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페이스북의 내부 분위기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저/문수민 역, “카오스 멍키“, 비즈페이퍼, 2017

실리콘밸리의 여러 대기업은 본디 엔지니어링을 중시하는 문화를 지니고 있다. 페이스북은 그런 풍조를 한 차원 더 끌어올렸다. 페이스북을 이끄는 것은 엔지니어이며, 코드를 만들어내는 한, 그리고 회사 기물을 (지나치게 자주) 부수지 않는 한, 귀중한 존재로 대접받는다. 파괴적인 해커의 혼은 모든 회사 강령의 지침이 되었다. 페이스북 초창기, 크리스 퍼트넘이라는 어느 조지아 공대 출신 애송이가 페이스북 프로필을 당시 소셜미디어의 대표주자였던 마이스페이스와 비슷하게 바꾸는 바이러스를 만들었다. 그 바이러스는 기승을 부리며 사용자 데이터까지 지워버리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의 공동창업자 더스틴 모스코비츠는 퍼트넘을 FBI에 신고하는 대신 면접을 보게 하고 입사를 제안했다. 이후 그는 페이스북에서 유명하고 에너지 넘치는 엔지니어로 탈바꿈했다. 그 일은 페이스북 특유의 해적다운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를 신속히 해결할 수 있다면 아무도 기존의 법적 윤리나 자격 여하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해커의 에토스가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었다.

그 문화야말로 돈이 있으면 맘껏 즐길 수 있는 도시에 사는 연봉 50만 달러의 스물셋 먹은 애들이 하루 열네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도록 붙들어두는 것이다. 그들은 하루 세 끼를 회사에서 해결하고, 때로는 잠도 자며, 코드를 짜고 검토하고, 페이스북 내부 그룹대화창에서 새 기능에 대해 의견을 달며 살아간다. 페이스북판 ‘승리의 날’이라 할 수 있는 기업공개 당일조차, 광고부는 금요일 저녁 8시까지 바삐 일하는 엔지니어들로 가득했다. 손에 쥔 종이쪽이 현금으로 바뀌고 모두가 엄청난 돈방석에 앉은 그날에도(심지어 엄청난 대박을 냈다고 해도), 사람들은 하나같이 회사에서 코드를 쓰고 있었다.

페이스북에서는 광신도가 세례를 받고 예수를 찾은 날을 기념하듯, 혹은 미국 시민으로 거듭난 이들이 성조기 앞에서 선서한 날을 기념하듯, 입사일을 회사 차원에서 축하해준다. 그 행사는 (진짜로) ‘페이스북 기념일’이라 불리며, 보통사람들이 생일을 축하하듯이 모든 동료가 내 페이스북 페이지에 몰려와 축하해주는 것은 물론, 종종 회사나 동료가 숫자 2와 비슷하게 생긴 거대한 풍선이 달린 화려한 꽃다발을 깜짝 선물 삼아 책상에 보내주기도 한다. 누군가 페이스북을 떠날 때면(대개 풍선이 4나 5로 바뀔 즈음이다), 모두들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행동한다. 마치 존재의 현 차원을 떠나 다른 차원으로 건너가는 것 같은 분위기다(물론 다른 차원이 현 차원보다 더 나으리라고 가정하는 법은 없다). 페이스북에서 맞는 죽음을 기념하는 묘비는 페이스북에 올린 닳고 닳은 사원증 사진이다. 페이스북을 떠나며 유서와 직접 쓴 묘비명도 함께 써넣는 것이 관례다. 그런 글에는 1분도 지나기 전에 수백 건의 ‘좋아요’와 댓글이 달린다.

한편 떠나는 이도 진짜 죽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페이스북을 떠나면 직원에게만 개방된 페이스북 내부 네트워크도 떠나야 한다. 즉 (비밀스러운 회사정보를 포함하여) 회사 내부 게시판에 내가 올렸던 모든 글에 접속할 수 없으며 (당연히 하루 24시간 접속하고 있는) 다른 페이스북 직원 사이에서도 내가 올린 글은 점차 잊힌다. 그리고 바깥세상을 향한 유일한 통로인 페이스북 피드는 거의 방문객이 없을 정도로 갑자기 한산해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나를 전 페이스북 직원 비밀그룹에 초청한다. 퇴사한 직원들이 회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퇴직 후의 연옥 같은 곳이다.

잠시 멈추고 이 일들에 대해 숙고해보자. 호전적인 엔지니어링 문화, 일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분위기, 위대한 목표를 위한 사도와 같은 헌신. 냉소적인 사람들은 저커버그나 여타 고위 경영진이 읊어대는 ‘보다 개방적이고 연결된 세상’ 운운하는 말을 보고 ‘감성적인 헛소리군’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비평가들 또한 신제품이나 파트너십 등을 보며 페이스북이 돈을 벌기 위해서만 그런 일들을 하겠거니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페이스북은 진짜, 진짜, 진짜 돈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닌 진정한 신도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남자, 여자, 아이 들이 페이스북 로고가 담긴 파란 창을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진짜, 진짜, 진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런 열정이 단순한 물욕보다 더 무섭다. 물욕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적당한 가격을 제시하면 사들일 수 있고, 그의 행동은 예측가능하다. 그러나 진정한 광신자는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해도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고, 그의 광기어린 비전이 그와 추종자를 어디로 이끌고 갈지도 알 수 없다.

마크 엘리엇 저커버그와 그가 만들어낸 회사는 바로 그런 곳이다.

2011년 6월, 구글은 언뜻 보기에도 페이스북을 따라한 ‘구글플러스’라는 제품을 내놓았다.

(중략)

구글플러스는 구글이 드디어 페이스북에 주목하고 전력으로 맞서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채용에 관해 협잡을 부리거나 IT 컨퍼런스에서 험담을 하는 것보다 훨씬 위협적이었던 구글의 신제품은 페이스북에 폭탄을 떨어뜨린 듯한 충격을 주었다. 저커버그는 구글플러스 출시를 1961년 소련이 쿠바에 핵무기를 배치하려던 때와 같은 존재적 위협으로 간주했다. 거대한 적이 우리의 영역을 공격해온 것이었고, 저커버그는 적의 공격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저커버그는 ‘락다운lockdown’을 선언했다. 내가 페이스북에 머무는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 락다운이었다. 페이스북에서 잔뼈가 굵은 직원들의 설명을 들어보니 락다운은 페이스북 초기에 볼 수 있었던 ‘전시상태 선언’으로, 회사가 경쟁업체나 신기술로 인한 위협에 맞닥뜨렸을 때 아무도 회사 건물을 떠날 수 없도록 하는 조치라고 했다.

