟁에서 끝나지만, 이 책을 보니 실제로 영국과 러시아의 중앙아시아에서의 긴장관계는 1차 대전까지도 유지되는 것 같다. 피터 선생의 책에서는 영국 내에서 러시아에 대한 여론이 얼마나 나빴는지에 대해 상세히 나오는데, 크리스토퍼 선생의 책을 보니 비단 영국 뿐아니라 외국을 대하는 주전론적 여론이 유럽 전체를 휩쓸고 있었던 것 같다.

p236에서 영국이 고립정책을 버리고 영일동맹을 맺을 수 밖에 없는 영국의 국제관계를 약간 설명한다. 일전에 본 도널드 킨 선생의 저서[5]에서는 영국이 아쉬울 건 거의 없고, 일본이 근대화에 대한 목마름 때문에 일본쪽이 매달려서 동맹이 된 듯한 인상을 주는데, 영국도 나름 이해관계가 있는 동맹임을 알 수 있다.

p346에 슐리펜 계획이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연구를 짧게 언급하는데, 뒤쪽에 참고문헌을 확인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테렌스 주버 선생의 이름이 나온다. 이에 관해서는 길잃은어린양 선생의 블로그[6]에 상당히 상세히 쟁점이 소개되어 있으므로 참고하기 바람.

p742부터 러시아가 왜 세르비아 문제에 개입했는지, 대외적으로 표명된 원인이 아닌 경제적 원인을 지목하고 있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대외적으로 표명된 주장 뒤쪽에 숨은 플레이어들의 내면적 의도를 간파하는데 많은 내용을 할애하고 있다. 이런 부분이 이 책의 탁월함이 아닐까 싶다.

각 국가들은 상호 적대감과 피해망상으로 인하여 상호 저신뢰 관계에 묶여있었고, 이로 인하여 최종적으로는 전체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게 된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결론을 알고 있는 후대인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선택들이었으나, 당대의 당사자들이 가진 정보와 관점에서는 나름 최선을 다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경제학에서 개별 플레이어가 각자 자신의 이익에 최선을 다하면 국부가 증대된다는 애덤 스미스류의 주장에 대한 생생한 반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전반적으로 1차 대전의 발생원인을 외교관계를 통해 해석하고 있고, 당대 복잡했던 사안과 사회적 분위기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추적하고 있다. 다체 문제보다도 복잡한 국가간의 외교관계를 풀어내면서, 개별 플레이어들의 당대 관점에서 사건을 이해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책 겉면에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처장이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이 책을 건네줬다고 나와 있던데, 검색해보니 2017년 12월에 북한을 방문했다[7]고 나온다. 그 때 준 모양이다. 아무래도 상호 저신뢰 관계 속에서 외교가 진행되면 궁극적으로 파국이 일어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함이 아닐까 싶다.

텍스트의 분량이 상당하고, 당대 복잡한 사안에 대한 설명이 많아서 아무래도 유럽사에 관심이 좀 있어야 읽을만할 듯 하다. 읽기 빡셌다-_- 아무래도 상업적으로 성공하기는 어려운 책 같아 보이는데, 이런 책이 번역되어 나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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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4

재생시간 8분 5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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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차세계대전사 (보급판) 존 키건 (지은이),조행복 (옮긴이)청어람미디어 2016-04-15 원제 : The First World War
[2] 내 백과사전 범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기원 2019년 6월 4일
[3] 내 백과사전 [서평] 가브릴로 프린치프- 세기를 뒤흔든 청년 2014년 7월 18일
[4] 내 백과사전 [서평] 그레이트 게임 :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 2012년 12월 20일
[5] 내 백과사전 [서평] 메이지라는 시대 – 유신과 천황 그리고 근대화 2018년 7월 26일
[6]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S-2 (panzerbear.blogspot.com)
[7] 연합뉴스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 5일부터 나흘간 북한 방문 2017-12-05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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