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배드 블러드 – 테라노스의 비밀과 거짓말

배드 블러드 – 테라노스의 비밀과 거짓말
존 캐리루 (지은이),박아린 (옮긴이) 와이즈베리 2019-04-01 원제 : Bad Blood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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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에디슨은 백열전구의 필라멘트를 만들 기술이 없는 채로, 이를 거의 개발했다고 공언하여 유명인사로부터 투자금을 받고, 당시 가스등 회사 주가가 크게 폭락했다고 한다.[1;p75] 온갖 재료를 시도해보고 언론플레이를 하는 등의 삽질에 삽질-_-을 거듭한 끝에 성공하긴 했지만, 지금의 관점으로서는 거의 사기에 가까운 행동이 아닌가 싶다. ㅎㅎㅎ

오래전에 읽은 어느 책[2;p263]에는 성공한 CEO와 사기꾼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이야기가 나와 있다.

정당화와 낙관주의라는 두 가지 특성은 횟수가 거듭되면 습관이 되고, 나중에는 삶에 체화된다. 이런 사람에게 기회가 오면 바로 비윤리적 행위가 나온다. 어쩌면 자수성가해 성공한 사람들의 전형적 특성과 정말 비슷하지 않은가? 자신감을 유지하고 결과를 중심으로 사고하며 어려움에 처해도 낙관을 잃지않는다. 또한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고 붙잡는다. 윤리에 대한 경보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사람에게 성공과 범죄는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이다. 회계부정으로 회사를 파산 상태로 몰아넣은 엔론 CEO 켄 레이도, 주식 내부자거래 혐의 유죄 판결을 받은 마사 스튜어트도 스캔들이 터지기 전까지는 얼마나 성공한 사람이었는가?

Bad Blood는 실리콘밸리 동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법한 책인데, 일전에 해커뉴스에서도 열라게 언급되었던 책[3]이라, 역서가 언제 나오나 목빠지게 기다렸다. 나는 원래 신간이 나오면 e북이 나오는지 확인을 위해 몇 달 기다리는데, 전자서적이 나올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역서가 나오자마자 즉각 사 봤다.

나는 처음에 테라노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초 대단한 회사인 줄 알았다. ㅋㅋㅋ 구글 이래로 거짓말같이 성공한 회사들의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지는 실리콘밸리의 분위기에 심취해서, 테라노스도 그런 부류의 엄청난 회사인 줄 착각했었는데, 몰락하는 과정을 보니깐 심란하구만.

카리스마로 직원과 기업에 열정을 불어 넣고, 사람을 함부로 짜르는 행위 등이 일전에 잡스의 전기[4]나 엘론의 전기[5]에서 본 행동이랑 외형적으로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지나고 보면 판단하기 쉬워 보일지 몰라도, 당대에는 파악하기 어려운 것 같다. 너무 성공신화에 매몰되지 말아야할 듯 하다. 여러모로 의료기술의 혁신은 다른 분야에 비해 보수적인 눈으로 봐야할 듯 싶다.

근데 여러모로 봤을 때, 창업자가 완전 쓰레기구만.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로펌을 세워서 여러 사람들을 협박하는 모습을 보니 초 빡친다. 가장 빡치는 부분은 여러 진실한 학자들의 학자적 양심을 너무 많이 해쳤다는 사실이다. 학자로서 올바르지 않은 학술적 발표를 하고, 생명 윤리를 어기는 것에 양심을 가책을 느끼는 학자들을 강력한 로펌으로 겁박을 하는 모습을 보니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책의 마지막 1/4 부터는 저자가 제보를 받으면서 조사를 시작하는 부분이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데, 그래도 수정헌법 1조의 나라 답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따위가 판치는 나라와는 차원이 다르구만. ㅋㅋ 지금까지 기자들이 진실의 폭로를 위해 쉽지 않은 활약을 서술한 여러 책들[6,7,8,9]을 봤는데, 역시나 마찬가지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 하다. 이 책의 저자인 John Carreyrou도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고, 제보자를 보호하며, 로펌의 협박에 굴하지 않기 위해 고생하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저자는 매우 다방면의 다양한 사람들을 취재하여 끊어져 있는 스토리를 조립하여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어, 대단한 품을 들인 책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한가지 독서의 팁이 있다면, 전반적으로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등장인물이 너무 많은 책에 취약한 나로서는 초 헷갈린다-_- 게다가 같은 인물을 이름으로 불렀다가 성으로도 불렀다가 그러면, 상황파악에 거의 재앙급-_-이 된다. 고맙게도 책의 맨 뒤에 인덱스가 있어서 반복적으로 찾아보면 된다.

루퍼트 머독이 테라노스 최대 투자자중 하나였는데, 루퍼트 머독이 자신의 투자금을 날릴지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기자들을 믿는다면서 월스트리트 저널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은 부분은 좀 의외였다.(p389) 루퍼트 머독을 별로 안 좋게 생각했었는데[10], 이건 다시봤다. 뭐 원체 부자다 보니 1억달러 정도는 날려도 괜찮은 듯. ㅎㅎ (투자 손실로 세금 감면을 받았다고 함)

이제 4월이라 퓰리처 상의 시즌이 되는데, 문득 생각나서 아무래도 Carreyrou씨가 탐사보도 부문 같은 거에 수상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검색해봤다. 2015년 수상자 목록에 있길래, 그럼 그렇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테라노스 건으로 수상한 건 아닌 듯 하다. 이런 젠장-_- 나름 활약이 많은 언론인인 듯. 뭐 여하간 일독을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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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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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서평] 표준 전쟁 2010년 11월 26일
[2] MIT MBA 강의노트 – 내 인생에 가장 값비싼 이원재 (지은이) 원앤원북스 2007-01-22
[3] 내 백과사전 2018 해커뉴스 논픽션 추천서 2018년 12월 23일
[4] 내 백과사전 [서평] 스티브 잡스 2011년 11월 21일
[5] 내 백과사전 [서평]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미래에 도착한 남자, 일론 머스크가 제시하는 미래의 프레임 2015년 8월 1일
[6] 내 백과사전 [서평] 스노든의 위험한 폭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은 국가와 언론을 고발한다 2014년 5월 12일
[7] 내 백과사전 [서평] 파나마 페이퍼스 – 전 세계를 뒤흔든 폭로 이야기 2017년 12월 10일
[8]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 스노든, NSA, 그리고 감시국가 글렌 그린월드 (지은이),박수민,박산호 (옮긴이),김승주 (감수) 모던타임스 2014-05-07 원제 : No Place to Hide (2014년)
[9] 내 백과사전 [서평] PD 수첩 : 진실의 목격자들 2010년 8월 24일
[10] 내 백과사전 루퍼트 머독의 미디어 제국2011년 7월 21일

세계은행의 기업하기 좋은 환경 국가별 점수(2019)

세계 은행에서 국가별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 점수를 냈다[1]고 해서 보고서[2]를 함 봤다. 보고서 자체는 2018년 10월에 나온 모양인데, 인제 알았네. 헐.