어떻게 공식적으로 락다운을 선포했느냐고? 구글플러스가 출시된 날 오후 1시 45분, 전 직원은 이메일을 받았다. 저커버그의 유리방 주변으로 모이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정확하게는 락다운 표지판 주변에 모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것은 유리방 위쪽에 설치되어 있는 네온사인으로, 고속도로변 모텔의 ‘빈 방 없음’ 표지판과 닮아 있었다.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들자 표지판에 불이 들어와서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칠지 암시해주었다.

저커버그는 대체로 연설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는 내용만을 중시하며 언어를 분석하는 데 익숙한 사람 특유의 빠르고 짧은 말투로 말했다. 그의 두뇌는 매우 기민한 속도로 움직였으므로 수사적 표현을 곁들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동시에 네 대는 기본으로 모니터에 코드를 띄워두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컴돌이식 말투였다. 그의 태도는 모여든 사람들과는 달리 초연했지만, 그럼에도 거의 정신이상자를 방불케 하는 강렬한 눈빛은 인상적이었다.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애잔한 직원 등을 포함, 상대방의 마음을 마구 뒤흔들어놓고 무기력하게 느끼게 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가 『포천』지나 『타임』지 표지에서 보이는 바로 그 눈빛. 그 눈빛에 오싹한 페르소나를 덧입히기란 어렵지 않다. 페이스북의 저의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편집증의 절반 정도는, 아마도 그리 좋지 못한 그의 첫인상과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잘못된 캐릭터 설정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 저커버그는 위대한 자질이 명료하게 드러나는 카리스마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그런 순간에는 놀랍기 그지없었다.

2011년의 락다운 연설은 그런 순간은 아니었다. 저커버그는 경영진이 앉아 있는 책상 옆의 개방된 공간에 서서, 즉석연설을 했다. 페이스북의 모든 엔지니어, 디자이너, 제품관리자가 골몰한 얼굴로 그 주변에 모여서 있었다. 마치 장군이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연설하는 모습을 방불케 했다.

저커버그는 이제 사용자를 놓고 구글과 벌이는 경쟁이 직접적인 제로섬 양상을 띨 거라고 선언했다. 구글이 경쟁 제품을 내놓았으니 이제 한쪽에서 사용자를 얻으면 다른 한쪽이 잃게 되는 게임이 벌어진 것이다. 전 세계의 사용자가 페이스북 대 구글판 페이스북을 시험해보고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지 결정하는 동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임무는 바로 우리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저커버그는 새로이 부상한 경쟁자를 감안해서 재고해볼 만한 제품 변화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언급했다. 하지만 진짜 핵심은 안정성을 높이고, 풍요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고, 사이트의 능률을 제고하게끔 모두의 사기를 북돋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회사를 지배하는 만트라가 완벽보다 완성이 낫다이자 완벽은 선의 적이다였으니만큼, 저커버그의 말은 노선 변경을 의미했다. 신제품을 출시한다는 동기에 밀려 등한시했던 품질을 중시하라는 것이었다. 그건 페이스북이 민망한 버그나 에러를 겪은 뒤 저커버그가 퍼붓곤 했던 귀찮은 잔소리와 비슷해서, 마치 아버지가 방을 치우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평소처럼 단조로운 연설이 되지 않도록, 저커버그는 기어를 바꾸고 하버드와 그 이전 학창시절에 공부했던 고전에서 인용한 표현을 터뜨렸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로마의 웅변가는 모든 연설을 이 말로 끝맺었습니다. ‘카르타고 델렌다 에스트Carthago delenda est! 카르타고는 멸망시켜야 한다!’ 왠지 모르지만 지금 그 말이 떠오릅니다.” 그는 말을 잠시 멈추고 사람들 사이에 웃음의 파도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 말을 남긴 웅변가는 물론 대 카토다. 로마의 원로원 의원이었던 그는 이후 3차 포에니전쟁으로 발전한 싸움에서 로마에 맞선 위대한 도전자 카르타고를 향해 독설을 퍼부으며 파괴하겠다고 부르짖은 장본인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는 주제와 상관없이 모든 연설을 그 구절로 끝맺었다고 한다.

카르타고는 멸망시켜야 한다!

저커버그의 목소리는 아버지 같은 외침에서 어머니 같은 간곡한 어조로 옮겨갔다. 구글이 들이댄 위협을 언급할 때마다 드라마는 더욱 극적으로 변해갔다. 연설은 우레 같은 함성과 박수로 끝났다. 모두들 필요하다면 폴란드라도 침공할 태세로 그곳을 떠났다. 멋진 퍼포먼스였다. 카르타고는 멸망시켜야 한다!

(중략)

카르타고 포스터는 즉시 사내 곳곳에 나붙었고, 붙자마자 사람들이 홈쳐갔다. 카페가 주말 내내 열 것이라는 공지도 돌았다. 직원 사이에서는 팰로앨토와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하는 셔틀버스를 주말에도 운행해달라는 진지한 제안도 나왔다. 그런 정책은 페이스북을 주 7일 근무 기업으로 만드는 셈이었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직원은 직무를 수행하고 있어야 했다. 가족이 있는 소수의 직원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페이스북은 직원 가족도 주말에 회사를 방문해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적어도 아이들이 주말 오후에 아빠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정말 대부분이 아빠였다). 영국인 트레이더(본인 주 : 저자는 자신의 부인을 이렇게 부름)와 조이가 놀러 왔고, 그 밖의 다른 가족도 많았다. 로고가 박힌 후드티를 입은 페이스북 직원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전 한 시간 동안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페이스북의 내부 그룹들이 떨쳐 일어나 구글플러스의 모든 요소를 해부했다. 구글플러스가 출시된 첫날, 나는 폴 애덤스라는 광고부 제품관리자가 저커버그 및 고위 경영진 몇 명과 작은 회의실에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페이스북으로 옮겨오기 전, 폴이 구글플러스의 제품관리자 중 하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제 제품이 출시되었으므로 그는 더 이상 구글의 비밀유지조항에 매이지 않게 되었고, 페이스북은 그를 불러 구글플러스를 이끄는 리더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페이스북은 농담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건 전면전이었다.

