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디코노미에서 부테린과 루비니의 설전?

분산경제포럼(Deconomy)이라는 공개 포럼 행사가 있는 모양이다. 이런게 있는 줄 몰랐네. 블록체인과 이코노미에 관련하여 다양한 주제로 토론하는 장인 것 같다. 작년에 1회를 개최했고 오는 4월 4~5일에 2회가 개최되는 듯. 두 번 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모양이다. 홈페이지[1]도 있고, 유튜브 채널[2]도 있다.

홈페이지[1]의 연사 패널 목록을 쭉 보니,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이더리움의 창시자인 Vitalik Buterin이랑 루비니 선생 뿐인데, 모르긴 해도 뭔가 면면이 화려해 보인다. 나름 규모가 있는 행사인 듯.

근데 루비니 선생이 암호화폐 무용론을 강력하게 주장해 왔는 줄은 처음 알았네. 디코노미에서 루비니 선생과 부테린이 토론을 할 모양[3,4]이다. 이거 지디넷에서 은근 바람잡는 기사[3]를 썼던데, 이미 두 사람이 트위터에서 나름 설전을 펼쳤던 적이 있는 모양이다.

홈페이지[1]를 보니 기업부스만 보는 10달러짜리는 이미 매진됐고, 키노트를 보는 99달러 짜리 표랑, VIP용 999달러짜리 표는 아직 남아 있는 듯. 헐. 99달러짜리 표 끊어서 함 보고 싶은데, 시간이 안 되네 ㅋ

루비니 선생은 Great Recession 한 번 맞추는 바람에, 언론에서 너무 띄워주는 느낌도 좀 들긴 한다. 일전에 금값 이야기[5]도 했지만, 조금 빈약한 근거로 너무 주장을 쎄게 던지는 경향이 좀 있는 듯 하다. 근데 지금 금값차트를 보니 루비니 선생이 얼추 맞았네-_- 뭐 나오셔서 좋은 말씀 잘 하시겠지. ㅎㅎ

부테린 선생은 일전에 이더리움의 작업증명(proof of work)을 안 믿는다[6]고 해서 논란이 됐던 기억이 나는데, 내가 본 기사가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네-_- 여하간 그는 지분증명(proof of stake)을 밀고 있는 듯. 근데 지금 찾아보니 지분증명도 나름 비판적 스탠스가 꽤 있는 걸[7,8] 보면 루비니 선생의 말이 아주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 ㅎ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게 쌈구경이랑 불구경인데-_- 쓸데없이 흥미가 생긴다-_- ㅋㅋㅋㅋ 근데 기왕이면 디코노미 말고 경제 유머 축제[9] 같은 거 개최하면 안 될까? 열심히 참여할 수 있을 듯 한데.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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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26

재생시간 5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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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4
블록미디어 헤이스 vs 루비니, 타이베이에서 암호화폐 찬반 맞대결 2019년 7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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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deconomy.com/ko/
[2] Deconomy (youtube.com)
[3] 지디넷 이더리움 창시자 vs 암호화폐 저격수, 제대로 맞붙는다 2019/03/12 17:00
[4] 블록인프레스 ‘닥터 둠’ 루비니 교수 “암호화폐 성공할 근거 없어”…4월 부테린과 논쟁 예고? 2019년 3월 11일
[5] 내 백과사전 금값이 얼마나 내려갈 것인가? 2013년 6월 5일
[6] https://twitter.com/VitalikButerin/status/1077548790272405504
[7] 지분증명방식 (Proof of Stake) 완벽 가이드 – 이더리움 최신 개선안과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 인터뷰 (blog.bitmex.com)
[8] POS 알고리즘과 Vitalik Buterin의 POS 철학에 대한 비판 (steemit.com/kr/@cryptodreamers)
[9] 내 백과사전 Kilkenomics : 경제 유머 축제 2015년 11월 20일

앨런 그린스펀의 연방준비은행 반대론

앨런 그린스펀의 삶과 시대
세바스찬 말라비 (지은이), 박홍경 (옮긴이) | 다산출판사 | 2018-10-30 | 원제 The Man Who Knew (2016년)

p84-86

그린스펀은 서두에서 “자유방임주의가 경제 체제에서 유일하게 도덕적이고 현실적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라면서 강연 취지를 밝혔다. 시장가격의 공정성을 공격하는 태도는 곧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가격을 형성하는 개인을 비난하는 도덕적 판단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사업가, 또는 그린스펀의 표현대로 기업가(enterpriser)’는 영웅이다. 기업가는 사회의 생산적 에너지를 평범한 시민의 욕망과 일치시키는 핵심적인 인물이며 이러한 작업을 최대한 효율적인 방법으로 해낸다. 미국은 자유방임주의를 채택한 덕분에 경쟁자들을 제쳤다. 하지만 미국의 실용적이고 기업가적인 사고는 ‘물질 추구가 악하고 비도덕적이라는 윤리적, 종교적인 견해’와 충돌했다고 그린스펀은 탄식했다. 그린스펀은 청중들에게 “『아틀라스』가 미국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온전히 평가하려면 미국사에 나타난 이런 모순의 해악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객관주의자 신념의 인내심을 발휘해 그는 경제학의 가장 기초적인 개념을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개인이 분업을 하는 이유, 상업적 교환에 참여하는 이유, 비교우위와 절대우위의 차이 등을 다뤘다, 또한 통화의 목적과 기원에 대해 심도 깊게 고찰하였으며 특히 금을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1913년 연방준비법이 통과되기 이전의 ‘자유은행’ 시대를 찬양했다. 당시 은행은 금 보유고를 근거로 민간통화(private money)를 발행했고 정치적인 간섭을 받지 않았다. 그는 도덕적 근거에서 민간통화가 정부가 발행하는 통화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민간은행의 지폐의 경우 은행가의 말이 금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가치를 가진다.” 반면 정부가 발행하는 지폐가 가치를 지니는 근거는 명예가 아니라 강제적 명령에 있다, 법이 강제하기 때문에 지폐가 통용되는 것이다. 그린스펀은 화폐에 대한 『아틀라스』의 유명한 구절을 읊으면서 불태환화폐(fiat currency) 시스템에 내재된 폭력성을 강조했다, “지폐의 궁극적인 보증은 민간인의 신성한 말이 아니라 정부 관료가 겨누는 총구다.”

