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에서 길을 잃다(Lost in Math)

Peter Woit 선생의 블로그[1]에서 ‘Lost in Math'[2]라는 신간 소개를 하는 걸 며칠 전에 봤는데, 이 책이 Mathematical Investor 블로그[3]에서도 또 소개가 되고 있길래, 나도 포스팅하지 않을 수 없구만. ㅋ

책 내용 자체는 아무래도 일전에 Gian Francesco Giudice 선생의 그 이야기[4]와 궤를 같이 하는 것 같다. 즉, empirical evidence 보다는 mathematical beauty에 더 치중하는 이론 물리학에 대한 문제제기 같아 보인다. 저자 Sabine Hossenfelder은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독일 사람인 듯 한데, 나름 인지도가 있는 듯 하다.

math investor 블로그[3]에서는 현재 경제학 분야도 실증적 접근 보다는 지나치게 수학적 모델링의 우아함을 추구한 나머지 수학에서 길을 잃은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 그 예로 CAPM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본인은 CAPM을 정확히 이해를 못해서-_- 잘 모르겠구만. 예전에 좀 찾아보다가 귀찮아서 접었음-_- 좀 공부해 둘 껄… ㅋ 이 비슷한 이야기를 몇 번[5,6] 들은 적이 있긴 하다.

여하간 이 책의 역서가 나오면 잽싸게 구입할 의사가 있는데, 나오려나 모르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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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ost in Math (math.columbia.edu)
[2] Lost in Math: How Beauty Leads Physics Astray (amazon.com)
[3] Are economics and finance “lost in math”? (mathinvestor.org)
[4] 내 백과사전 Gian Francesco Giudice의 기고글 : 이론 물리학의 위기? 2017년 11월 3일
[5] 내 백과사전 경제학자의 공허한 수학 2014년 9월 27일
[6] 내 백과사전 경제학자의 수학공부 2012년 5월 1일

OECD 국가별 계층이동성 (2018)


위 그래프는 OECD 홈페이지[1]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이미지 사이즈가 너무 크길래 본인이 좀 줄였다. 원본은 홈페이지[1] 중간에 그래프 이미지를 클릭하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저소득 가정에서 중간층으로 이동하기 까지 걸리는 평균 세대수를 표시한 그래프인데, 숫자가 클 수록 저소득층에서 탈출하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한국은 OECD 평균보다 조금 높은 정도고, 일본은 OECD 평균보다 조금 낮다. 일전에 쓴 한국 재벌과 일본 재벌의 비교[2]를 연상케 하는 그래프가 아닐 수 없다.

그래프에 의하면 콜롬비아는 11세대라고 하니, 가난한 사람은 손자의 손자의 손자도 가난할 가능성이 높다-_- 대대손손 답이 없구만-_-

지난 15일에 OECD에서 저소득층-고소득층간의 계층이동성에 대한 보고서[3]가 발간되었다고 하길래 대충-_-봤다. ㅋ 웹상으로 볼 수 있도록 돼 있는데, pdf를 다운로드 받으려면 회원가입을 해야 하는 듯. 옛날에는 pdf도 그냥 받을 수 있었는데, OECD 홈페이지가 점점 짠돌이같이 바뀌고 있다. 쳇-_-

본인같이 영어 울렁증-_-이 있는 사람을 위해, 친절하게도 국문 요약본[4]이 제공되고 있다. 이거면 충분할 듯. ㅋㅋㅋ 아직까지 한국은 외국에 비해 교육을 통한 소득상승은 높은 듯 하다. 다만 최고소득층과 최저소득층의 계층이동은 거의 변화가 없다고 하니, 이 문제는 해결이 필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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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별로 상관없을 수도 있지만 까먹고 안 쓴 게 있는데 ㅋㅋㅋ 이코노미스트지[5]에서 소득 불평등과 범죄율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소개하는 기사도 얼마전에 봤다. 뭐 불평등하면 범죄가 높아진다는 비교적 직관적 결과라,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 이야기인 듯.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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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 Broken Social Elevator? How to Promote Social Mobility (oecd.org)
[2] 내 백과사전 한국 재벌과 일본 재벌의 차이 2013년 5월 2일
[3] OECD (2018), A Broken Social Elevator? How to Promote Social Mobility, OECD Publishing, Paris, https://doi.org/10.1787/9789264301085-en
[4] http://www.oecd.org/korea/social-mobililty-2018-KOR-KO.pdf (pdf 538kb)
[5] 이코노미스트 The stark relationship between income inequality and crime Jun 7th 2018

헤지 펀드 매니저 수입 순위(2017)

문득 생각나서 검색을 해 봤다. 요새 돈에 관심이 없어져서-_- 몇 년째 찾아보는 걸 까먹고 있었네. ㅋㅋㅋ 2008년[1], 2009년[2], 2010년[3], 2011년[4], 2012년[5], 2013년[6] 2014년[7] 순위는 예전 포스트를 참조할 것. 아래 순위의 출처는 포브스[8]이다.

