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에서 길을 잃다(Lost in Math)

Peter Woit 선생의 블로그[1]에서 ‘Lost in Math'[2]라는 신간 소개를 하는 걸 며칠 전에 봤는데, 이 책이 Mathematical Investor 블로그[3]에서도 또 소개가 되고 있길래, 나도 포스팅하지 않을 수 없구만. ㅋ

책 내용 자체는 아무래도 일전에 Gian Francesco Giudice 선생의 그 이야기[4]와 궤를 같이 하는 것 같다. 즉, empirical evidence 보다는 mathematical beauty에 더 치중하는 이론 물리학에 대한 문제제기 같아 보인다. 저자 Sabine Hossenfelder은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독일 사람인 듯 한데, 나름 인지도가 있는 듯 하다.

math investor 블로그[3]에서는 현재 경제학 분야도 실증적 접근 보다는 지나치게 수학적 모델링의 우아함을 추구한 나머지 수학에서 길을 잃은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 그 예로 CAPM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본인은 CAPM을 정확히 이해를 못해서-_- 잘 모르겠구만. 예전에 좀 찾아보다가 귀찮아서 접었음-_- 좀 공부해 둘 껄… ㅋ 이 비슷한 이야기를 몇 번[5,6] 들은 적이 있긴 하다.

여하간 이 책의 역서가 나오면 잽싸게 구입할 의사가 있는데, 나오려나 모르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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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ost in Math (math.columbia.edu)
[2] Lost in Math: How Beauty Leads Physics Astray (amazon.com)
[3] Are economics and finance “lost in math”? (mathinvestor.org)
[4] 내 백과사전 Gian Francesco Giudice의 기고글 : 이론 물리학의 위기? 2017년 11월 3일
[5] 내 백과사전 경제학자의 공허한 수학 2014년 9월 27일
[6] 내 백과사전 경제학자의 수학공부 2012년 5월 1일

하드론을 이용한 암 치료법

프랑스 국립과학 연구센터에서 발간하는 소식지인 CNRS 뉴스의 기사[1]에 하드론 치료법에 대한 기사가 있어 포스팅해봄.

입자 가속기로 가속된 입자가 물질을 통과할 때, 특정 깊이에서 대부분의 에너지를 방출한 후, 급격히 운동 에너지를 잃는 현상이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Bragg peak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이 원리를 이용하면 인체에 가속된 입자를 쏘아서 특정 부위의 세포만 정밀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암은 단일 질병이 아니라 워낙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고, 각 케이스마다 처리법이 천차만별인 듯 하다. 이론적인 관점에서 The Hallmarks of Cancer와 같이 암을 정형화하고, 통일된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노력도 없지는 않으나, 아직까지 크게 성공적이지는 않은 듯[2] 하다.

다양한 암들 중에서 화학요법이 잘 통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수술로도 절제하기 매우 까다로운 부위에 있을 경우, 대단히 처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모양인데, 이 경우 이런 하드론을 이용한 치료법을 시도하는 듯 하다. X선 등을 이용한 방사선 요법은 투과율이 높아서 다른 세포의 파괴도 많이 일어나는 모양인데, Bragg peak 때문에 다른 장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에는 Particle therapy라는 용어로 등록되어 있고, 국내에서는 ‘양성자 치료’, ‘중입자 치료’라는 용어로 알려져 있다. 간단한 원리로 몇몇 홈페이지[3,4]를 참고하면 좋다. 국내에서도 세브란스 병원이 무려 3000억(!)을 투자하고 있다[5]고 하니, 어쩌면 국내에서도 치료가 가능할 수도 있다.