나는 정찰을 좀 해보기로 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출근길에 나는 101번 도로에서 펠로앨토 방향 출구를 지나 마운틴뷰로 향했다. 그리고 해안선을 따라 점점 확장 중인 구글 캠퍼스로 들어섰다. 다양한 색의 구글 로고가 도처에 보였고, 구글 색으로 칠한 자전거가 정원에 늘어서 있었다. 전에 구글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으므로 나는 엔지니어링 동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그곳에 가서 주차장을 살펴보았다.

그곳은 비어 있었다. 완전히.

흥미로웠다.

나는 101번 도로를 타고 페이스북으로 향했다.

캘리포니아 가의 페이스북 본사에 도착한 나는 주차할 곳을 찾아 헤매야 했다. 주차장은 만차 상태였다.

어느 회사가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는지는 명확했다.

카르타고는 멸망시켜야 한다!

스타트업이 주목받는 법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저/문수민 역, “카오스 멍키“, 비즈페이퍼, 2017

스타트업에게 언론의 관심은 섹스와 같다. 좋은 것 그리고 더욱 좋은 것, 이 둘 뿐이다. 창업자라면 언론에 철저히 외면당하느니 공공장소에서 동성애, 소아성애, 수간으로 체포당해서 기사거리가 되는 편이 낫다고 여겨야 한다. 당시 우리가 언론에서 받은 관심은 전무했다. 초기 스타트업은 내용물뿐 아니라 포장도 중요하다. 이제 뉴스거리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었다.

친구들이 퇴근한 뒤, 나는 쓰레기만 가득한 텅 빈 원룸에 혼자 남았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위층에 사는 시끌벅적한 인도인들이 여는 이유 모를 파티 소리뿐이었다. 내 생각에 아마도 포르노영화를 보는 파티였지 싶다. 내가 십대 시절 가봤던 비슷한 파티처럼, 처음에는 모두들 소리를 치고 발을 구르다가 갑자기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에 잠긴 채 흠집이 난 원목 바닥 위를 서성였다. 애드그로크의 이름으로 처음 포스팅할 때 내가 건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상대는 뭘까? 뉴요커들의 폭발하는 화산 같은 자부심만큼 찔러보기 좋은 주제가 어디 있겠는가! 스타트업의 신이 미소짓고 있었다.

배경 설명을 좀 해야겠다. 전날 밤 저녁식사에서 론 콘웨이가 뉴욕의 스타트업계를 보며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레이엄도 그에 관해 몇 마디 했다. 골드먼삭스에서 보냈던 시절을 상기하며, 나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왜 스타트업의 터전이 될 수 없는지 생각해보았다. 벤처캐피털리스트가 없고, 뭔가 결과물을 만들려는 사람보다는 사기꾼이 많고, 월가가 최고의 인재를 모조리 빼가버린다는 것, 내가 스타트업을 차리러 월가를 떠난다고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지었던 비웃는 표정. 뉴욕이 스타트업을 위한 풍요로운 터전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뉴욕에서 살거나 일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레이엄은 천재적 구루였지만, 많은 천재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상황을 터무니없이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내 뮤즈는 광적으로 귓가에 아이디어를 속삭여댔고,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남들의 명예를 후려치는 과도한 일반화, 재미있는 일화와 적절한 각주가 이어졌다. 친구들이 집에 간 뒤 이틀 밤에 걸쳐 타이핑을 해댄 결과, 나는 글을 완성했다.

일부를 소개해둔다.

개방형 대 폐쇄형 소스

뉴욕의 경제는 정보의 독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월가의 은행은 자사가 거래하는 제품의 시장 흐름에 대한 내부 정보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거래를 계속해나갈 수 있다. 출판에이전트는 출판사로의 좁은 문을 여는 열쇠를 손에 쥔 채 수많은 작가 지망생을 줄 세워둔다. 부동산중개인은 임대차계약서에 서명할 때마다 15퍼센트의 수수료를 챙긴다(다시 말하지만, 매매가 아니라 임대다). 비어 있는 아파트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것만으로 2개월 치 봉급에 해당하는 금액(상환선 5,000달러)을 챙기는 것이다.

뉴욕에서는 이런 독점현상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부동산 알선업자에게 두 달 치 봉급을 내지 않는다. 그냥 크레이그리스트를 만들어 뚜쟁이의 존재이유 자체를 말살시킬 뿐이다.

조회수를 늘리기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전 국민이 공감할 만한 폭발적인 밈이 또 없을까?

아!

내 전 고용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흡혈오징어처럼 촉수를 뻗어 미국 전역의 처녀를 겁탈하고 아기들을 굶긴 자본주의의 거대악, 바로 골드먼삭스가 딱이었다. 골드먼삭스를 두들겨 패면 모두들 환호할 터였다. 골드먼삭스 내부의 삶이 어떤지 공개하면 사람들의 호기심이 얼마나 끓어오를지, 골드먼삭스를 비난하면 모두들 얼마나 환호할지 상상해보자. 터부를 공공연히 말하는 것은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구경거리다.

뉴욕의 IT업계와 골드먼삭스에서의 삶, 그것이야말로 (마케팅업계의 용어를 빌리자면) ‘콘텐츠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두 시발점이 될 터였다.

홍보업계에 파다한 신화에 따르면, 어느 요일에 글을 올리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식의 규모와 반향에 따라, 언론의 뉴스는 업계에서 메아리처럼 굴절되어 퍼져나간다. 그래서 글을 올린 다음 메아리가 울려 퍼질 만한 시간이 필요하다(주말은 안 된다). 월요일은 사람들이 여전히 주말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숙취며 시차에 시달리는데다 메일이나 회의 등으로 바쁘기 때문에 너무 이르다. 목요일에는 사람들이 주말에 뭘 할까 생각하기 시작하고, 해피아워 따위를 노리며 술집으로 몰려가느라 빨리 퇴근할 가능성이 높다. 금요일에 새 소식을 알리는 것은 발표하는 게 아니라 소식을 묻어버리는 데 가깝다. 금요일은 사람들을 해고하고 나쁜 수익보고서를 발표하는 날이다.