#1 Michael Platt $2 B BlueCrest Capital Management
#2 James Simons $1.8 B Renaissance Technologies Corp.
#3 David Tepper $1.5 B Appaloosa Management
#4 Ken Griffin $1.4 B Citadel LLC
#5 Ray Dalio $900 M Bridgewater Associates
#5 Israel Englander $900 M Millennium Management, L.L.C.
#7 Daniel Loeb $750 M Third Point
#8 Steve Cohen $700 M Point72 Asset Management
#9 Andreas Halvorsen $600 M Viking Global Investors
#9 Christopher Hohn $600 M The Children’s Investment Fund Management

전반적으로 익숙한 이름들이 포진해 있다. 근데 Michael Platt 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는데, 블룸버그 기사[9]에 의하면 작년에 레버리지를 엄청 땡겨서 엄청난 수익을 번 모양이다. 무슨 마술을 부린 건지 모를 일이다. ㅋ 덕분에 수익 킹을 먹었구만. ㅎㅎ

사이먼즈 할배는 은퇴했다고 그러던데 왜 자꾸 순위에 넣어주는지 모르겠네-_- 아직 활동하는건가? 은퇴했어도 펀드에 들어 있으니, 돈은 오지게 버는 듯-_-

코언씨가 내부자 거래[10] 이후로 살림살이가 녹록치 않다는 소문[11]을 들었는데, 여전히 돈은 잘 버는 듯. 무슨 재주를 부리는 건지 알 수 없다-_- 위키피디아를 보니 SAC 로비에 마크 퀸의 그 두상 작품들 중 하나가 있었다고 하네. 근데 SAC가 문 닫아서 작품은 어찌 됐는지 궁금해진다. ㅋ

 


[1] http://zariski.egloos.com/2307268
[2] 내 백과사전 헤지 펀드 매니저 수입 순위(2009) 2010년 12월 15일
[3] 내 백과사전 헤지 펀드 매니저 수입 순위(2010) 2011년 4월 28일
[4] 내 백과사전 헤지 펀드 매니저 수입 순위(2011) 2012년 4월 7일
[5] 내 백과사전 헤지 펀드 매니저 수입 순위(2012) 2013년 5월 3일
[6] 내 백과사전 헤지 펀드 매니저 수입 순위(2013) 2014년 6월 3일
[7] 내 백과사전 헤지 펀드 매니저 수입 순위(2014) 2015년 6월 12일
[8] 포브스 The Highest-Earning Hedge Fund Managers & Traders APR 17, 2018 @ 09:48 AM
[9] 블룸버그 Platt’s BlueCrest Gains 54% in Blockbuster Year 2018년 1월 5일 오전 1:10 GMT+9
[10] 내 백과사전 스티브 코언의 내부자 거래 2013년 3월 1일
[11] 비지니스 인사이더 The Price On Steve Cohen’s Unbelievable NYC Upper East Side Penthouse Has Been Chopped … Again Dec. 12, 2014, 10:57 AM

[서평] 대공황의 세계 1929-1939

대공황의 세계 1929-1939 l 굿모닝북스 투자의 고전 16
찰스 P. 킨들버거(저자) | 박정태(역자) | 굿모닝북스 | 2018-01-30 | 원제 Die Weltwirtschaftskrise (1973년)

 


원래 아이켄그린 선생의 책[1]을 읽고 있었는데, 앞부분에 킨들버거 선생의 이론인 패권안정론을 비판하는 내용이 나온다. 근데 패권안정론이 뭔지 알아야 뭘 동의하든지 말든지를 하지..-_- 그래서 그 책[1]을 덮고 이 책을 우선 읽게 되었다.

원래 작년에 이 책의 초판의 역서[2]를 사려고 했는데, 요새 중고책 판매자들이 절판된 책들을 터무니 없는 가격으로 파는 일이 대단히 흔해졌다. 아놔… 이래서 전자책이 빨랑 보급돼야 한다. 그래서 재출간을 기다렸는데, 원서의 개정증보판이 나오면서 그 역서가 올해 초에 출간되었다. 기다리길 잘했군!!! ㅋㅋㅋ 개정판에서는 초판의 내용을 좀 보충수정한 듯 하다.

이 책의 핵심적인 주장은 한 마디로 ‘패권안정론‘이다. 대공황 이전에도 공황은 여러 번 있어왔지만, 왜 하필 대공황때가 그렇게 타격이 크고 회복도 더딘지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저자인 킨들버거 선생은 그 이유로 국제 경제/금융의 안정은 단일 국가가 패권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경제를 쥐고 있을 때 이루어지고, 전간기 동안 영국은 세계경제를 컨트롤할 능력이 없어서, 미국은 세계경제를 컨트롤할 의지가 없어 공황이 그렇게 거대했다는 주장이다. 책의 마지막에 저자의 핵심주장이 잘 드러난다.