그린스펀은 민간 발행 화폐를 선호하는 이유를 도덕적 근거뿐만 아니라 실용적/실제적/현실적 차원에서도 드러냈다. 그는 민간화폐는 수량이 한정되어 있는 이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처럼 화폐의 사용을 강제할 힘이 없었던 19세기 ‘자유’ 은행은 오로지 은행의 금 보유고로 확실히 보증할 수 있는 가주권(scrip)만을 발행했다. 따라서 화폐를 무한정 찍어낼 수 없었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이는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기도 했다. 중앙은행의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민간은행이 가주권을 금으로 교환해 주는 약속을 이행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금을 보유하고 있는지 항상 의심을 샀던 것이다. 그러한 의혹이 짙어지면 은행은 경영이 악화되어 대출을 전면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경제는 둔화되었다. 연방준비법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의 지도자들이 ‘탄력적 통화(elastic currency)를 공급하기 위해’ 중앙은행을 설립하도록 이끈 원인이 바로 ‘머니 패닉’ 이었다. 하지만 그린스펀은 이러한 논리를 멸시했으니 경제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린스펀이 보기에 19세기의 머니 패닉은 유익한 면이 있었다.20 분명 단기적으로는 경제활동을 위축시켰지만 자산 버블의 팽창을 가로막는 역할을 했다. 은행은 머니 패닉 덕분에 금 보유고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신용이 창출되지 않았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했다. 다시 말해 버블이 위험한 수준으로 커지도록 돈을 찍어내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국의 지도자들은 역사에서 완전히 잘못된 교훈을 얻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머니 패닉이 은행의 금 보유고 부족에서 발생했다고 생각한 정치인들은 “머니 패닉의 치료책이란 은행시스템에서 보유고의 부족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이는 무척 간단하다.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이란 얼음 사이에 온도계를 꽂아 열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미국 역사상 재앙에 버금가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바로 연방준비제도의 설립이었다.”

이 ‘역사적 재앙’, 즉 훗날 그린스펀이 이끄는 중앙은행의 설립은 은행시스템이 정치적으로 무한한 지급준비금을 갖추는 멋진 신세계를 열었다.21 은행은 보유하던 금을 연준에 넘겼고, 그 대가로 연준 예치금에 대한 권리를 부여받았다. 이 예치금은 은행시스템의 새로운 지급준비금이 되었다. 금과 달리 새로운 지급준비금은 중앙은행의 명령에 따라 탄력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다. 연준은 은행이 보유한 국고채를 매입하면서 은행의 지급준비금을 늘리는 방식으로 정산하는데 이는 신용을 창출한다. 혹은 은행의 기업채권을 받아들이면서 준비금 계좌를 더 차감하여 은행이 보유한 기타 자산을 ‘할인’ 할 수도 있었다. 이와 같은 마법이 가능해지자 은행은 더 이상 자금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경제는 머니 패닉을 방지하는 예방주사를 맞았다. 하지만 그린스펀은 솜씨 좋은 새 시스템이 썩 효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준비금의 부족을 방지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영원한 번영을 가져오는 대신 세계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경제적 재앙을 초래했다. 1930년대에 대공황이 발생한 것이다.”

강의가 종반부로 가면서 그린스펀은 뉴프런티어 경제에 대한 공격을 다시 시작했다. 연준은 케네디와 존슨 대통령의 보좌진들이 약속한 완전 고용을 달성하기 위해 은행준비금을 사상 최대 규모로 늘려 경제를 부양하고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했다. 이는 단순히 기술관료의 실수가 아니었다. 인간 진보의 진실한 동력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뉴프런티어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경제를 하나의 기계로 이해하고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밟듯 미세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린스펀은 “경제 발전은 사회 경제, 시스템 등의 기능이 아니라 인간의 기능이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정도까지 우리 사회는 인간 의 성취가 일궈낸 잔광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 부를 창출하던 위대한 인물들은 복지국가가 부상하면서 역사 속에서 오명을 얻었다.”라고 한탄하면서 어릴 때 흠모했던 영웅들의 이름을 언급했다. “제임스 힐J. P. 모건은 평범함을 숭배하는 사회에 대한 모욕이다.”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평범함이 서서히 국가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말 것이다. 그는 아인 랜드의 레퍼토리에서도 한 구절 빌려 왔다. 미국이 스스로 “원초적인 이타주의적 도덕성에 순응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노예, 폭력, 발전 없는 오류, 제물로 바쳐진 용광로”라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이처럼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그는 엘리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답하면서 일종의 자유의지론 레닌주의(libertarian Leninism)를 설파했다, 19세기의 자유국가를 회복하기 위해 대중을 전부 객관주의자로 개종시킬 필요는 없다고 그는 말했다. 대신 “수백, 많아야 수천 명 정도인 지식인 지도자들이 트랜드를 설정하는데 이 지도자들이야말로 우리가 도달해야 할 대상”이라고 밝혔다. 그는 “공산주의는 소수의 헌신적인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면서 루스벨트 호텔에 모인 열정적인 형제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전투 준비를 명령했다. “객관주의는 공산주의와 과거의 철학적 운동과 비교해 대단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객관주의는 올바를 뿐만 아니라 현실에 부합하고, 이 땅에서의 삶과 일치한다.”

 


20. 그린스펀의 설명과는 극명하게 엇갈리게도 19세기 말의 일부 금융공황은 일시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불황을 야기했다. 가령 1873년의 패닉은 당시 대공황(Great Depression)으로 불렸던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그린스펀은 강의에서 남북전쟁 중 금본위제가 정지된 결과로 이런 불황이 일어났다고 제시했다. 전쟁중 정부가 소위 그린백(greenback)을 발행한 것이다. 그린스펀의 설명에 따르면 1970년대의 불황은 투자자들이 1879년(금태환의 재개로) 그린백이 금에 자리를 내줄 것을 예상함에 따라 신용이 수축되어 디플레이션이 찾아온 결과였다.
21. 금본위제는 1914년 연준이 설립된 이후 1971년 닉슨이 달러와 금의 연계성을 폐기하기까지 단계적으로 해체됐다. 그렇더라도 1914년 이후 정부가 임의로 은행의 지급준비금을 만들어 낼 능력을 얻었다는 지적은 옳다. 곤란할 때마다 남은 제약 사항의 완화를 명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훗날 연방은행장으로 명성을 얻은 그린스펀으로서, 젊었을 때 연방은행과 Fiat money에 반대하고 금본위제를 지지했다는 사실은 무척 아이러니하다. 게다가 대공황의 원인에 대한 인식조차 배리 아이켄그린 선생의 주장[1]과 정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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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서평] 황금 족쇄 – 금본위제와 대공황, 1919~1939년 2019년 1월 11일