나는 우리가 터뜨린 폭탄의 폭발음이 인터넷상의 사이보그에서부터 캔자스의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울릴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화요일에 글을 올리기로 했다.

태평양 기준시로 오전 9시, 나는 인터넷의 어느 틈새시장에 접속했다. 바로 ‘해커 뉴스’였다. YC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레딧’과 비슷한 게시판으로, 컴돌이, 분주한 YC 소속 창업자, 욕구불만 상태이면서도 자못 진지한 체하는 ‘사업가 지망생’이 모여드는 기묘한 도가니 같은 곳이었다. 나는 글을 올린 다음 관심을 좀 모으기 위해서 친구들 몇 명에게 ‘추천’을 눌러달라고 부탁했다. 몇 분 만에, 그 글은 해커 뉴스에서 가장 많이 읽은 글이 되었다. 전 세계의 모든 유능(및 무능)한 젊은 IT업계 사람들이 보게 된 것이다. 이어 로버트 스코블이 글을 트윗하면서 문제의 글은 정말 온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로버트 스코블은 IT업계에서는 신비롭고 힘 있는 존재다. 구세대, 아니 IT계의 쥐라기에서 온 듯한 나이 지긋하고 창백한 백인 컴돌이다. 온갖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지인을 만나며 최신 제품을 직접 써보고 평하는 와중에 지속적으로 트위터를 통해 활동하고 있어서, 실리콘밸리의 생태계에 광적인 집착을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공식적으로 그는 당시 무슨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고용되어 있었는데, 그건 스코블의 작은 일면에 불과했다. IT에 관련된 거라면 뭐든 숭배하는 그의 성향은 조금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근본은 좋은 사람처럼 보였고, 실리콘밸리의 주요 선수들 다수가 그의 트윗을 팔로했다. 스코블은 트윗만으로도 스타트업의 명운을 가릴 수 있을 만큼 IT계에서 영향력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우리가 올린 글을 스코블이 트윗한 것이다. 그 자체는 좋은 일이었지만, 공교롭게도 덕분에 우리의 블로그는 먹통이 되었다. 수천 명이 서버에 접속하는 바람에 완전히 다운되고 말았다.

애드그로크 본부에서는 패닉이 벌어졌다.

아지리스와 나는 불안해하며, 블로그의 서버에 로그인하려고 애쓰는 매슈의 등 뒤에 서 있었다. 우리는 단순하게도 아마존 클라우드 컴퓨터 한 대만 빌려서 블로그의 서버로 사용하면서 당시 오줌줄기처럼 빈약하던 일간 페이지 접속을 감당했다. 그런데 갑자기 접속이 폭주해서 CPU와 네트워크 연결에 과부하가 걸린 나머지 매슈가 로그인을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본부에 감도는 침묵 속에서, 세 개의 괄약근이 동시에 죄어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트위터를 새로고침해보니 알림이 계속 쌓여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미친 듯이 리트윗을 하고,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애드그로크닷컴에 접속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관심을 받아도 헛일이었다. 서버가 내 위대한 글의 HTML 버전을 그들에게 보여주지 않아서, 아무도 우리의 웹사이트와 제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폐쇄 시험 단계였으므로 아무도 우리 툴을 써볼 수조차 없었다. 그 글을 올린 것은 실질적으로 우리 제품을 사라고 유도하는 게 아니라 애드그로크라는 회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이 포스트가 이렇게 성공적일 줄은 미처 몰랐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웹사이트에 들르면 제품을 써볼 수 있게끔 준비를 갖춰 두었을 것이다.

젠장, 좆됐다!

마침내 매슈가 원격 블로그 서버에서 명령 프롬프트를 잡아냈다. 느릿느릿 실행할 수 있는 명령어 몇 개를 이용해서 매슈는 재빨리 끌어다 쓸 수 있는 아마존 컴퓨터에 블로그를 복제하고, 소방호스의 물줄기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트래픽을 즉각 다른 새 컴퓨터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엔지니어 중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지닌 매슈는 필요하면 토스터에서도 리눅스를 실행시킬 수 있을 터였다.

내 컴퓨터로 다시 블로그에 접속해서 잘되는지 확인해보았다. 홈페이지가 떠 있었다. 활동을 재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우호적인 트윗에 예절바르게 답하고, 화제가 계속 퍼져나가도록 힘을 실어줄 때였다. 글에는 곧 수십 개, 마침내 수백 개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댓글이 달렸다. 어느 쪽이든 좋았다. 사태가 끝날 무렵, 수천 명이 우리 사이트의 회원으로 가입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당시 떠오르던 클릭 낚시질계의 발행인들은 가장 흥미로운 단락을 낯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베낀 뒤 그 글에 대한 기사를 써서 우리의 홍보에 기댔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20/20(아직도 방송하나?)의 프로듀서도 뉴욕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서 일하는 코트니 컴스탁이라는 포르노배우 같은 이름의 기자가 뉴욕 IT업계에 대해 추가 질문을 하려고 전화를 해왔다(그녀는 이후 골드먼삭스를 다룬 내 글에 관해서도 기사를 썼다). 스톡홀름의 어느 이름 모를 IT 컨퍼런스에서도 나더러 강의를 해달라며 초청했다. 경비도 대준다고 했다. 사람들이 크리스 딕슨 등 뉴욕의 저명한 투자자에게 글을 포워딩해서 평을 청했다. 소셜미디어의 언덕에 애드그로크라는 이름이 울려 퍼졌고, 나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마지막에 나오는 슬림 픽컨스 같은 기분이었다. 즉 원자폭탄 위에 올라타서 거대한 버섯구름을 보려고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고함치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그 전략은 기대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했다. 애드그로크의 트래픽은 피보나치의 토끼들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일일 페이지뷰가 5만을 찍고 있었다. 『애틀랜틱』에 비하면 별것 아닐지 모르지만, 전날까지만 해도 하루에 십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던 스타트업에게는 엄청난 숫자였다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고 싶을 때면 우리의 웹서버 로그를 보면 됐다. 그나마 절반은 애드그로크 팀원이나 가족들이 접속한 거였으니까).