p398-400

이 책의 설명은 이렇다.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이 그토록 광범위했고 심각했으며 오랫동안 지속됐던 이유는, 어느 나라든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국제 경제 시스템을 안정시킬 책무를 짊어져야 했는데, 영국은 그럴 능력이 없어서, 미국은 그럴 의사가 없어서 결국 국제 경제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1) 불황에 빠진 상품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개방된 시장을 유지 할 것
(2) 경기 사이클을 중화中和하는, 혹은 적어도 안정적인 장기 대부를 공급할 것
(3)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환율 시스템을 지켜나갈 것
(4) 각국의 거시경제 정책은 서로 보조를 맞춰나갈 것
(5) 금융 위기 시 채권 매입 혹은 유동성 공급을 통해 최후의 대부자 역할을 할 것

내가 생각하기에 이 같은 역할은 국제 경제 시스템에 책임을 지는 단일 국가가 한데 모아 일괄적으로 수행해야 한다.1 만일 이것이 이뤄졌다면, 그리고 특히 그 나라가 금융 위기 시 최후의 대부자로서 제 역할을 다했다면 경제 시스템은 시장 메커니즘이라는 수단을 통해 구조적 혼란 양상을 조정해 나갔을 것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물론 이에 동의하지 않는 견해도 있겠지만 말이다. 구조적 혼란이 너무 심각할 경우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왔던 마셜 플랜이나 영국에 대한 차관처럼 훨씬 더 강력한 수단이 필요해질 수 있다. D. E. 모그리지(Moggridge)는 이런 혼란 양상이 1929년부터 1931년까지 너무 뿌리깊게 이어지다 보니 프랑스와 미국이 오스트리아와 독일, 영국에 구제자금을 대부해주었다 해도 통화 가치의 연쇄적인 붕괴를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2 여기서 드는 의문은, 시스템에 가해진 충격들 – 1차 생산품의 과잉 생산, 독일에게서 배상을 받아야 하겠다는 프랑스의 완고한 고집, 미국의 전채 지급 요구, 파운드 화의 고평가와 프랑스 프랑 화의 저평가, 뉴욕의 해외 대부 중단, 주식시장 붕괴 등 – 이 과연 정말로 엄청난 것이어서 이를 막으려는 어떤 조치들도 다 압도해버릴 정도였느냐는 점이다. 이런 의문도 들 수 있다. 능력이 없어서든 의사가 없어서든, 아무튼 시스템의 안정자로서 그 역할을 해줄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는 최소한의 수준을 넘어서는 어떠한 충격이 가해지기만 해도 시스템이 불안정하게 되고 대공황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의 논점은 이렇다. 문제는 국제 경제 시스템에 뿌리깊게 잠복해 있는 불안정성과 안정자 역할을 해줄 나라의 부재에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영국은 앞서 열거했던 다섯 가지 역할들을 있는 힘껏 수행 했고, 금본위제의 신화, 즉 안정적인 환율과 매끄러운 거시경제 정책의 보장이라는 막강한 우군의 도움에 힘입어 세계경제를 안정시켰다. 물롭 중부 유럽과 미국이 긴 불황에 빠져들었던 1873년처럼 영국이 개입하지 않거나 멀리서 그냥 지켜본 경우도 있었다.3 1890년에는 런던 자본시장이 해외 대부를 급격히 늘린 지 5년 만에 갑자기 이를 중단해버리기도 했다. 이로 인해 불황이 1890년에서 1895년까지 이어지기는 했으나, 마치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백기사가 출현하듯이 1886년에 발견된 트란스발의 랜드 광산에서 엄청난 양의 금이 쏟아져 나옴으로써 시스템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4 그러나 1929년과 1930년, 1931년에 영국은 국제 경제 시스템의 안정자로서 그 역할을 할 수 없었고, 미국은 그 역할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모든 나라가 자국의 이익만 보호하려는 노선을 추구하자 세계 공동의 이익은 바닥을 드러냈고, 이와 함께 모든 나라의 개별적인 이익마저 말라버렸던 것이다.

 