일반적인 투자법을 200년 이상의 장기데이터에 적용하기

해커뉴스[1]를 보니 블룸버그의 기사[2]에 대해 화제가 되고 있었다. 블룸버그의 기사는 Guido Baltussen, et al.의 연구[3] 결과를 설명하는 내용인데, 논문은 SSRN에서 받을 수 있다. 근데 원체 지식이 없으니 원문을 봐도 잘 이해는 안 되던데-_- 여하간 나는 이렇게 이해를 했다. ㅋ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프리미엄 팩터들을 214년간의 주가지수, 채권, 외환, 원자재 변동에 적용하면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확인해 본 듯 한데, 이만큼의 장기 백데이터를 활용한 사례는 과거에도 별로 없는 듯해 보인다. 뭐 논문의 큰 뼈대는, 하늘아래 새로운 거 없고 이전에 학술적으로 알려진 결과와 큰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 같다.

블룸버그 기사[2]를 보니 시장 비효율성도 드러나는 모양이던데, 설령 효율적 시장가설이 맞다해도, 그 비효율성이 제거되려면 이 정도 장기가 필요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아니 근데 내가 내용을 맞게 이해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ㅋ 케인즈 대사부께서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고 했는데[4], 인생을 오버하는 기간에 효율성이 구현되는게 얼마나 의미있을지 모르겠다. ㅎㅎㅎ 번 돈은 살아서 써야지-_-

예전에 효율적 시장가설이 참이라는 명제와 P = NP는 서로 동치라는 괴이한 주장[5]을 본 기억이 나는데, 경제학계의 최대 떡밥과 전산수학계의 최대 떡밥을 서로 엮는 엄청난-_- 주장이라서 꽤 재미있다. ㅎㅎ 본인이 그 주장[5]을 대충 보니 거의 썰-_- 수준의 논의 같아 보이던데, 시장데이터를 몽땅 처리하여 반영하는게 NP문제니까 시장이 효율적이 되려면 P = NP와 동치라는 이야기 같다. 이 주장이 맞다면 상당수의 전산수학자들은 P ≠ NP라고 믿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마 시장도 비효율적이라고 봐야할 듯 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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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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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runching 200 years of stock, bond, currency and commodity data (hacker news)
[2] 블룸버그 Eternal Market Patience Offers Eternal Rewards 2019년 2월 7일 오후 2:01 GMT+9
[3] Baltussen, Guido and Swinkels, Laurens and van Vliet, Pim, Global Factor Premiums (January 31, 2019). Available at SSRN: https://ssrn.com/abstract=3325720
[4] John Maynard Keynes (wikiquote.org)
[5] Philip Maymin, “Markets are efficient if and only if P = NP”, arXiv:1002.2284 [q-fin.GN]

다른 경제환경에서 생기는 경제관점의 차이

1960년부터 2004년에 걸친 데이터에서, 불황기에 태어난 사람일수록 더 보수적인 자산 운용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1]를 예전에 본 기억이 나는데, 자신의 경제적 환경이 경제를 보는 관점에 영향을 주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 같다.

유튜브에서 러시아 출신인 Ashiya씨의 채널[2]을 가끔 보는데, 일본어를 무척 잘해서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는 간단한 러시아어 강좌가 꽤나 재미있으니, 일본어를 알고 러시아어에 관심있으시면 추천한다. ㅎㅎ

얼마전에 올라온 영상[3]에서 자신이 겪은 러시아 경제위기 당시 경험과, 러시아에서 경험한 인플레이션에 비해 인플레이션이 매우 낮은 일본인과의 관점차이를 설명하는 영상이 무척 재미있다. 재생시간 14분 1초

중간에 언급하는 1990~1993년의 높은 러시아의 인플레이션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원인이 뭔지 좀 검색해봤는데, 잘 모르겠음-_- 1998년의 러시아 경제위기는 많이 들어봐서 알고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LTCM이 몰락한 결정적인 트리거가 되었다는 이야기[4]는 유명하다. 로저 로웬스타인저서[4]를 참고하시라.

러시아 장기 인플레이션[5]을 한번 찾아봤는데, 그래프에서도 나오지만 2000년 푸틴이 집권한 이후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의 경제재재로 인한 금융위기에 인플레이션율이 십몇 프로까지 올라가긴 했는데, 과거 데이터가 원체 높다보니 그래프상에 거의 티가 안나는구만-_- 여하간 이런 걸 보면 암만 푸틴 저항 시위[6]같은 걸 하고 도덕성을 따져도, 경제 앞에서는 별로 위력이 없는 듯 하다. 푸틴이 나름 경제방어는 잘 하는 듯 하다.

여하간 영상[3]에서 인플레이션이 높은 러시아에서는 저축이 그리 활발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크루그먼 선생의 저서[7]에서 소개하는 그 유명한 베이비 시터 불황[8]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하포드 선생의 저서[9]에서도 같은 일화를 짧게 소개하고 있다. 과도한 인플레이션도 문제지만, Ashiya씨는 너무 낮은 인플레이션도 문제인 것은 모르시는 듯 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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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Ulrike Malmendier & Stefan Nagel, 2011. “Depression Babies: Do Macroeconomic Experiences Affect Risk Taking?,”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Oxford University Press, vol. 126(1), pages 373-416. DOI: 10.3386/w14813
[2] Ashiya (youtube.com)
[3] 意外と知らないロシアのお金事情!給料・貯金・経済危機・インフレなど (youtube 14분 1초)
[4] 내 백과사전 [서평] 천재들의 실패 2010년 11월 12일
[5] Historic inflation Russia – CPI inflation (inflation.eu)
[6] 내 백과사전 러시아 시위 현장의 정규분포식 2012년 1월 15일
[7] 내 백과사전 [서평] 경제학의 향연 2011년 12월 15일
[8] Sweeney, J.; Sweeney, R. J. (1977). “Monetary Theory and the Great Capitol Hill Baby Sitting Co-op Crisis: Comment”. Journal of Money, Credit and Banking. 9 (1): 86–89. doi:10.2307/1992001
[9] 내 백과사전 [서평] 당신이 경제학자라면- 고장 난 세상에 필요한 15가지 질문 2015년 1월 4일