요새 규제가 많아서 기업하기 어렵다고 하도 떠드니 규제 샌드박스 같은 것도 도입하던데[3], 한국이 190개 국가중에 5위에 랭크되어 있다??? 미국(8위)보다 높다. 헐…

듣자하니 에스토니아(16위)는 온라인만으로 법인 설립이 가능하고, 거의 전 국민이 세금을 온라인으로 지불하는 IT강국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4], 어째 세계 은행의 기업하기 좋은 국가 점수가 우리보다 낮다. 뭐 그 동네도 나름 고충이 있는 듯. 내가 지나치게 윤색된 이야기만 들은 듯 하다.

보고서[2] 내용은 꽤 길던데, 당연히 나는 대충만 봤다. ㅋㅋㅋ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전기 같은 요소도, 일정하고 고정적으로 안 들어오는 나라가 원체 많다보니 감점의 요인이 되는 것 같다. 한국전력이 고맙긴 고맙구만. ㅎㅎㅎ 보고서[2] 133페이지부터 국가별로 비교한 포인트를 짚어 놓았는데, 181페이지에 한국의 항목별 점수를 보면, 대출의 용이성에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고, 나머지 항목들은 70점 이상의 점수를 얻고 있다. 그밖에 공무원의 행정처리 소요 시일이나 비용 같은 것도 점수에 포함되는 듯 하다.

뭐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많을 듯 하지만, 세계적인 기준에서 한국이 적어도 기업하기 나쁘지는 않은 환경 같아 보임. 근데 실제로는 정량화 할 수 없는 각종 제한들이 더 크게 와 닫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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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oing Business 2019: A Year of Record Reforms, Rising Influence (worldbank.org)
[2] Doing Business 2019 (pdf 16.8MB)
[3] 중앙일보 [이번 주 경제용어]규제 샌드박스 2018.01.22 16:27
[4] 내 백과사전 에스토니아, 진정한 IT 강국 2013년 8월 1일

[서평] 알리바바 – 영국인 투자금융가가 만난 마윈, 중국, 그리고 미래

알리바바 – 영국인 투자금융가가 만난 마윈, 중국, 그리고 미래
던컨 클라크 (지은이), 이영래 (옮긴이)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8-06-05 | 원제 Alibaba: The House That Jack Ma Built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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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1]했을 때 점찍어 둔 책인데, 역서가 나올줄 몰랐다. ㅎㅎ 전자책으로 나올까 싶어서 좀 기다려봤는데, 가능성이 없어보여서 그냥 종이책으로 구입함.

요새 IT 대기업들을 두문자로 부르는게 유행인지, FAANG(페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GAFAM(구글, 애플, 페북, 아마존, 마소) 등등 이런 신조어가 간간히 보인다. ㅎㅎㅎㅎ 중국 IT의 천하삼분지계인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중의 하나인 알리바바가 어떻게 설립되고 성장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는 책이다.

마윈이 되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인 듯 한데, 그의 멋있는 어록이나 단편적인 행적을 다루는 정보는 많아도, 이 책과 같이 종합적이고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한 책은 흔치 않은 듯 하다. 이 책의 정보가 충분한 것은 아닌 듯 하지만, 중국 정보를 비교적 얻기 어려운 영미권에서 유익하다고 판단할만 하다.

거의 대부분의 빅 테크 기업들의 창업자는 기술방면의 지식인(대체로 프로그래머)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구글, 페북 등은 물론이고 바이두의 리옌훙, 텐센트의 마화텅, 샤오미의 레이쥔도 예외는 아니다. 듣자 하니 레이쥔은 꽤나 이름 날리던 프로그래머였다고 하던데, 진짠지는 잘 모르겠음. ㅋ

그에 반해 마윈은 전직 영어강사라는 독특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왜 마윈이 기술적 지식도 없이 무슨 근거로 인터넷 상거래의 미래를 그토록 확신했는지 궁금했었는데, 그에 대한 대답은 이 책에 없다-_- 원래 지나고보면 당연해 보이는 결과도 그냥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 당대에는 미래가 어느쪽으로 기울어질지 알기 어려운 법이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마윈의 자서전이 나와야 할 듯. ㅎㅎ 어쨌건 그의 영어실력 덕분에 남들이 갖지 못한 기회를 거머쥐었던 건 확실한 것 같다. 역시 이래서 사람은 영어를 잘 해야 한다. ㅋㅋㅋ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은데, 알리바바가 이베이의 경쟁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과정은 기업의 현지화나 현지 문화의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는 케이스 스터디로 볼만하다. 엄청난 수익 증가율[2]의 이유를 알만하다. 마윈이 손 마사요시에게 투자를 받는 과정[3]은 너무 어이없게 즉흥적이라 놀랍다.

p151에 예언적인 이코노미스트지의 1999년 기사[4] 이야기가 나오는데, 글을 쓴 기자는 크리스 앤더슨이라고 한다. 헐. 이 아저씨의 책들[5,6]을 예전에 재밌게 읽었는데, 이코노미스트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는 줄 몰랐다. ㅋ

p220에 SARS 확산으로 인해 사무실을 봉쇄하고 원격 회의로 알리바바가 위기를 극복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SARS로 인해 외출을 꺼려한 사람들 때문에 중국 모바일 산업이 급성장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근래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나이지리아 인터넷 판매가 급성장했다는 이야기[7]와 똑같다.

마윈이 은근히 능구렁이 같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알리페이의 소유권 이전 논란이라든지, 뉴욕증시에 상장된 알리바바는 케이맨제도에 법인등록이 되어 중국 본사와 뚜렷한 연결점이 없다는 점 등등 여러모로 앞으로 투명성을 주장하면서 뒤로 불투명한 구린내가 많은 경영자 같다.