1. 정치학자들은 단일 국가가 쥐고 있는 리더십을 “헤게모니”라고 부른다. 나는 리더십은 곧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헤게모니라는 말은 좀 냉소적이면서도 보다 현실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헤게모니가 과연 평화와 안정된 세계경제의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정치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라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이와 관련해서는 Robert O. Keohane, After Hegemony: Cooperation and Discord in the World Political Economy, 1984를 보라. 코헤인은 국제 레짐(international regimes)이 헤게모니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본다. 레짐은 국제적인 협력이 제도화된 형태다. 이를 보다 정확히 정의하자면 “주어진 문제의 범위 안에서 행위자의 기대들을 한데 모으는 원칙, 기준, 규약, 의사결정 절차들”이라고 할 수 있다. (Stephen D. Krasner, “Structural Cause and Regime Consequences: Regimes as Intervening Variables.” 2983, p. 1)
2. 그가 쓴 “Policy in the Crises of 1920 and 1929″를 보라. 하베르러는 여기서 취한 입장, 즉 양차 세계대전에 따른 물리적, 경제적, 정치적 피해와 혼란의 정도가 달랐으므로 그 이후의 처방도 달라야 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Harberler, “Die Weltwirtschaft und das internationale Währungssystem in der Zeit zwischen den beiden Weltkriegn,” pp. 288-289를 보라. 그러나 몇 해 전 하베르러가 로이 해로드와 프리데릭 러츠, 야콥 바이너, 그리고 조셉 볼 상원의원 같은 인물들과 한편에 섰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달러 부족(dollar shortage,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달러화 보유고가 부족해진 상태-옮긴이)“이라는 생각 자체는 물론 어떤 경우에는, 전후 유럽 각국이 “인플레이션은 멈추고 환율을 조정”했더라면 안정과 성장 기반을 다시 구축했을 것이라며 마셜 플랜까지 반대했다. 내가 쓴 Dollar Shortage, 1950, pp. 2-6의 설명을 보라.
정치적으로 보다 넓은 견지에서 보면 양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는 저마다의 이견은 있었지만 사실상 똑같은 상황이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Charles S. Maier, “The Two Postwer Eras and the Conditions for Stability in Twentieth – Century Europe,” 1981과 함께 스티븐 A. 슈커와 내가 내놓은 코멘터리, 그리고 이에 대한 마이어의 대답을 보라.
3. 내가 쓴 Manias, Panics, and Crashes, p. 211을 보라.
4. 내가 쓴 “International Propagation of Financial Crises”를 보라.

일반적으로 대공황은 과잉생산으로 인한 미국의 주가폭락 – 이후 그 여파의 국제화로 설명하는 것이 보통이고, 본인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저자는 그러한 주장을 반박하고 공황이 미국 국지적 사건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그 징조가 세계적임(즉, 헤게모니적 불안정성)을 강조하는 대목이 많다. 이를 위해 다양한 사건의 경과를 나열하고 있는데, 정신차리지 않으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논지를 놓치기 쉽다.

책의 뒷부분에는 미국의 리더십 부재를 설명하고 있는데, 미국이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통과시키고, 외국들이 그에 대한 보복조치[3]를 하면서 국제경기가 침몰하는 과정이나, 루즈벨트가 자국 이기주의로 세계경제회의를 파토-_-내었던 이야기도 나온다.

여하간 저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현재 서서히 국제적 힘을 키우고 있는 중국과 기존의 패권국인 미국 사이의 갈등으로 단일 패권국가 시스템이 무너진다면, 다시 금융 불안정성이 커지지 않을까 하는 시나리오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이 책은 과거 대공황을 다루고 있으나 그런 측면에서 시사적이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겠다.

본인의 역사 및 경제사의 지식이 일천해서 사건의 인과관계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무척 많았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아이켄그린 선생의 책도 그렇고, 국제 통화/금융사 책들은 나에게 너무 어렵구만-_- 몇몇 역사적 사건 용어 (금 블록, 세계경제회의, 1937 불황, 삼국통화협정 등등등)은 배경지식이 전혀 없어서 위키피디아를 자주 찾아봐야 했다. 위키피디아 만세다-_-

 


[1] 배리 아이켄그린 저/박복영 역, “황금 족쇄“, 미지북스, 2016
[2] 찰스 P. 킨들버거 저, “대공황의 세계“, 부키, 1998
[3] 내 백과사전 스무트-홀리 관세법과 보복 조치 2018년 4월 8일

맨큐 선생의 추천 티셔츠

맨큐 선생의 블로그[1]를 보니 트럼프의 관세전쟁이 요동치는 작금의 시대에 걸맞는 추천 티셔츠[2]를 소개하고 있다. ㅎㅎㅎ

티셔츠[2]의 뒤에는 맨큐 선생의 그 유명한 경제학 교과서에 실린 그래프가 그려져 있는 모양. ㅎㅎㅎ 맨큐 선생이 트럼프 때문에 별의별 사람이 다 연합한다[3]고 하더니만, 나도 자유무역주의자는 아니지만 티셔츠 함 사고 싶어 지는군-_- 근데 티셔츠에 써진 글자를 안 보는 사람이 많아서[4] 의미 있나. ㅋㅋㅋ

참고로 본인은 티셔츠 사이즈 100~105를 입는데, 일본 아마존에서 티셔츠를 살 때는 L~XL사이즈를 사야 맞고, 미국 아마존에서 살 때는 M~L사이즈를 사야 맞더라. 사이즈 때문에 몇 번 낭패를 한 경험을 통해 얻어낸 교훈이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풀컬러로 들어있는 티셔츠 상당히 비싸다. 흑.