양성자를 가속시켜 쏘는 방법과 탄소핵을 가속하여 쏘는 방법이 있는 듯 하다. 탄소는 양성자보다 무거워서 높은 타격효과를 노리는 것 같다. 양성자를 쏘면 ‘양성자 치료’이고, 탄소원자를 쏘면 ‘중입자 치료’라 부르는 듯 하다. 그런데 CNRS 기사[1]를 보니 높은 원자량은 세포와 충돌하여 낮은 원자량의 원소로 분해되는데, 이 경우 인체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아직까지 신기술이라 그런지 거의 연구된 바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환자라면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닐 듯 하다. 특정 암의 경우 3년 생존율이 74%에 달한다는 주장[6]도 있다. 이 치료를 받을 정도면 화학요법이나 여러 치료법을 이미 시도하여 실패한 환자일 가능성이 높은데, 물론 다른 치료법들과 벙행했을 것이므로 단독치료법의 유효성이라 생각하기 어렵지만, 여하간 나름 뛰어난 치료법이라 생각한다.

뭐 입자가속기가 싼 물건은 아니다보니, 의학자들이 이런 종류의 연구를 한 번 하기도 쉽지 않은 듯 한데, 기사[1]에서는 척박한 프랑스 연구환경에 대한 개탄(?)도 조금 나온다. 프랑스에서 전문적으로 이런 하드론 치료법을 연구하기 위해 CYCLHAD라는 기관이 새로 개설된 모양이다.

입자가속기를 사용해야 하므로 치료비가 어마무지막지한 모양인데, 아마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가 될 듯-_- CAR-T도 치료비가 어마어마 하다[7]고 하던데, 그것보다 더 많이 나오려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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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NRS news Hadron Therapy Ready for Takeoff 07.05.2018
[2] 내 백과사전 Robert A. Weinberg의 기고글 : 우리는 암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있나? 2015년 3월 25일
[3] 양성자치료 원리 (국립 암센터)
[4] 중입자 치료란? (한국 원자력 의학원)
[5] 조선일보 세브란스, ‘중입자 치료기’ 국내 최초 도입…암 환자 일본 원정 치료 사라질 듯 2018.03.29 17:47
[6] 후생신보 간암 양성자 치료, 3년 생존률 74% 달해 2018/06/29 [16:39]
[7] 내 백과사전 CAR-T의 FDA 허가 2017년 7월 15일

“놀랍도록 간단한(remarkably simple)” 공식

symmetry 매거진 기사[1]를 봤는데, 스탠포드 선형가속기 센터 소속의 Lance Dixon 선생의 인터뷰 영상[2]을 소개하고 있다.

영상[2]을 대충보니, 입자가속기에서 충돌현상이 일어날 때 입자들이 사방으로 방출되는데, 생성된 입자들의 방출되는 방향과 각도에 따른 관계식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이런걸 Energy-Energy Correlation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Lance Dixon 등이 쓴 논문[3]에는 이 관계식이 “놀랍도록 간단한(remarkably simple)” 공식이라고 언급하고 있다니, 얼마나 간단한 공식인지 함 봅시다. ㅋ

이 개그를 하려고 이 글을 써봤음. ㅋㅋㅋㅋㅋ 영혼을 파괴하는 연습문제[4] 수준이구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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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ymmetry magazine We’re going to need a bigger blackboard 06/06/18
[2] Theorists love giant formulas (even more than coffee) (youtube 3분 17초)
[3] Lance J. Dixon, Ming-xing Luo, Vladyslav Shtabovenko, Tong-Zhi Yang, Hua Xing Zhu, “The Energy-Energy Correlation at Next-to-Leading Order in QCD, Analytically”, arXiv:1801.03219 [hep-ph]
[4] 내 백과사전 영혼을 파괴하는 연습문제 2012년 3월 20일

[서평]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 카를로 로벨리의 존재론적 물리학 여행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 카를로 로벨리의 존재론적 물리학 여행
카를로 로벨리(저자) | 김정훈(역자) | 이중원(감수) | 쌤앤파커스 | 2018-04-09 | 원제 La realta non e come ci appare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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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Lisa Randall 선생이 카를로 로벨리 선생의 이 책을 열라게 혹평했다는 이야기[1]를 했는데, 이 책이 설마 역서로 나올 줄은 몰랐다. ㅎㅎㅎ 혹시 전자책으로 나올까 싶어서 두 달 정도 기다려봤는데, 안 나오길래 하는 수 없이 종이책으로 구입하였다. ㅋ