[서평] 황금 족쇄 – 금본위제와 대공황, 1919~1939년

황금 족쇄 – 금본위제와 대공황, 1919~1939년
배리 아이켄그린 (지은이), 박복영 (옮긴이) | 미지북스 | 2016-12-10 | 원제 Golden Fetters: The Gold Standard and the Great Depression, 1919-1939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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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과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_- 소설가 김유정의 ‘금따는 콩밭‘이라는 소설이 있다. 금에 환장해서 멀쩡한 콩밭을 갈아엎다가 망한다는 이야기인데 ㅋㅋㅋ, 시대적 배경이 대략 1930년대 초반이다. 전세계 각국이 금본위제에서 탈퇴함에 따라, 자산보호를 위해 전세계적으로 금의 수요가 급증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그 영향이 조선의 콩밭에까지 미친 것이라 짐작된다. 당시 조선에서 금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기괴한 사건들이 많았는데, 그 천태만상의 이야기는 전봉관 선생의 책[1]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이것도 재미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ㅎㅎㅎ

베리 아이켄그린 선생의 저서는 여러 권[2,3,4] 읽어봤기 때문에 주저없이 샀다. 일전에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전후 가장 영향력있는 경제학자 탑 5에 들어가는 걸 봤는데[5], 본인은 문외한이라 모르긴 해도 유명한 사람인 듯 하다.

대공황 이전에도 공황은 여러 번 있었지만, 왜 그때 그렇게 타격이 크고 회복도 더뎠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일전에 킨들버거 선생의 패권안정론을 주장하는 책[6]을 읽은 바 있는데, 그 내용인 즉슨,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단일 패권국이 최종 대부자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대공황이 일어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 책은 그와는 좀 다른 주장을 담고 있는데,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대공황의 원인으로 금본위제를 사수하려는 집착 때문에 대공황이 발생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책의 제목인 ‘황금족쇄’란 바로 이 집착을 상징한다. 이 책의 내용을 매우 거칠게 요약을 하자면, 한겨례의 어느 기사[7]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기사가 독서에 참고가 될 듯 하다.

그러면 왜 1차 대전 이전의 금본위제에서 대공황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를 설명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의 ‘가격-정화 플로우‘ 매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매우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대외 불균형이 제거됨을 설명하는 거시경제모델이지만, 18세기의 단순한 경제 시스템에서는 훌륭하게 작동되었을지 몰라도, 환경이 크게 바뀐 20세기가 되어서까지 이런 방식으로 불황을 설명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p77) 나무위키의 ‘세계 대공황’ 항목[8]에도 이런 빈약한 모델을 토대로, 금본위제가 국지적 불황의 원인은 될 수 있어도 세계적인 대공황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나와 있으나, 아이켄그린 선생은 그런 종류의 반론에 대해 재반박하고 있다.

더구나 19세기는 장기 평화의 기간으로서, 각 국가간 중앙은행간의 국제협력이 잘 이루어지던 시기였고, 따라서 한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 신용보다 더 많은 신용을 동원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1차대전 이전까지는 금본위제임에도 불구하고 대공황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나온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프랑스가 전쟁 배상금을 갚은 선례 때문에, 1차 대전 당시 각 국가들은 전쟁 배상금의 기대를 가지고 전쟁비용 조달을 세금의 인상없이 국채만으로 진행했다고 한다.[9] 이 결과 전후 독일에게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리게 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2차 대전의 원인이 된다. 현대 경제 정책의 관점에서는 디플레이션이 엄청난 재앙이지만, 당시에는 청산주의적 관점에서 디플레이션을 하더라도 화폐가치와 금본위제를 사수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본 듯 하다. 미국의 청산주의적 관점으로 재정정책을 운영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일전에 본 가이트너씨의 책[10]이 생각나는데, 역사는 반복되는 건가 싶다. ㅋㅋㅋ

게다가 독일은 초인플레이션의 경험으로, 영/프/미도 독일만큼은 아니지만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로 인해, 긴축 재정을 선호한 점을 들고 있다. 게다가 준비금을 유지해야 하므로 자유로운 재정정책을 펴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독일의 이 당시 인플레이션에 대한 충격은 나름 꽤 뼈아팠던 모양인데, 일전에 본 세바스찬 말라비 선생의 [11]에서도, 독일 통일 당시에 인플레이션을 우려하여 강한 고금리정책을 실시했던 독일의 중앙은행장 헬무트 슐레징거가, 금리를 내리라는 엄청난 정치적 압력을 견디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하간 이후 각 국가별 경제, 무역, 정치상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군데군데 패권안정론에 대한 반박도 담고 있다. 디테일한 사건들의 설명이 무척 많은데, 일일이 검색하면서 조사하다보면 끝이 없다. 읽기 초 빡시다-_-

저자는 경제상황 뿐만 아니라, 국가 내 정치와 국제 정치까지도 동원하여 세부적인 각 사건들의 이해관계를 조립하여, 금본위제와 대공황을 연결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 역자의 말 그대로 ‘대서사시’를 읽는 느낌이다. 과연 명불허전이라고, 전후 최대 영향력있는 경제학자들 중의 하나로 언급[5]되는 이유가 있는 듯 하다.

p302부터 프랑스 전간기 정치 상황에 대해 나오는데, 수학자 팽르베도 잠시 언급된다. 책에는 오직 정치가로서의 언급만 있어서 본 블로그의 글[12]도 참고하기 바란다.

책에서 M1 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뭔 말인가 싶어 검색해 봤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폐와 동전 및 수표 등의 물리적인 통화 공급량을 가리키는 듯 하다.[13]

저자가 중간중간에 미국의 리더십 부족이 문제가 아니었고, 국가간 협력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강조하는데,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지만 당연하게도 패권안정론에 대한 비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p412에 “1프랑의 금이 추가되면 35%의 금 준비율 하에서는 이론상으로는 약 3프랑의 유통 은행권 증가가 가능했지만”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건 아무래도 승수효과에 의한 계산이 아닌가 싶다. 즉, 최초 a원의 금에서 지급준비율 r이 결정되면, 이 돈을 대출하여 a(1-r)원이 풀리고, 그 돈이 지급준비금을 제외한 나머지 돈 a(1-r)2가 대출되는 형식으로 무한히 반복하면, 결국 무한등비급수의 합인 \frac{a}{1-(1-r)} = \frac{a}{r}가 되어 1/0.35 = 2.86이므로 얼추 맞아 들어간다.