여하간 정보가 상세하지는 않지만, 알리바바의 대략적인 역사를 훑어보는데 적절한 책이라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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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8
뉴욕타임즈 Alibaba’s Jack Ma, China’s Richest Man, to Retire From Company He Co-Founded Sept. 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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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13
cnn How Jack Ma went from English teacher to tech billionaire September 9, 2018: 11:35 PM 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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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2016 이코노미스트지 선정 올해의 책 2016년 12월 9일
[2] 내 백과사전 알리바바의 수익 증가율 2014년 9월 20일
[3] 내 백과사전 마윈과 손정의의 만남 2018년 8월 15일
[4] 이코노미스트 Asia online Apr 15th 1999
[5] 내 백과사전 [서평] 메이커스- 새로운 수요를 만드는 사람들 2013년 11월 29일
[6] 내 백과사전 [서평] FREE 프리 : 비트 경제와 공짜 가격이 만드는 혁명적 미래 2010년 6월 3일
[7] 이코노미스트 E-bola Sep 20th 2014

마윈과 손정의의 만남

알리바바 – 영국인 투자금융가가 만난 마윈, 중국, 그리고 미래
던컨 클라크 (지은이), 이영래 (옮긴이)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8-06-05 | 원제 Alibaba: The House That Jack Ma Built (2016년)

p178-180

처음 마윈을 만났을 때 손은 이미 엄청난 부호였다. 그는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가 최고의 선견지명을 발휘한 것은 1995년의 야후 투자였다. 야후가 1996년 상장되었을 때 소프트뱅크는 37퍼센트의 지분을 가진 최대 투자자였다. 손은 소프트뱅크가 야후의 일본 내 독점 파트너가 되는 협상도 성사시켰다. 이 계약은 그에게 또다시 수백억 달러를 안겨 주었다.

손을 만난 마윈은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았다고 느꼈다. “우리는 매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죠…우리는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비전에 대해서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모두 판단이 빠른 사람들이죠.” 마윈이 회상했다.

“마사요시 손을 만나러 갔던 날 저는 양복을 입고 있지 않았습니다… 5~6분 후 그는 나에게 호감을 보이기 시작했고 저도 그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습니다…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소울 메이트라고 말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마윈이 10만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알리바바에 대한 설명을 마치자, 손은 바로 소프트뱅크가 얼마를 투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전환했다. “저는 마윈 씨의 이야기를 5분간 듣고 그 자리에서 알리바바에 투자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손이 회상했다. 손은 마윈의 프레젠테이션을 중단시키고 그에게 소프트뱅크가 “돈을 즉시 내놓을 생각이니 알리바바는 소프트뱅크의 돈을 빨리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알리바바의 IPO가 있을 즈음에 손은 2000년 마윈에게 베팅을 하게 한 이유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의 눈빛이었습니다. 그것은 ‘동물적인 감각’이었습니다…직원이 대여섯에 불과한 야후에 투자했을 때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제 감각에 의존해서 투자를 합니다.”

이런 충동성은 손을 대표하는 특징이었다. “마사는 마사입니다. 그는 AD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가지고 있고 한 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죠. 그는 당신에게 돈을 주고 싶을 뿐입니다. 당장… 당장 말입니다!” 이전에 손과 함께 사업을 했던 사람의 말이다.

베이징에서 첫 만남이 있고 몇 주 후, 손은 계약을 마무리 지으려고 마윈을 도쿄로 초청했다. 조차이가 동행했다.

두 사람이 손의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협상이 시작되었다. 마윈은 후에 이 회의를 무술을 빗대 설명했다. “협상의 고수들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듣기만 합니다.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이류입니다. 진정한 고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가 검을 움직이자마자 상대는 완전히 무너지죠.”

이 여행 전에 소프트뱅크 차이나의 천시셰이를 만났던 조차이는 나에게 회의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했다. “골드만과 다른 펀드들은 알리바바의 가치를 1,000만 달러로 평가하면서 회사 주식의 절반인 500만 달러를 투자했었습니다. 마사는 회사의 40퍼센트로 2,000만 달러를 제의하면서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알리바바의 ‘투자 후 기업가치’를 5,000만 달러, ‘투자 전 기업가치’를 3,000만 달러로 평가한 것입니다. 단 몇 주 만에 골드만의 투자가치가 세 배로 늘어났죠.” 조차이와 마윈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와, 세 배나 되잖아!’라고 생각했다. 조는 이렇게 회상했다. “하지만 이후 우리는 주식을 지나치게 많이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윈이 ‘마사, 저희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죠. 마사는 계산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 그대로 그 자리에서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여전히 마사는 40퍼센트를 원했습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죠.

‘그렇다면 액수를 두 배로 하면 어떻겠소. 40퍼센트에 4,000만 달러를 넣겠소.’ 그 액수는 투자 전 기업가치를 6,000만 달러로 본다는 의미였습니다.”

마윈과 조차이는 더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중국으로 돌아온 마윈은 손에게 4,000만 달러의 투자를 거절하는 이메일을 썼다. 대신 그는 30퍼센트에 2,000만 달러를 제안했다. 그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 조건에 동의하신다면 일을 추진하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계약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마윈은 이후 엄청난 액수의 투자를 거절한 이유를 설명했다. “제게 왜 그런 큰 돈이 필요할까요? 저는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분명 문제가 되었을 겁니다.” 손의 답장을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답장은 한마디였다. “추진하시오.”

이거 무슨 허생과 변씨의 만남[1]도 아니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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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다시보는 허생전 2014년 2월 28일

2011년 페이스북의 내부 분위기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저/문수민 역, “카오스 멍키“, 비즈페이퍼, 2017

실리콘밸리의 여러 대기업은 본디 엔지니어링을 중시하는 문화를 지니고 있다. 페이스북은 그런 풍조를 한 차원 더 끌어올렸다. 페이스북을 이끄는 것은 엔지니어이며, 코드를 만들어내는 한, 그리고 회사 기물을 (지나치게 자주) 부수지 않는 한, 귀중한 존재로 대접받는다. 파괴적인 해커의 혼은 모든 회사 강령의 지침이 되었다. 페이스북 초창기, 크리스 퍼트넘이라는 어느 조지아 공대 출신 애송이가 페이스북 프로필을 당시 소셜미디어의 대표주자였던 마이스페이스와 비슷하게 바꾸는 바이러스를 만들었다. 그 바이러스는 기승을 부리며 사용자 데이터까지 지워버리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의 공동창업자 더스틴 모스코비츠는 퍼트넘을 FBI에 신고하는 대신 면접을 보게 하고 입사를 제안했다. 이후 그는 페이스북에서 유명하고 에너지 넘치는 엔지니어로 탈바꿈했다. 그 일은 페이스북 특유의 해적다운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를 신속히 해결할 수 있다면 아무도 기존의 법적 윤리나 자격 여하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해커의 에토스가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었다.