원제는 La realtà non è come ci appare인데, 역자가 원저와 영문 번역서인 Reality is Not What It Seems를 참고했다고 한다. 책의 맨 뒤에 있는 참고서적 목록에, 한국어 번역판이 있는 것들은 번역판 제목도 같이 붙어 있다. 나름 역자의 품이 꽤 들어간 듯하여 추가점을 주고 싶다. ㅎㅎㅎ

일전[1]에도 이야기했지만,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일하는 수학적 프레임워크를 시도하는 몇 가지 방법론이 있는데, 현재 이론물리학계의 대세는 끈이론이라고 알고 있다. 로벨리 선생은 고리 양자 중력파(?)이므로, 이론물리학계의 대세인 끈이론파(?)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이론적 스탠스를 가진 사람이다. 끈이론에 관한 대중적 저서는 꽤 있는데 비해, 고리 양자 중력을 소개하는 대중서는 상대적으로 적다. 고리 양자 중력을 소개하는 대중서 중에 리 스몰린 선생이 쓴 ‘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2]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내용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_- 물론 이 책[2]은 뒤쪽 참고서적 목록에도 있다.

책의 앞부분 절반 정도는 물리학사에 대한 내용으로, 물리학사에 대해 웬만큼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이미 거진 알고 있는 내용일 듯 하다. 고리 양자 중력이야기는 p199의 네 번째 강의부터 슬슬 발동이 걸리는데, 아무래도 현재까지 LHC에서 초대칭 입자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끈이론파 사람들이 느끼는 곤혹스러움[3]을 약올리는(?) 듯한 내용도 살짝(p211) 나온다. ㅋㅋㅋㅋ 물론 고리양자 중력이론에는 초대칭 입자가 필요없다. 일전에 arXiv의 기괴한 논문들 이야기[4]에서 나온 끈이론가와의 대화[5]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ㅎㅎ

Randall 선생이 언급[1]한 10120 이야기는 p229에 등장한다. 뭐 앞부분에서 면적이야기를 쭉 했으니 면적비라고 해석하는 것이 정당할 듯. Randall 선생이 좀 너무한 감이 있다. ㅋ

p230에 아르키메데스의 모래알 계산 이야기가 나오는데, 일전[6]에도 이야기 했지만 아르키메데스의 생각이 왜 위대한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p232

양자중력은 모래알 계산의 탐구를 이어가는 많은 길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우주를 이루고 있는 공간의 알갱이를 세고 있습니다. 광대한 우주이지만, 유한합니다.

오직 우리의 무지만이 무한할 뿐입니다.

인상적인 이 부분은 장자의 양생주편[7]이 생각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근데 이 이후로 책의 가장 뒷부분에 정보 이론 이야기는 왜 한 건지, 저자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여하간 꼴랑 이 책을 읽고 고리 양자 중력을 눈곱만큼이라도 이해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알게 된 게 있다면 로벨리 선생이 글을 잘 쓴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ㅋ 단테와 세익스피어, 물리학사를 넘나드는 글솜씨에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일전에 해커뉴스[8]에서 로벨리 선생이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 글[9]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뭐 자세히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_- 뭔가 문과스러운 지식이 많은 물리학자인 듯 하다. ㅋ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전문지식을 전달하려는 모든 책은, 지루하지만 엄밀한 설명재미있지만 부정확한 설명 사이의 적절한 조화를 취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괜찮게 조화를 이룬 책이라 본다. 물론 재미있으면서도 엄밀한 설명을 성취한다면 최고의 책이 되겠지만, 그런 거 없다-_- 제대로 된 공부는 언제나 고생을 해야 하는 법이다. ㅋ