아주 오래전에 산 수학의 정석 후드티와 티셔츠[5]가 아직 있는데, 이거나 입고 다녀야겠다. ㅋ

 


[1] A T-shirt for the Times (GREG MANKIW’S BLOG)
[2] Tariffs Foster Political Dysfunction – Trump 2-Sided Shirt (amazon.com)
[3] President Trump unites the country (GREG MANKIW’S BLOG)
[4] 내 백과사전 티셔츠에 적힌 글자를 보라 2010년 10월 9일
[5] http://zariski.egloos.com/2266318

스무트-홀리 관세법과 보복 조치

찰스 P. 킨들버거 저/박정태 역, “대공황의 세계 1929-1939“, 굿모닝북스, 2018

p182-185

스무트-홀리 관세법과 보복 조치

관세 휴전의 세부 사안들을 확정하기 위한 회의가 1930년 2월에 열렸다. 이 회의는 원래 1927년 세계경제회의에서 원칙적으로 합의한 관세 인하가 구체적으로 시행될 때까지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로 1929년에 제안된 것인데 이제야 비로소 열린 것이다. 한데 시기가 그리 좋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1929년 5월 하원을 통과한데 이어 상원에서도 심도 높은 검토가 진행되고 있었다. 관세 인상을 계획 중이던 미국과 영국 자치령 모두 공동의 경제적 조치를 향한 예비회의Preliminary Conference with a View to Concerted Economic Action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나마 참석한 27개국 가운데 11개국만이 1931년 4월까지 관세를 인상하지 않겠다는 최종 협정에 서명했는데, 비준 시한인 1930년 11월 1일이 되자 서명한 나라의 숫자는 7개국으로 줄어들었다. 영국과 스칸디나비아 4개국, 벨기에, 스위스였다.

다른 나라들은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정식으로 시행되기 이전에 서둘러 관세를 인상했다. 하원을 통과한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상원에서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무게가 주어졌다. 공식적으로 30개국 이상의 외국 정부가 이 법에 반발했다. 존스의 설명에 따르자면 일부 나라에서 취한 보복 조치는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최종 확정될 것을 미리 예상하고 내놓은 것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이유와 구실을 구별해내기란 사실 어렵다.10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1929년 3월 자동차에 부과되는 관세를 인상했다. 인도는 1929년 2월 피륙 제품에 대한 관세를 올렸다. 호주는 1929년 11월과 12월에 일련의 특별 관세를 인상한 데 이어 1930년 4월에는 새로이 일반 관세까지 올렸다. 그러나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1930년 3월 상원을 통과했고, 4월에는 최종 심의위원회까지 통과해 마침내 1930년 6월 17일 대통령의 서명까지 이루어졌다. 그러자 보복의 물결이 몰려왔다. 존스는 스페인의 반발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포도와 오렌지, 코르크, 양파에 대한 관세 부과에 우려 했던 스페인은 1930년 7월 22일 와이스Wais 관세를 통과시켰다. 시계와 자수용품, 신발에 대한 관세 인상에 반대했던 스위스는 미국 수출품에 대한 보이콧에 나섰다. 음식료품과 원목, 목재에 대한 관세에 반발했던 캐나다는 1930년 8월 내각이 교체되자 1932년 8월 오타와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세 차례에 걸쳐 관세를 인상했다. 밀짚모자와 양모 펠트 모자, 올리브유에 대한 관세에 반대해왔던 이탈리아는 1930년 6월 30일 미국(및 프랑스)산 자동차에 대해 보복 조치를 취했다. 이 밖에도 쿠바와 멕시코,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가 새로운 관세법을 만들었다.

193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루스벨트는 관세를 공황의 원인이라고 공격했는데, 그 해 9월 29일 아이오와 주 수시티에서 행한 연설에서 그는 ‘그런디 관세Grundy tariff’一법 제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펜실베이니아 출신 그런디 상원의원의 이름을 붙여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이렇게 부르기도 했다一가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재화를 수출해 부채를 갚아 나가는 길을 차단함으로써 이들 나라가 어쩔 수 없이 금을 쓸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이야말로 미국이 채권국답게 행동하지 못했다고 하는 비판의 전형이었다. 루스벨트의 비판은 계속 이어졌다. 금을 소진시킨 나라들은 결국 더 많은 재화를 수출할 것이고, 이는 관세 부과가 통상적으로 가져오는 상품가격 상승이 아니라 상품가격 하락을 부채질할 것이라고 말이다. 이에 대한 후버의 답변은 애매한 것 이었다. 후버는 민주당이 관세를 인하하라고 압박함으로써 미국 농업의 입지를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후버는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서명하면서 어떠한 관세법도 완벽할 수 없다고 천명한 바 있다.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대공황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고 밝혔는데, 그 근거로 이 법이 주식시장 대폭락이 발생하고 9개월 뒤에야 제정됐다는 점을 들었으나 실제로 법이 만들어지기까지 1년 6개월의 시일이 소요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11 아무튼 그는 관세법 자체를 중요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10 Johns, Joseph M., Jr. Tariff Retaliation. Repercussions of the Hawley-Smoot Bill.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1934.
11 Hoover, Herbert: The memoirs of Herbert Hoover. Vol. 3: The Great Depression, 1920-1941. New York: Macmillan; London: Hollis & carter, 1952, p291

내가 자유무역주의자는 아닌데-_- 근래 트럼프의 무역전쟁을 보니 괜히 이 대목이 시사적이다. 맨큐 선생이 트럼프 덕에 오만 사람들이 다 단결한다고 이야기[1] 하더니만 내가 그 꼴이 된 듯. ㅋㅋ