저자 블랙개그와 역자의 번역이 상당히 찰짐. ㅋㅋㅋㅋㅋ

제프 베조스의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려는 창업가에게 하는 조언

잠시동안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1위 부자[1]가 되었던-_- 제프 베조스 형이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려는 창업가에게 하는 조언[2]이 있다고 한다.

    My advice to anyone starting a business is to remember that someday I will crush you
    사업을 시작하려는 모든 분들에게 드리는 나의 조언은 내가 언젠가는 당신을 작살낼 거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의 명언에 등극해야겠구만 ㅋㅋㅋㅋ 이걸 보니 사업적 역량의 자신감이 드러나는 베조스 형의 다른 명언이 생각난다.

    Your margin is my opportunity.

근데 이 말은 너무 유명해서 출처를 잘 못 찾겠음-_-

the onion이 뭐하는 사이트인지 몰랐음-_-

 


[1] 테크크런치 Jeff Bezos beats out Bill Gates to become world’s richest person Jul 27, 2017
[2] the onion My Advice To Anyone Starting A Business Is To Remember That Someday I Will Crush You 8.1.17

[서평] 한국인은 미쳤다!- LG전자 해외 법인을 10년간 이끈 외국인 CEO의 생생한 증언

한국인은 미쳤다!10점
에리크 쉬르데주 지음, 권지현 옮김/북하우스

여러 채널을 통해 익히 소문을 들은 책이라 서둘러 읽어보았다. 분량이 많지 않아 세 시간 집중하니 금방 완독할 수 있었다.

이 책은 10년간 LG 프랑스 지점에서 일해온 저자가 그간의 경험을 짧게 쓴 회고록이다. 군대식 서열문화와 경직된 LG 기업문화를 체험한 저자가 솔직히 느낀 바를 서술하고 있다. 저자의 무한한 포용력과 이해심으로 이러한 똥같은 기업문화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조직생활 부적응과 사교성 부재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내가 읽어보니 완전 답답한 기업문화인데, 이야기를 들을 수록 LG 사내문화가 경멸스럽기 그지없다.

저자는 사람이 대단히 긍정적이고 도전정신이 강한 사람인 것 같다. 도전하는 느낌으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거나 또는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군대식 기업환경의 장단을 인지하고 있고, 그 안에서 여러가지를 성취하려고 노력한다.

맥킨지 시절의 LG[1]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세간의 통념인데, 저자는 남용 부사장을 매우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본인도 열린 기업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한 남용 부사장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특히 맥킨지에게 컨설팅을 맡긴 점이 실수가 아닐까. ㅋ

한국적 기업문화를 비한국인을 통해 돌아본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독서 여부를 판단할 때 indizo씨의 서평[2]도 참고하기 바란다.

 


2015.11.5

비밀이 모두 풀렸다-_-

 


2015.11.24

 


2015.11.29
이코노미스트 Loosening their ties Nov 28th 2015

 


2017.9.27
LG가 모바일 시장에서 밀려나는 과정 in ppomppu.co.kr

 


[1] 내 백과사전 맥킨지의 사기행각 2013년 6월 26일
[2] 한국인은 미쳤다 by indizio

[서평] 일본 전자.반도체 대붕괴의 교훈

일본 전자.반도체 대붕괴의 교훈10점
유노가미 다카시 지음, 임재덕 옮김/성안당

‘일본 반도체 패전’을 쓴 유노가미 다카시의 책이다. 그의 전작도 읽어봤는데, 그 책의 논의를 이어서 계속하고 있고, 핵심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은 큰 차이가 없으므로 시간이 없다면 두 권 중 한 권만 읽어도 될 듯 하다.

일전에 엘피다 메모리 몰락의 원인에 대한 전작을 인용[1]한 적이 있는데, 책의 앞부분에 전작에서 설명한 합병과정의 구조적 문제점 외에도 엘피다 메모리 사장의 경영적 실패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3장 이후 책의 후반부에는 저자 개인의 추정이나 감상적 의견이 대단히 많아서 그리 유익한 내용은 아니었다.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시장이나 상황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2015년 현재 시점에서 이 책이 인용하는 데이터나 분석, 시장 상황 등은 약간 낡은 감이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책에서 언급한 3차원 DRAM 적층은 이미 양산되어 생산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삼성-애플 소송이야기는 이미 거의 정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최신 반도체 산업 동향이라는 시의성을 강조한 관점보다는, 경영학적 실패사례로서 보면 좀 더 의미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전에 포브스 한국어판 기사에서 반도체 공정의 낮은 수율을 스피드로 극복하는 사례에 대한 기사[2]를 인용한 적 있는데, 비슷한 이야기가 본 서에도 나온다.

p96-98

엘피다에서 삼성으로 전직한 X 이사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X 이사는 내가 도시샤 대학의 교원이었던 2005년에 인터뷰를 했다. 당시,엘피다의 수율은 98%, 삼성의 수율은 83%였다. 그 숫자를 본 애널리스트들은 엘피다가 삼성보다 기술력이 높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X 이사는 ‘이러한 평가는 전혀 의미가 없다’라고 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최첨단의) 512Mb DRAM의 칩 면적은 삼성이 70평방 밀리미터,엘피다가 91평방 밀리미터였다. 따라서 300mm 웨이퍼로부터 취득할 수 있는 칩의 수는 수율 83%의 삼성이 약 830개, 수율 98%의 엘피다는 약 700개가 되어 수율이 나쁜 삼성이 다수 DRAM을 취득할 수 있었다[웨이퍼의 외곽이기 때문에 쓸모없게 되는 부분(엣지 액스크루드 존,Edge Excluded Zone)이나 칩을 자를 때 소용없게 되는 폭(스크라이브라인, scribe Line)의 문제는 생략했다].

둘째,수율을 60%에서 80%로 올리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80%에서 98%로 올리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즉, 사람, 돈, 시간 등 방대한 자원이 필요하다. 삼성은 수율 80% 이상 이라면 충분히 비즈니스가 성립되므로, 그 이상의 수율을 추구할 필요가 없고, 하지도 않는다.