저자의 다른 대중서 중에 번역된 것으로 ‘모든 순간의 물리학‘[10]이 있는데, 본인은 읽지 않았다. 이 책은 ‘모든 순간의 물리학’보다 출간시점은 늦지만 먼저 쓰여진 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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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Lisa Randall이 Carlo Rovelli의 대중물리학 책을 혹평하다 2017년 3월 9일
[2] 리 스몰린 저/김낙우 역, “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 사이언스북스, 2007
[3] 내 백과사전 Gian Francesco Giudice의 기고글 : 이론 물리학의 위기? 2017년 11월 3일
[4] 내 백과사전 arXiv의 기괴한 논문들 2017년 7월 16일
[5] Carlo Rovelli, “A dialog on quantum gravity”, arXiv:hep-th/0310077
[6] http://zariski.egloos.com/2068347
[7] 내 백과사전 장자 양생주편 중에서 2016년 1월 19일
[8] Physics Needs Philosophy. Philosophy Needs Physics (hacker news)
[9] ROVELLI, Carlo (2018) Physics Needs Philosophy. Philosophy Needs Physics. Foundations of Physics, 48. pp. 481-491. ISSN 0015-9018, DOI:10.1007/s10701-018-0167-y
[10] 카를로 로벨리 저/김현주 역, “모든 순간의 물리학“, 쌤앤파커스, 2016

게임 개발자가 된 물리학자

딘 다카하시 저/허준석 역, “마이크로소프트의 도전 : X박스와 게임의 미래“, 푸른미디어, 2003

p58-61

그의 고등학교 성적은 여전히 좋지 못하여 졸업 평점은 2.3에 머물렀다. 블랙클리는 집에서 숙제보다는 전자 서적을 뒤적거리곤 했다. 라디오쌕2)이 그가 즐겨 찾는 상점이었고 항상 뭔가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물리 선생인 빌 클레이뵈커는 블랙클리의 호감을 샀다. 선생은 그에게 물리학의 재미를 가르쳐 주었다. 선생은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실험하는 도중에 폭발을 일으켰는데, 그때마다 뭔가 가르칠 것을 말해 주었다. 그는 블랙클리의 우상이었다. 둘은 친구로서 가까워지기도 하여 저녁 식사를 함께 할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블랙클리는 클레이뵈커 선생을 인생의 영웅이라고 여겼다.

대학에 들어갈 시기가 다가오자, 그는 고향을 떠나고 싶었다. 보스턴 근처의 터프츠 대학에 지원해 입학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생존의 기술’을 익히지 못한 채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금새 수업에 싫증을 느꼈고, 4인조 재즈 밴드를 조직하여 보스턴 근처의 호텔에서 공연했다. 2학년 때에는 라디오 광고를 제작하는 스튜디오를 개업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2년을 보냈지만 학점은 전혀 따지 않았다. 그의 부모들은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옮길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과학교습으로 생활비를 조달했다. 재즈 연주는 생활의 활력소가 되었다. 재즈를 통해 대중 앞에 나설 때 느꼈던 공포를 극복하게 되었다. 그는 자마이카 출신의 밴드 동료가 뒷좌석에서 마리화나를 피워대는 동안 심야의 보스턴 거리를 질주하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는 여름 방학 동안 뉴멕시코로 낙향해 아버지가 일하는 병원의 연구재단에 취직했다. 여기서 외과의사인 후쿠시마 에이이치의 조수로 일하게 되면서 일이 제대로 풀려 나갔다. 블랙클리는 맡은 일에 몰두했고 『자기공명학회지』에 〈자기 공명 플로우 이미징〉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하기까지 했다. 여기서 그는 인간의 신체 내부를 보여주는 X-레이를 개량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그는 전혀 다른 학생이 되었다. 그는 보스턴의 학교로 귀환했고 의료 물리학 과목들을 수강하여 2년 만에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채웠다.

“뭔가 딱 걸려든 느낌이었죠 그리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는 문제아에서 학장의 추천 리스트에 드는 모범생이 되었습니다.”