그 문화야말로 돈이 있으면 맘껏 즐길 수 있는 도시에 사는 연봉 50만 달러의 스물셋 먹은 애들이 하루 열네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도록 붙들어두는 것이다. 그들은 하루 세 끼를 회사에서 해결하고, 때로는 잠도 자며, 코드를 짜고 검토하고, 페이스북 내부 그룹대화창에서 새 기능에 대해 의견을 달며 살아간다. 페이스북판 ‘승리의 날’이라 할 수 있는 기업공개 당일조차, 광고부는 금요일 저녁 8시까지 바삐 일하는 엔지니어들로 가득했다. 손에 쥔 종이쪽이 현금으로 바뀌고 모두가 엄청난 돈방석에 앉은 그날에도(심지어 엄청난 대박을 냈다고 해도), 사람들은 하나같이 회사에서 코드를 쓰고 있었다.

페이스북에서는 광신도가 세례를 받고 예수를 찾은 날을 기념하듯, 혹은 미국 시민으로 거듭난 이들이 성조기 앞에서 선서한 날을 기념하듯, 입사일을 회사 차원에서 축하해준다. 그 행사는 (진짜로) ‘페이스북 기념일’이라 불리며, 보통사람들이 생일을 축하하듯이 모든 동료가 내 페이스북 페이지에 몰려와 축하해주는 것은 물론, 종종 회사나 동료가 숫자 2와 비슷하게 생긴 거대한 풍선이 달린 화려한 꽃다발을 깜짝 선물 삼아 책상에 보내주기도 한다. 누군가 페이스북을 떠날 때면(대개 풍선이 4나 5로 바뀔 즈음이다), 모두들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행동한다. 마치 존재의 현 차원을 떠나 다른 차원으로 건너가는 것 같은 분위기다(물론 다른 차원이 현 차원보다 더 나으리라고 가정하는 법은 없다). 페이스북에서 맞는 죽음을 기념하는 묘비는 페이스북에 올린 닳고 닳은 사원증 사진이다. 페이스북을 떠나며 유서와 직접 쓴 묘비명도 함께 써넣는 것이 관례다. 그런 글에는 1분도 지나기 전에 수백 건의 ‘좋아요’와 댓글이 달린다.

한편 떠나는 이도 진짜 죽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페이스북을 떠나면 직원에게만 개방된 페이스북 내부 네트워크도 떠나야 한다. 즉 (비밀스러운 회사정보를 포함하여) 회사 내부 게시판에 내가 올렸던 모든 글에 접속할 수 없으며 (당연히 하루 24시간 접속하고 있는) 다른 페이스북 직원 사이에서도 내가 올린 글은 점차 잊힌다. 그리고 바깥세상을 향한 유일한 통로인 페이스북 피드는 거의 방문객이 없을 정도로 갑자기 한산해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나를 전 페이스북 직원 비밀그룹에 초청한다. 퇴사한 직원들이 회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퇴직 후의 연옥 같은 곳이다.

잠시 멈추고 이 일들에 대해 숙고해보자. 호전적인 엔지니어링 문화, 일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분위기, 위대한 목표를 위한 사도와 같은 헌신. 냉소적인 사람들은 저커버그나 여타 고위 경영진이 읊어대는 ‘보다 개방적이고 연결된 세상’ 운운하는 말을 보고 ‘감성적인 헛소리군’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비평가들 또한 신제품이나 파트너십 등을 보며 페이스북이 돈을 벌기 위해서만 그런 일들을 하겠거니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페이스북은 진짜, 진짜, 진짜 돈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닌 진정한 신도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남자, 여자, 아이 들이 페이스북 로고가 담긴 파란 창을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진짜, 진짜, 진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런 열정이 단순한 물욕보다 더 무섭다. 물욕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적당한 가격을 제시하면 사들일 수 있고, 그의 행동은 예측가능하다. 그러나 진정한 광신자는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해도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고, 그의 광기어린 비전이 그와 추종자를 어디로 이끌고 갈지도 알 수 없다.

마크 엘리엇 저커버그와 그가 만들어낸 회사는 바로 그런 곳이다.

2011년 6월, 구글은 언뜻 보기에도 페이스북을 따라한 ‘구글플러스’라는 제품을 내놓았다.

(중략)

구글플러스는 구글이 드디어 페이스북에 주목하고 전력으로 맞서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채용에 관해 협잡을 부리거나 IT 컨퍼런스에서 험담을 하는 것보다 훨씬 위협적이었던 구글의 신제품은 페이스북에 폭탄을 떨어뜨린 듯한 충격을 주었다. 저커버그는 구글플러스 출시를 1961년 소련이 쿠바에 핵무기를 배치하려던 때와 같은 존재적 위협으로 간주했다. 거대한 적이 우리의 영역을 공격해온 것이었고, 저커버그는 적의 공격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저커버그는 ‘락다운lockdown’을 선언했다. 내가 페이스북에 머무는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 락다운이었다. 페이스북에서 잔뼈가 굵은 직원들의 설명을 들어보니 락다운은 페이스북 초기에 볼 수 있었던 ‘전시상태 선언’으로, 회사가 경쟁업체나 신기술로 인한 위협에 맞닥뜨렸을 때 아무도 회사 건물을 떠날 수 없도록 하는 조치라고 했다.

어떻게 공식적으로 락다운을 선포했느냐고? 구글플러스가 출시된 날 오후 1시 45분, 전 직원은 이메일을 받았다. 저커버그의 유리방 주변으로 모이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정확하게는 락다운 표지판 주변에 모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것은 유리방 위쪽에 설치되어 있는 네온사인으로, 고속도로변 모텔의 ‘빈 방 없음’ 표지판과 닮아 있었다.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들자 표지판에 불이 들어와서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칠지 암시해주었다.

