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일본 난학의 개척자 스기타 겐파쿠, 에도의 몸을 열다, 난학의 세계사

[1] 일본 난학의 개척자 스기타 겐파쿠
이종각 (지은이) 서해문집 2013-10-25

[2] 에도의 몸을 열다 – 난학과 해부학을 통해 본 18세기 일본
타이먼 스크리치 (지은이),박경희 (옮긴이) 그린비 2008-01-15

[3] 난학의 세계사 – 중화적 세계를 넘어 일본이 유럽과 열대에서 접속하다
이종찬 (지은이) 알마 201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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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학과 관련하여 세 권의 책을 읽어봤는데, 이하 세 권의 책을 각각 순서대로 [1], [2], [3]이라 칭하겠음.

[1]의 서문을 일전에 인용한 적[4]이 있다. 당시 오바마 번의 번의였던 스기타 겐파쿠가 사형수 해부를 참관하면서, 서양 의학서의 정확성에 감탄하여 해체신서를 발간했다는 이야기에 흥미가 생겨서 찾아봤다. 사실 해체신서가 최초의 의학 번역서는 아니어서, 약간의 차이로 먼저 나온 번역서가 있었고, 원서의 뒤쪽 주석부분을 빠트렸기 때문에 분량상 절반 밖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사회가 서구권의 학술적 우위를 감지하고, 세계를 보다 넓게 보기 시작하는 촉매가 되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1]에는 전문역사가가 아닌 사람이 쓴 역사 저술에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 그대로 있는데, 출처를 표기하지 않고, 감정적 주장이 많아 주관적 판단인지 객관적 근거가 있는 주장인지 모호한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1;p37]에 조선이 조총의 성능을 파악하지 못하다가 임란 이후에 들어서 일본으로부터 조총을 수입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잘못된 내용이다. 조선은 임란 도중에 항왜의 도움으로 나름 무기 기술의 진보를 이루었는데, 역사스페셜[5]에 잘 나온다. 어쨌든 [1]도 참고정도는 할 만하다고 본다. [3]에서도 주석으로 [1]을 언급하고 있다.

[1;p187]에 17세기 일본 수학자 세키 다카카즈에 대한 언급이 한 줄 나오는데, 처음 알았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원주율을 소수점이하 10자리까지 계산했고, 행렬식(!)을 사용했다고 나온다. 오! 진짠지 모르겠지만 진짜라면 놀랍구만.

스기타는 비교적 장수하여 말년에 자신이 번역을 하게 된 경위를 서술한 ‘난학사시’를 썼는데,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발굴하여 출판했다고 한다. [1]의 뒷부분과 [3]의 앞부분에 ‘난학사시’의 전문 번역이 있어서 두 권을 대조하며 읽어봤다. 두 저자의 참고한 저술이 달라서인지, 문장은 크게 차이나지만 대체로 내용은 일치한다. 그러나 [3]에 훨씬 더 자세한 설명과 주석이 있고, [1]에 가타카나 독음만 나와 있는 부분이 [3]에는 원 단어로 표기되는 등[6], 몇몇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데, [3]이 훨씬 정확한 듯 보인다.

예를 들어, [1;p205]에 ‘니시 젠자부로(西善三郎)’라고 언급하는 부분에 [3;p28]에는 ‘니시 키치베에(西吉兵衛)’라고 다르게 나오는데, 검색해보니 둘 다 실존인물인 듯 하다.[7] 다만, 난학사시 본문에 가문의 시조라고 했는데, 위키피디아에 니시 키치베에가 가문의 시조라고 나와 있다. 또한 ‘젠자부로’는 뒤쪽에 다시 언급되는데, 문맥상 동일인물이 아닌 듯 하므로 [3]이 정확한 듯 하다. 게다가 [1]에 없는 일부 문단[1;p206,p218]이 [3]에는 있다.[3;pp29-34,pp47-48]