물리학에 뛰어났던 블랙클리는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했던 인물의 이름을 따 설립된 시카고 외곽에 위치한 페르미국립가속기 연구소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는 분자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다른 것에 관심을 끊었고 음악은 완전히 포기했다. 이 즈음, 그는 취미 삼아 글라이더를 타기도 했고 비행사 면허도 취득했다. 그는 장학금으로 받는 1만 1,000달러 남짓의 낮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에만 매달렸다. 그는 가난한 생활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콜라를 마시고 싶어도 캔 하나를 마음 편히 사먹을 수 없었다. 이 같은 가난에 대한 기억이 꽤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다.

그의 지도교수가 페르미 연구소 내의 파벌 싸움에 휘말려 곤경에 처하기 전까지 그는 물리학에 매진했다. 이론가이기도 한 그의 지도교수는 고가의 새로운 장비 없이 ‘톱 쿼크‘, 즉 자연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의 하나인 아원자 입자를 찾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예산이 이미 집행된 상태였기 때문에, 관료들이 이러한 발견을 반가워할 리 없었다. 그의 지도교수가 이 분쟁 때문에 연구소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때 블랙클리는 환멸을 느꼈다. 밤새 고민한 끝에, 그는 더 이상 이렇게 치사하고 말이 많은 일에 매달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한편, 분자 가속기의 도입도 취소되었다. 1993년, 의회는 블랙클리가 자신의 연구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110억 달러짜리 초전도 충돌기 건설 계획을 백지화했다. 뭔가 다른 일을 찾아보라는 하늘의 계시라고 생각했다. 그는 분자 물리학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곡예 비행에 사용되는 비행체를 설계하는 일을 맡기로 했다.

하지만 이 일 대신, 그는 인생의 항로를 다시 게임으로 돌렸다. 그는 여자친구와 보스턴으로 돌아오는 길에, 네드 러너가 낸 구인 광고를 보고 룩킹글래스테크놀로지스(Looking Glass Technologies)에 입사했다. 이 회사는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컴퓨터 게임 회사였다. 1992년, 블랙클리가 24살이 되던 해였다. 그는 룩킹글래스에서 게임을 보다 사실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물리 모델 부분을 책임지게 되었다. 이 일은 그에게 딱 들어맞았다.

100만 장 이상 판매된 최고의 베스트셀러 전투비행 시뮬레이터 〈척예거〉(Chuck Yaeger)를 제작한 네드 러너는 블랙클리가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러너를 붙들고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러너는 자동차 레이싱 게임을 위한 물리 모델을 구축해 줄 프로그래머가 필요했다. 게임 속의 자동차는 현실의 차와 흡사하게 적절한 탄성, 유체역학 및 충돌의 논리를 갖추어야 했다. 이들을 모사(模寫)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물리 법칙들에 밝았던 블랙클리에게 이 일은 간단한 것이었다.

“게임에서 물리학을 구현하는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깨달았죠. 난 구슬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묘사한 데모를 제작했습니다.”

그는 분자 물리학에 그랬던 것만큼 게임의 물리역학에 대해서도 열정적이었다. 이러한 자세는 ‘게임의 고전’을 창조한다는 목표를 지닌 룩킹글래스와 잘 어울렸다. 룩킹글래스의 MIT 출신들에게 게임은 결코 저급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었던 것이다. 룩킹글래스의 게임은 그저 때려부수는 것을 원하는 철없는 소년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즉, 그들에게 게임은 예술이었다. 블랙클리는 게임이 영화, 책, 회화와 같은 수준까지 올라설 수 있다는 이들의 믿음에 쉽게 동화되었다.