저커버그는 대체로 연설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는 내용만을 중시하며 언어를 분석하는 데 익숙한 사람 특유의 빠르고 짧은 말투로 말했다. 그의 두뇌는 매우 기민한 속도로 움직였으므로 수사적 표현을 곁들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동시에 네 대는 기본으로 모니터에 코드를 띄워두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컴돌이식 말투였다. 그의 태도는 모여든 사람들과는 달리 초연했지만, 그럼에도 거의 정신이상자를 방불케 하는 강렬한 눈빛은 인상적이었다.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애잔한 직원 등을 포함, 상대방의 마음을 마구 뒤흔들어놓고 무기력하게 느끼게 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가 『포천』지나 『타임』지 표지에서 보이는 바로 그 눈빛. 그 눈빛에 오싹한 페르소나를 덧입히기란 어렵지 않다. 페이스북의 저의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편집증의 절반 정도는, 아마도 그리 좋지 못한 그의 첫인상과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잘못된 캐릭터 설정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 저커버그는 위대한 자질이 명료하게 드러나는 카리스마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그런 순간에는 놀랍기 그지없었다.

2011년의 락다운 연설은 그런 순간은 아니었다. 저커버그는 경영진이 앉아 있는 책상 옆의 개방된 공간에 서서, 즉석연설을 했다. 페이스북의 모든 엔지니어, 디자이너, 제품관리자가 골몰한 얼굴로 그 주변에 모여서 있었다. 마치 장군이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연설하는 모습을 방불케 했다.

저커버그는 이제 사용자를 놓고 구글과 벌이는 경쟁이 직접적인 제로섬 양상을 띨 거라고 선언했다. 구글이 경쟁 제품을 내놓았으니 이제 한쪽에서 사용자를 얻으면 다른 한쪽이 잃게 되는 게임이 벌어진 것이다. 전 세계의 사용자가 페이스북 대 구글판 페이스북을 시험해보고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지 결정하는 동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임무는 바로 우리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저커버그는 새로이 부상한 경쟁자를 감안해서 재고해볼 만한 제품 변화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언급했다. 하지만 진짜 핵심은 안정성을 높이고, 풍요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고, 사이트의 능률을 제고하게끔 모두의 사기를 북돋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회사를 지배하는 만트라가 완벽보다 완성이 낫다이자 완벽은 선의 적이다였으니만큼, 저커버그의 말은 노선 변경을 의미했다. 신제품을 출시한다는 동기에 밀려 등한시했던 품질을 중시하라는 것이었다. 그건 페이스북이 민망한 버그나 에러를 겪은 뒤 저커버그가 퍼붓곤 했던 귀찮은 잔소리와 비슷해서, 마치 아버지가 방을 치우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평소처럼 단조로운 연설이 되지 않도록, 저커버그는 기어를 바꾸고 하버드와 그 이전 학창시절에 공부했던 고전에서 인용한 표현을 터뜨렸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로마의 웅변가는 모든 연설을 이 말로 끝맺었습니다. ‘카르타고 델렌다 에스트Carthago delenda est! 카르타고는 멸망시켜야 한다!’ 왠지 모르지만 지금 그 말이 떠오릅니다.” 그는 말을 잠시 멈추고 사람들 사이에 웃음의 파도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 말을 남긴 웅변가는 물론 대 카토다. 로마의 원로원 의원이었던 그는 이후 3차 포에니전쟁으로 발전한 싸움에서 로마에 맞선 위대한 도전자 카르타고를 향해 독설을 퍼부으며 파괴하겠다고 부르짖은 장본인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는 주제와 상관없이 모든 연설을 그 구절로 끝맺었다고 한다.

카르타고는 멸망시켜야 한다!

저커버그의 목소리는 아버지 같은 외침에서 어머니 같은 간곡한 어조로 옮겨갔다. 구글이 들이댄 위협을 언급할 때마다 드라마는 더욱 극적으로 변해갔다. 연설은 우레 같은 함성과 박수로 끝났다. 모두들 필요하다면 폴란드라도 침공할 태세로 그곳을 떠났다. 멋진 퍼포먼스였다. 카르타고는 멸망시켜야 한다!

(중략)

카르타고 포스터는 즉시 사내 곳곳에 나붙었고, 붙자마자 사람들이 홈쳐갔다. 카페가 주말 내내 열 것이라는 공지도 돌았다. 직원 사이에서는 팰로앨토와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하는 셔틀버스를 주말에도 운행해달라는 진지한 제안도 나왔다. 그런 정책은 페이스북을 주 7일 근무 기업으로 만드는 셈이었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직원은 직무를 수행하고 있어야 했다. 가족이 있는 소수의 직원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페이스북은 직원 가족도 주말에 회사를 방문해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적어도 아이들이 주말 오후에 아빠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정말 대부분이 아빠였다). 영국인 트레이더(본인 주 : 저자는 자신의 부인을 이렇게 부름)와 조이가 놀러 왔고, 그 밖의 다른 가족도 많았다. 로고가 박힌 후드티를 입은 페이스북 직원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전 한 시간 동안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페이스북의 내부 그룹들이 떨쳐 일어나 구글플러스의 모든 요소를 해부했다. 구글플러스가 출시된 첫날, 나는 폴 애덤스라는 광고부 제품관리자가 저커버그 및 고위 경영진 몇 명과 작은 회의실에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페이스북으로 옮겨오기 전, 폴이 구글플러스의 제품관리자 중 하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제 제품이 출시되었으므로 그는 더 이상 구글의 비밀유지조항에 매이지 않게 되었고, 페이스북은 그를 불러 구글플러스를 이끄는 리더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페이스북은 농담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건 전면전이었다.

나는 정찰을 좀 해보기로 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출근길에 나는 101번 도로에서 펠로앨토 방향 출구를 지나 마운틴뷰로 향했다. 그리고 해안선을 따라 점점 확장 중인 구글 캠퍼스로 들어섰다. 다양한 색의 구글 로고가 도처에 보였고, 구글 색으로 칠한 자전거가 정원에 늘어서 있었다. 전에 구글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으므로 나는 엔지니어링 동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그곳에 가서 주차장을 살펴보았다.

그곳은 비어 있었다. 완전히.

흥미로웠다.

나는 101번 도로를 타고 페이스북으로 향했다.

캘리포니아 가의 페이스북 본사에 도착한 나는 주차할 곳을 찾아 헤매야 했다. 주차장은 만차 상태였다.

어느 회사가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는지는 명확했다.

카르타고는 멸망시켜야 한다!