셋째,삼성은 당시 양산하고 있던 DRAM의 Shrink판에 대해서, 4세대 동시 개발을 실시하고 있었다. 즉,한층 더 작은 DRAM의 출시를 앞두고 있었다(이 4세대 동시 개발은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따라서 현행 양산품의 수율 향상에 과다한 코스트를 들이지 않고, 좀 더 작은 칩 사이즈의 DRAM 양산 시작을 우선시했다.

넷째,삼성이 쓰고 있는 제조 장치의 스루풋(웨이퍼 처리의 효율)은 엘피다의 약 2배였다. 즉, 1매의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형성하는 시간이 엘피다의 반이다. 이와 반대로 같은 매수의 웨이퍼를 처리하는 경우, 엘피다는 삼성의 2배에 달하는 제조 설비가 필요하다. 그 결과,엘피다의 칩 원가는 대략 삼성의 배가 된다. DRAM은 칩 원가의 반 이상을 제조설비가 차지한다. 만일 엘피다의 칩 취득 수가 삼성보다 많다고 하더라도 이익률에서는 엘피다가 삼성을 완전히 이길 수는 없다(실제로 2005년의 영업 이익률은 삼성이 약 30%,엘피다가 약3%로 한 자릿수가 다르다)

특히 기술적으로 뒤지지만 판로를 개척하는 사례(초창기 TSMC나 NAND 시장의 형성)를 들면서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관점은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필요한 부분만 읽으면 하루 안에 완독할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라 생각한다. 일독을 권한다.

 


[1] 내 백과사전 엘피다 메모리 몰락의 원인 2013년 3월 13일
[2] 내 백과사전 한국 반도체 공정의 스피드 2013년 11월 25일

벌처펀드가 던진 무거운 질문, “삼성은 과연 이재용의 것인가?”

근래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삼성물산 이야기는 대충 들었지 사건의 전말은 잘 몰랐는데, 잘 정리해 주는 기사[1,2]가 있다. 재미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foog씨가 삼성물산 경영진의 배임죄에 대해 쓴 글[3]도 참고할만 하다.

 


2015.6.13
[행동주의] 엘리엇은 감동이다. (blog.naver.com/tobesupreme)

 


2015.6.20
엘리엇의 자사 주장 홍보
http://fairdealforsct.com/download_kor.html

 


2015.6.29
중앙일보 캐스팅보트 쥔 국민연금 “주주 가치 올릴 대책 내놔라” 2015.06.29 00:02

 


2016.12.17
한겨레 [단독] 국민연금 회의록에서 드러난 삼성물산 합병 찬성 4대 의혹 2016-11-22 05:01

 


2018.5.2
연합뉴스 중재전문가 “엘리엇 투자피해 소송…한국, 수천억 물어줄 수도” 2018/05/01 19:37

 


[1] 민중의소리 벌처펀드가 던진 무거운 질문, “삼성은 과연 이재용의 것인가?” 2015-06-11 08:13:51
[2] 민중의소리 삼성-엘리엇 분쟁에 한미FTA가 변수라고? 2015-06-12 18:18:58
[3] 한국경제신문이 말하는 “경영권 방어 강화”는 누구를 위한 강화인가? (economic view)

[서평] 1조 원의 승부사들- 사모펀드 최고수들이 벌이는 혈전

1조 원의 승부사들10점
박동휘.좌동욱 지음/한국경제신문

이 책은 국내 사모펀드의 형성과정과 여러가지 빅 딜들의 뒷이야기, 그리고 업계 사람들의 인터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저자 두 명은 모두 기자인 모양인데, 기자답게 인터뷰도 하고 여러가지 발로 뛰어 쓴 이야기가 많다. 확실히 저자의 노고가 묻어나오는 책이다.

국내 사모펀드의 시발점은 IMF 사태 당시 매물로 나온 알짜 국내 기업들이 해외 사모펀드들의 사냥감이 되자,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국가에서 조성을 시도한 것이라고 한다. 막연히 뭔가 좋겠지 싶어서 1호 사모펀드 등록을 하려고 소동을 피웠다는 어처구니 없는 에피소드도 나온다. ㅋ

일전에 ‘문앞의 야만인들‘이라는 사모펀드와 관련하여 유명한 책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에 못지 않은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많다. 다만 그 시절은 비교적 호황기였기 때문에 사모펀드는 기업을 사서 조각을 내거나 놔두었다가 되팔기만 해도 차익을 볼 수 있었으나, 그 이후에는 그런 작전이 주효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모펀드의 전략도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서구권에서는 사모펀드가 경영권 매입후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올린 후 되파는 일이 주요 작전이지만, 국내에서는 기업의 오너가 경영권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 때문에 그런 작전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매입 후 기업의 성장을 통한 재판매가 더 효과적인 작전이 될 수 있고, 그런 사례로 KKR이 오비맥주를 통해 올린 전설적인 수익률 이야기도 나온다.

책의 대부분은 성공 사례를 소개하고 있지만 후반부에는 실패한 사례도 나온다. 실패 사례도 성공 사례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볼 수 있다. 마지막에는 기업의 인수과정도 개략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뭐 사실 잘 모르는 세계의 이야기라 소설 같은 느낌으로 읽기는 했지만, 관심은 두어야 할 분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ㅋ 논픽션이지만 소설보다 재미있다. 본인은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분량이 그리 많지 않으니 집중하면 하루에 완독이 가능할 것 같다.

오비맥주의 시장점유율 상승 이유

일전에 맥주 시장점유율에 대한 데이터를 소개[1]한 적이 있었는데, 어떻게 오비맥주가 하이트를 제치고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늘릴 수 있었는지에 대한 비결이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나온다.

박동휘/좌동욱 저, “1조원의 승부사들“, 한국경제신문, 2015

2014년 전 세계 투자은행업계가 한국 시장의 오비맥주에 주목했다. 하지만 주인공은 오비맥주가 아니었다. KKR과 어피너티가 오비맥주를 AB인베브에 재매각하여 무려 4조 원에 이르는 기록적인 수익을 남겼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월 가의 뱅커들이 놀란 것은 매각 차익뿐만이 아니었다. M&A 거래 배수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AB인베브가 인수한 가격(58억 달러)이 에비타의 11배에 달했다. 이는 AB인베브가 2009년 5월 KKR에 오비맥주를 매각할 때 회사를 되살 수 있는 콜옵션 가격 조건을 에비타의 11배로 사전에 정해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설마 이 가격에 사겠어’라며 내건 조건을 AB인베브가 받아들인 셈이다.