블랙클리는 다시 한번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고 느꼈다. 그는 자동차 게임(하지만, 이미 게임의 제작이 상당히 진행되어 그의 아이디어가 사용되지는 못했다) 제작에 참여했고, 이후 공상과학 성공작인 〈시스템 쇼크〉의 물리역학을 담당했다. 곧장 그는 자신의 팀을 만들어 〈플라이트 언리미티드〉라는 게임을 제작했다. 게임 제작에는 그의 비행사 면허, 물리학 지식, 글라이더 비행 경험이 총동원되었다. 이 게임에서 블랙클리는 비행체의 무게, 바람의 저항, 강하각(降下角) 및 여러 요소들 게 의해 비행체의 위치가 결정되는 사실적인 비행 역학을 구현했다. 게다가, 그는 연산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당시의 PC로 이 작업을 해냈다. 이 게임은 78만 장 이상 판매되었고, 틈새 시장을 겨냥한 제품으로는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했다. 블랙클리가 이렇게 말했다.

“게임의 비행 방식이 매우 마음에 든다고 비행사들이 말해주었고 난 이 점이 가장 자랑스러웠습니다. 난 게임의 세계에 물리학의 중요성을 퍼뜨리고자 애쓰고 있던 참이었죠.”

 


2) Radio Shack: 텍사스에 본점을 둔 유명한 미국의 무선통신 및 전자부품 판매상점. 자세한 것은 http://www.radioshackcorporation.com 을 참고.

좀 옛날 이야기이긴 하지만, 20대까지의 인생경력 치고는 인상적인 사람이라 함 올려봄. ㅋㅋ

BICEP 실험의 영광과 좌절

아마 경제학 용어가 우주론에 차용된 드문 사례중의 하나가 바로 ‘인플레이션‘일 것이다. 최초 빅뱅 당시에 나온 빛들은 적색편이가 심해진 탓에 매우 파장이 길어져 버렸는데, 이 길어진 파장의 빛을 우주배경복사(CMB)라고 부른다. 근데 아주아주 멀리 떨어진 지점들에서 날아오는 우주배경복사들이 우연의 일치라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균질하다는 점이 문제다. 소위 지평선 문제라 부르는 이야기인데, 이 먼 점들이 옛날에 아주아주아주 가까웠지만 무슨 이유 때문에 삽시간에 (광속보다 훠어얼씬 빨리-_-) 멀어졌다고 설명을 시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우주가 만들어진 지 10−33초와 10−32초 사이의 어느 순간에 10−36초 동안의 짧은 시간 동안 우주가 초초초초초초 빠르게 커졌다고 설명한다. 일전에 암흑 에너지 이야기[1]하면서 한 적이 있다.

인플레이션 이론은 그 밖에 평탄성 문제자기 홀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WIMP처럼 여러 문제를 한큐에 해결하는 도랑치고 가재잡는 이론이 아닐 수 없다. ㅋㅋ 다만 증명이 어려울(어쩌면 불가능할) 뿐이다-_-

2014년에 남극에 소재한 BICEP2 관측소에서 인플레이션의 증거를 찾았다고 했다가, 그 결과를 취소했던 헤프닝이 있었는데, 본 블로그에서도 언급한 적[2]이 있다. 관측소 초기 시절부터 연구에 참여했던 Brian Keating 선생이 이 헤프닝과 관련하여 노틸러스 잡지에 기고한 글[3]을 읽어봤다. 글의 분량이 좀 돼서 읽기 빡시다-_- 중간에 손자병법의 한 구절도 나오는데, 뭔가 Keating 선생이 나름 지식을 두루 섭렵하는 사람 같다. ㅋ

인플레이션 모델이 상당히 성공적으로 많은 것을 설명하기 때문에, 글[3]에서 말한 대로 그 증거를 찾는다면 노벨상 확정인건 맞는데, 이 사람들이 우주의 진실을 알고 싶다는게 아니라 노벨상이 너무 갖고 싶어서 실험하는 거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_- 글[3] 내용이 다 잡은 성배를 놓쳐서 너무너무 아쉽다~~같은 느낌-_-만 난다. ㅋㅋ

잘 모르긴 해도 우주배경복사의 편광화가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 한데, 뭐 본인은 이론적인 내용은 하나도 모른다. ㅋㅋ 여하간, 측정에 있어 가장 방해가 적은 남극에 관측소가 있는데다가, 은하 내부의 우주 먼지에 의한 오차보정 등등 여러 종류의 오차보정을 하고도 남는 값이 있다면, 그것이 최초 빅뱅 당시의 정보라고 생각해도 좋을 듯 하다. 나름 꽤 고생스러운 데이터 분석인 듯 하다.