스타트업이 주목받는 법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저/문수민 역, “카오스 멍키“, 비즈페이퍼, 2017

스타트업에게 언론의 관심은 섹스와 같다. 좋은 것 그리고 더욱 좋은 것, 이 둘 뿐이다. 창업자라면 언론에 철저히 외면당하느니 공공장소에서 동성애, 소아성애, 수간으로 체포당해서 기사거리가 되는 편이 낫다고 여겨야 한다. 당시 우리가 언론에서 받은 관심은 전무했다. 초기 스타트업은 내용물뿐 아니라 포장도 중요하다. 이제 뉴스거리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었다.

친구들이 퇴근한 뒤, 나는 쓰레기만 가득한 텅 빈 원룸에 혼자 남았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위층에 사는 시끌벅적한 인도인들이 여는 이유 모를 파티 소리뿐이었다. 내 생각에 아마도 포르노영화를 보는 파티였지 싶다. 내가 십대 시절 가봤던 비슷한 파티처럼, 처음에는 모두들 소리를 치고 발을 구르다가 갑자기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에 잠긴 채 흠집이 난 원목 바닥 위를 서성였다. 애드그로크의 이름으로 처음 포스팅할 때 내가 건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상대는 뭘까? 뉴요커들의 폭발하는 화산 같은 자부심만큼 찔러보기 좋은 주제가 어디 있겠는가! 스타트업의 신이 미소짓고 있었다.

배경 설명을 좀 해야겠다. 전날 밤 저녁식사에서 론 콘웨이가 뉴욕의 스타트업계를 보며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레이엄도 그에 관해 몇 마디 했다. 골드먼삭스에서 보냈던 시절을 상기하며, 나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왜 스타트업의 터전이 될 수 없는지 생각해보았다. 벤처캐피털리스트가 없고, 뭔가 결과물을 만들려는 사람보다는 사기꾼이 많고, 월가가 최고의 인재를 모조리 빼가버린다는 것, 내가 스타트업을 차리러 월가를 떠난다고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지었던 비웃는 표정. 뉴욕이 스타트업을 위한 풍요로운 터전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뉴욕에서 살거나 일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레이엄은 천재적 구루였지만, 많은 천재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상황을 터무니없이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내 뮤즈는 광적으로 귓가에 아이디어를 속삭여댔고,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남들의 명예를 후려치는 과도한 일반화, 재미있는 일화와 적절한 각주가 이어졌다. 친구들이 집에 간 뒤 이틀 밤에 걸쳐 타이핑을 해댄 결과, 나는 글을 완성했다.

일부를 소개해둔다.

개방형 대 폐쇄형 소스

뉴욕의 경제는 정보의 독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월가의 은행은 자사가 거래하는 제품의 시장 흐름에 대한 내부 정보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거래를 계속해나갈 수 있다. 출판에이전트는 출판사로의 좁은 문을 여는 열쇠를 손에 쥔 채 수많은 작가 지망생을 줄 세워둔다. 부동산중개인은 임대차계약서에 서명할 때마다 15퍼센트의 수수료를 챙긴다(다시 말하지만, 매매가 아니라 임대다). 비어 있는 아파트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것만으로 2개월 치 봉급에 해당하는 금액(상환선 5,000달러)을 챙기는 것이다.

뉴욕에서는 이런 독점현상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부동산 알선업자에게 두 달 치 봉급을 내지 않는다. 그냥 크레이그리스트를 만들어 뚜쟁이의 존재이유 자체를 말살시킬 뿐이다.

조회수를 늘리기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전 국민이 공감할 만한 폭발적인 밈이 또 없을까?

아!

내 전 고용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흡혈오징어처럼 촉수를 뻗어 미국 전역의 처녀를 겁탈하고 아기들을 굶긴 자본주의의 거대악, 바로 골드먼삭스가 딱이었다. 골드먼삭스를 두들겨 패면 모두들 환호할 터였다. 골드먼삭스 내부의 삶이 어떤지 공개하면 사람들의 호기심이 얼마나 끓어오를지, 골드먼삭스를 비난하면 모두들 얼마나 환호할지 상상해보자. 터부를 공공연히 말하는 것은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구경거리다.

뉴욕의 IT업계와 골드먼삭스에서의 삶, 그것이야말로 (마케팅업계의 용어를 빌리자면) ‘콘텐츠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두 시발점이 될 터였다.

홍보업계에 파다한 신화에 따르면, 어느 요일에 글을 올리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식의 규모와 반향에 따라, 언론의 뉴스는 업계에서 메아리처럼 굴절되어 퍼져나간다. 그래서 글을 올린 다음 메아리가 울려 퍼질 만한 시간이 필요하다(주말은 안 된다). 월요일은 사람들이 여전히 주말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숙취며 시차에 시달리는데다 메일이나 회의 등으로 바쁘기 때문에 너무 이르다. 목요일에는 사람들이 주말에 뭘 할까 생각하기 시작하고, 해피아워 따위를 노리며 술집으로 몰려가느라 빨리 퇴근할 가능성이 높다. 금요일에 새 소식을 알리는 것은 발표하는 게 아니라 소식을 묻어버리는 데 가깝다. 금요일은 사람들을 해고하고 나쁜 수익보고서를 발표하는 날이다.

나는 우리가 터뜨린 폭탄의 폭발음이 인터넷상의 사이보그에서부터 캔자스의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울릴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화요일에 글을 올리기로 했다.

태평양 기준시로 오전 9시, 나는 인터넷의 어느 틈새시장에 접속했다. 바로 ‘해커 뉴스’였다. YC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레딧’과 비슷한 게시판으로, 컴돌이, 분주한 YC 소속 창업자, 욕구불만 상태이면서도 자못 진지한 체하는 ‘사업가 지망생’이 모여드는 기묘한 도가니 같은 곳이었다. 나는 글을 올린 다음 관심을 좀 모으기 위해서 친구들 몇 명에게 ‘추천’을 눌러달라고 부탁했다. 몇 분 만에, 그 글은 해커 뉴스에서 가장 많이 읽은 글이 되었다. 전 세계의 모든 유능(및 무능)한 젊은 IT업계 사람들이 보게 된 것이다. 이어 로버트 스코블이 글을 트윗하면서 문제의 글은 정말 온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로버트 스코블은 IT업계에서는 신비롭고 힘 있는 존재다. 구세대, 아니 IT계의 쥐라기에서 온 듯한 나이 지긋하고 창백한 백인 컴돌이다. 온갖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지인을 만나며 최신 제품을 직접 써보고 평하는 와중에 지속적으로 트위터를 통해 활동하고 있어서, 실리콘밸리의 생태계에 광적인 집착을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공식적으로 그는 당시 무슨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고용되어 있었는데, 그건 스코블의 작은 일면에 불과했다. IT에 관련된 거라면 뭐든 숭배하는 그의 성향은 조금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근본은 좋은 사람처럼 보였고, 실리콘밸리의 주요 선수들 다수가 그의 트윗을 팔로했다. 스코블은 트윗만으로도 스타트업의 명운을 가릴 수 있을 만큼 IT계에서 영향력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우리가 올린 글을 스코블이 트윗한 것이다. 그 자체는 좋은 일이었지만, 공교롭게도 덕분에 우리의 블로그는 먹통이 되었다. 수천 명이 서버에 접속하는 바람에 완전히 다운되고 말았다.