뱅커들을 실제로 놀라게 한 것은 하이트와 오비맥주로 양분된 한국 맥주 시장에서 약 5년 만에 에비타를 2,000억 원에서 5,000억 원으로 성장시킨 비결이었다. 같은 기간 국내 오비맥주의 시장점유율은 40%에서 60%(업계 추정)로 늘어나면서 하이트를 2위로 밀어내고 1위에 올랐다.

“2009년엔 한국의 그 누구도 오비맥주 시장점유율이 60%로 상승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향후 5년간 이익이 두 배가 된다고 장담했다면 비웃음을 샀을 겁니다. 철저하게 기업의 내재가치를 끌어올린 결과였죠.”

2009년 KKR과 오비맥주 인수전에서 경쟁했던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가 KKR의 매각 성공 스토리를 지켜본 후 털어놓은 속내였다. 오비맥주 인수전은 당연히 국내 사모펀드 업계에도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기업의 가치를 제고하는 본질에 대한 고민들이 더 깊어졌다. 사실 KKR과 어피너티는 인수 후 구조조정을 하지도 않았고, 추가로 M&A를 하지도 않았다. 비용 절감 대신 과감한 투자가 비결이었다. 마케팅 비용을 늘리고, 유통망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한편 우수한 인력들을 끌어들였다. 2010년부터 시설 투자금으로 무려 2,000억 원을 쏟아부었다. 이런 노력들을 기울인 결과 기업가치가 올라가고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선 것이다.

(중략)

KKR과 어피너티라는 환상의 조합

오비맥주를 접수한 직후, 어피너티 한국팀들은 부산 등 전국 도매상 20여 곳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베브 치하 10년(2004~2014년)’의 공과를 철저히 검증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글로벌 그룹인 인베브가 오비맥주를 숫자로만 경영하려 했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한국적인 기업 관행이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글로벌 기준에 오비맥주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 했다.”

실제로 오비맥주는 인베브그룹의 거대한 매트릭스 조직에서 하나의 부속품에 불과했다. 오비맥주 CFO는 국내 CEO에게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인베브그룹 아시아태평양 지역 CFO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었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생각보다 뿌리 깊었다. 그룹 차원에서 글로벌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원가 절감 프로그램을 실시하면 오비맥주도 예외 없이 동참해야 했다. 원료 구매 등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때도 있었지만 이 같은 ‘숫자 경영’은 한국적 기업 관행과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일례로 오비맥주 관계자는 “부산 지역 도매상과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고 아태 본부에 보고하면 그쪽에선 사태의 심각함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하이트진로와의 경쟁에서 마케팅과 영업력을 키우기 위해선 이른바 ‘접대비’가 필요했는데 이를 용인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임직원들도 위험을 굳이 감수하려 들지 않았다. 10억 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투자를 해야 한다고 보고하면 윗선에선 ‘투자 후 예상되는 성과를 산출한 뒤 재보고하라’는 식의 답변만 돌아왔다.

어피너티는 10년간 누적돼온 비효율을 파악한 뒤,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숫자 경영’을 ‘독립 경영’으로 바꾼다는 게 골자였다. 국내 대기업을 포함해 수십 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과 달리 사모펀드는 오로지 투자기업 한 곳의 경영 성과만 내면 그만이었다. 예컨대 SK그룹의 계열사 사장은 무엇 하나 결정하려고 해도 다른 계열사와의 시너지 효과를 고려해야 하고, 혹시나 겹치는 사업이 없는지 등을 포함해 경영 외 정무적인 사항들까지 고려해야 했지만 사모펀드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어피너티는 진로 출신 영업의 달인인 장인수를 2010년 1월 CMO로 영입하는 등 경영기획 임원들을 소수만 바꾸는 것을 제외하고 이호림 사장 등 기존 경영진을 그대로 유임시켰다. 이사회를 통해 경영진의 실책은 엄중히 따지되, 경영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갔다.

이에 관한 일화 한 가지를 더 살펴보자. 어피너티와 KKR이 오비맥주를 인수했을 무렵, 이호림 사장은 무려 16개의 직보 라인을 갖고 있었다. 모두 영업, 마케팅과 관련한 보고 조직으로 16군데에서 매일, 수시로 보고를 받다보니 사장의 하루 일과는 회의만 하다가 끝나기 일쑤였다. 문제점을 파악한 어피너티는 곧바로 사장 보고 조직을 3분의 1, 즉 사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축소시켰다. 결과는 실적으로 나타났다. 하이트진로에 밀려 30%대로 떨어졌던 시장점유율이 뒤집히며 2011년엔 오비맥주가 1위를 탈환했다. 2009년 8,161억 원이던 매출액은 2011년 1조 원을 돌파했다.

시장 1위 탈환의 결정적 한 방

어피너티와 KKR은 2012년 6월의 인사이동에서 신의 한 수를 선보였다. 시장 1위 탈환이라는 실적을 남긴 이호림 사장을 경질시키고, 장인수 사장을 신규 선임한 것이다. 오비맥주 측은 “새로운 리더십으로 더 큰 도약을 위해 변화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군기 잡기’에 능숙하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이호림 사장은 위기의 오비맥주를 구해내는 데 적합한 인물이었다면 새로운 도약을 위해선 ‘고졸 신화’의 장인수 사장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장인수 사장의 선임은 하이트진로와 비교해봤을 때 꽤 큰 의미가 있었다. 당시 하이트진로는 하이트맥주와 진로가 합병하면서 두 조직 간 갈등에 휩싸여 있었다. 갈등의 배경은 주류 영업에서 최고로 일컬어지던 진로계가 뒤로 밀리고 하이트 출신들이 임원진을 차지하며 권력을 장악한 데 있었다. 하이트진로는 잘나가던 ‘맥스’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갑작스레 ‘드라이피니시 디’라는 또 다른 브랜드를 출시하는 등 마케팅에서도 혼란을 겪고 있었다. 급조된 새 브랜드들은 오비맥주의 고객을 빼앗아오기는커녕 기존 하이트맥주의 고객을 혼란하게 만들며 제 살 깎아먹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비맥주는 진로 출신 영업의 달인을 수장으로 선택한 것이다. 장 사장은 오비맥주에 영입될 때 진로 출신 핵심 영업맨들을 데려오기도 했다.