[2]는 에도 시대의 해부를 통해 바라보는 사회상을 말하고자 하는 내용 같은데, 너무 근거없는 억측이 많은 듯 하여 좀 재미없었다. 일본어의 이해하다(分かる)와 절개하다(分ける)는 중국에서 온 외래 관념이라는 주장[2;p16]이라든지, 언어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면 엉터리같은 민간어원설이 원체 많기 때문에, 이런 류의 근거없는 주장은 쉽게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또한, 렘브란트의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작품[8]은 실제 해부 강의를 묘사했을 리가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데[2;p25] 해부를 손부터 하는게 어딨냐는게 그 근거다-_- 근데 [2;p252]에는 인간의 손이 해부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서, 자기 자신의 저술 내에서도 앞뒤가 안 맞는 소리를 하고 있다-_- ‘서양의 해부 관넘에 따르면 신체의 절대적 내부에 다가가면 갈 수록 하느님에게 다가가게 된다'[2;p186]는 등등, 이런 밑도끝도 없는 주장이 책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으니 황당한 책이다.

[3]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 부분이 ‘난학사시’의 번역이고, 뒷부분은 세계사적 흐름 속에 난학과의 연관성이다. 유럽 정세와 난학을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어서 이건 꽤 재미있었다. [3;p177]에 18세기에 러시아가 영국과 협력하여 일본을 공격한다는 소문에 프랑스가 긴장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무래도 영국과 러시아가 아시아 패권을 두고 다투는 그레이트 게임 이전의 유럽정세라서, 그런 상상이 가능했던게 아닐까 싶다.

[3;p151]에 막부가 쇄국 정책을 했다는 관점에 대한 비판이 있는데, 딱 이 대목에서 Ronald Toby 선생의 저술[9]이 떠오르는데, 아니나다를까 [3;p183]에 Toby 선생의 저술을 언급하고 있었다.

[3;p171]에 에도와 나가사키는 난학의 우위를 두고 경쟁했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이거 어느정도 근거가 있는 주장인지 궁금하다. 에도파와 나가사키파가 상호 폄하했다는 근거가 좀 불명확한 듯 하다.

[3]의 주석에는 상당히 많은 책들이 언급되어 있는데, 찾아보니 상당수가 이미 절판이었다. 아놔… 이런 걸 볼 때마다 절판 걱정이 없는 ebook이 빨리 확산돼야 함을 느낀다.

일본의 난학의 대척점으로 쉽게 떠오르는게 조선의 실학인데, [1]에 따르면 겐파쿠의 말년에는 난학을 배우려는 무리가 각지에 성행했다고 나온다. 실학이 개인적 몽상으로서 부각되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학파를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읽으면서 아무래도 이 차이는 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3]의 뒷부분에 실학과 난학의 차이점에 대한 비교가 상당히 상세히 실려 있다. 실학은 청각, 난학은 시각이라는 비유는 꽤 신선한 듯 하다.

[1], [2]도 참고 정도는 될 수 있으나, 세 권 중 [3]만 유익했던 것 같다. 근데 지금 찾아보니 절판이네-_- 책의 일부를 인용[10]했으니 독서 여부를 결정하는데 참고하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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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 백과사전 해체신서(解體新書)의 탄생 2019년 11월 18일
[5] 역사스페셜 6 – 전술과 전략 그리고 전쟁 베일을 벗다 KBS 역사스페셜 제작팀 (지은이) 효형출판 2003-09-10
[6] 내 백과사전 니시 젠자부로와 네덜란드어 학습 2019년 11월 22일
[7] 西善三郎 (kotobank.jp)
[8] 내 백과사전 렘브란트 – 튈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 De anatomische les van Dr. Nicolaes Tulp 2019년 11월 17일
[9] 일본 근세의 쇄국이라는 외교 – 일본의 ‘쇄국’은 ‘쇄국’이 아니었다 로널드 토비 (지은이),허은주 (옮긴이) 창해 2013-02-22
[10] 내 백과사전 동인도 회사의 데지마 무역 이윤을 가늠하기 2019년 1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