애드그로크 본부에서는 패닉이 벌어졌다.

아지리스와 나는 불안해하며, 블로그의 서버에 로그인하려고 애쓰는 매슈의 등 뒤에 서 있었다. 우리는 단순하게도 아마존 클라우드 컴퓨터 한 대만 빌려서 블로그의 서버로 사용하면서 당시 오줌줄기처럼 빈약하던 일간 페이지 접속을 감당했다. 그런데 갑자기 접속이 폭주해서 CPU와 네트워크 연결에 과부하가 걸린 나머지 매슈가 로그인을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본부에 감도는 침묵 속에서, 세 개의 괄약근이 동시에 죄어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트위터를 새로고침해보니 알림이 계속 쌓여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미친 듯이 리트윗을 하고,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애드그로크닷컴에 접속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관심을 받아도 헛일이었다. 서버가 내 위대한 글의 HTML 버전을 그들에게 보여주지 않아서, 아무도 우리의 웹사이트와 제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폐쇄 시험 단계였으므로 아무도 우리 툴을 써볼 수조차 없었다. 그 글을 올린 것은 실질적으로 우리 제품을 사라고 유도하는 게 아니라 애드그로크라는 회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이 포스트가 이렇게 성공적일 줄은 미처 몰랐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웹사이트에 들르면 제품을 써볼 수 있게끔 준비를 갖춰 두었을 것이다.

젠장, 좆됐다!

마침내 매슈가 원격 블로그 서버에서 명령 프롬프트를 잡아냈다. 느릿느릿 실행할 수 있는 명령어 몇 개를 이용해서 매슈는 재빨리 끌어다 쓸 수 있는 아마존 컴퓨터에 블로그를 복제하고, 소방호스의 물줄기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트래픽을 즉각 다른 새 컴퓨터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엔지니어 중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지닌 매슈는 필요하면 토스터에서도 리눅스를 실행시킬 수 있을 터였다.

내 컴퓨터로 다시 블로그에 접속해서 잘되는지 확인해보았다. 홈페이지가 떠 있었다. 활동을 재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우호적인 트윗에 예절바르게 답하고, 화제가 계속 퍼져나가도록 힘을 실어줄 때였다. 글에는 곧 수십 개, 마침내 수백 개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댓글이 달렸다. 어느 쪽이든 좋았다. 사태가 끝날 무렵, 수천 명이 우리 사이트의 회원으로 가입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당시 떠오르던 클릭 낚시질계의 발행인들은 가장 흥미로운 단락을 낯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베낀 뒤 그 글에 대한 기사를 써서 우리의 홍보에 기댔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20/20(아직도 방송하나?)의 프로듀서도 뉴욕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서 일하는 코트니 컴스탁이라는 포르노배우 같은 이름의 기자가 뉴욕 IT업계에 대해 추가 질문을 하려고 전화를 해왔다(그녀는 이후 골드먼삭스를 다룬 내 글에 관해서도 기사를 썼다). 스톡홀름의 어느 이름 모를 IT 컨퍼런스에서도 나더러 강의를 해달라며 초청했다. 경비도 대준다고 했다. 사람들이 크리스 딕슨 등 뉴욕의 저명한 투자자에게 글을 포워딩해서 평을 청했다. 소셜미디어의 언덕에 애드그로크라는 이름이 울려 퍼졌고, 나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마지막에 나오는 슬림 픽컨스 같은 기분이었다. 즉 원자폭탄 위에 올라타서 거대한 버섯구름을 보려고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고함치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그 전략은 기대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했다. 애드그로크의 트래픽은 피보나치의 토끼들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일일 페이지뷰가 5만을 찍고 있었다. 『애틀랜틱』에 비하면 별것 아닐지 모르지만, 전날까지만 해도 하루에 십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던 스타트업에게는 엄청난 숫자였다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고 싶을 때면 우리의 웹서버 로그를 보면 됐다. 그나마 절반은 애드그로크 팀원이나 가족들이 접속한 거였으니까).

저자 블랙개그와 역자의 번역이 상당히 찰짐. ㅋㅋㅋㅋㅋ

제프 베조스의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려는 창업가에게 하는 조언

잠시동안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1위 부자[1]가 되었던-_- 제프 베조스 형이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려는 창업가에게 하는 조언[2]이 있다고 한다.

    My advice to anyone starting a business is to remember that someday I will crush you
    사업을 시작하려는 모든 분들에게 드리는 나의 조언은 내가 언젠가는 당신을 작살낼 거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의 명언에 등극해야겠구만 ㅋㅋㅋㅋ 이걸 보니 사업적 역량의 자신감이 드러나는 베조스 형의 다른 명언이 생각난다.

    Your margin is my opportunity.

근데 이 말은 너무 유명해서 출처를 잘 못 찾겠음-_-

the onion이 뭐하는 사이트인지 몰랐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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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31
워싱턴포스트를 IT기업으로 부활시킨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의 마법 (smartaedi.tistory.com)

 


[1] 테크크런치 Jeff Bezos beats out Bill Gates to become world’s richest person Jul 27, 2017
[2] the onion My Advice To Anyone Starting A Business Is To Remember That Someday I Will Crush You 8.1.17

[서평] 한국인은 미쳤다!- LG전자 해외 법인을 10년간 이끈 외국인 CEO의 생생한 증언

한국인은 미쳤다!10점
에리크 쉬르데주 지음, 권지현 옮김/북하우스

여러 채널을 통해 익히 소문을 들은 책이라 서둘러 읽어보았다. 분량이 많지 않아 세 시간 집중하니 금방 완독할 수 있었다.