근데 그 우주 먼지에 의한 에너지 방출 계산이 간단하지 않은 것 같다. 경쟁관계에 있는 Planck 우주선 관측팀이 협력이나 데이터 공유를 거부한 건 좀 아닌 듯. 사실 이런 연구는 세금으로 하는 건데, 협력은 못하더라도 데이터 공유는 해야 맞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여하간 재현가능해야 하는 실험은 크로스 체킹을 해야 맞는 거고 이것도 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이지만, Keating 선생이 이런 서정적인 글까지 쓰는 걸 보면 나름 많이 아쉬웠던 모양이다. ㅎㅎ

 


[1] 내 백과사전 암흑 에너지를 찾기 위한 노력 2013년 8월 24일
[2] 내 백과사전 인플레이션 이론의 증거 2014년 3월 19일
[3] Nautilus How My Nobel Dream Bit the Dust APRIL 19, 2018

4000명의 물리학자가 라스 베가스를 방문했을 때

해커뉴스[1]를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2]가 나와 있어 걍 글 써봄. ㅋㅋ

1986년 미국 물리학회의 연간 미팅이 샌 디에고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는데, 호텔 예약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컨퍼런스 주최자는 하는 수 없이 라스 베가스에 소재한 MGM Grand에 예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호텔은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미국에서 단일 호텔 중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이 호텔은 물론 자체 카지노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근데 이 물리학 학회 기간에 호텔의 수익은 최저를 기록하는 바람에 호텔 측에서는 정중하게 미국 물리학회에게 두 번 다시 오지 말아달라고-_- 이야기 했다고 한다. ㅋㅋㅋ 이유가 무엇일까?

MIT 애들이 MIT Blackjack Team을 만들어 러시아 무기상 행세를 하며 카지노를 거덜-_-냈다던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3]나, 아니면 수학자 에드워드 소프 선생이 카지노를 털다가 목숨이 위험할뻔했던 이야기[4]가 생각나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ㅎㅎ

일부 물리학자가 포커 월드 시리즈에서 높은 성적을 거둔 사례가 있긴 하다. 끈 이론을 연구하는 Marcel Vonk라는 물리학자는 2010 포커 월드시리즈에서 570,960달러를 받아 최초의 네덜란드 우승자가 되었다고 한다. Michael Binger라는 사람은 프로 포커 선수이긴한데, 스탠포드에서 이론물리학의 Ph.D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자기 연구와 다른 사람들의 연구를 이해하기가 너무나 바쁜 나머지, 호텔 카지노가 텅텅 비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 라스 베가스 호텔들은 카지노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기 때문에 방값을 손익분기 이하로 내놓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2] ㅋㅋ 결론은 물리학자는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_-

 


[1] https://news.ycombinator.com/item?id=16516837
[2] How 4,000 Physicists Gave a Vegas Casino its Worst Week Ever (Physics Central)
[3] citynet magazine The MIT Blackjack Team MARCH 17, 2003
[4] 내 백과사전 [서평] 헤지펀드 시장의 마법사들 2017년 9월 22일

Gil Kalai 선생의 양자 컴퓨터에 대한 부정적 견해

가끔 Gil Kalai 선생의 블로그[1]를 보는데, 오늘 보니 때 마침 콴타 매거진에서 Gil Kalai 선생을 인터뷰한 기사[2]를 링크해 놓고 있었다.