2009년 어피너티가 오비맥주를 인수할 당시 1.6억 달러 남짓이던 에비타는 2013년 말 5억 달러(5,290억 원) 수준으로 급증했다. 시장점유율도 60%로 도약했다. 어피너티, KKR이 인베브그룹에 오비맥주를 재매각하기로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이 바로 이 무렵이다.

(후략)

오비맥주의 매각으로 KKR과 어피너티는 국내 사모펀드 역사상 기록적인 수익률을 남기게 된다고 한다. 결국 성공의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장인수 사장의 영업력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KKR이 장인수씨를 영입한 부분이 신의 한수가 아닌가. ㅋ 참고할만한 기사가 몇 개[2,3] 있다.

 


[1] 내 백과사전 국내 맥주 시장 점유율(2011) 2011년 12월 16일
[2] 비지니스포스트 장인수 오비맥주 사장, ‘날개’를 달다 2014.01.21 16:29:11
[3] 서울경제 [CEO&Story] 장인수 오비맥주 대표 2014/10/09 18:05:39

포르쉐 : 차도 만드는 헤지펀드

해커뉴스 게시판[1]에 ‘포르쉐 : 차도 만드는 헤지펀드’ 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글[2]이 소개되어 있다. 예전에 하얀까마귀님의 포스트 중에 ‘포르쉐가 헤지펀드들을 물먹이고 있는 사건'[3]이 생각나는데, 이 이야기를 포함한 그 뒷 이야기가 들어 있다. 포르쉐와 폭스바겐의 초창기 역사까지 나오는 상당히 긴 글이라 영어 울렁증 때문에 좀 빡세다. ㅋㅋㅋ

2008년 포르쉐는 세전 135억달러를 벌어들이는데, 이 중 무려 115억달러는 차를 팔아서 번 돈이 아니었다. 뭘로 번 돈일까?

80년대 연간 5만대 이상 팔던 포르쉐는 90년대에 들어 미국과 일본의 우수한 자동차 메이커에 밀리면서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거의 망해가는 포르쉐에 취임한 CEO Wendelin Wiedeking은 일본의 효율적 생산법을 벤치마킹하여 포르쉐를 살리는데 성공한다. 그가 취임할 당시, 연간 1억5천만달러의 손실이 나는 회사에 수익이 날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회사측은 회사 수익의 1%를 보너스(!)로 주기로 계약을 하고 그를 데려왔기 때문에 Wiedeking은 2008년 단숨에 독일 최고 연봉자로 등극하게 된다. ㅋ

Wiedeking은 외부적으로는 폭스바겐을 살 의사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뒤로는 2005년 이후로 지속적으로 폭스바겐 주식을 매수했는데, 그 덕에 폭스바겐 주가는 꾸준히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폭스바겐은 연간 123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익은 22억 달러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지나치게 고평가된 주식이라고 판단한 헤지펀드들은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폭스바겐 전체 주식의 12.8%에 해당하는 주식을 공매도하기에 이른다.

42.6%의 주식을 소유했던 포르쉐는 이 때 “cash-settled” options를 이용하여 비밀리에 31.5%의 폭스바겐 주식을 추가로 매수했고, 그 결과 도합 74.1%의 주식을 소유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이 미국에서는 불법이었지만 독일에서는 합법일 수 있었던 모양이다. 독일 지방정부인 니더작센 주에서 폭스바겐의 적대적 인수를 막기위해 소유한 20%의 주식을 제외하면, 시장에 유통되는 폭스바겐 주식은 5.9%만 남은 셈. 엿먹은 헤지펀드들은 공매도 커버를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매수해야만 했고, 폭스바겐의 주가는 순간적으로 거의 1000달러에 육박하게 된다.

과연 이것이 포르쉐의 승리일까? 먼저 니더작센 주에서 폭스바겐의 적대적 인수를 막기위해 제정한 폭스바겐 법(Volkswagen Rule)에 의하면 아무리 주식을 많이 소유해도 의결권을 20%이상 발휘할 수 없었고, 포르쉐는 이 법과 싸워야 했다. 결정적으로 포르쉐는 31.5%의 추가 매수를 위해 15개의 서로 다른 은행에서 130억달러의 채무를 안게 되었는데, 연간 20억 달러의 영업이익을 내는 회사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였고, 이 은행들 중 하나만 의지가 있어도 포르쉐를 파산시킬 수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포르쉐의 판매는 27%나 급락했고, 폭스바겐 인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나머지 주식을 매수해야만 했는데 돈을 얻기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포르쉐의 CFO는 재앙을 막기위해 130억 달러를 재대출 했는데, 그 중 44억 달러는 6개월 만기의 단기 대출이었다. 급전이 필요해진 포르쉐는 급기야 폭스바겐에게 손을 빌리게 되고, 연간 이자만 7억9천만 달러에 이르게 된다. 결국 독일 정부에 요청한 구제금융을 거부당하고 카타르 정부가 지원하기로 한 투자를 갑자기 취소하면서 포르쉐는 폭스바겐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된다. 2009년 7월 Wiedeking은 7천1백만 달러의 퇴직금을 받고 물러나면서 폭스바겐은 현금 113억달러로 포르쉐를 인수하게 된다.

경영학에서 적대적 인수자를 역관광해서 도로 인수하는 전략을 Pac-Man defense라고 하는 모양이다. 포르쉐-폭스바겐이 좋은 사례이다. ㅋ

결론은 자기일에나 집중 잘 하자-_-인가?

 


2016.12.2
http://blog.naver.com/santa_croce/220494216268
좀 더 자세한 이야기가 있음.

 


2017.11.7
http://blog.naver.com/santa_croce/220976573932

 


[1] https://news.ycombinator.com/item?id=8505529
[2] Porsche: The Hedge Fund that Also Made Cars in Priceonomics
[3] [시사] 포르쉐가 헤지펀드들을 물먹이고 있는 사건 by 하얀까마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