가장 핵심적인 주장들은 서문과 결론, 그리고 역자의 말에 실질적으로 전부 들어가 있으므로, 바쁜 사람은 이 부분만 읽어도 요약본을 읽은 것과 다름이 없을 듯 하다.

역자인 박복영 교수는 경희대학교 국제 대학원에 재직중이라고 한다.[14] 이 책의 초벌번역에만 4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군데군데 어려운 용어의 해설도 들어 있다. 저자의 노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상업적으로 성공하기는 어려운 책인데, 이런 책이 시중에 나올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외한인 본인에게는 읽기에 상당히 빡셌지만, 킨들버거 선생의 책[6]을 읽으면서 이리저리 검색해 본 게 있으니 좀 수월했다. 만약 이 책을 완독하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킨들버거 선생의 책[6]도 함께 읽는 편이 도움 될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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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금광시대 – 식민지시대 한반도를 뒤흔든 투기와 욕망의 인간사 전봉관 (지은이) | 살림 | 2005-01-27
[2] 내 백과사전 [서평] 글로벌라이징 캐피털 : 국제 통화 체제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2011년 10월 9일
[3] 내 백과사전 [서평] 달러 제국의 몰락- 70년간 세계경제를 지배한 달러의 탄생과 추락 2015년 10월 14일
[4] 글로벌 불균형 – 세계 경제 위기와 브레튼우즈의 교훈 베리 아이켄그린 (지은이), 박복영 (옮긴이) | 미지북스 | 2008-11-05 | 원제 Global Imbalances and the Lessons of Bretton Woods
[5] 내 백과사전 지난 1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2011년 3월 6일
[6] 내 백과사전 [서평] 대공황의 세계 1929-1939 2018년 4월 13일
[7] 한겨레 우리는 금본위제로 돌아갈 수 있을까 2018-11-13 14:35
[8] 세계 대공황 (나무위키)
[9] 내 백과사전 1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별 세수 변화 2019년 1월 2일
[10] 내 백과사전 [서평] 스트레스 테스트 2018년 3월 23일
[11] 내 백과사전 [서평] 헤지펀드 열전 : 신보다 돈이 많은 헤지펀드 엘리트들 2012년 4월 12일
[12] 내 백과사전 프랑스에서는 수학자가 정치가가 될 때도 있다 : Paul Painlevé 2018년 8월 20일
[13] M1 (investopedia.com)
[14] Park, Bokyeong (gsp.khu.ac.kr)

일본 필립스 곡선은 일본처럼 생겼다

필립스 곡선이 뭔지는 아마 대부분 아실 듯 한데, 노파심에 소개하자면 ㅋㅋㅋㅋ 인플레이션율과 실업율 사이에 음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곡선이다. 수력 거시경제 계산기를 만들었던 재주꾼 필립스 선생이 고안하여 붙은 이름인데, 필립스 선생의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는 일전에 이야기한 팀 하포드 선생의 책[1]에 잘 나와 있으니 참고 바란다. ㅎ

역사깊은 쓰키지 수산시장이 작년에 토요스 수산시장으로 이전했는데, 여하간 이 동네에서 첫 매물로 나오는 참다랑어는 그 상징성과 홍보효과 때문에 높은 가격으로 낙찰된다고 한다. 이 이야기도 일전에 한 적[2]이 있으니 참고 바란다. 올해는 역대 최고 가격을 경신한 3억3천만엔에 낙찰했다고 한다.[3,4] 근데 이거 몇 년째 계속보니 그냥 키무라 키요시 사장이 혼자 하는 쇼 같아 보인다-_- 매년 낙찰 받는 사람이 똑같고 기사도 매년 나온다. 이 아저씨 기사로 고만 써도 될 듯. ㅋㅋ

뭐 여하간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연초 첫 참다랑어 가격 변화랑 일본 GDP와의 상관관계 그래프를 그리면 참다랑어 모양이 된다는 개그성 낚시 기사[5]-_-를 쓴 걸 봤는데, 기사[5]에 올라온 그래프를 함 보시라. ㅋㅋ

이게 뭐 하는 짓인지-_- 이코노미스트지에서 가끔 개그성 낚시기사가 나오긴 한다.ㅋㅋ

비슷한 그래프 장난이 또 있던데, 일본의 필립스 곡선에서 실업율을 invert scale로 그리면 일본 열도처럼 생겼다는 논문[6]이 있었다. ㅋㅋㅋ 그래프를 함 보시라.

원문[6]에는 그냥 이게 다다-_- 개그도 이런 개그가 없구만. ㅋㅋㅋ 오늘도 늘어가는 천하에 쓸데없는 경제학 상식이구만. ㅎㅎㅎ

저자인 Gregor W. Smith 선생이 누구인가 싶어 검색해보니 캐나다 퀸스 대학교 경제학과 소속이라고 한다. 홈페이지의 출판 목록[7]에 이 논문[6]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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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서평] 당신이 경제학자라면- 고장 난 세상에 필요한 15가지 질문 2015년 1월 4일
[2] 내 백과사전 연초 참다랑어 가격의 폭락 2014년 2월 5일
[3] 요미우리 大間マグロ、最高値の3億3千万円…豊洲初競り 2019年01月05日 13時39分
[4] BBC Japan sushi tycoon pays record tuna price 5 January 2019
[5] 이코노미스트 Can tuna prices predict Japan’s GDP growth? Jan 10th 2017
[6] Gregor W. Smith, Japan’s Phillips Curve Looks Like Japan, Journal of Money, Credit and Banking (2008) 40, 1325–1326. https://doi.org/10.1111/j.1538-4616.2008.00160.x
[7] Publications (qed.econ.queensu.ca)