본 블로그에서는 주로 조합론 문제와 관련하여 Gil Kalai 선생의 블로그를 언급한 적[3,4,5]이 있다. 음… Gil Kalai 선생이 양자 컴퓨터에 대해 꽤나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Gil Kalai 선생의 위키피디아 항목에서 전에는 언급이 없었는데, 오늘 보니 양자 컴퓨터에 대한 언급이 생겼네. ㅎㅎ 물론 그의 견해는 학계에서 마이너한 것은 사실이다. 뭐 본인은 판단할 능력은 없지만 나름 흥미롭게 관전할 만한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ㅎ

 


[1] My Argument Against Quantum Computers: An Interview with Katia Moskvitch on Quanta Magazine in Combinatorics and more
[2] Quanta Magazine The Argument Against Quantum Computers February 7, 2018
[3] 내 백과사전 R(5,5)의 upper bound가 하나 줄어들다 2017년 3월 30일
[4] 내 백과사전 8차원에서 가장 밀도있는 구 쌓기 문제가 해결되다 2016년 3월 25일
[5] 내 백과사전 15명의 여학생 문제와 Steiner system의 존재성 2014년 1월 17일

[서평] 젭토스페이스 – 힉스 입자를 발견한 LHC 물리학의 세계

젭토스페이스 – 힉스 입자를 발견한 LHC 물리학의 세계
잔 프란체스코 주디체(저자) | 김명남(역자) | 휴머니스트 | 2017-01-09 | 원제 A Zeptospace Odys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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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Gian Francesco Giudice 선생의 기고글 이야기[1]를 했는데, 혹시 Giudice 선생의 책의 번역본이 있을까 싶어 검색해 보니 있길래 슥샥 사서 읽어봤다. ㅋㅋ

몰랐는데, 접두사 Zepto-는 10−21을 의미한다고 한다. 참고로 화엄경 숫자세기[2]-_- 같은 접두사를 나열하면 마이크로의 1/1000이 나노이고, 나노의 1/1000이 피코이고, 피코의 1/1000이 펨토, 펨토의 1/1000이 아토, 아토의 1/1000이 젭토가 된다.

저자가 CERN에서 연구하는 학자다 보니까 대부분의 내용은 LHC와 관련된 이야기로 돼 있다. 책의 앞부분 1/4 정도는 물리학사의 개괄적 내용을 다루고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아는 내용이 아닐까 싶은데, 그 뒤로 들어가면 LHC가 처음에 어떻게 계획되었고, 어떤 과정으로 건설되었고,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쭉 설명하고 있다. 대단히 정확도가 높고 균질하게 완성도가 높은 장비들을 동원하는 작업이므로, 여러모로 기술적/산업적 측면에서 대단히 극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면으로 노력이 필요했던 것 같다. LHC가 여러 회사들의 산업기술의 발달에도 한 몫을 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나온다.

책의 뒤쪽에는 일전에 이야기[1]한 Naturalness의 문제(p297)와 암흑물질, WIMP 문제(p376) 등의 우주론과 맞닿아 있는 현대 물리학의 주요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 책을 쓸 당시와 기고글[3]을 쓸 당시는 생각이 좀 바뀌었는 모양이다. ㅎㅎ 여하간 저자의 arxiv에 있는 글[3]을 참고하는 것도 책을 보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듯 하다.

p197에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Lady Windermere’s Fan, Act III 달링턴 경의 대사를 인용하는 부분이 있는데, 본 블로그에서도 이야기한 적[4]이 있다. 본인도 좋아하는 대사다. ㅎㅎㅎ

저자가 이탈리아 인이라 원서가 이탈리아어가 아닐까 싶었는데, 영어로 돼 있는 듯[5] 하다. ㅎㅎ

 


[1] 내 백과사전 Gian Francesco Giudice의 기고글 : 이론 물리학의 위기? 2017년 11월 3일
[2] http://zariski.egloos.com/2254343
[3] Gian Francesco Giudice, “The Dawn of the Post-Naturalness Era”, arXiv:1710.07663 [physics.hist-ph]
[4] 내 백과사전 노르웨이 음악가가 도시 하수구에서 찾은 초소형 운석 2016년 12월 14일
[5] A Zeptospace Odyssey: A Journey into the Physics of the LHC (amazon.com)