 


[1] President Trump unites the country (GREG MANKIW’S BLOG)

[서평] 스트레스 테스트

스트레스 테스트
티모시 가이트너(저자) | 김규진(역자) | 홍영만(역자) | 김지욱(역자) | 인빅투스 | 2015-06-25 | 원제 Stress Test (2014년)

 


이 책은 2007-8 금융위기 당시의 오바마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Timothy Geithner가 당시 자신의 경험을 기록한 책으로 거의 자서전에 가깝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어렸을 때의 경력도 앞부분에 짧게 소개되어 있다. 가이트너 씨가 외국에서 이렇게 오래 살았는 줄은 처음 알았네. 그의 백그라운드에 대해서는 오래된 기사지만 경향신문의 기사[1]에 압축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부실 기업이나 부실 자산이 드러났을 때, 그에 대한 대한 응징(즉, 파산)은 선호되지만 moral hazard를 일으키고 세금이 투입되는 구제 금융은 반감을 사게 마련이다. 특히 정부개입을 싫어하는 미국 정서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는 그런 일반적인 상식은 더욱 큰 문제를 불러 일으키고, 직관에 반하는 강력한 구제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전반적인 논조가 되겠다. 그래서 구제금융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지만 화재진압에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열라 힘들었다-_-는게 이 책의 요약이라 할 수 있다.

앞부분에는 맥시코 페소 위기아시아 금융위기에 대처했던 자신의 이야기도 앞에 짧게 나오는데, 여러 번의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얻은 자신의 구제금융에 대한 관점을 피력하고 있다. 맞는 말이긴 한데, 한국의 금융 위기 당시에 IMF한테 그런 조언을 좀 해주지 그랬냐 싶다. IMF가 한국에게는 긴축을 강요했으니 가이트너 씨의 견해와는 상반된다.

2007-8 금융위기 당시에 너무 폭풍과도 같이 기사가 쏟아지던 시절이라 상황판단이 쉽지 않았는데, 이 책을 보니 왜 당시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 인과관계가 조금은 파악이 되는 듯 하다. 왜 리만 브라더스는 구제하지 않고 AIG는 구제했는지, 갑작스러운 정부의 태도변화가 제일 의아했는데, 이 책에 의하면 사태가 악화될 만큼 악화되어야만, 구제금융 반대파의 주장이 약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읽은 여러 책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전부 검색해 보니 상당수는 국내에 역서가 나와 있다. 역시 경제서는 번역서가 되게 잘 나온다. ㅋㅋ 가이트너 씨가 나름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 같다.

ebook으로 읽어서 페이지는 알 수 없는데, 2장에서 Kenneth Rogoff에게 IMF의 지루한 회의를 어떻게 견디냐고 물으니, 회의 중에 머릿속에서 체스 12게임을 동시에 진행한다-_-는 이야기가 나온다. ㅋㅋ 로고프 선생이 체스 그랜드마스터인줄은 몰랐네. ㅋㅋ 근데 왜 엑셀도 못 다루지[2]-_-?

가이트너 씨가 셰릴 샌드버그랑 안면이 있는 사이인 줄 몰랐다. 처음에는 동명이인인 줄 알았는데, 위키를 보니 샌드버그씨가 서머즈 밑에서 재무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 헐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사람인데 의외군. ㅋ 서머즈 선생이 그 성차별 발언[3]을 한 건 2005년이니 샌드버그와 일한 건 그 이전이 되겠다.

3장에서 뉴욕 Fed 행장으로 있을 때, 권위주의적 내부 문화를 타파하는 그의 시도가 마음에 들었다. 인품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6장에 연방예금보험공사 의장인 실라 베어와 의견충돌[4]을 하는 장면이 좀 있는데, 실라 베어의 회고록도 국내에 번역[5]되어 있다. 가이트너의 책을 읽으니 가이트너의 말이 맞는 듯 한데-_-, 아무래도 양쪽 의견을 모두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ㅋ

7장에 가이트너의 청문회 당시에 세금 신고 잘못하는 바람에 고생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에스티마의 블로그에서 터보 택스 이야기[6]가 생각난다. 청문회 당시 증언하던 가이트너 장관 후보자의 모습의 유튜브 장면[7]을 볼 수 있다. 이건 걍 링크해보고 싶어서 썼음-_- ㅋ

8장에 데이비드 테퍼의 투자전략이 나온다. 세상이 가이트너를 욕할 때, 가이트너의 말에서 뭔가 진실성 같은 걸 봤나 보다. 2009년에 테퍼가 어떻게 그렇게 엄청난 수익[8]을 냈는지 나름 납득이 된다.

10장에 글래스 스티걸 법의 폐지가 금융위기의 원인이라는 주장[9]에 대한 저자의 반론이 있다. 음 내 생각이 틀린 건가-_-

10장에 토빈세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저자가 반대하는 이야기가 나와 있다. 나도 당시에 토빈세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던게 생각나는데, 일전에 sonnet씨의 블로그[10]에서 읽은 기억도 난다. 아무래도 효과는 좋겠지만, 세계의 동시적 협력을 요구한다는데서 실행은 어렵지 않나 싶다.