1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별 세수 변화

황금 족쇄 – 금본위제와 대공황, 1919~1939년
배리 아이켄그린 (지은이), 박복영 (옮긴이) | 미지북스 | 2016-12-10 | 원제 Golden Fetters: The Gold Standard and the Great Depression, 1919-1939 (1992년)

p144-149

관리들은 이런 덤불 속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미리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법이 거의 없었다. 런던에서 유행한 이야기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육군, 해군, 수송 및 조달에 관해서는 준비 작업을 마쳤지만, 자금 조달에 관해서는 전쟁이 선포되고서야 비로소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어느 정부도 전쟁에 비용이 얼마나 들지 예측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영국은 해군이 동맹군에 물자를 공급하면서 적군을 봉쇄하면 대규모 상비군은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전쟁 계획을 세웠다. 독일작전참모부는 전투가 아무리 길어도 2년 내에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 큰 비용을 치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각국 정부는 세금 인상을 미뤘다. 세금 인상의 거부는 선전 효과가 있었다. 즉 독일과 프랑스 모두 자신들의 튼튼한 재정 상황을 과시하기 위해 세금 인상을 삼가려고 했다. 1870년의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의 선례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계산에서는 배상금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두 나라 모두 적국이 결국에는 채무와 은행권을 상환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차입이나 통화 발행을 통해 전쟁 자금을 조달했다. 대부분의 전쟁 기간 동안 독일 재무부 장관을 지낸 보수주의 경제학자 카를 헬페리흐는 “평화가 찾아온 뒤, 우리 적들에게 우리가 지불한 전쟁 비용의 청구서를 제시할 것이다”고 말했다.19

따라서 “각국 정부는 신용의 운전대를 꽉 쥐고 있었다.”20 전쟁 첫 해에 영국, 프랑스, 독일의 중앙 정부 지출 중 세금으로 조달된 비중은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표 3.1을 보라). 이 비중은 그 후에 훨씬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체적으로 주요 참전국들이 세금을 통해 경상 지출을 충당한 비율은 3분의 1에도 미치지 않았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세수 확대 노력이 매우 미미했다. 전시 부채의 지불 유예 조항에 따라 도시 임차인과 소작농은 징집되었을 경우 지대 납부를 면제받았는데 이 때문에 지주의 과세 대상 소득이 줄어들었다. 세무 관리들은, 군인 가족은 기소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전쟁 기간은 “황금시대, 세금도 없고 지대도 없고 빚도 갚을 필요가 없는 멋진 시간이었기에, 전쟁이 끝나는 것을 크게 아쉬워했다” 는 냉소적인 묘사도 있었다.21 1914년 말경의 조세 수입은 평상시의 6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런 간극을 메우기 위해 의회는 간접세, 주로 관세와 소비세를 인상했다. 그러나 간접세는 이미 높은 수준이어서 세수가 더 늘어날 여지가 크지 않았다. 전쟁으로 소비재 수입이 위축되어 관세 수입 역시 줄어들었다. 1916년, 한때 사회당 당원이었던 아리스티드 브리앙의 리더십하에서 채택된 전쟁 이윤세War Profit Tax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세수 전체에서 직접세 비중은 20% 근처에 줄곧 머물렀다. 1914년에 표결된 소득세는 3년 후에나 실행되었으며 1918년까지는 그 기여분이 정부 수입의 5% 미만이었다. 1917년 6월이 되어서야 관세를 제외한 총세수가 전전 수준을 회복했다.22

독일의 재정 노력은 더욱 무기력한 상황이었다. 독일제국은 전비 지출에서 8%만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었다.23 이것은 독일에서 중앙 정부와 각 주들 사이에 명확한 분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1871년 헌법에 따라 직접세 부과 권한을 각 주가 가지고 있었다. 각 주들은 이런 세금의 주요 수익자로서 평상시 정부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다.24 주 수준에서 의사 결정권을 갖고 있던 엘리트들은 전시에도 직접세의 통제권을 제국으로 넘기는 것을 주저했다. 직접세 수입이 전쟁을 거치면서 두 배가 되었지만, 전시 자금 조달에서는 미미한 역할밖에 하지 않았다. 독일제국은 거의 전적으로 간접세 (관세와 소비세의 비중이 비슷했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제국이 식료품을 비롯한 필수품 수입에 대해 관세를 유예한 이후에는 관세 수입이 뚝 떨어졌다. 정부는 제국중앙은행, 석탄, 철도 여행 등에 대해 추가 세금을 부과했다. 1918년에 음료와 사치재에 대해 새로운 소비세가 부과되었다. 주들도 적자를 겪었지만 중앙 정부에 비하면 적자 규모는 작았다. 제국과 주의 지출을 합하면, 정부 지출 대비 적자 비율이 92에서 83으로 떨어졌다.25

소득세가 존재하고 직접세 부과 원칙이 확고히 자리 잡혀 있던 영국에서는 세수를 늘리는 것이 더 용이했다. 독일에서는 직접세 수입이 전쟁 기간에 두 배가 되었지만, 영국에서는 네 배가 되었다.26 소득세와 부가세의 세율이 1914년 11월에 배로 올랐다. 1913~1914년과 1918~1919년 사이에 정상 소득세율은 5배가 되었다. 전시 특수로 혜택을 입은 기업에 대한 군수세와 초과 이윤세가 소득세를 보완했다.27 간접세 부과에는 소홀했다. “노동자 계급의 반발”을 야기 할 수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맥주와 차에 대한 세금이 인상되었다.28 영국 정부는 자유 무역 전통과 결별하고 수입 자동차, 영화, 벽시계, 손목시계, 악기에 대해 세금을 부과했다. 그런데도 영국 세수 전체 중 직접세 비중은 1913~1914년의 60% 미만에서 전쟁 후반의 80%로 올라갔다. 이후 사람들은 영국이 예산 관리에 “미온적”이었다고 비판하지만, 프랑스나 독일과 비교하면 영국은 전시 지출 중 인상적일 정도로 큰 비중을 세금으로 충당하는 데 성공했다.29

미국은 전통적으로 연방 세수를 관세에 의존했다. 그러나 전쟁 직전 미국의 산업계는 7% 최고 세율의 소득세를 대가로 수입 원자재에 대한 관세 인하를 얻어냈다. 1909년에 이윤이 5000달러를 초과한 기업에게 처음으로 부과된 1%의 법인세가 1913년에는 모든 기업에 부과되었다.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면서 관세 수입이 하락하자, 미국 재정 당국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직접세로 눈을 돌렸다. 당국은 1916년 소득세 기준 세율을 두 배로 올렸고 2만 달러 이상의 소득에 대해 누진세를 부과했다. 독일과의 외교 관계가 단절되자, 기업과 합자 회사에 대해 기존 세금에다가 초과 이윤세를 추가해서 부과했다. 전쟁 비용 중 3분의 1은 세금으로 충당하고 3분의 2는 대출로 충당한다는 것이 재무부의 계산이었다. 개인 소득세의 누진 세율은 63%까지 인상되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높았다. 자본 이득에 대해서는 최고 60%의 세율이 적용되었다. 1917년에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소득세와 이윤세가 관세 수입을 초과하게 되었다.30