이 책은 10년간 LG 프랑스 지점에서 일해온 저자가 그간의 경험을 짧게 쓴 회고록이다. 군대식 서열문화와 경직된 LG 기업문화를 체험한 저자가 솔직히 느낀 바를 서술하고 있다. 저자의 무한한 포용력과 이해심으로 이러한 똥같은 기업문화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조직생활 부적응과 사교성 부재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내가 읽어보니 완전 답답한 기업문화인데, 이야기를 들을 수록 LG 사내문화가 경멸스럽기 그지없다.

저자는 사람이 대단히 긍정적이고 도전정신이 강한 사람인 것 같다. 도전하는 느낌으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거나 또는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군대식 기업환경의 장단을 인지하고 있고, 그 안에서 여러가지를 성취하려고 노력한다.

맥킨지 시절의 LG[1]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세간의 통념인데, 저자는 남용 부사장을 매우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본인도 열린 기업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한 남용 부사장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특히 맥킨지에게 컨설팅을 맡긴 점이 실수가 아닐까. ㅋ

한국적 기업문화를 비한국인을 통해 돌아본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독서 여부를 판단할 때 indizo씨의 서평[2]도 참고하기 바란다.

 


2015.11.5

비밀이 모두 풀렸다-_-

 


2015.11.24

 


2015.11.29
이코노미스트 Loosening their ties Nov 28th 2015

 


2017.9.27
LG가 모바일 시장에서 밀려나는 과정 in ppomppu.co.kr

 


[1] 내 백과사전 맥킨지의 사기행각 2013년 6월 26일
[2] 한국인은 미쳤다 by indizio

[서평] 일본 전자.반도체 대붕괴의 교훈

일본 전자.반도체 대붕괴의 교훈
유노가미 다카시 (지은이), 임재덕 (옮긴이) | 성안당 | 201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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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반도체 패전'[1]을 쓴 유노가미 다카시 선생의 책이다. 그의 전작도 읽어봤는데, 그 책의 논의를 이어서 계속하고 있고, 핵심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은 큰 차이가 없으므로 시간이 없다면 두 권 중 한 권만 읽어도 될 듯 하다.

일전에 엘피다 메모리 몰락의 원인에 대한 전작[1]을 인용[2]한 적이 있는데, 책의 앞부분에 전작에서 설명한 합병과정의 구조적 문제점 외에도 엘피다 메모리 사장의 경영적 실패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3장 이후 책의 후반부에는 저자 개인의 추정이나 감상적 의견이 대단히 많아서 그리 유익한 내용은 아니었다.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시장이나 상황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2015년 현재 시점에서 이 책이 인용하는 데이터나 분석, 시장 상황 등은 약간 낡은 감이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책에서 언급한 3차원 DRAM 적층은 이미 양산되어 생산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삼성-애플 소송이야기는 이미 거의 정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최신 반도체 산업 동향이라는 시의성을 강조한 관점보다는, 경영학적 실패사례로서 보면 좀 더 의미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전에 포브스 한국어판 기사[3]에서 반도체 공정의 낮은 수율을 스피드로 극복하는 사례에 대한 기사[4]를 인용한 적 있는데, 비슷한 이야기가 본 서에도 나온다.

p96-98

엘피다에서 삼성으로 전직한 X 이사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X 이사는 내가 도시샤 대학의 교원이었던 2005년에 인터뷰를 했다. 당시,엘피다의 수율은 98%, 삼성의 수율은 83%였다. 그 숫자를 본 애널리스트들은 엘피다가 삼성보다 기술력이 높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X 이사는 ‘이러한 평가는 전혀 의미가 없다’라고 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최첨단의) 512Mb DRAM의 칩 면적은 삼성이 70평방 밀리미터,엘피다가 91평방 밀리미터였다. 따라서 300mm 웨이퍼로부터 취득할 수 있는 칩의 수는 수율 83%의 삼성이 약 830개, 수율 98%의 엘피다는 약 700개가 되어 수율이 나쁜 삼성이 다수 DRAM을 취득할 수 있었다[웨이퍼의 외곽이기 때문에 쓸모없게 되는 부분(엣지 액스크루드 존,Edge Excluded Zone)이나 칩을 자를 때 소용없게 되는 폭(스크라이브라인, scribe Line)의 문제는 생략했다].

둘째,수율을 60%에서 80%로 올리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80%에서 98%로 올리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즉, 사람, 돈, 시간 등 방대한 자원이 필요하다. 삼성은 수율 80% 이상 이라면 충분히 비즈니스가 성립되므로, 그 이상의 수율을 추구할 필요가 없고, 하지도 않는다.

셋째,삼성은 당시 양산하고 있던 DRAM의 Shrink판에 대해서, 4세대 동시 개발을 실시하고 있었다. 즉,한층 더 작은 DRAM의 출시를 앞두고 있었다(이 4세대 동시 개발은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따라서 현행 양산품의 수율 향상에 과다한 코스트를 들이지 않고, 좀 더 작은 칩 사이즈의 DRAM 양산 시작을 우선시했다.

넷째,삼성이 쓰고 있는 제조 장치의 스루풋(웨이퍼 처리의 효율)은 엘피다의 약 2배였다. 즉, 1매의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형성하는 시간이 엘피다의 반이다. 이와 반대로 같은 매수의 웨이퍼를 처리하는 경우, 엘피다는 삼성의 2배에 달하는 제조 설비가 필요하다. 그 결과,엘피다의 칩 원가는 대략 삼성의 배가 된다. DRAM은 칩 원가의 반 이상을 제조설비가 차지한다. 만일 엘피다의 칩 취득 수가 삼성보다 많다고 하더라도 이익률에서는 엘피다가 삼성을 완전히 이길 수는 없다(실제로 2005년의 영업 이익률은 삼성이 약 30%,엘피다가 약3%로 한 자릿수가 다르다)

특히 기술적으로 뒤지지만 판로를 개척하는 사례(초창기 TSMC나 NAND 시장의 형성)를 들면서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관점은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필요한 부분만 읽으면 하루 안에 완독할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라 생각한다. 일독을 권한다.

 


[1] 일본 반도체 패전 – 혁신의 딜레마 유노가미 다카시 (지은이), 임재덕 (옮긴이), 윤상균 (감수) | 성안당 | 2011-04-15
[2] 내 백과사전 엘피다 메모리 몰락의 원인 2013년 3월 13일
[3] 포브스코리아 high-tech industry – OLED 디스플레이에 상상의 나래 펴다 2013.10.23
[4] 내 백과사전 한국 반도체 공정의 스피드 2013년 1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