10장에 오바마가 “인기가 없더라도 옳은 일은 하고, 여론보다는 증거에 의존하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정치가가 이런 주문을 하는 건 쉽지 않다고 본다. 11장에 오바마가 가이트너를 잃고 싶지 않아서 가이트너의 부인에게 삼고초려 하는 (진짜 세 번은 아니지만-_-) 장면도 인상적인데,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장관의 부인은 장관직을 반대하고, 대통령이 직접 장관 부인을 대면해 부탁하는 장면이 한국에서 일어 날 수 있을까?)인 걸 보면 미국의 문화가 흥미롭기도 하고, 오바마가 확실히 대인배인 건 사실인 듯. ㅎㅎ

11장에 글렌 허버드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의 뻔뻔한 대화가 서술되어 있는데, 본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11]하고 있다고 한다.

잘 쓴 글들[12,13]이 이미 있어서 내가 이 글을 쓰는게 의미가 있을 까 싶긴 하다. 당시에 여러모로 혼란했던 정보의 난립을 어느정도 정리하는 측면에서 볼만하다고 생각함.

 


[1] 경향신문 [오바마의 사람들]12. 티모시 가이트너 2008.11.23 18:54:16
[2] 뉴스페퍼민트 긴축 정책 기반이 된 로코프-라인하트 논문, 엑셀 실수? 2013년 4월 18일
[3] 내 백과사전 남녀 수학 학습능력의 차이 2012년 12월 22일
[4] 뉴스페퍼민트 월가(Wall Street)의 합리적 부주의(rational carelessness), 그냥 두고만 볼 것인가 2014년 5월 29일
[5] 실라 베어 저/예금보험공사 역, “정면돌파“, 알에이치코리아(RHK), 2016
[6] [라이코스 이야기 23] 세금 보고 (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 EstimaStory.com)
[7] Tim Geithner- I Used TurboTax! (youtube 2분 46초)
[8] 내 백과사전 헤지 펀드 매니저 수입 순위(2009) 2010년 12월 15일
[9] 내 백과사전 글라스-스티걸 법의 폐지가 2007-8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2018년 3월 18일
[10] 토빈세가 돌아오다(Dani Rodrik) (a quarantine station)
[11] 매일경제 가이트너 회고록 내용은 거짓이다 정면 비판 2014.05.13 13:10:46
[12] 스트레스 테스트 (티모시 가이트너) (새나의 창고)
[13] 티모시 가이트너가 설명하는 ‘금융위기의 역설’에 대한 단상 (economic view)

헤지펀드의 수익률을 결정하는 요소 : 공부

이코노미스트지[1]를 보니 액티브 펀드의 보유 주식 개수가 점진적으로 줄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액티브 펀드는 자기가 뭔가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혹은 착각-_-)해서 자신이 직접 종목을 선택하는 펀드를 말하고, 패시브 펀드는 인덱스 추종을 하는 펀드를 말한다. 아무래도 요새 펀드의 수익률이 좋아져서인지는 몰라도 더 큰 변동성을 감수하려는 추세인 듯 하다. 내 생각에는 미래에 어떤 종류의 버블 붕괴 전까지는 롱텀으로 액티브 펀드의 수익률이 더 좋을 듯 하다.

한편 이와 관련해서 해커뉴스[2]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cnbc의 보도[3]가 인용되어 있는데 이 기사는 Rice 대학 소속의 세 사람이 한 연구[4]를 기사화 한 것이다. 무료로 pdf파일을 볼 수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원래 연구[4]는 공공 정보(즉, 효율적 시장가설에 따르면 이익을 낼 수 없는 정보)로부터 헤지펀드가 얼마나 수익을 내는가 하는 연구 같은데, 여하간 논문 뒷부분[4;p29]에는 미국의 전자공시제도(EDGAR)의 다운로드 수와 헤지펀드 수익률의 관계를 비교한 모양이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10-k[5], 8-k[6]와 같은 용어의 의미는 잘 모르겠는데-_-ㅋ 아무래도 SEC에 주기적으로 보고하는 어떤 종류의 보고서를 말하는 것 같다. ㅎ 13f의 의미는 Form 13F를 말하는 것 같다. 13F에 관해서는 스넥의 글[7]을 참고하기 바란다.

일전에 이야기한 적[8]이 있지만, 투자전략을 공개해도 그 알파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9]하던데, 그나마 그런 투자전략 공개를 읽는 사람은 아마 헤지펀드 뿐일 것이다. ㅋㅋ 해커뉴스[2]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던데, 회계사와 로펌을 위한 연구 논문을 썼더니만, 제일 많이 읽는 사람이 헤지펀드들이더라..-_- 하는 이야기도 있다.