각국의 이런 조세 정책은 비판에 직면했다. 관리들은 예산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즉 전시 지출을 세수로 충당하고 국가 재정을 방어하는 데 필요한 세금 인상이라는 쓴 약을 처방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 중 일부는 타당성이 떨어졌다. 건전한 비평가들은 군사비 지출이라는 일시 프로그램 비용은 장기간에 걸쳐 분산되어야 하고, 사실상 미래 세대가 분담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31 전시에 정치가들이 이기심과 편의주의 때문에 그 부담을 미래로 지나치게 많이 이전시켰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 정치적 논란은 세대 간 문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납세자들 사이에서 그 부담을 나누는 데서 발생했다. 관리들이 어떤 전략을 추구하든 전전 상태와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전쟁은 세금 부담과 소득 분배에 관한 합의를 뒤집어 놓았다. 전쟁이 끝나자, 부자들은 새로운 소득세를 폐지해야 하고 기존 세금도 전쟁 이전의 수준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노동계 대표들은 전쟁 관련 산업 분야의 소유주와 경영자들이 얻은 막대한 이윤과 자본 이득을 재분배하기 위한 자본 과세를 요구했다. 재정시스템을 전쟁 이전 상태로 되돌리려는 모든 노력은 정부 재정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이어지면서 엉키게 되었다. 전쟁 영웅의 나라에서는 전쟁 연금, 의료 지원, 실업 수당, 주거 지원금 등을 제공해야 했다. 다른 수입원이 필요했다. 문제는 전전의 방식대로 징수를 해야 하느냐 아니면 전시의 임시방편들을 계속 연장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전후 각국 정부가 직면한 최대의 논란거리였다.

적절한 과세 프로그램에 대해 합의를 이룰 수 없었던 정부는 부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주요 참전국들 중 영국과 미국은 장기 대출을 통해 전시 예산 적자를 충당하는데 가장 성공한 나라였다. 영국 정부는 재무부 단기 채권 발행과 잉글랜드은행 대출로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세 번에 걸쳐 대규모 장기 차입을 했다. 첫 번째 차입 에서는 대규모 금융 기관과 10만 명의 재력가들이 채권을 인수했다. 두 번째 차입을 위해서는 100만 명 이상의 저축을 동원해야 했는데, 채권 인수자들 중에는 일반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 이후에는 재무부가 국내 저축을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사용했다. 예를 들면, 채권의 인수 기간을 정하지 않은 채 전쟁 채권을 계속해서 발행했다.

 


19. Bogart, Ernest Ludlow (1921), War Costs and Their Financing, New York: D. Appleton and Company. 186쪽에서 인용
20. Birck, L. V. (1927) The Public Debt, New York: The Dial Press 226쪽
21. Gide, M. Charles (1919), “French War Budgets for 1919-1920”, Economic Journal 29, 129쪽
22. Charbonnet, Germain (1922), La politique financier de la France pendant la guerre, Bordeaux: Imprimerie de L’Université; Fisk, Harvey E. (1922), French Public Finance in the Great War and To-day, New York: Bankers Trust Company 29~31쪽; Flora, Peter (1983), State, Economy, and Society in Western Europe, 1815-1915, Volume 1, Frankfurt am Main: Campus Verlag. 300쪽; Peel, George (1925), The Financial Crisis in France, London: Macmillan and Co. 101쪽; Germain-Martin, Louis (1936), Le problème financier 1930-1936, Paris: Domat-Montchristien. 3~4부를 참고하라.
23. 표 3.1은 Balderston, T. (1989), “War Finance and Inflation in Britain and Germany, 1914-1918,” Economic History Review, sec. ser. 42, pp. 222-244을 따라 경상수입에서 정부채 매입을 통해 경감된 세금부담을 제외하였으며, 공식 통계상의 1918/1919년 지출 추정치를 같은 기간 제국의 미지불 채무 증가액으로 올렸다.
24. 상세한 것은 Holtfrerich, Carl-Ludwig (1986b), The German Inflation, 1914-1923, New York: Walter de Gruyter., 109~110쪽과 Witt (1987), 여러 곳을 보라.
25. Balderston, T. (1989), “War Finance and Inflation in Britain and Germany, 1914-1918,” Economic History Review, sec. ser. 42. 225쪽
26. 위의 책 230쪽
27. 처음에는 전전 수준을 초과한 이윤의 50%를, 1917년부터는 80%를 초과 이윤세로 부과했는데, 이 세금이 1914년에서 1920년 사이 총세수의 약 25%를 차지했다. Grady, Henry F. (1927), British War Finance 1914-1919,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Hicks, J. R., U. K. Hicks, L. Rostas (1941), The Taxation of War Wealth, Oxford: Clarendon Press (second ed.).를 보라.
28. Stamp, Sir Josiah (1932), Taxation During the War, London: Humphrey Milford. 29쪽
29. Morgan, E. Victor (1952), Studies in British Financial Policy, London: Macmillan. 94쪽. 그리고 Balderston, T. (1989), “War Finance and Inflation in Britain and Germany, 1914-1918,” Economic History Review, sec. ser. 42.를 보라.
30. Bogart, Ernest Ludlow (1921), War Costs and Their Financing, New York: D. Appleton and Company. 295쪽, Gilbert, Charles (1970), American Financing of World War I, Westport, Conn.: Greenwood Publishing Corp. 제 5장. 세금 3분의 1, 대출 3분의 2의 정책은 Annual Report, the Secretary of the Tresury for 1918, 47~49쪽에 명시되어 있다.
31. ‘조세 평준화tax smoothing’에 관한 최근 연구들은 정부 지출의 일시적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차입하는 것이 분명히 타당함을 보여준다. 세율이 올라가면 왜곡된 세금 부과로 인해 사회 후생의 상실deadweight loss도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권자의 후생 극대화를 추구하는 정부는 시기에 따라 상대적으로 일정한 세율을 유지하려는 유인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 지출이 특별히 높을 때는 차입을 하고 지출 수요가 상대적으로 낮을 때는 채무를 상환해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한 참고문헌은 Barro, Robert J. (1979), “On the Determination of the Public Debt,”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87, pp.940-971에서 찾을 수 있다.

위 참고 문헌 중 Witt (1987)은 뭔지 모르겠음.

1차 세계 대전 당시의 이와 같은 전후 배상금 기대감이 2차 세계 대전의 근원이 된 듯 하다. 왠지 독일 배상금이 엄청나더니만 이런 사정이 있었군. ㅎㅎ

한편 좀 다른 이야기지만, 양차 대전으로 인해 증가된 직접세는 불평등을 감소시키는데 기여했다는 이야기를 피케티 선생의 책[1]에서도 본 듯한데, 연관이 있는 내용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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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은이), 장경덕 (옮긴이),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09-12 | 원제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2014년)

미국 교도소에서 라면의 가치

인구 10만명당 수감자 수가 세계 최고인 미국의 교도소 문제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서, 이코노미스트지에서도 미국의 교도소 수감자수가 지나치게 높다는 이야기를 꾸준히[1,2,3]해 왔는데, 본 블로그에서도 언급한 적[4]이 있다.

미국 교도소 내에서 라면이 화폐 대신 쓰이고 있다는 유튜브 영상[5]을 봤는데, 재미있으니 함 보는 걸 추천한다. 재생시간 4분 24초.

중간에 언급된 Ramen Politics라는 논문[6]의 저자 Michael Gibson-Light에게는 홈페이지[7]가 있던데, 애리조나 대학 School of Sociology 소속의 박사과정 학생이라고 한다. 논문[6]은 유료이긴한데 어찌저찌 다운로드 받아볼 수 있다. 근데 글이 너무 길어서 영어 울렁증이…-_- 영상[5]에서 언급된 암시장 가격은 중간[6;p24]에 표로 정리돼 나온다.

본인이 어릴 때 수강한 경제학 개론 숙제로, 디아블로2 아시아3 서버에서 조던링 – 7% 매찬참 사이의 환율변동-_-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썼던게 잠시 생각난다. ㅋㅋㅋㅋㅋㅋ 이거 뭔지 이해하면 아재 인증?? ㅋㅋㅋㅋ

Sociology 분야에서 가끔 범죄자와의 협력으로 논문을 쓰는 이야기들이 꽤 재미있는데, 일전에 본 괴짜사회학 이야기[8]도 추천할만 하다. ㅎ

감옥에서 라면을 어떻게 조리할지 궁금해지는데, 유튜브에 감옥과 관련된 영상을 만드는 채널[9]이 있었다. 헐.. ㅎㅎ 이 채널의 영상중에 감옥 라면 요리법에 대한 영상[10]이 참고할만 하다. 감옥 라면이 나름 유명한 건지 책[11]도 있다. 음… 미국 교도소 라면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뜨거운 국물의 한국식 빨간 라면은 아닌 듯 하다. ㅎㅎ 위 영상[5]은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을 듯 하다.

한국의 뽀글이-_-도 나름 비용대비 효율성의 관점에서 뛰어난 조리법이라고 생각하는데, 미국에 수출할 필요가 있을 듯-_- 한국 라면 판매량의 증대에 도움이 될 수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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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9
팀 하포드 선생의 책[12]과 관련하여 영상을 봤는데, 재미있다. 재생시간 7분 4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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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코노미스트 Banged up May 5th 2009
[2] 이코노미스트 Too many laws, too many prisoners Jul 22nd 2010
[3] 이코노미스트 Why does America have such a big prison population? Aug 15th 2013
[4] 내 백과사전 미국 형벌의 부당성 2013년 11월 26일
[5] 미국교도소에서 라면이 인기폭발인 이유 (youtube 4분 24초)
[6] Gibson-Light, M., Ramen Politics: Informal Money and Logics of Resistance in the Contemporary American Prison, Qualitative Sociology (2018) 41: 199. https://doi.org/10.1007/s11133-018-9376-0
[7] https://www.gibson-light.com
[8] 내 백과사전 [서평] 괴짜사회학 2017년 2월 9일
[9] AfterPrisonShow (youtube.com)
[10] 10 Ways To Cook Ramen Noodles In Prison (youtube 33분 58초)
[11] Prison Ramen: Recipes and Stories from Behind Bars (amazon.com)
[12] 내 백과사전 [서평] 당신이 경제학자라면- 고장 난 세상에 필요한 15가지 질문 2015년 1월 4일

미국의 양파 선물 거래 금지법 Onion Futures Act

해커뉴스[1]에서 위키피디아의 양파 선물 거래 금지법 항목이 나오길래 좀 찾아 봤다. ㅋ

미국에는 양파 선물시장이 없다고 한다. 1955년 가을에 Siegel과 Kosuga 라는 사람이 시카고 선물 시장에서 양파 현물과 선물을 매수하여 전체 시장 유통량의 98%를 독점하는 바람에 난리가 난 듯 하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들이 사들인 양파의 양은 1400만kg이었다고 하니, 이거 완전 허생전 수준이구만-_- 양파 가격의 폭등 이후에 이들은 양파 선물시장에서 대규모 숏 포지션을 잡은 후에 대방출을 한 모양인데, 55년 8월에 한 포대(50파운드) 2.75달러였던 양파값이 이들의 대 방출 이후 10센트-_-가 됐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양파를 대규모로 보관을 가능하게 한 수법은 시카고 바깥으로 배송을 보냈다가 다시 시카고로 배송을 하는 수법이었던 모양인데, 일전에 골드만이 알루미늄 매점매석[2] 할 때 쓴 수법이랑 똑같구만.

이들은 대규모 숏 포지선 덕에 수백만 달러를 벌었고, 양파 한 포대 가격이 양파 포대자루 그 자체의 가격보다도 낮아지는 기현상까지 일어났다고 한다-_- 결국 수많은 농부가 파산하였고 이러한 법이 제정되었다나 뭐라나.

대충 검색해보니, 주로 자유시장주의자들의 파생상품 옹호론에 대한 반박 근거로 제시되는 듯. 과연, 파생상품의 장점을 들 때 흔히 드는 근거 중의 하나가 가격안정성이긴 하다. 또한 원자재 가격 폭등이 투기때문인지 진짜 펀더멘탈한 이유인지를 파악할 때, 선물시장이 있는 다른 시장과 비교대상으로 연구하기도 하는 듯 하다.[3]

뭐 여하간 이런 사례를 많이 알아둬야 말싸움할 때 좋다-_- 오늘도 상식이 늘어난 듯 해서 좋구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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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Onion Futures Act (hacker news)
[2] 내 백과사전 골드만삭스와 알루미늄 2013년 9월 11일
[3] 조선일보 국제 곡물값 네가 궁금하다 – 최근 값하락은… 투기세력의 거품 꺼지는 중 2011.05.21 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