위 표에서 1위에 랭크한 사이먼즈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는 많이들 아실 듯 한데, 세바스찬 말라비저서[10]에 의하면 내부적으로 매우 강도높게 세미나와 연구를 한다고 한다. 가장 다운로드 수가 높은 이유를 알 만 하다.

근데 위 표를 봐도 다운로드 수와 수익률의 상관관계가 직접적으로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음…. 여하간 많이 버는 헤지펀드는 공부를 많이 하더라…는 건 알 수 있다. 정보를 공개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잘 안 읽는 것 같다. 시장이 그닥 효율적이지 않은 증거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도 공부해야 하는데 게임하느라 바빠서…-_-

 


[1] 이코노미스트 Active fund managers hold fewer and fewer stocks Mar 10th 2018
[2] Hedge-fund managers that do the most research will post the best returns (hacker news)
[3] cnbc Hedge-fund managers that do the most research will post the best returns, study suggests 11:43 AM ET Tue, 20 March 2018
[4] Crane, Alan D. and Crotty, Kevin and Umar, Tarik, “Do Hedge Funds Profit From Public Information?” (March 15, 2018). Available at SSRN: https://ssrn.com/abstract=3127825 or http://dx.doi.org/10.2139/ssrn.3127825
[5] 10-K (investopedia.com)
[6] 8-K (investopedia.com)
[7] snek 유명 투자자들의 주요 보유 주식 현황 (2017년 9월 기준) –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 2017년 11월 21일
[8] 내 백과사전 [서평] 문병로 교수의 메트릭 스튜디오 2016년 12월 17일
[9] McLean, R. David and Pontiff, Jeffrey, “Does Academic Research Destroy Stock Return Predictability?” (January 7, 2015). Journal of Finance, Forthcoming. Available at SSRN: https://ssrn.com/abstract=2156623 or http://dx.doi.org/10.2139/ssrn.2156623
[10] 내 백과사전 [서평] 헤지펀드 열전 : 신보다 돈이 많은 헤지펀드 엘리트들 2012년 4월 12일

글라스-스티걸 법의 폐지가 2007-8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티모시 가이트너 저/김규진, 홍영만, 김지욱 역, “스트레스 테스트“, 인빅투스, 2015

금융권에 다른 문제도 매우 있어서, 위기를 설명하려는 다양한 이론의 출현 근거가 되었는데, 이에 따라서 금융위기가 일종의 로르샤흐 심리테스트의 국면이 되었다. 즉, 어떤 정치적이나 경제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위기를 설명하는 이론이 과거의 이념적 편향성에 관련되었음”을 확인해 주는 증거를,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문제들 일부는 실제로 위기에 기여하였고, 위기에 의해 초래된 손상을 증폭시키기도 했지만, 위기의 주된 원인은 아니었다. 좋은 시절이 계속될 것이라는 마니아의 근본 세력 없이는, 그러한 문제들이 독자적으로 과도 차입을 부추기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다른 문제의 예로서, 일부 비판자들은 “대공황 당시 은행의 영업을 제한 했던 글라스 스티걸법을 클린턴 대통령 시기에 단계별로 폐지함으로써 예금보험부 상업은행들이 투자은행과 섞이도록 허용했던 것이 핵심 문제였다.”고 보았다. 그러나 위기의 핵심에 있던 금융사들인 베어스턴스, 리먼, AIG, 패니매, 프레디맥 등은 상업은행이 아니었으므로, 글라스 스티걸법의 폐지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한편 전통적 은행도, 특히 부동산에 대출했던 은행의 경우 많은 위험을 안았다. 그런데 워싱턴 뮤추얼, 인디맥과 수백 개 소형은행은 글라스 스티걸법에 의한 분리 철폐로 인해 출현할 수 있게 된 거대 금융그룹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과도 확장했던 은행과 저축은행 들이었다. 씨티와 뱅크오브아메리카 들이 취약한 투자은행 부문을 설치하고, 인수하도록 허용되지 않았더라면 위험이 덜하고 문제도 적었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가장 손상이 심한 파산은 금융권 내 분리 장벽의 비전통적 부문에서 영업하던 회사들에서 발생하였다.

여태 글라스 스티걸법의 폐지가 2007-8 금융위기의 원인들 중 하나라고 알고 있었는데, 내가 아는 지식과는 조금 다른 견해가 나온다. 으음~~

다만, 가이트너의 논리가 조금 이해되지 않는데, 전통적 은행이 과도 확장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면, 그 ‘과도 확장’의 원인이 투자은행과 같은 행위를 허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여하간 글라스 스티걸법이 대공황 때문에 나온 법인데, 이걸 폐지했더니 다시 금융위기가 일어났으니 그냥 우연의 일치다! 라고 말하기 좀 그렇다. ㅋ 2007-8 금융위기 때문에 등장한 도드 프랭크법도 작년에 트럼프가 거의 폐기했다는 이야기[1]를 들었는데, 앞으로 어찌될지 모를 일이다. ㅎ

 


[1] 연합뉴스 트럼프, 월가 규제 완화…’도드-프랭크법’ 폐지 서명 2017/02/04 0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